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고3 되기 직전 겨울방학에 교통사고 엄마, 아빠, 오빠를 보내고 저 혼자 남았습니다. 장례식 끝나마자 저도 우리 가족 따라가려고 양화대교로 갔었죠.
그 당시, 새벽이라 어두웠는데 난간에 한참을 서서 “10분만 더 숨쉬다가 뛰어야지.. 10분만 더… 10분만 더..”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결국 해가 뜨고 말았습니다.
날이 밝아오니 점점 차도 많아지고 해서 조금 기다리다가 차 안 지나갈 때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조금씩 밝아지면서 보이는 강물이 너무 예뻐서 잠깐 또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진짜 가야지…”하고서 마지막으로 내가 살아왔던 지난 추억들을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때 지나가던 자전거가 내 뒤에 멈춰 섰습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어느 여자가 내리더니 갑자기 옆에 와서 내 손을 잡더라고요. 그땐 진짜 이제 세상에 아무 감흥이 없어서 누가 내 손을 잡는데 놀라지도 않았어요.
그냥 멍하게 쳐다봤는데 그 사람이 “새벽 공기 좋지?” 라며 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나도 세상에 미련이 조금은 남았었나봐요. 이상하게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사람은 제 눈물을 닦아주며 “춥지 않아?”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오래된 친구처럼 그 사람을 붙잡고 우는데 저를 토닥토닥해주고 제 울음이 그침 다음에 한참을 앉아서 내 얘기를 들어줬습니다.
그렇게 처음 만났는데 알고보니까 가까운 친구 다니는 또래 친구였습니다. 나름 베프라고 자부하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었는데 걔네랑은 비교가 안될 만큼 이 친구는 저한테 너무 잘해줬습니다.
맨날 반찬을 챙겨다주고 나 우울할 때면 내 손을 끌고 영화관 가서 영화도 보여주고 밥도 사주고… 진짜 난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그 친구 때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까 그 친구와 만났을 때 제가 그 난간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뛰어내릴 거라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경찰에 신고할까 하다가 내 표정을 봤는데 너무 슬퍼 보여서 자기도 모르게 내 손을 잡고 말을 걸어 준거라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그래서 이 친구랑 나랑 20살이 되자마자 원룸 구해서 같이 살았습니다.
25살 때까지 내 20대의 절반을 이 친구와 보냈고 정말 가족처럼 같이 울고 웃으면서 서로 의지하고 다른 친구들이 우리를 부러워할 만큼 재밌게 행복하게 지냈었죠.
그런데 작년 오늘, 내 반쪽이던 친구가 멀리 떠났습니다. 밤늦게 택시 타고 집에 오다가 사고 났는데.. 이땐.. 진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왜 다 떠나는 걸까..? 내가 너무 못나서… 내가 옆에 있기 아까운 사람이라 하늘이 질투해서 데려가는 건가…?
모든 게 내 탓인 거 같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거 같고 날 살게 해 준 사람들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낸 나한테 죄책감에 역겁기까지 하고.. 진짜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나를 살게 하는 이유인 그 친구가 떠나버린 게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 치르고 집에 들어왔는데 정말 눈앞에 친구가 아른아른거렸습니다. 저는 한 달을 밥도 제대로 못 넘기고 울기만 하다가 세 번이나 쓰러졌습니다.
근데 19살 때처럼 극단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내 친구가 나한테 알려주고 간 게 너무 많았거든요.
“넌 꼭 행복해져야 되는 사람이야, 알지?”라며 언제나 입버릇처럼 저에게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친구를 생각해서라도 용기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해서 올 초에 취직도 했고 그리고 아직도 그 친구와 같이 살았던 원룸에 살고 있어요.
그때 둘 다 돈 없을 때 구했던 집이라 반지하에다가 좀 허름한데 그래도 전 이 집이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아늑하더라고요.
전 이 집에서 아직도 작게나마 친구 흔적을 남겨놓고 매일매일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친구가 떠난지 딱 1년째 되는 날입니다.
그 친구는 벼랑 끝에 서있던 저를 다시 세상으로 끌어 당겨주었고 저를 살게 해주고 웃게해 준 고마운 내 친구.. 너무 멋지고 대단한 친구이지 않나요?
그 친구가 저를 살려준 게 헛된 일이 되지 않게 저 정말 열심히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저도 하늘나라로 가면 친구가 그때 내 손을 잡아준 것처럼 저도 친구의 손을 평생 잡아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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