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나물파는 엄마가 창피한 아들..” 수년뒤 의사가된 아들은 늙은 엄마를 내버렸고, 임종 전 남겨놓은 보따리 속 ‘정체’에 아들은 그만 주저앉아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시장 길을 지날 때면 
시장 구석진 자리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곤 합니다.

예전에는 이 시장 길을 
지나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
이곳을 지날 여유도 없었습니다.

어쩌다 가끔씩 들려보는 이곳 시장터,
난 이곳에서 장사를 하시던
한 분의 고귀한 사랑을 받고 자라왔습니다.

“엄마 시장 갔다 올 테니,
밥 꼭 챙겨 먹고 학교 가거라”

난 장사를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잠을 자는 척했습니다.
이 지겨운 가난, 
항상 난 이 가난을 증오했었죠.

그리고 언젠가는 벗어나고 말리라는
다짐을 굳히곤 했습니다.
내가 학교 가는 길 시장 저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난 어머니가 나를 발견할까 봐
얼른 도망을 쳤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셨습니다.
일하는 도중 철근에 갈리신 어머니를
구하시려다 아버지는 사망하시고
어머니는 다리 한쪽을 잃으셨다고 합니다.

일을 가시지 못하는 어머니는
나물을 캐서 팔곤 하셨습니다.
난 항상 들판에 절뚝거리시며
나가시는 어머니가 싫었고
밤새 나물을 다듬으시는
모습도 싫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 비슷하게
장사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퉁퉁 부은 다리 한쪽을
주무르시며 나물을 다듬고 계십니다.

나를 보자 어머니는 기쁜 모습으로
3,000 원울 주셨습니다.
난 그 돈을 보자 화가 치밀었습니다.

“난 거지 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이런 돈 필요없어!”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버렸죠.

다음날 아침 나는 어머니가 시장 간 틈을 타
집에서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길 약수터에 간단히 세수를 한 다음
물로 배를 채웠었죠.

난 비록 풍요롭게 먹고 입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악착같이 했습니다.
그래서 부잣집 자식 놈들보다
공부는 항상 잘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식들에게 사는 미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날 4교시가 끝날 무렵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립니다.
복도를 보니 어머니가 절뚝거리시며
교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선생님 드리려고 장사하려고 
다듬은 나물을 한다리 들고서….
어머니는 내가 어제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되셔서 학교에 오신 거라 합니다.

선생님과 면담을 끝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이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야,! 니네 엄마 병신이었냐?”

그놈은 그 잘난 부잣집 아들 현우였습니다.
현우는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며
무엇이 우스운지 반 아이들도 웃어댔습니다.

난 화가 나서 그놈을 정신없이 두들겨 패고
그리고서는 교실을 나와 버렸습니다.
저녁 무렵 집에 가니 집 앞에 잘 차려입은
여자와 현우가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아니 애비 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 거야?
못 배우고 없는 티 내는거야 뭐야.
자식 교육 좀 잘 시켜,
어디 감히 우리 집 귀한 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
어? 어머니라는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 정신이 온전하겠어?”

어머니는 시종일관 죄송하다는 말뿐었습니다.
난 그러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 싫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군요.
난 그런 어머니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다시는 학교에 찾아오지 마,
알았어?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그래.. 미안하다 난 민석이가 걱정되어서…”

“난 차라리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버렸습니다.
슬픔을 보이시는 어머니를 못 본척하며
난 자는 척을 했습니다.

“난 꼭 성공할 거야”
밤새 이렇게 다짐하며 외쳤었죠.

다음날, 아침 수업료라며
엄마가 돈을 쥐어주셨습니다.
얼마나 가지고 계셨는지
너무도 꼬깃하고 지저분한 돈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부르십니다.
적어도 선생님만은 내편이셨죠.
어머니께 잘 해드리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어머니께 전해 달라고 하십니다.
난 그런가 했습니다.

하교 길에 모퉁이 배추가게 쓰레기통에서
배추 잎들을 주워 모으시는 어머니를 봤습니다.
난 모른 척 얼른 집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날 저녁 배춧국이 밥상에 올라왔습니다.

“이 배추!”
난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니께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배추가게 아저씨가 팔다 나온거라고 
버리기 아까우니 가져가서
민석이 국 끓여 주라고 하더구나”


난 어머니의 말에 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난 거지자식이 되어 버린 것 만 같았었죠.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하는
어머니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어머니 생신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난, 7년 뒤 의사가 되었습니다. 
가정도 꾸리고 병원도 장모님께 개업해 주셨죠.
난 너무도 풍요로운 생활에 어머니를 잃고 살았습니다.



돈은 꼬박꼬박 어머니께 보내드렸지만
찾아가 본 적은 없었습니다.
아니 어머니라는 존재를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는 해석이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글에
우리 집 앞에 어느 한 노인과
가정부 아주머니가 싸우고 있는 걸 봤습니다.
다가서니 그 노인은 
내가 가장 잊고자 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전보다 더 야윈 얼굴 허름한 옷차림
그리고 여전히 절뚝거리는 다리…
어머니는 나를 보고 기뻐하십니다.

“민석아 많이 좋아졌구나”
난 어이없다는 듯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난 어머니에게 차갑게 돌아섰습니다.
뭐가 모자라서 나에게 온단 말인가…
그동안 생활비로도 모자라단 말인가?

“민… 석…. 아…”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전 민석이가 아니라
최영호입니다”

난 이 한마디를 끝으로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가정부가 애써 돌려보낸 후
별 노망 든 할머니가 다 있다며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후 한 달 동안 난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다시는 되돌아가기 싫은
시장으로 갔습니다.

시장 한 귀퉁이에 여전히 나물을 팔며
기침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
난 가만히 곁에 가서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나물을 사려는 한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

“아니여. 우리 아들이 서울 큰 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디
내가 싫다고 혔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식 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거
뿌리치느라고 혼났구만
우리 아들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

어머니는 자식자랑에 기분이 좋았는지
나물을 많이도 넣어 드렸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뒤로하고 
난 예전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직도 변한게 없는 우리 집….
거의 쓰러져 가는데도
용케 버티고 있더군요.
이런 곳에서 살았다는 게
생각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난 방 틈으로 돈 봉투를
넣어놓고는 돌아섰습니다.

1년이 지난 후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고교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발길은
어머니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정말로
보이질 않았습니다.
도착한 곳에는 선생님이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나를 알아보신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민석아 내 옆에 와서 잠깐 앉아라.”

선생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선 낯익은 보따리를
나에게 주셨는데 바로 어머니가
가지고 다니시던 나물 보따리였습니다.
이 보따리에다 밤새 다듬은 나물들을 싸서
시장에 팔러 가시곤 하셨죠.

“풀러 보거라”

선생님의 말씀대로 난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돈 아닙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동안 네가 돌아올까 봐서
그리고 혹시나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모아두신 돈이란다.
너 하나 믿고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기다렸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하셨다.

내가 가끔 네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드렸단다.
그래서 나에게 네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도록 부탁하셨어.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도 함께 말이다.”

선생님의 얘기들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은
자식이 없던 터라 나를 데리고 가서 키웠다고 합니다.
퇴근길에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늦게 얻은 자식이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어린 나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항상
나를 공사판에 데리고 다니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너지는 철근 밑에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뛰어드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와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다고 합니다.

이 사고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난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다리로 살아난
운 좋은 놈이라고 합니다.

혼자가 되신 어머니는
다리마저 불편하신 어머니께
주위사람들은 나를
고아원에 보내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셨기에 나를 버리시지 않고
키우셨다고 합니다.

그 후 어머닌 아버지를 잊기 위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셔서
나물을 팔며 나를 키워 오신 거라 합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암인걸 아신 어머니는
자신의 몸보다 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병원에도 가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암 전문의로 명성을 날리는 내가
내 어머니를 암으로 돌아가시게 하다니…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보고자 
물어물어 서울까지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던 거죠.
자신이 낳은 자식도 아닌데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셨던 어머니를 버린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조용히 내려보시는 
어머니의 사진이
왠지…
잔잔한 미소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자식마저도 어머니는
사랑하시나 봅니다.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죄송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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