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나올 만큼 유명한 한국인…” 일본 전국민이 21년째 잊지 못하고 매년마다 눈물로 추모하며 교과서까지 기록됐다는 한국인 청년

20년 전 일본 도쿄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가 목숨을 바친 한국인 의인 이수현 씨의 숭고한 희생은 한일 양국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수현 씨의 사망 22주기를 맞아 도쿄와 부산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수현 씨는 2001년 1월 26일 도쿄 신주쿠구 JR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열차에 치여 안타깝게 숨지고 말았습니다.

이수현 씨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했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올바르게 이해하여 한일 교역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1년 1월 26일 이수현 씨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신오쿠보역 승강장에서 전철을 기다리던 중, 취객이 선로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열차가 역 구내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급하게 선로에 몸을 날렸지만 결국 같이 뛰어내린 다른 일본인과 함께 3명 모두 열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그저 군중들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고 발만 동동구르며 기차가 오지 말라며 안전선 안에서 손만 흔들던 일본인,

울면서 이 상황이 거짓이길 바라는 일본의 한 여성, 다들 애타는 마음으로 그 취객을 쳐다보고 소리치며 손만 흔들어 댔습니다.

7초면 보통 성인 남성이 선로에서 충분히 빠져나올수있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수현 씨는 다가오는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고 합니다.

다가오지 오지 말라고, 여기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안타깝게 그는 향년 26세에 열차에 치여 숨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1월 신오쿠보역 사고 현장인 2번 플랫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수현 씨를 기리며 추도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나 중학교 수업에서 이수현 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일본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2008) 등에도 등장하며 일본 현지에서 오랜 정의의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했던 일본에서, 그것도 외국인 유학생이 죽음을 무릅쓰고 자국인을 구하려 했다는 사실에 일본 사람들은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매체들은 ‘술 취한 승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던진 살신성인’, ‘왜 일본에는 이수현이 없는가’ 등의 제목으로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한편, 이수현 씨의 모친 신윤찬 씨는 코로나 19 확산으로 신 씨는 도쿄에서 개최된 이씨 추도 행사에 3년 만에 참가했습니다.

신 씨는 아들의 뜻을 이어 장학회를 설립했고 일본에서 유학하는 아시아 학생 1천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수현 씨는 유학 이전에도 집안이 일본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일본 탄광에 끌려갔던 강제징용 피해자였다는 일본과의 악연이 알려져 놀라움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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