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혼 후 아들과 살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생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처럼 저도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는데, 엄마는 우리집 아들을 보면서 혼자 독박 육아를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엄마는 항상 밝고, 저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 친엄마는 아니지만요…엄마는 늘 제게
“괜찮아. 할미가 손주 보는건데
힘들긴 뭐가 힘들다고 그래
회사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네가 더 힘들지…“
라며 위로해주셨어요. 그런 엄마 덕분에 회사에서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었고, 월급도 괜찮았기 때문에 저희 가족은 그냥 그렇게 살았어요.
늦은 시간, 퇴근 후 집에 들어가자마자 된장찌개 냄새가 났습니다. 누군가 저를 위해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제 어릴 적 이야기를 하자면, 어릴 때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고, 저는 아빠와 할머니와 살았어요. 할머니와 아빠는 제가 탐탁지 않아했어요. 싫어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네요.
할머니와 아버지가 어머니를 참 많이 미워했는데, 그래서였는지 내가 어머니를 닮았다는 이유로 저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을 때마다 눈치를 봐야했어요. 그러던 중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할머니를 제 양육을 포기해 버렸고 결국 나는 보호 시설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나는 그 시설에서 자랐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회사에서 몇 년동안 일을 하면서 한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그 남자는 부모님도 전부 계시고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를 과분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처음 시부모님께 인사를 갔을 때 시어머님도 저를 아껴주셨고 가족 분위기도 좋아 보였기에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결혼 생활은 처음에는 좋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점점 변해갔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고 취하기만 하면 돌변하기도 했었어요.
그러다 임신 전까지 그러한 것을 감쪽같이 숨기다가 제가 임신 5개월쯤 되니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요.
아마도 제가 아들 때문에 어쩌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우유부단한 성격이 아니었어요.
한마디로 남편이 저를 잘못 봤던 것이죠. 저는 그런 남편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지 않았어요.
회사에서도 제가 워낙 성실했기에 출산 후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거든요.
남편은 계속 그만두라며 잔뜩 취해서 제게 윽박을 지르기도 했어요.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고 출산 휴가에 들어가면서 남편의 행동이 더욱 심해졌어요.
아이를 낳고 제가 살이 많이 찌긴 했는데, 남편은 그것도 이용해서 니 몸에서 돼지 우리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밥을 못 먹은 나를 보며 입맛 떨어져서 그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정말 기가 막혔던 것이 아이를 낳고 나서 정신이 없다보니 국에 밥을 말아서 마시는 모습을 보며 그런 모습을 보며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러한 행동으로 남편에 대한 정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는데, 또다시 잔뜩 취해서 들어온 남편이 나를 협박하며
“왜? 내가 마음에 안 들어?
그래봤자. 네가 친정이 있어? 친척이 있어?
너 지금 나가면 갈 데도 없잖아”
라며 비아냥되기 일쑤였고 그런 아이의 아빠의 모습에 정이 떨어져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아들은 아빠 없이 자라야 한다는 것이 마음 아프기는 했지만, 저런 아빠는 아이에게 도움될일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 외롭게 살던 저와는 달리 아들은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지만 이혼을 하지 않더라도 최악의 아빠에게선 행복이란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혼은 정말 어렵지만, 아들을 위해서는 이런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산 휴가 동안 이혼 절차를 알아보았고 시어머님께 이혼을 말씀드렸습니다.남편과 다르게 시어머님은 참 잘해주셨어요.
“어머님, 죄송해요. 저희 이혼할 거에요.
어머님께선 참 잘해주셨는데 정말 죄송해요.
근데 맨날 취해서 집안 난장판 만들어놓고
막말하고 더이상은 안되겠어요.
저는 이렇게 살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이런 사람인 줄 정말 몰랐어요”
저는 시어머니에게 힘겹게 말을 꺼냈고 그런 제 말을 듣던 시어머님께서 입을 입을 열었어요.
“사실은 말이다..네가 결혼하러 인사 왔을 때
아무리 봐도 니가 너무 아깝게 여겼어.
너 같은 사람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면서도,
내 욕심때문에 일을 빙빙 돌렸다…
미안하구나.. 니 말이 맞다.
그런 아빠 밑에서 자랐으니
아들도 똑같이 그렇게 행동하는구나…
나는 이혼 안하고 자식을 위해 버텨왔는데,
그게 나의 큰 실수였어.”
라며 눈물을 닦으셨어요. 시어머님의 말씀처럼 시아버님도 한평생을 그렇게 사셨다고 하는데, 결국 그 버릇이 대물림되어 버린거죠.
저는 그렇게 이혼 준비를 하며 변호사 상담까지 받았고 최대한 큰 문제없이 이혼을 진행했어요. 사실을 안 남편은 방방 뛰며 난리를 쳤고 저를 비웃으며
“네가 어디 갈 데는 있고?
얼마 못버티고 와서 빌어댈 거 그냥 있어”
라고 말했어요, 저는 남편에게 양육권만 주면 되니까 이혼해달라고 딱 잘라 말을 했고 한참을 힘들게 하던 남편도 나중에는 포기했던지 이혼을 해줬어요.
“나한테 뭐 도와달라고 하기만 해봐.
가만 안 둘거니까.
양육비 그런 얘기 꺼내지도 마라.
나 지금 만나는 사람 있으니까
연락하지마. 알았어?
라며 말을 할 뿐이었어요. 알고 봤더니 제가 임신을 하고 난 뒤부터 이미 만나는 사람이 있었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남편과 이혼 후 남편은 다른 여자와 새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시어머님께서 제 손을 다급히 잡으시고 제가 말하셨어요.
“얘야, 그럼 나랑 같이 살자…”
“네? 어머님..우리 이혼할 거예요
그런데 어머님과 제가 어떻게 살아요”
사실 그때 당시에 너무 지쳐 있었기에 시어머님에게 짜증도 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내가 인간들이랑
인연 끊으면 되는 거 아니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놀라서 물었는데요.
“그러니까, 나도 이번 참에 이혼할까 한다.
이혼 소송하면 재산 일부를 받을 수도 있고
거기다가 그동안 모아놓은 돈도 있으니까.
그냥 우리 둘이 같이 살면 안될까?
어차피 나도 인간들한테 미련도 없고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게 저 모양이니
나도 참 사는게 사는게 아니더구나…
너도 친정 부모님 안 계시고
그냥 날 엄마라고 생각하고 살면 안되겠니?”
시어머님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고 놀란 저는 당황했어요.
“어머님…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어머님 자식은 그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 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을때 어머니가 말했어요.
“정 안되면. 우리 손주 클때까지만
내가 돌봐주마. 뒤에는 나도 내 살길 찾아가마.
너 혼자 애 키우는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잖니…
그렇게 하자꾸나. 사실 너와 나는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잖니”
시어머님이 저를 설득했고 그런 시어머님의 말에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어디 하나 의지할 곳이 없었기에 시어머니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얼마후, 시어머님은 시어버님과 이혼 소송을 진행했는데 제가 깜짝 놀랐던 것은 말이죠. 시어머님이 그동안 증거를 엄청 많이 모아놓으셨다라고요.
여러 가지 사진에 음성 녹음된 것들까지 어마어마 했어요. 제가 보기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오셨던것 같은데, 그동안 참고 참으셨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결국 시어머님은 이혼 소송을 하면서 힘겹게 이혼을 하셨어요,. 그동안 그리도 힘들게 살아오셨기에 제가 이혼을 한다고 했을 때 오히려 찬성을 하셨던 것 같아요.
시어머님과 저는 작은 아파트를 얻어서 새 삶은 시작했어요.시어머니는
“앞으로 내가 니 엄마니까 엄마라고 불러.
우리 그렇게 맘 편히 살자꾸나”
라고 말씀하셨죠. 우리는 그렇게 보며처럼 살고 있었어요. 동네 사람들도 저희를 진짜 모녀라고 알고 있을 정도였고요. 시아버님이 가끔 전화를 하기도 했지만, 시어머님은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말씀하시며 차갑게 대응하셨어요,.
그리고 가끔 전 남편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지만, 시어머님은
“정신나간 놈아 네가 이혼한 순간 너랑 나는
이미 끊어진 철륜이야. 그러니까 다시는
연락하지 말거라”
라며 단호하게 행동하셨어요. 그렇게 시어머님이 육아를 전담해 주셨고 저는 일에 집중하면서 우리는 나름 잘 살았어요.
그 뒤에도 시아버님이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 앞까지 쫒아와서는
“당신은 내 덕에 잘 살았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산다고 그래.
나랑 살면 돈 걱정은 없잖아?
그러니까 다시 집으로 돌아와”
“돈? 많이 갖다 주면 뭐해?
마음은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난 그까짓 돈 다 필요없어.
평생동안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었는데
요즘엔 잠만 푹 잘 자고 있어
그러ㅗ니까 돈 많이 벌어서 당신 혼자 잘 살아.”
시어머님께선 아주 단호했어요,. 사실 시어버님은 꽤 큰 가게를 운영하고 게셨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수입이 상당히 괜찮았거든요.
제 전남편도 거기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시어버님 믿고 직원에게 함부로 행동해서 말이 많기도 했었어요. 남편은 돈을 아주 펑펑 쓰고 다녔는데 돈 아쉬운 줄 모르고 살았었죠.
그렇게 시어머님이 눈 하나 깜빡이지 않자, 시아버님이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제가 바로 경찰에 신고해 버렸어요.
시아버님의 손버릇이 아주 고약해서 제 입장에서는 시어머님을 지켜야만 했거든요.
시어머님은 제게 있어 하나밖에 없는 가족 었으니까요. 경찰에 신고를 한 후 시어머님에게
“엄마 미안해. 근데 난 엄마한테 또 손찌검할까 봐…
그럼 엄마가 다치니까…
난 엄마가 다치는 게 정말 너무 싫어”
제가 눈물을 흘리며 시어머님은 꼭 끌어안았는데요. 시어머님이 그런 저를 정말 있는 힘껏 안아주면서
“살면서 내가 낳은 아들 자식도
그렇게 날 막아준 적이 없는데
정말 고맙구나”
시어머님도 한동안 소리내어 우셨어요. 그렇게 시어머님과 함께 살게 되면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요.
“사실 전에 우리 친정은 아주 부자였어.
근데 우리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면서
하루아침에 가족들이 다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정말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든 그런 시절이었어.
근데 평소에 날 맘에 품고 있던 니 시아버지가
우리 부모님을 찾아와서 나와 결혼만 시켜주면
앞으로 편히 살게 해주겠다고 했더구나.
예정대로 였으면 난 그때 대학을 졸업한 뒤
유학을 다녀와 대학 교수가 되고 싶었다.”
옛 생각이 나는지 시어머님의 눈시울이 붉어지셨어요. 그럼 시어머님의 말에
“유학이요?”
제가 놀라서 물었는데요.
“그래 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었다.
거기다 꽤 괜찮은 실력이었었지.
그런데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어.
그런 와중에 니 시아버지가
허구헌 날 우리 부모님에게 찾아와서
그렇게 잘하니 우리 부모님도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더구나.
무엇보다도 돈이 많은 네 시아버지한테
마음이 갔던 것이겠지…
아무래도 부모님은 평생을 돈 걱정 없이
살았던 내가 앞으로도 좀 풍요롭게 살길 바라셨겠지”
시어머님이 잠시 말을 멈추셨어요. 그리고는
“그런데 우린 달라도 너무나 달랐어.
니 시아버지는 대학을 나오지 못해서
내가 자기를 막대한다는 말을 수시로 하면서
나한테 함부로 했다.
물론 금전적으로는 편했지 우리 부모님에게
인심 쓰듯이 돈도 주고 했으니까.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나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다.
난 그냥 다 견뎌냈고 그리고 이제는 빚 다 갚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혼을 결심했던 거고…”
시어머님이 다시 눈물을 흘리셨는데 처음 듣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가슴이 그렇게 먹먹할 수가 없더라고요. 결국 시어머님과 저는 많이 닮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렇게 시어머니과 저는 더 가까워졌고 우리는 하루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 정말일지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는데요.
그날도 저는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집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요.
“혹시 수아 씨 맞나요? “
어떤 여자가 제 이름을 불렀어요.
“네. 맞는데 누구시죠.?:
“저는 박경아입니다”
제가 여자의 이름을 되뇌이고 있었는데, 순간 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설마 날 낳아준 생모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설마 아니겠지 아빠 이혼하고 난 뒤 단 한 번도 날 찾지 않았는데 그럴 리가 없겠지 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누구시죠?”
저는 최대한 침착한 척 물었는데요.
“수아야. 엄마야”
순간 여자 입에서는 말이 새어 나왔어요.
“네? 누구시라고요?”
제가 놀란 채 다시 물었는데요.
“엄마야… 널 낳아준 엄마”
라고 말하던 여자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저는 반가움보다는 원망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더이상 길게 통화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엄마가 없습니다.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며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제 입장에서는 참 기가 막혔거든요. 제가 아들을 낳아보니 더욱 이해가 안 됐어요.
저는 출근해 있는 시간에도 항상 우리 아들이 눈에 밟혔거든요.
그런데 저를 낳아준 친모라는 사람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저를 찾아온 적이 없었으니까요.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거든요.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요? 어느 날 시어머님이
“수아야. 너 말이야.
친엄마 안 보고 싶어?”
제게 물었어요.
“친엄마요? 나한테 친엄마가 어딨어요.
아마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가 봐요.
그러니까 한 번도 안 찾아오죠.”
라며 제가 그냥 웃어버렸는데요.
“수아야 사실은 말이야.
며칠 전에 한 사람이 우리 집에 찾아왔었어.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이라
문을 안 열어줬었는데
아무리 봐도 낯이 너무 익은 거야.
그래서 자세히 봤더니,
너 아주 판박이더구나
나이가 아마도 나랑 비슷할 텐데
어쩜 그렇게 젊고 예쁘던지
너랑 똑같이 생겼어”
시어머님이 제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어요.
“엄마..그 사람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나한테는 엄마밖에 없어요.
자식 그렇게 두고 가버린 엄마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제가 기분 나쁜 듯이 말을 했지만,
“네 엄마 얘기 들어보니 네 엄마한테도
딱한 사정이 있더구나.
물론 지금 네 마음이 어떤지 잘 알겠다만 그
래도 널 낳아주신 분인데
한 번은 만나봐야 하지 않겠니…?
잘 생각해보고 전화해봐”
라며 시어머님이 제 손에 전화번호 하나를 들려줬어요. 얼떨결에 연락처를 받은 저는 며칠 동안 연락처를 뚫어지라 바라보다가는 결국 연락을 하게 됐는데요.
“민수아 입니다.도대체 이제 와서
저를 만나고 싶은 이유가 뭐죠?
혹시 먹고살기 힘드셔서 그래요?
그런데 어쩌죠?
저도 돈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요.”
그동안 원망만 가득하게 제가 모진 소리를 해댔는데요.
“연락 줘서 고맙다. 정말 고맙다.
제발 나 한 번만 만나주면 안 되겠니?”
제게 간절하게 부탁을 그랬어요. 그렇게 저는 친엄마란 사람과 마주하게 됐는데 친엄마의 첫인상은 아주 말끔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죠. 부잣집 사모님같이 고상해 보였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런 인상이었어요.
“무슨 일이시죠?
이렇게 만나보니 돈이 없으신 거 같지도 않은데
이제 와서 저를 찾는 이유가 뭐죠?”
제가 여전히 쌀쌀맞은 목소리로 물었어요.
“수아야… 엄마가 정말 미안하구나.
진작 널 찾았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구나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엄마는
단 하루도 널 잊은 적이 없었어.”
라며 친엄마가 눈물을 흘렸고 그런 엄마를 보며
“저기 죄송한데 용건만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수아야 처음엔 니 아빠와 할머니에게
널 키우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었다.
그때 니 할머니와 아빠는널 데리고 있어야만
내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더구나.
널 상대로 날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거지…
물론, 널 생각하면 다시 널 데리러 갔어야 했는데
엄만 참을 수가 없었어..
네 아빠뿐만 아니라
네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들을
견딜 수가 없었어….그 뒤 난 미국 사람과
재혼을 하게 됐고 미국으로 가게 되었어.
하지만 항상 널 그리워하고 있었단다.”
말을 하는 내내 친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어요. 친엄마의 말에 의하면 할머니가 친엄마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다고 했는데, 아빠가 있을 때는 잘해주는 척하다가 아빠가 회사를 가게 되면 할머니가 엄마를 그렇게 구박했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했대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져갔고 아빠까지 나서서 엄마를 병원에 입원시켜 버리겠다는 등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하네요.
어느 날은 엄마가 할머니에 대해 진지하게 아빠에게 말을 했지만, 아빠는
“정신 나갔어? 우리 엄마가 그렇게 행동할 리가 없잖아.
지금 우리 엄마랑 나 이간질 지키는 거야?
너 정신병원이나 알아봐”
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쳐만 갔고 날이 갈수록 말라만 갔던 엄마는 결국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엄마를 데리고 가버렸다고 하네요. 그리고 엄마는
“제발 수이만 저한테 주세요.
제발요…”
라며 할머니에게 애원을 했지만,
“우리 집안 핏줄을 누구한테 준단 말이냐?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라며 비웃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엄마는 만신창이가 되어 한동안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러다가 시간 이 지나 어느 회사에 파드타임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을 한 뒤 미국으로 갔다고 합니다.
미국인 남편도 부인과 사별한 사람이었는데. 미국으로 가기 전에 저를 데리고 와서 같이 키우자고 했다는데 역시나 할머니와 아빠가 완강하게 거절했다고 해요.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게 나중에는 결국 저를 시설로 보내기까지 했으면서 도대체 엄마에게 왜 보내지 않았을까요? 할머니의 심보가 참 고약했구나 하는 생각마다 들었어요.
그렇게 엄마와 한참을 이야기를 하던 중 전부는 아니었지만 조금은 엄마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어요.
물론 저도 자식을 낳아서 키우고 있었기에 더 그러지 않았을까 싶었고 그리고 엄마 말대로 우리 할머니는 정말 그러고도 남을 만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엄마를 용서했고 엄마는 정말 고마워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수아야. 엄마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 봐야해.
사실 엄마가 널 이렇게 다시 찾은
이유 중의 하나가 니가 힘들게 산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내가 니 외할머니한테
널 찾아달라고 해서, 니 외할머니가
사람까지 고용해서 널 찾아낸 거야.
네가 참 많이 힘들게 살고 있더구나
그래서 말인데 이 엄마가
널 좀 도와주고 싶은데
물론 네가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말이다.
하지만 너도 이제 엄마잖니 니가 낳은 아들
앞날를 위해서라도 엄마 도움을 좀 받아도 될 거 같은데…”
엄마가 어렵게 말을 꺼냈어요.
“우선 지금 살던 집에서 이사를 좀 하자꾸나.
저번에 가보니까, 집이 습해서 곰팡이도 많고
우리 손주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 같더구나.
그리고 니가 먹고 살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
그래서 말인데 엄마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한국에서도 시작할 계획이거든.
니가 그걸 널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괜찮겠니?
너도 처음이니까.
널 도와줄 사람을 엄마가 찾아뒀어.
당분간 사람한테 배우면서 천천히 해봐.
근데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거 알고 있지?
우선 회사 그만두고 빨리 일 배우면서
공부도 다시 시작해.”
엄마가 제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어요. 그런 엄마의 말에 제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어요. 그렇게 저는 공부를 하면서 일을 배웠고 엄마 말로는 생각보다 일을 배우는게 빠르다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엄마는 뒤에도 자주 한국에 나왔는데 어느 날은 재혼했다던 그분과 함께 저를 찾아왔고 그렇게 우리는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근데 너랑 같이 사는 분이 전 시어머니라며?
내가 알아보니 네 전 남편이 너한테
참 못되게 굴었다고 하던데
전 시어머니랑은 왜 같이 살고 있는 거니?”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제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했어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다 들은 엄마는 시어머님에게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했어요.
그 뒤 시어머님과 저는 엄마가 구해준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집이 정말 어마어마해서 둘 다 눈이 휘둥그려질 정도였어요. 그렇게 저는 정말 다른 삶을 살게 되었는데요.
시어머니가 제 인생이 180 도로 바뀌어 버렸고 하루하루 꾸민과 인가 싶었는데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어느 날 제 친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갔는데 그곳에서 전남편과 딱 마주쳤고 변해도 너무나 변한 저를 보며 전 남편이
“저기 혹시 수아 씨 아닌가요?”
라고 물었어요. 모든 것이 변해버린 저를 보면 혼란스러웠던 것 같았어요.
“네. 맞는데요”
“당신 맞구나? 근데 당신 왜 이렇게 변했어?
다른 사람인 줄 알았잖아.”
라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어요.
“얼마 전에 우리 친엄마를 만났거든.
인사해 우리 친엄마야”
라면 제가 말을 했어요. 그런 제 말에
“뭐? 당신 친엄마 돌아가셨다며?”
“그러게, 나도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더라고.
그럼 우린 바빠서 갈게”
라고 말하고 제가 뒤를 들어섰는데
“잠깐만… 그럼 당신 부자 됐다는 말이 사실인 거야?
그런 소문이 들리긴 하던데…”
전 남편이 제게 물었어요. 그때 옆에 있던 엄마가 전남편에게 말했어요.
“우리 딸과 이혼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우리 딸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요.
그랬다가는 내가 가만 안 둘 테니까.”
엄마가 전 남편을 노려보며 말을 했어요. 그런데 뒤 전 남편이 제가 이사한 집까지 알아내서 찾아왔고 우리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 다시 합치자며 어이없는 말을 지껄였어요.
그런 전 남편을 매몰차게 내쫓아 버렸지만 전 남편은 계속해서 찾아왔고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무슨 조치를 한 것 같았는데 뒤에는 조용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시어머님이 저를 보며
“얘 네 시아버지 말이다.”
라며 말을 꺼냈는데요.
“네? 아버님이 설마 또 찾아왔어요?”
제가 놀라서 물었고
“아니 그게 아니라, 얘기 들어보니
니 시아버지가 쫄딱 망했다는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쫄딱 망하다니요?
아버님 재산이 얼만데요. “
그때 당시 저는 시어머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요.
“그게 말이다. 네 남편 아니지 니 전남편 그러니까
아들한테 여자가 있었잖니.
아들이 여자랑 같이 산다고 하던데
여자가 사실 꽃뱀이었다고 하더구나”
“꽃뱀이요?”
제가 놀라서 물었는데요. 시어머님은 뒤 충격적인 사실을 계속 말했는데 이야기를 듣던 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시어머님의 말에 따르면 전 남편과 동거 중이던 여자가 시아버님에게 얼굴이 진짜 예쁜 아줌마를 소개시켜줬다고 하는데요.
남편과 동거하던 그 여자와 그 아줌마가 짜고 시아버님에게 정말 괜찮은 땅이 있다고 소개를 해줬고 요사한 꽃뱀과 아줌마에게 혹할 대로 혹한 시아버님이 잘 알아보지 못하고 그 땅을 덥썩 물었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땅이 사람 발길도 닿지 않는 야산에 있는 땅이었다네요.
암튼 뭔가 엄청 복잡해 이야기긴 했는데 두 꽃뱀들한테 진짜 영혼까지 털린 거죠. 그래서 몇 푼 되지도 않는 땅을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샀다고 합니다.
그거 말고도 전 남편과 동거 중이던 여자와 아줌마가 맘먹고 제대로 한탕 할려고 돈도 어마어마하게 빌려갔다는데 차용증 그런 거 쓴 것도 없다고 하네요. 그런 시어머님을 보며
“괜찮으세요.? 시아버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래도 어머님한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어째요…”
“뭘 어째, 이제 정신 차리고
고생 좀 하고 살아야지 뭘 어쩌겠냐
그동안 날라리처럼 살았는데
아주 뼈빠지게 고생하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지
혹시 너한테 전화해서 나 찾으면
넌 그냥 무조건 모른다고 해라.
괜히 얽히면 골치만 아파진다.
이미 맘 떠난 지 한참 됐다.
웬만해야 불쌍하다라는 생각이라도 들지”
라는 말을 할 뿐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은 시어머님이
“너한테도 이제 친엄마도 찾았고 먹고 살만하니
나는 이만 집구해서 나가마.
내가 있을 자리도 아니고..”
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시어머니께
“엄마…그런게 어딨어요.
그냥 같이 살아요.
가장 힘들 때 엄마가 옆에 있어 주셨잖아요.
혹시 그이가 찾아와서 귀찮게 할까봐
더 그러시는 거죠?”
제가 물었어요. 그럼 제 말에
“그런 것도 없잖아. 있는데,
꼭 그런 것 때문은 아니고
너 먹고 살 만하면 내가 떠나려고 했다.
너랑 내 관계가 같이 지낼 사이는 아니니까”
“앞으로도 계속 엄마가 손주 봐주셔야죠.
우리 지금처럼 이렇게 살아요.
친엄마를 만나긴 했지만,
미국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요.
엄마도 어머님한테 참 고마워하고 있고요.
그러니까 나간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도 마세요.
아셨죠? 같이 살면서 손주 커가는 모습 지켜보셔요.
저 어차피 재혼 생각도 없어요.
그냥 제 아들 하나 잘 키울 생각밖에 없어요.”
라고 말을 했고 제 말에 시어머님은 조용히 눈물을 닦으셨어요. 그리고 얼마 후 제가 피아노를 하나 사서 거실에 놓아뒀는데 피아노 뚜껑을 열던 시어머님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고 있었어요.
그런 시어머님을 보며
“엄마 이제 피아노 마음껏 치셔도 돼요.
비록 대학 교수는 못 되셨지만 앞으로
엄마한테 하나밖에 없는 손주한테
피아노 가르쳐 주세요.”
라며 제가 활짝 웃었어요. 제 말에 시어머니가
“고맙구나… 정말 고마워”
라며 말을 잊지 못하셨는데요. 시어머니.. 아니 엄마가 피아노 곁을 떠나지 않고 계시네요. 거기다 우리 아들도 피아노 소리가 좋은지 누워서 한참을 집중해서 듣고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며 이게 행복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전 남편이 몇 번 찾아왔지만 시어머님이 단박에 내쫓아버렸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참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평생을 고생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참 먹고살기 힘들겠죠. 하지만 그것도 사람의 업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싶네요. 앞으로도 시어머님 모시고 우리 아들과 셋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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