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냥 어제 있었던 일인데 저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보내봅니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나… 제가 아주 시골 강촌에 부모님과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칸 그리고 손바닥만한 밭이 있습니다. 그런데 농사도 제대로 안 하고 딱히 뭐 하나 하는 것도 없으면서 해가 머리 위에 뜨면 술퍼 마시고, 겨울이 되면 비닐하우스 도박장에 가서 살고, 뭐만 하면 여기저기 사고치고 다니시고 여기저기 행패 부리면서 엄마를 때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4년이 지나 5년이 가고 엄마가 더 이상 지긋지긋해서 못 살겠다고 저를 데리고 서울에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그때 마포구 공덕동이라는 곳에 단칸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지금이야 아파트 단지에 쇼핑몰도 많고 비까번쩍하지만 물론 그때도 아파트 단지는 있었는데, 언덕배기에 마지막 산동네 아니 달동네가 있었습니다.
거기 달동네 단칸방에 살면서 엄마는 공예품 같은 걸 만들어 가게에 납품하는 일을 하셨고 찢어지게 가난하니 라면은커녕 장아찌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여튼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달동네에서 나와 아파트 단지 쪽을 지나다 보면 피자 가게가 하나 있었거든요. 도미노 피자라고” 우와 저게 서울 애들 생일 잔치만 하면 엄마들이 사준다는 피자구나” 했는데 근데 애초에 나 같은 사람들은 못 먹는 음식인 줄 알고 있었지만 지나갈 때마다 냄새가 정말 예술이었어요.
그런데 언젠가 우리 집에 도미노 피자 전단지 온 거 보고 엄마한테 하나만 사 먹자고 난리를 치니까 엄마는 정말 난감한 표정으로 전단지를 보셨습니다.
그때는 무슨 콤비네이션 하와이안 스페셜 불고기 피자 이런 게 제일 고급 피자였고 그때 물가로 라지 사이즈가 이만 원이 좀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단지 제일 밑에 있는 거 제일 싼 거 치즈 피자 그냥 치즈 피자 이건 확실하게 기억하는데 9,900원이었어요. 전 메뉴 중 유일하게 만 원이 안 넘는 메뉴였죠.
엄마가 지갑, 책, 봉투 여기저기서 1000원 100원 50원 500원까지 다 꺼내신 다음에 9,900원을 만들어 하나 시켜주시더라고요.
그렇게 난생 처음 피자라는 것을 먹었을 때 와 세상에 이런 맛이 있구나..정말 말로 표현이 안 되었습니다. 제가 피자를 먹고 너무 좋아하니까 그날 이후로 엄마가 1000원 2000원 동전들을 따로 모아 저희는 3개월 4개월에 한 번씩 그 제일 싼 치즈 피자를 사주셨습니다.
그러면 그게 6조각이면 엄마랑 나랑 두 조각씩 먹고 두 조각을 랩에다 조심스럽게 싸가지고 냉장고에 두었다가 진짜 배고플 때 꺼내서 데워 먹었습니다.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면서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다녀왔습니다. 인터넷 온라인 쇼핑몰이 많아지면서 엄마가 발 빠르게 그쪽으로도 물건을 납품하고 정말 힘들게 살았습니다.
저는 중학교에 간 다음부터는 치즈 피자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네요. 저도 중학교 때부터 평일엔 주유소에서 일하고 주말엔 편의점에서 일하고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엄마도 여기저기 영업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세상 어떤 엄마가 중학생인 아들이 일하는 걸 원하겠냐마는 저도 벌지 않으면 우리 둘이 정말 살아갈 수가 없는 형편이기에 다른 엄마들처럼 누가 너보고 일하라 했느냐 너는 공부만 해라 말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됐습니다.
” 내가 조금 더 일해서 하루라도 빨리 너 공부만 할 수 있게 해줄게”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던 엄마의 마음도 그렇게 서로 바쁘게 일하느라 얼굴 보기도 힘든데 같이 피자를 시켜 먹을 시간이 없었던 것 같네요.
제가 학교 끝나고 알바하고 밤 10시쯤, 텅빈 집에 공부 좀 하다가 잠을 자기 위해 내 자리 옆에 엄마 자리 깔고 항상 먼저 잤습니다.
엄마는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오면 자고 있는 내 얼굴 보고 저는 자다가 새벽에 나도 모르게 눈 뜨면 그때 옆에서 자고 있는 엄마 얼굴 한번 보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아침에 학교 가려고 눈 뜨면 엄마는 벌써 밥 차려놓고 장사하러 나갔고 그렇게 살아 돈도 모이고 대학교 가서는 아파트로 이사도 갔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배고픈 10년이 지나고 지금은 많이 살만해져서 아버지 생활비도 보내드리고 군대도 다녀오고 잘살고 있습니다.
여자친구도 있고 어제 토요일에 여자친구네 집에 노트북이 안 된다. 그래서 포맷도 해줬더니, 점심을 시켜주더라구요.
마침 신문 틈에 피자 전단지가 있던데 도미노피자 옛날에 제가 봤을 때는 앞에 도미노피자 마크가 있었고, 뒤에 메뉴가 있었는데, 지금은 뭐 사이즈도 크고 앞에 무슨 아이돌인지 연예인들도 있더라구요.
여자친구가 뭐 하나 시키라는데 와 너무 복잡해서 무슨 까망베르 쉬림프 더블 크러스트 하나도 모르겠어서 야 나는 잘 모르겠고 혹시 치즈피자 있냐 하고 물었더니,
” 치즈케이크 샌드피자? “
” 아니아니 그렇게 길고 복잡한 이름이 아니야 “
그냥 치즈피자 제일 싼 거 라고 하니까 메뉴판엔 없다고 홈페이지 들어가서 보라니까 역시나 제일 구석에 제일 싼 피자 14500원이었습니다.
웬만한 거 2만원, 3만원대인데 왜 이런 거 시키냐고 맛있는 거 많다는 여자친구의 투정도 뒤로 하고 주문시켜서 배달이 왔습니다. 냄새부터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습니다.
피자를 열어 한입 베어 무니까 정말 맛에 기억 능력이 있는지 맛이 머리로 전달되는 건지 15년 전, 내가 살던 마포 달동네 집 주소도 배달하시는 분이 찾기 힘들어서 직접 꼬깃꼬깃한 지폐와 동전을 손에 꼭 쥐고 골목까지 나가서 기다리다가 피자 받아서 난방도 안 되는 쪽방에서 덜덜 떨며 엄마랑 나눠 먹던 그 기억이 났습니다.
그러면서도 행복해서 서로 웃던 기억이 나서 나도 모르게 뭔가 복 받쳐오르는 느낌이랄까… 그때 그 기억이 나서, 피자를 먹자마자 나도 모르게 목이 뜨거워지면서 꽉 막혀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습다.
여자친구가 왜 우냐고 그렇게 맛있냐고 그러네요. 눈이 시뻘게져서 집에 돌아오며 일부러 피자 가게 들려서 치즈피자 한판을 샀습니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이거 기억나냐고 옛날에 마포 살 때 시켜 먹던 치즈피자라고 하니 엄마도 오랜만이네 이러시다가 한 입 드시고는 이내 내려놓으시더니,
” 그때는 없이 살았으니 이게 맛있었지. 이그~ 느끼해서 어떻게 먹냐, 너 다 먹어라”
하고 안방에 들어가시네요. 참나. 그새 입맛이 변한 건가 하면서 저는 몇 조각 먹고 냉장고에 남은 거 정리하고 제 방에 들어가려는데 안방에서 엄마 우는 소리가 나네요. 정말 이게 눈물 젖은 빵이라는 건가…
한 번도 우는 거 못 봤는데 엄마도 다 기억하시나 봐요. 시간들을… 그냥 작은 경험 짧게 쓰려던 건데 길어졌네요. 읽어주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추신- 엄마 사랑해요. 당신이 제 엄마라서 고마워요. 힘든 일이었을언정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