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보다 먼저 죽으면 안 되잖아요”
9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와 손자는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가족이 아닙니다.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고, 손자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힘겹게 살아가며 서로를 의지했었죠.
그들의 이름은 손자 홍정한 씨와 할머니 채순연 씨입니다. 홍 씨는2016년 4월, 역형성 성상 세포종이라는 악성 뇌종양 3급을 진단받았습니다.
이 종양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 3급 뇌종양으로, 100명 중 절반 이상이 3~4년 사이에 사망하는 매우 위험한 병으로 알려졌습니다.
홍정한 씨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지만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한 씨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할머니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죠. 정한 씨가 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신에게 할머니는 부모님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한 씨가 10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아버지도 급성 간경화로 인해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한 씨는 12살부터 할머니 손에 자라왔고 할머니는 젊은 시절 억척스럽게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정한 씨를 길렀습니다.
변변찮은 살림에도 쌈짓돈을 모아 용돈을 쥐어주고 밥상에는 늘 계란말이가 올려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정한 씨가 부모 없는 자식일하는 소리만은 듣지 않기 위해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습니다. 혹여나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등굣길을 함께했고 없는 형편에도 공부는 꼭 해야 한다며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은혜를 손자 된 도리로서 잊을 순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효도를 해드리기도 전에 할머니는 5년 전부터 알츠하이머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고등어를 파며 가족을 부양했던 과거에 갇혀 있었습니다.
매일 찹쌀과 고등어를 사들고 와서 냉동실을 가득 채웠다. 홍 씨가 상한 고등어를 버리려고 하면 할머니는 화를 내셨습니다.
정한 씨는 할머니의 병이 천천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매일 아침 과일주스와 울금차를 만들어 드립니다.
오후에는 할머니를 노인복지관에 보내고 정한 씨는 학교 급식 상·하차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저녁에는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 식사를 하고 집안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도 정한 씨가 담당했죠.
정한 씨 마저 2년 전, 뇌암 판정받아 수술을 받았고 종양 70%는 제거를 했지만 재발할 확률이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할머니의 치매 증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는 터라 뇌암이 재발할 경우 할머니를 챙겨드리지 못한다는 걱정이 정한 씨는 늘 밤잠을 이루기 힘들었죠.
정한 씨의 삶은 할머니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그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군대 제대 후 영화학과로 전과하고 뮤지컬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뇌종양으로 인해 혀가 마비되는 증상이 잦아져서 뮤지컬 연습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매일 노래 연습을 포기하지 않고 성악가에게 레슨을 받으며 하루 한 시간씩 발성 연습을 했습니다.
그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한 씨의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채순연 씨는 알츠하이머 치매 투병 끝에 2020년 별세하셨고 이후 정한 씨에게도 뇌암이 재발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1년간 항암치료를 진행했지만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암세포가 전이되어 큰 효과는 없었고 또 한 번의 뇌종양 수술을 진행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홍정한 씨의 이야기는 KBS ‘인간극장’ ,‘동행’ 등 다수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뇌암판정을 받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정한 씨는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기도 했었는데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언젠가 뮤지컬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던 정한 씨, 그 꿈 하늘나라에서 꼭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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