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돈은 어쩌고 왜 이런 쪽방에서 사는거니…?” 영국 백반장자 부부는 한국 아이를 입양해 전재산을 물려주었고 수년 뒤 독립한 아이가 허름한 자취방에 살고 있는 이유를 알게된 엄마는 주저앉아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에 살고 있는 60대 사라라고 합니다. 저는 부모님 덕분에 태어났을 때부터 꽤나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났고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젊었을 적 변호사로 활동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고 한적한 시골에 살고 있는 평범한 할머니지만요… 제가 한국과 연이 깊어 이렇게 사연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장 젊고 예뻤을 때 비슷한 조건의 남자와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비록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것이 아니지만, 저희는 첫눈에 반했고 뜨겁게 사랑을 했습니다.

저희는 처음에 딩크족 부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서로의 일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결혼을 하고 10년 정도 지나서 점점 함께 지내다 보니 남편을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졌어요. 남편도 다행히 자신도 같은 생각이었다며 이미 우리는 돈을 많이 모아놓았으니 아이를 낳을 준비를 하자고 했어요.

저는 아이는 마음만 먹으면 바로 생기는 줄 알았습니다만 하늘이 내려 주시는 축복은 저희에게 쉽게 찾아오지 않았어요. 일 년 정도가 지나자 저는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병원을 가서 진단을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다낭성 난소증후군이 굉장히 심하여 자연임신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나이가 꽤 있어서 낳게 된다고 해도 노산이라 위험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저는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야 30대 후반도 아이를 잘 가지고 출산도 쉽게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저를 다독여주었고 애 없이 10년을 살았으니 상관이 없다고 저를 위로해 주었어요.

하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저는 아이를 갖기로 마음을 먹었었고 쉽게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제가 우울증에 빠지고 괴로워하자 남편이 먼저 입양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저는 남편의 입양 제안을 듣고 처음에는 고민을 하다가 입양을 해서 키워도 저는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입양 관련하여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부모가 될 교육도 받고 갖춰야 할 자격도 갖추고 준비를 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저와 남편과 생김새가 비슷한 백인 아이를 입양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아원을 돌아다녔었습니다. 하지만 딱 내 아이다. 하는 느낌이 오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저는 한 고아원에 들어갔습니다. 정말 작고 소중한 아이를 발견했어요. 아이는 제가 원했던 백인 아이는 아니었지만 검고 맑은 눈동자가 저를 홀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와 몇 달 시간을 보내고 최종적으로 입양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아이의 고향이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과 연이 깊다고 한 것이에요.

보통은 갓난 아이나 영유아를 입양하잖아요. 저는 7살 정도 된 아이를 입양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아이를 입양했던 이유는 어렸을 때 저와 비슷한 행동을 했던 거예요.

암기력이 굉장히 뛰어나더라고요. 7살짜리 치고 고아원에서 제일 똑똑했죠. 수학적 머리도 뛰어났고 암기력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아이가 입양을 가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였어요. 나이가 이미 입양 가기엔 늦었었고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이었죠.

저는 이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했고 사랑으로 보듬어주었습니다. 물론 처음 겪는 육아는 어려웠어요. 책에서 보던 육아법과 현실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하지만 저희 부부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어요. 변호사 업무도 해가면서 아이도 키우고 참 바쁘곤했었습니다. 저는 다른 입양 가정과도 친하게 지내며 육아 팁을 얻고 또 서로 응원을 하면서 지내기도 하였죠.

그중에 친해진 가정 중에 중국인 아이를 입양한 가정이 있었서 저는 같은 아시아권이니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 자주 만나면서 친하게 지내게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를 위하여 한국에 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남편은 온전한 미국인이지만 제 아이는 자국의 언어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 아이가 자라서 사춘기가 왔을 때 뿌리가 깊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저와 남편도 함께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잘하고 제 남편이 하던 사업도 점점 잘 됐어요. 저희 가족은 완전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에게 큰 시련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 시련은 큰딸아이가 사춘기가 왔을 때쯤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그만 불의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저는 정말 미칠듯이 괴로웠어요.

남편 앞으로 된 엄청난 재산을 제가 받게 되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늘 함께였던 사랑하는 남편이 저를 혼자 두고 가버린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너무 슬퍼 사춘기 시절 제 딸아이를 신경을 많이 못 써줬어요.

하지만 제 딸아이는 저를 먼저 생각하더라고요. 어린 것이 저한테 서운한 것도 많았을 텐데요. 다행이도 제 딸아이는 혼자 열심히 공부를 하더니, 엄마처럼 유능한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제 딸 아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줄곧 좋은 성적과 좋은 대인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더니, 결국은 케이블 대학교의 수석으로 들어가더라고요. 저는 굉장히 뿌듯했어요. 그리고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결국에 영국의 유명한 로펌으로 들어갔어요.

많은 사람들이 묻더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딸을 잘 키웠냐고요. 저는 딸아이가 타고나길 똑똑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머리와 근성 덕분이지 제가 한 것은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제가 유산을 많이 받아서 딸아이가 졸업을 할 때쯤 미리 상속을 해주려고 했어요. 그러자 딸아이는 거부하며 엄마가 가지고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자신은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고요. 하지만 저는 남편의 유산과 제 재산이 이미 많기 때문에 딸아이에게 유산을 주었고 딸아이도 좋은 데 쓰겠다며 받아 가더라고요.

저는 딸아이가 런던에서 좋은 빌라를 구매 후 그곳에서 살 줄 알았어요. 그래서 딸아이의 집으로 갔는데 이게 웬걸 그냥 평범한 자취방인 거예요.

제가 “준 돈은 어디 가고 왜 이런 곳에서 사니?”라고 말을 했어요.

자신은 운이 좋게 입양이 되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아니니까 항상 마음이 쓰였다고 하면서 자신이 나온 고아원에 기부를 했더라고요. 저는 제 딸 아이의 마음에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제가 입양한 커뮤니티에서 육아 팁을 받았다고 했잖아요. 그때 중국인 아이를 입양했던 가정은 사실 지금은 흩어졌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성장하면서 사치에 눈을 뜨게 되었고 부모에게 금전적인 요구를 과하게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양부모가 지원을 다해 주었지만 갈수록 명품의 눈독을 들이더니, 돈을 지원해 주지 않자 엇나가며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인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죠.

양부모는 어떻게든 친구를 되돌려놓으려 애를 썼지만 결국은 그 가정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고 해요.

도둑질과 불법 마약거래로 인해 잡혀 들어갔다고요. 그래서 부모된 도리로 찾아가니 부모 탓을 하며 자신이 이렇게 된 건 다 자신이 입양아이기 때문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네요. 아무리 훌륭하게 아이를 키워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자세도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제 딸아이는 돈 없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을 하고 싶다며 따로 변호 사무소를 차려 고군분 투 중입니다. 저도 행복하게 지내는 딸아이를 보며 옆에서 조용히 의지 중입니다.

오늘 제 이야기 여기까지 입니다. 긴 제 사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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