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를 넘어 예능계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천만 배우 박성웅, 압도적인 연기력과 더불어 유쾌한 실제 성격까지 모든 면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박성웅 씨의 미담이 넘치는 선행으로 재조명받고 있는데요. 배우 박성웅은 80년 만에 귀환한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골을 기리는 행진에 앞장서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박성웅 씨는 유족이 없는 희생자들을 대신해 상주 역할을 자처하며 엄숙한 표정으로 피해자들의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약 80년 전, 징용 영장을 받고 일본으로 끌려가 노무에 시달리다가 조국의 해방을 보기도 전에 고인이 된 희생자들은 사망 후 수십 년이 흐린 뒤 ‘조선인 노무자’무덤에서 발굴되어 작은 함에 담긴 채 오사카의 사찰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1938년 일본이 선포한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징용되어 일본 오카야마에서 죽음을 맞은 이들입니다.
‘어머니 보고싶어’, ‘고향에 가고싶다’라고 조선인 탄광 징용 노동자가 지하 벽에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가족들을 그리워 하며 쓴 글입니다.
1938년 4월 일제감정기 시절, 일본에서 한국에게 국가총동원령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는 인적 물적자원의 충동원을 위해 우리나라의 노동력을 강제로 착취를 했습니다.
이렇게 강제 징용되어 노역을 했던 사람들은 임금도 제대로 지불받지 못하고 말그래도 ‘노동 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실제로 강제 노역 당한 분의 증언에 따르면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 30분에 갱에 들어갔다. 오후 8시가 되어서야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식사는 아침에 소금 국에 콩밥 한 공기 밖에 없었고, 하루 14시간 동안 일하며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 했다” 라고 증언했습니다.
그곳에 끌려간 우리의 조상님들 중에선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신 분들도 계신데요. 일본이란 타국 땅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시신마저 일본에 계속 있었습니다.
배우 박성웅 씨는 이 행사를 알게 되자 유족조차 찾을 수 없던 희생자들을 위해 바쁜 스케줄까지 빼며 행사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박성웅 씨는 인천공항에서 유골 봉환단을 맞이하고 장례차량까지 행진하는 봉환단의 선두에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했는데요.
봉황단과 함께 인천공항을 출발해 청계 광장으로 이동 후 도호 행진을 인도하고 한국 프레스센터 잔디광장에 마련된 제단에서 노제까지 지냈습니다.
박성웅 씨는 자신의 참여로 인해 “일제 감정기 강제동원의 피해사실과 고국을 떠난 지 80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여러 나라에 이름도 없이 여기저기 흩어진 채로 안치되어있는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골을 더 늦기 전에 발구랗고 국내로 봉환하는 일에 정부와 국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며 행사에 참여하는 이유를 전했습니다.
박성웅 씨는 일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는데요 다음날, 3월 1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리는 추모식에서도 자진해서 사회를 맡으며 희생자들의 긴 여정의 마지막을 빚내기도 했습니다.
박성웅 씨는 이 모든 행사에 행사비는 단 한푼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의 행보에 많은 네티즌은 박수를 보냈는데요.
박성웅 씨는 배우로서의 사회적 책임감과 역사적 정의감을 보여주며 국민들의 존경과 감사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조상들을 위해 직접 상주까지 자처해 나선 배우 박성웅씨가 대단해 보이는데요. 우리가 직접 그 시대의 조상님드렝게 감사함을 표시할 순 없지만, 작은 관심과 행동이 조상님들의 희생에 조금이나마 감사함을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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