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님께서 주신 심장소리 들어보실래요..?” 20년 전 아들의 심장을 이식받은 아이를 우연히 만났고, 가방 속에서 꺼낸 뜻밖의 ‘이것’에 난 눈물을 펑펑 쏟아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50대 여자입니다. 저는 오늘 제 인생을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저와 제 남편 그리고 저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 때부터 바로 작은 무역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졸업하자마자 바쁘게 일을 하며 살다가 24살에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남편을 안 좋아했던 여자애가 없을 만큼 인기가 많던 친구였습니다.

키도 크고 착하고 전교 회장까지 했던 친구였죠. 저는 졸업 후 동창회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가 그날 처음 간 거였는데, 남편도 그날 처음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먼저 고깃집에 자리를 잡고 왁자지껄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남편이 등장을 했죠. 남편은 초등학생 때의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했지만, 키도 훨씬 더 컸고 어른스러워져 있었습니다. 남자친구들이 일어나서 남편을 반겼습니다.

” 김형지 진짜 오랜만이다. 왜 이제야 온 거야? 짜식아! “

” 미안 좀 바빴어~ 잘 지냈어? 얼굴 좋아 보이네~”

” 좋아 보인다고? 나 곧 군대 간다. 너는 갔다 왔냐? “

” 그럼 나 졸업하자마자 갔다 왔잖아! “

” 와~ 씨 부럽다 야 그럼 너 요즘 뭐 하고 지내? “

” 그냥 아버지 일 받아서 하고 있지, 뭐~ “

” 맞다. 너네 아버지 사업하시지? 와~ 부럽다. 부잣집 아들~”

” 부잣집은 무슨 “

남편이 말을 하는데 목소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여자애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고, 눈에선 하트가 뿅뽕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저도 초등학생 때 혼자 남편을 짝사랑하고 있었거든요. 한 번도 고백한 적은 없지만, 4학년 때부터 3년간 정말로 좋아했습니다. 남편은 두리번거리더니, 제가 있는 테이블에 빈자리에 앉았습니다. 남편이 코트를 벗으면서 저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 안녕 미희야 “

” 안녕 “

” 이 테이블에 자리 비어 있어서 다행이다. 왜 너랑 얘기하고 싶었거든 “

이게 무슨 말인가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대답도 못하고 몸이 뜨거워지고 있는데, 남자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저와 남편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입을 꾹 닫고 있는데, 남편이 저의 빈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습니다.

” 나 동창회 처음 왔어 ” ‘

” 알아 “

” 너 때문에 나온 건 알아? “

얼굴이 터질 뻔했습니다. 제 얼굴이 주전자였으면 삐 하고 끓는 소리를 냈을 겁니다. 심장이 요동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눈도 못 마주치는데 남편은 웃으면서 고기를 먹더라고요.

그때부터 저희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은 멋진 외모만큼 성격도 좋았고 심지어는 소위 말하는 부잣집 도련님이었습니다.

남편의 아버지께서 주유소를 서너 개 운영하셨는데 엄청나게 잘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아버지를 따라서 주유소 운영에 대해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죠.

저희 부모님은 지극히 평범하신 분들이라 남편의 배경을 알고선 남편과의 관계가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만 남편의 부모님께서도 열심히 일하셔서 자수성가하신 분들이라 편견도 없으시고 굉장히 소탈하신 분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연애한 지 1년이 좀 넘었을 때 처음으로 뵙게 되었는데 남편의 말대로 너무 좋으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2년 정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결혼 후 연애 때보다 더 저를 챙겨주고 더 저에게 잘해 주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니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여가생활을 풍족하게 즐기는 확실히 삶의 질이 높아지더라고요. 그렇게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 행복한 저희 부부에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아이가 안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결혼 후 아이를 꼭 낳고 싶었습니다. 이왕이면 여러 명을 낳고 싶었습니다. 요즘에야 아이도 안 낳고 결혼도 안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지만 그때만 해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제가 아이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저보다 5살 많은 저희 친언니가 제가 고등학생 때 아이를 낳았는데 제가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언니 집에 가서 조카를 돌보았을 만큼 아기를 예뻐했고 그만큼 제 아이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그 생각은 남편도 마찬가지라서 결혼하기 전부터 아이를 몇 명 낳자는 둥, 나중에 아이와 어떤 것을 하고 싶다는 둥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또 주변에는 벌써 하나 둘 아이를 낳고 있어서 저희도 결혼식을 올리고서부터 바로 임신 계획을 세웠죠 그런데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싶었습니다.

지금은 의학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아이가 잘 생기지 않는 난임 부부에 대한 복지도 잘 되어 있고, 여러 검사도 할 수 있는데,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오히려 아이를 많이 낳지 말자는 추세이기도 했고 지금처럼 기술이 좋지 않았을 때라 저희에게 아이가 안 생기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던 저희 부부는 아이가 잘 생긴다는 한약을 비싼 돈 주고 지어 먹고 온갖 미신을 쫓기도 하며 점집까지 찾아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임신에 실패하자 점점 마음을 비웠습니다.

같이 걱정해주시던 친정과 시댁 어른들도 시간이 지나자 그냥 둘이서 재미있게 살라고 하셨죠. 그리고 완전히 임신에 대한 생각을 닫고 있던 어느 날 저희에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천사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결혼 4년 만에 아이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회사에서 조퇴하고 집에 오는 길에 혹시나 하고 병원에 들렀다가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게 된 거죠. 그날 행복한 마음이 주체가 되지 않아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남편과 저는 아이를 잘 지켜내려고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매주 병원을 가서 검사를 했고 저는 일까지 그만두고 집에서 좋은 음식 먹고 클래식을 듣고 십자수 같은 걸 하면서 열심히 태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10달 뒤 아주 건강한 남자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죠. 남편을 똑 닮아서 아주 잘생긴 아들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저희 부부는 1분 1초가 소중했고 모든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아이가 밤새 울어서 어쩔 줄 모르겠던 순간도 전혀 힘든 줄 모르고 행복하기만 했죠.

저희는 매일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좋다는 건 뭐든지 다 해주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아이를 둘셋 낳아 키우고 있어서 그들에게 조언을 얻어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주었죠.

아이가 입는 옷은 물론이고 손수건이며 천기저귀 방의 커텐 이불까지 아주 꼼꼼하게 따져서 구매했고 돌 지나고는 면역력을 길러줄 한약도 지어서 먹이고 장난감도 넘치도록 사주었습니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은 단 한 푼도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희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하늘에서 그게 질투가 났나 봅니다. 행복은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떠올리려고 하니 아직도 손이 벌벌 떨리는데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은 아주 순식간이었습니다.

주말을 맞이해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원으로 소풍을 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자가용을 가지고 나갈까 하다가 주차하기가 힘들 것 같은 공원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끌고 저는 남편 옆에 서서 걸어갔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던 4월이었어요. 군데군데 꽃도 피고 옷차림도 가벼워지니 괜히 기분이 좋았던 날이었습니다.

느긋하게 30분쯤 걷다 보니 어느새 길 맞은편에 공원 입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지막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공원에 도착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행자 신호가 초록색으로 변했고 한 발을 내디는 순간 제 앞으로 유모차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트럭이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섰고 곧 운전자가 뛰어내려서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술 냄새가 나더라고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동댕이 쳐진 유모차로 남편이 뛰어갔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 다른 차의 운전자들까지 나와서 유모차 쪽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유모차 옆으로 검 붉은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운전자는 당황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고, 유모차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이 경찰과 구급차를 불러줬습니다. 제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 같았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발을 질질 끌다가 나중엔 기어서 유모차로 다가갔습니다.

아들이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가 살짝씩 움직이는 걸 보니 숨은 아직 붙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숨이 넘어갈 듯 눈물이 터져 흘렀습니다.

아들을 건들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며 구급 대원들을 기다리는데 그 5분도 채 안 되던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요. 발을 동동 구르며 구급차를 기다렸지요. 곧이어 구급차가 왔고 대원들은 아이를 조심스럽게 구급차로 옮겼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15분 남짓한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들을 데려갔고 저와 남편은 수술실 앞에 남겨졌습니다. 꿈이겠지 꿈일 거야. 깨어나자 꿈이어야만 해 그만 꿈에서 깨자 수천 번, 수만 번 번을 되뇌었습니다.

수술시간이 3시간이 넘어가니 ‘제발 수술 잘 되게 해주세요.해 주세요. 우리 아들 살게 해 주세요.’ 하고 현실을 자각하게 되더라고요. 수술은 6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분명 화창한 낮이었는데. 어느새 밖은 칠흙같이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수술실에서 의사가 나오더니, 드디어 저희를 찾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민우 부모님 되시죠? “

” 네… 우리 민우 괜찮나요? 수술은 잘 된 거죠? 민우는 어디에 있어요. 아직 마취해서 안 깨어났나요? “

” 저 그게 민우가 머리를 많이 다쳤어요. 뇌출혈이 심해서 머리를 열어 지혈을 하려고 했는데,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았고 나이도 어린 데다가 이미 피를 많이 흘렸더라고요. 그래서요 뇌사 판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뇌사요…? 그게 뭐죠…? “

요즘엔 방송에서 뇌사 상태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어서 뜻을 많이 안다지만 20년 전에는 뇌사라는 말이 생소했습니다. 그런 말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죠.

” 민우가 스스로 호흡을 하지 못해요. 기계에 의지해서 심장이 뛰고 있지만 뇌는 완전히 죽은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

” 그게 무슨…. 그러니까 죽은 건 아니잖아요.? 그쵸. 심장이 뛴다는 건 아직 살아있다는 거잖아요. “

” 아뇨…어머니 죄송하지만 민우는 사망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자리에 쓰러져서 숨이 넘어가게 울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너무 괴로웠습니다. 의사는 곧 아들을 중환자실로 옮긴다는 말을 하고 떠났고 저희는 잠시 뒤에 중환자실에서 잠든 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들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직 이렇게 따뜻하고 심장도 뛰고 있는데,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는 지금 죽어있는 상태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직 세 돌도 안 된 어린아이인데 무슨 죄가 있다고 하늘에서 데려가려고 하시는지 원통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아이만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눈물이 마르지가 며칠 후 아이를 보고 있는데, 남편이 잠깐 얘기 좀 하자면서 저를 휴게실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은 남편의 말은 또 한 번 제 속을 뒤집었습니다.

” 여보… 지금 내가 생각하는 말 어떻게 받아들일진 모르겠는데, 나도 많이 생각해 보고 말하는 거니까… 신중하게 한번 생각해 봐 “

” 뭔데…? “

그러니까 민우의 장기를 기증하면 어떨까…?”

” 뭘 기증한다고? “

” 이게 시행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뇌사 판정을 받게 되면 가족의 동의하에 뇌사자의 장기를 기증할 수가 있대… 기증하게 될 장기는 의사들이 확인한다고 하고 다른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야…

길게는 몇 년 동안 공여자를 기다린 사람들이 장기를 받게 되는데, 나는 그렇게라도 우리 민우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고 싶어… 하루라도 빨리 기증해야 장기들이 건강해서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 난 우리 민우를 그렇게라도 이 세상에 남겨두고 싶어…

나도 하늘이 무너져… 민우가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내 눈을 보며 아빠라고 하면서 안길 것 같다고, 당신이 내 마음을 이해할 거라고 믿어…”

” 당신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뭘 준다고? 내 아들의 몸을 열고 장기를 확인해서 가져간다고? 일주일 전만 해도 뛰어다니고 웃던 아이야! 어떻게 당신이 어떻게 그래?! 당신이 그러고도 아빠야?! 우리 민우한테 그런 고통을 주고 싶어? “

” 고통이라니… 나도 수백 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민우가 아니라 내가 그런 일 당했어도 사전에 여보한테 똑같이 해달라고 할 거야. 좋은 일 하는 거잖아. 마음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 보자…”

” 우리 민우가 왜 좋은 일을 해야 하는데? “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남편이 정말 똑똑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정말 밉더라구요. 장기기증이라니 그런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죽은 아이에게 몸을 열어 장기들을 꺼내는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정적만 흐르던 휴게실에 어떤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사고를 담당하는 경찰관이었습니다. 어떻게 사건이 일어난 건지 이것저것 남편과 대화를 하더라구요.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서 술 냄새가 난 것이 떠올라 경찰에게 물어봤습니다.

” 그 사람 음주운전 맞죠? “

” 네. 새벽에 업무를 마치고 아침까지 동료들하고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길이었다고 하더라구요. “

” 그 사람 어떻게 되나요? “

” 감옥 가는 거죠. 감옥에서 평생 살게 되겠죠. 아이가 죽었는데 그게 정확한 건 판결이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 유사한 사례로 봤을 때 아마 징역 3,4년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

” 사람을 죽였는데 고작 3년이요?! 유사한 사례라뇨? 이런 경우가 또 있나요? “

” 음주운전 사고는 전국적으로 거의 매일 발생해요. 이렇게 어린아이가 사고가 나는 경우도 많이 있고요. 음주운전으로 신호 위반을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사례들로 보면 보통 정도 징역을 받더라구요. “

” 거짓말 사람이 죽었어요. 이제 4살 된 아이가 죽었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내가 보는 자리에서 내 아이가 죽었어요. 그런데 뭐 고작 3년이라고요? 이게 정상적인 거냐고요! “

” 여보 그만해…”

다시 한번 정신을 놓을 뻔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냥 무작정 소리 지르면서 울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죠. 내 아이는 모든 게 멈춰버렸는데 가해자의 인생은 흘러간다는 게 미칠 듯이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런 경우가 많다니… 이렇게 억울하게 사고를 당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니…. 저는 평소 정의감이 있는 성격도 아니고 베푸는 걸 즐기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순간만큼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휴게실에서 아주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아들이 나왔습니다. 짧은 다리로 저에게 달려와서 안기더니, 아주 환하게 웃으면서 제 볼에 뽀뽀를 해주더라고요. 그리고 아들의 등에는 천사의 날개가 있었습니다. 제게 뽀뽀를 해주고는 하늘로 날아가더라고요.

잠에서 깨어난 저는 결심했습니다. 아들의 장기를 이식하기로요. 저희의 의견을 의사에게 전달되고 뇌사 판정을 받고 몇 가지 서류를 확인하고 서명을 하자 아들은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오랜 시간 후 장기이식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던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왔습니다.

” 어머님 아버님 민우 이제 다 끝났습니다. 사고 나면서 장기들이 많이 다쳐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심장이 아직 건강하게 뛰고 있더라고요. 방금 민우 심장 다른 병원으로 출발했고 민우는 지금 검사 끝내서 수술 부위 봉합하고 있습니다. “

” 그렇군요. 기분이 이상하네요. 우리 아이의 심장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니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분명 제가 결정한 일인데도 잘 모르겠네요. “

” 너무 힘든 선택이셨을 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한 일 하신 거예요. 수혜자 수술 잘 마치면 어떻게 되었는지 연락 한번 드릴게요.”

” 아니요. 괜찮아요. 똑똑하신 분들이 하시는 일인데 잘 되겠죠. 어떻게 되었는지 그런 연락 안 주셔도 돼요. 저희 소식도 전하지 말아 주시고요. 괜히 미련만 생길 것 같아서 그래요. 부탁드립니다. “

”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저희는 심장이 없는 아들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들은 제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듯 수군거리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어린아이의 심장을 빼내냐는 둥 엄마 맞냐는 둥 팔아먹을 게 없어서 아들 장기를 내놓냐는 둥 하지만 그들이 자식 잃을 부모 심정을 어떻게 알겠나요? 그냥 다 무시했습니다.

지금 처한 이 상황도 너무 힘든데 사람들까지 상대할 힘이 없었거든요. 제가 아들의 장기를 이식한 후 제 마음은 죽은 제 아들의 심장이 다른 어디에선가 뛰고 있다니 묘한 기분…. 딱 그뿐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날 기억에 멈춰서 이렇게 아픈데 야속하게도 세상은 돌아가더라고요. 배가 고프니 밥을 먹어야 했고 더러워지니 씻어야 했고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작정하고 저희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려는 듯, 아들의 죽음을 시작으로 저희는 점점 무너져 갔습니다. 끄떡없을 것 같던 시아버지의 주유소가 모두 망하게 되었고 저희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슬픈 감정만으로도 벅찬데 현실이 감정에 빠져있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 같았죠 투자자들에게 빌린 돈을 갚을 수 없자 아버님은 파산 신청을 하셨고 저희는 저희만의 살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해서 졸업하자마자 돈을 잘 벌었다지만 그건 딱 그때뿐이었습니다.

시대가 어찌나 빠르게 변하는지 그때 같이 학교를 나온 친구들 모두 무역과 아무런 관련 없는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돌아갈 직장도 없는 저는 남편과 함께 뭔가 해보고자 했습니다.

다시 주유소를 경영할까 했지만, 자본이 턱없이 부족했고 대출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 3년을 이것저것 해보며 방황하다가 청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말이 좋아 사업이지 그냥 남편이랑 저랑 둘이 다니면서 빌라나 주택 마당 정도를 청소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돈이 넘치는 삶을 살다가 남의 집 청소 일을 하려니 힘들고 답답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먼저 간 아들을 생각하면 또 열심히 살아야지 이런 일이라도 저희를 써주는 곳이 있다는 거에 감사해야지 하고 꾸준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20년을 일했습니다. 욕심부리지 말자고 하고 시작한 일이라서 둘이서만 하다 보니까, 매출이 확 뛰거나 능률이 갑자기 오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냥 꾸준히 둘이 먹고살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만 벌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이 일인 만큼 몸은 점점 망가져 갔죠.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수술했던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장기이식을 한 공여자와 이식받은 수혜자가 정기적으로 모이는 행사인데 이번에 심장 이식한 사람들이 행사 초대자로 포함되어서 저희를 초대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몇 번 같은 연락을 받았었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가면 먼저 간 아들 생각에 마음이 아플까 봐 겁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왜인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들이 그리운 만큼 사람들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고민 끝에 용기를 내서 남편과 그곳에 나갔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상상하지 말자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데 우리 아들과 또래인 아이가 있을까? 눈으로는 계속 찾게 되었습니다. 수혜자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도 모르고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이 자리에 없을 확률이 더 컸는데도 말이죠. 다 같이 기도도 하고, 말씀도 듣고 있는데, 낯이 익은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저희 아들 수술해 주신 그때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저희는 행사를 모두 마치고 선생님께 인사라도 드릴 겸 찾아갔습니다.

” 선생님 안녕하세요. “

제가 의사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는 동시에 어떤 청년도 선생님에게 인사를 권했습니다.

” 선생님 저 왔어요! “

걸음을 옮기시던 선생님이 이쪽을 돌아보더니, 깜짝 놀라신 듯 눈이 동그래지더라고요.

” 어떻게 같이 오셨어요?! 알고 오신 거예요? “

어리둥절했습니다. 같이라면 이 청년과 같이 온 거냐고 묻는 건가? 이 사람은 누구지? 하며 순간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청년이 먼저 물었습니다.

” 알고 왔냐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생님 ?”

” 아이고~ 모르고 오신 거구나~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인연이…”

의사 선생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에 저희 세 사람을 조용한 벤치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듣게 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약 20년 전 선생님은 심장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건 바로 저희 아들이었죠. 떼어낸 심장은 수혜자의 병원에서 온 선생님들 신속하게 가져갔고 선생님은 수술이 끝나자마자 저희에게 왔었다고 합니다. 저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채 10분이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답니다.

수혜자의 컨디션이 갑자기 안 좋아진 거죠. 저도 이 얘기를 들으면서 알게 된 건데 저희 아들이 수술한 선생님이 계신 병원을 심장 관련해서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병원이었고 수혜자가 있던 병원도 나름 큰 병원이었지만 그런 응급 상황이 건의자인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답니다.

곧 수술은 진행해야 하고 심장은 이동하고 있는데, 수혜자가 쇼크인지 뭔지도 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서 선생님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답니다. 결국 심장과 수혜자 모두 선생님이 계신 병원으로 이동하도록 조치를 취했고 병원에서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하신 말은 저희 아들의 심장을 받은 수혜자가 바로 이 청년이라고 하셨습니다.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수혜자를 만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은 상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실제로 닥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청년을 보며 수술을 받고 잘 살아가는 청년이 대견하기도 하고, 죽은 내 아들의 심장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바로 내 옆에서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묘했습니다.

제 이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년은 웃으면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청년이 가방에서 꺼낸 건 다름 아닌 청진기였습니다.

” 이거 받으세요.”

” 이게 뭐예요? “

” 수혜자와 공여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매일 왔어요. 혹시나 뵐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이 청진기도 올 때마다 가지고 왔어요. 제 몸에서 뛰고 있는 이 심장… 제 거 아니잖아요. 아주머니 아들 거잖아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이 소리 들을 자격 있으세요. 여기 잘 있다고 아주 잘 뛰고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어요. “

우리 아들과 비슷한 또래 곱고 예쁜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터졌습니다.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내 아들의 존재를 다시 상기시켜주는 청년이 고맙기도 하면서 뭐 하자고 그렇게 악착같이 이 인연을 피했나 싶더라구요.

저는 떨리는 손으로 청진기를 귀에 가져다댔습니다. 그리고 청년의 심장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주 크고 아주 건강하게 잘 뛰고 있었습니다. 눈이 잘못된 것처럼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아들이 엄마 나 여기 있다고 내가 지금 죽었지만 이런 뜻깊은 일을 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 아드님 성함이 민우라고 하셨죠? 민우한테도 찾아가고 꼭 고맙다고 전할게요. 덕분에 제가 소중한 인생을 선물 받았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아! 잠시만요…”

청년은 잠깐 기다려 보라고 하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곧 청년의 엄마가 나타났습니다. 이미 울면서 왔는데 눈시울이 붉어진 채 헐레벌떡 나타난 여자는 저를 보자마자 제 손을 꼭 잡고 너무 감사하다며 식사를 대접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식사를 하면서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듣게 되었습니다. 태어났을 때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오래 있었던 청년은 심부전으로 심장이 많이 안 좋아서 계속 병원을 다니다가 세 살쯤부터 완전히 입원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땐 심장 이식이라는 게 흔하지 않을 때라 마음을 비우라는 의사의 말에 포기한 상태로 맨날 울면서 보내고 있는데, 정말 기적처럼 공여자가 나타났답니다. 그때 그렇게 작았던 아들이 지금은 이렇게 장성했다며 저희 덕분이라며 좋은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는 이 빚은 꼭 갚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손사래치며 아니라고 빚이 아니라고 오히려 제가 더 고맙다고 하며 헤어졌는데 얼마 뒤에 연락이 왔습니다.

잠깐 만나자면서 청년과 엄마 저희한테 이런 제안을 하더라고요. 자신들이 펜션 같은 숙박업소 사업을 하면서 이곳저곳에 업소가 있는데, 이번에 서울 근교에 펜션 하나가 곧 오픈을 한다. 그래서 관리해 줄 사람들이 필요한데 저희가 맡아서 해주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구요.

계속 살던 서울이 아니라서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그렇게 외진 것도 아니고 지금보다 몸은 훨씬 덜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 아닙니다. 정말 아니에요. 제 아들이 한 일을 저희가 보상을 받는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안 좋아요. 그리고 저는 그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구요. “

” 어려울 거 하나도 없어요. 그냥 지금 하시는 일처럼 청결만 신경 써주시고 마당 관리만 해주시면 돼요. 펜션에 사장님들 지내는 곳 따로 마련되어 있고, 급여도 적지 않게 약속드릴게요. “

“하지만…”

” 저희 아이 목숨 살려주셨잖아요. 그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이 정도밖에 못 해드리는 거에 죄송한걸요… “

” 아들이 하고 떠난 일인 걸요… 제가 이런 혜택을 누리면 아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

” 아닙니다. 정말 아니에요. 제가 아드님의 심장을 받은 것 때문에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를 살리시려는 결정을 해 주신 거에 대한 존경의 표시입니다. 꼭 제안에 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감사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에는 나이도 많고 크고 작은 번거로움들이 있었는데, 청년의 어머니의 진심에 감동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청년을 알게 된 후로 죽은 아들과 가까이에 있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이후로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저희는 공기 좋은 곳에서 일하면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들의 심장을 가진 청년은 한 달에 두어 번씩 저희를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항상 저희에게 심장 소리를 들려주곤 하죠.

올 때마다 같이 밥도 먹고 대화를 하는데 또 다른 아들이 생긴 기분입니다. 비록 제 아들은 세상에 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렸지만 아들이 남긴 값진 심장 하나로 다른 누군가가 몫까지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때 저희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이 되네요.

그때 저를 욕하던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서 혹여나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생명을 선물해 주는 일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음주운전 하시는 분들이 제발 없었으면 합니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그런 잔인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그럼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한 인연만 가득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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