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유튜브 구독자 60만명 보유한 ‘원샷한솔’의 채널 운영자, 김한솔(31)씨는 유튜브 ‘세바시’를 통해 ‘예상치 못한 순간을 이겨내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습니다.
김한솔씨는 처음부터 세상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18살 때 후천적으로 시각장애 얻게 되었고 처음 적응기간 동안 상상할 수 없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는 시각장애가 오기 전, 한솔씨는 어린 시절부터 보호자가 지속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3번 바뀌고 13살 때 아버지 마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친부모님과는 완전한 이별을 한 후 네번째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데,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혼자 남겨진 한솔군을 따뜻하게 맞이해 키워주셨죠.
한솔씨는 폭력이나 멸시가 없는 정상적인 가정환경을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처음으로 따듯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큰 집에서 살게된 그는 30등하던 성적이 바로 1등으로 오를 정도로 정서적으로 안정된 시간을 보내었다고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큰 엄마, 큰 아빠를 호강시켜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습니다.
한솔씨는 여느 평범한 학생들과 다를 것 없이 지내던 어느날, 18살 때 갑자기 버스에서 한 쪽눈이 안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동네 안과에서 검사를 받았더니 단순 염증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간단한 치료만 받았는데 이후에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큰 병원에서 검사를 재진행했습니다.
한솔씨는 담당 의사분께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청전벽력과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심지어 두 달 후면 두쪽 눈 모두 실명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죠.
그렇게 18세 한솔씨는 정확히 두 달이 지나자 두 눈 모두 실명하게 되었고, 생일날 장애인 복지카드를 받고 공식적인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그동안 장애인들에게 느꼈던 동정심이나 연민이 이제는 타인이 자신을 그렇게 바라볼 것같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죠.
나도 그런 처지가 되었다는 것에 너무 절망스러웠지만, 한솔군은 맹학교에 다니면서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일상을 누리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게 됩니다.
한솔씨는 점자 공부를 매진했고 한 달만에 마스터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수능도 보고 대학교에도 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학교 장애인시설이 부족한 점을 건의해서 주변부터 점차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어느 날 김한솔 씨는 우연히 다큐를 출연하게 되었는데 미디어에서의 장애인은 여전히 불쌍하게 나온다는 점이 안타깝고 불편했다고 합니다.
그는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고 장애인의 이미지를 바꿔보고자 유튜버로 활동을 결심하게 됩니다. 주변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시각미디어인 유튜브를 하냐고 조롱했지만 부정적인 반응들은 모두 무시하고 고집대로 유튜브를 시작해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렇게 그는 6개월 후 구독자 1000명 , 1년 후 구독자 1만 5천 명, 2달 후 구독자 10만 명 작은 날개짓부터 시작해서 실버버튼까지 받게 되었고 현재는 6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죠.
심지어 실버버튼을 받고 나서 시각장애인에게 일반 실버버튼을 주면 이게 실버버튼인지 뭔지 어떻게 아느냐며 유뷰트에 건의를 했고 점자로 각인된 실버버튼을 요청해 다시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세계최초로 점자 실버버튼을 받은 유일한 유튜버가 되었습니다. 이후 라면 회사에도 점자 삽입을 요청해서 삼양라면에 점자를 넣는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한솔 씨는 유튜버를 넘어 이제는 점자와 일반형으로 ‘슬픔은 원샷 내일은 맑음’이라는 에세이 작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술군은 이제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내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시각장애 13년 차인 한솔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더 많은 걸 보게 되었다. 지금 누가 다시 시력을 준다고 하더라도 받지 않겠다.속 안 보여야 유튜브도 할 수 있다. 시력을 잃은 절망적인 일이 나만의 콘텐츠의 힘이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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