“아빠… 엄마가 아빠 죽었다는데 진짜야?” 잘못 건 전화에 느닷없이 ‘아빠’냐며 펑펑 우는 아이, 10분뒤 다시 걸려온 전화에 남성은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딸 하나 둔 평범한 아빠였습니다. 제 사연을 시작하자면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는 것이 그만 엉뚱한 번호를 눌렀습니다.

어쩌면 이 우연한 실수가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보세요”

“아빠~?”

아마도 내 딸 현정이와 비슷한 또래로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땐 왜였을까 그런 아이가 귀여워서… 딸이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헛말이 나왔습니다.

“넌 아빠 번호도 모르니?
저장이라도 하지!”

“아빠 바보..
나 눈 안보이잖아!”

순간 당황했습니다. ‘아 장애가 있는 아이였구나..’ 너무 반기는 말투에 잘못 걸렸다고 말하기가 미안해서…

“아빠가 요즘 바빠서 그래~”

라며 대충 얼버무리고 끊으려 했습니다. 

“그래도 며칠씩 안 들어오면 어떡해?
엄마는 베개 싸움 안 해 준단 말이야”

“미안~아빠가 바빠서 그래!
일 마치면 들어갈게”

“알았어 그럼 오늘은 꼭 와!
끊어~”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걱정됐습니다. 애가 실망할까 봐 그랬지만, 결과적으론 거짓말한 거니까,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온종일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전화가 울렸습니다. 아까 잘못 걸었던 그 번호로… 왠지 받기 싫었지만, 떨리는 손으로 받았습니다.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순간 침묵이 흘렀고 다시 말을 하니 왠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아이가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대서요”

“아~네… 낮에 제가 전화를 잘못 걸었거든요.
아이가 오해한 거 같아요.”

“혹시 제 딸한테 아빠라고 하셨나요?
아까부터 아빠 오늘 온다며
기다리고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엉겁결에…”

“아니에요.. 사실 애 아빠가
한 달 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우리 딸이 날 때부터 눈이 안 보여서
아빠가 더 곁에서 보살피다 보니
아빠에 대한 정이 유별나네요.”

“아~네! 괜히 제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 딸한테 아빠 바빠서 오늘 못 가니
기다리지 말라고 말씀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그냥 그렇게만 하면 될까요?”

“네 부탁 좀 드릴게요. 
잠도 안 자고 기다리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요. 죄송합니다.
참! 애 이름은 ‘지연’이 에요.
유지연! 5분 뒤에 전화 부탁드릴게요”

왠지 모를 책임감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의 부탁에 5분 뒤에 전화를 걸었더니 아이가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어~ 아빠야~ 
지연아! 뭐 해?”

“아빠 왜 안아?
아까부터 기다리는데”

“응~ 아빠가 일이 생겨서
오늘도 가기 힘들 거 같아”

“아이~ 얼마나 더 기다려?
아빤 나보다 일이 그렇게 좋아?”

아이가 갑자기 우는데… 엉겁결에…

“미안 두 밤만 자고 갈게”

“진짜지? 꼭이다!
두밤자면 꼭 와야 해!”

라며 당황해서 또 거짓말을 해 버렸습니다. 잠시 뒤에 아이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는데 너무 고맙다더군요… 아이한테 무작정 못 간다고 할 수 없어 이틀 뒤에나 간다고 했다니까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켜 줬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이젠 낯설지 않은 그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울먹이는 지연이 목소리… 

“아빠! 엄마가 아빠 죽었대.
엄마가 아빠 이제 다시 못 온대…
아니지? 이렇게 전화도 되는데
아빠 빨리 와 엄마 미워! 
거짓말이나 하고…
혹시 엄마랑 싸운 거야?
그래서 안 오는 거야?
그래도 지연이는 보러 와야지
아빠 사랑해 얼른 와~”

순간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해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한참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연아 엄마 좀 바꿔 줄래?”

전화를 받아 든 지연이 엄마는 미안하다며 애가 하도 막무가내라 사실대로 말하고 전화 걸지 말랬는데 또 저런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더군요.

그 말에.. 딸 둔 아빠로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제안을 했습니다.

“저기~ 어머니!
제가 지연이 좀 더 클 때까지 
이렇게 통화라도 하면 안 될까요?”

“네 그럼 안 되죠.
언제까지 속일 수 도 없고요”

“지연이 몇 살인가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아~ 네,
저도 딸이 하나 있는데
3학년 이거든요.
1학년이면 아직 어리고
장애까지 있어서
충격이 더 클 수도 있을 테니까
제가 1년쯤이라도 통화하고 
사실대로 얘기하면 안 될까요?”

“네? 그게 쉬운 게 아닐 텐데…”

“제 딸 보니까
1학년, 2학년 3학년
한 해 한 해 다르더라고요.
좀 더 크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 수 있을 거 같아요”

오히려 제가 지연이 엄마에게 더 부탁을 했습니다. 그땐 내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연이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보름에 한 번쯤 지연이와 통화를 했습니다. 

“아빠 외국 어디에 있어?”

“사우디아라비아”

“거기서 뭐 하는데?”

“어~ 빌딩 짓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

“아~ 거긴 어떻게 생겼어?”

어릴 적 아버지께서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 노종자로 몇 해 다녀오신 적이 있어서 그때 들은 기억들을 하나 둘 떠올려 지연이한테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게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내 딸 현정이 선물살 때 지연이 것도 꼭 챙겨서 택배로 보냈고 그렇게 지연이의 가짜 아빠 노릇을 하며 전화로 이어갔습니다.

한때 아내에게 “당신 어린애랑 요즘 원조교제 같은 거 하는 거 아냐?”라는 오해를 받을 만큼 자주 통화도 했었죠. 제 딸 현정이는 커 가면서

“아빠 과자 사 와,
아이스크림 피자~
아빠 용돈 좀~”

늘 그런 식인데 지연이는…

“아빠 하늘은 
동그라미야 네모야?
돼지는 얼마나 뚱뚱해?
기차는 얼마나 길어?” 등등

사물 모양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안쓰러워 더 자상하게 설명하곤 했지만 가끔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지연이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 지연아 왜?”

“저기~ 나 사실은…
작년부터 알았어!
아빠 아니란 거”

순간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엄마랑 삼촌이 얘기하는 거 들었어
진짜로 아빠가 하늘나라 간 거”

“그그그~ 그래 미안~
사실대로 말하면 전화통화
못할까 봐 그랬어”

“근데 선생님이 4학년이면 고학년이래
이제부터 더 의젓해야 된댔거든”

“지연아!
근데 진짜 아빠는 아니지만
좋은 친구처럼 통화하면 안 될까?
난 그러고 싶은데 어때?”

“진짜~ 진짜로? 그래도 돼?”

“그럼~ 당연하지”

그 뒤로도 우린 줄곧 통화를 했습니다. 다만 이제는 아빠라고는 안 부르더군요. 그렇다고 아저씨도 아니고 그냥 별다른 호칭 없이 이야기하게 됐는데 괜히 섭섭한 마음 들었습니다.

그래도 늘 아빠로 불리다가 한순간에 그렇게 되니까… 그렇다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기도 뭐 하고… 시간이 흘러 지연이가 맹아학교를 졸업하는 날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화로만 축하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몇 해 동안 통화하며 쌓은 정이 있는데 그날만은 꼭 가서 축하해주고 싶었습니다.

목욕도 가고 가장 좋은 양복도 차려입고 한껏 치장을 했습니다. 비록 지연이가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처음 만나는 날인데 그 옛날 아내와 선보러 갈 때보다 더 신경 쓴 거 같아요.

꽃다발을 사들고 졸업식장에서 지연이 엄마를 처음 만났습니다.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몇 번씩  하시는데 왠지 쑥스러웠습니다.

잠시 후, 졸업장을 받아 든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에서 나오는데 단박에 지연이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유독 지연이만 눈에 들아왔습니다.

“지연아!”

지연이의 엄마가 딸을 부릅니다. 그러자 활짝 웃으며 다가온 지연이한테…

“지연아! 
누가 너 찾아오셨어
맞춰봐!”

하며 웃자 지연이는 

“누구?”

하며 의아해할 때 저는 축하한다고 꽃다발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때 갑자기 지연이가 큰소리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지연이 엄마도 나도 어쩔 줄 모르는데 지연이가 손을 더듬어 나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아빠! 이렇게 와줘서
너무 너무 너무 고마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난 이미, 오래전부터 너무나 착하고 이쁜 딸을 둘이나 둔 너무 행복한 아빠였음을 그날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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