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에서 아이를 입양해 키우다가..”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남겨진 빚 때문에 아들에게 피해갈까봐 연락 끊고 살았는데, 수년 뒤 내 생명의 은인으로 나타난 아들의 ‘이 말’에 난 오열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60대 아줌마입니다. 20여 년 만에 아들을 만나 아들에게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내가 엄마라는 사실에 벅차올라 이 밤중에 몇 자 적어봅니다.

저는 양쪽 나팔관이 다 막혀서 아기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시댁에 죄책감이 들고 아기를 키우는 부부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어요.

우리 부부는 돈도 다 필요 없고 그저 아기를 낳아서 키우는 게 소원이었어요. 지금이야 시험관 시술이 있어 건강한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아이를 인공적으로 갖는다는 건 매우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시험관 아기가 출생했지만, 지금처럼 성공률이 높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저는 희망이 생긴 것 같아 시험관 아이를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어요. 아이는 자리를 잡았고 이제 건강히 아이를 돌봐 출산하는 것만 남았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행복했습니다.

아이의 태동에 눈물이 날 만큼 저희 부부는 행복했습니다. 7개월쯤 되었을까요? 활발히 움직이던 아이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불안한 마음에 남편과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아기가 움직임이 없더군요. 자궁 내에서 아이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내가 뭘 잘못 먹었나 모든 게 제 잘못 같았습니다.

눈앞이 뿌옇게 변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남편 역시 하염없이 울기만 했어요.

“상심이 크시겠지만, 이대로는 사모님한테 안 좋아요. 태아를 꺼내야 합니다. 수술 과정은 출산하시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수술 후에도 사모님 몸을 잘 관리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사산된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아이를 낳는 과정은 다 똑같이 했는데 저와 남편은 숨이 멈는 상태에 우리 아이를 만나야 했어요. 사산된 아이를 품에 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엄마가 너무 미안해… 우리 아가, 엄마 아빠한테 이름도 못 불리고 이렇게 보내서 정말 미안해… 나중에 꼭 만나자… 정말 많이 사랑해 줄게…”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내고 저는 1년의 세월을 폐인처럼 지냈어요. 남편에게 다시 한번 시험관을 진행하자고 했어요. 하지만 남편은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다며 싫다하더군요.

그런 남편의 주장에 저도 제 고집을 부릴 수 없었어요. 남편의 뜻에 따라 시험관은 더는 시도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렇지만 마음이 쉽게 추스러지지 않더라고요. 지나가는 아이만 봐도 눈물이 났고 임산부만 보면 내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저를 이끌고 경기도 외곽으로 가더군요. 도착하여 내려보니 보육원 앞이었습니다.

” 여보 우리 아기한테 주지 못한 사랑, 다른 아이들에게 많이 주자… 내 아이처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 주자…”

” 나는 자신이 없어 내 아이도 못 지켰는데 내가 어떻게 남의 애들을 돌봐줄 수 있어? 나는 싫어… 당신 다녀와, 나는 차 안에 있을게…”

저는 아이들을 볼 자신이 없었어요. 뒤로 돌아 차로 가는데 누군가 제 손을 잡더군요. 내려다보니 5살쯤 된 아이가 제 손을 잡더군요. 너무 작고 따뜻한 손이었어요.

“선생님! 우리랑 놀아주러 온 거예요? 그럼 나랑 같이 가서 우리 책 읽어줘요! “

보육원 운동장을 바라보니 많은 아이가 저와 남편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었어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저와 남편은 발길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30년 전 저와 남편은 매주 주말마다 보육원으로 봉쇄활동을 다니게 되었어요. 우리 아이에게 주려 했던 사랑을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주자고 말이에요.

봉사활동을 다니며 저와 남편은 참 많이 밝아졌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주말은 저희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거든요. 한 달여쯤 지났을 때였을 거예요. 유독 한 남자아이가 저와 남편 눈에 띄더라구요.

“원장님 저 아이는 왜 저렇게 혼자 있어요?”

“아, 경운이요? 저희가 같이 놀자고 해도 계속 구석에 웅크리고 있더라고요.  3개월 전쯤에 들어온 아이예요. 경운이를 낳은 아이 엄마가 맡겨두고 갔는데 뒤로 한 번은 안 오시더라구요. 아이는 저렇게 매일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에요. 애만 불쌍하죠. “

경운이는 당시 세 살이었어요. 하얀 피부에 갈색 바가지 머리를 한 아이였어요. 흰색 목티에 청색 멜빵 바지를 입은 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그런 아이가 슬픈 눈망울을 하고 앉아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서도 항상 아이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어요.

“경운아 선생님이 경운이 선물 사왔는데 경훈아 선생님이랑 같이 친구들한테 가볼까?”

“경운아 경운이 초콜릿 좋아하지? 선생님이 간식 사 왔어~”

저희 부부는 혼자만 있는 경운이가 안쓰러워 여러 노력을 했지만, 경운이의 다친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말과 다름없이 저희는 보육원에 도착하여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만들어주는 날이었습니다. 애들이 넘어지지 않을까? 주시하며 재료를 손질하느라 그만 칼에 손을 베이고 말았어요.

“선생님… 아파요? “

그때 경운이가 제 옆으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더군요. 저희 부부는 정말 놀랐어요. 경운이가 저희에게 먼저 다가와 준 건 처음이었거든요.

경운이는 쭈뻣쭈볕 다가와 제 손가락에 호하고 바람을 불고는 저희가 선물해 준 스티커를 붙여주더라구요. 그게 뭐라고 주책맞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뒤로 경운이는 점점 저희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리기 시작했고요. 저희의 마음을 아이가 알아주는 것 같아 참 기뻤습니다. 어느 날 보육원에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 여보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김 원장이에요. “

” 네 원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

” 우리 경운이가 엄마 선생님이랑 아빠 선생님 언제 오시냐고 물어봐 달라고 해서요. “

” 경운아 경운이가 여쭤볼래 ? “

” 선생님이랑 언제 와요 ?”

” 경운이가 두 밤 더 자면 선생님들이 경운이랑 친구들 보러 가지~”

” 네. 보고 싶어요. 얼른 오세요. “

” 경훈아 어디가? 아이고 선생님~ 경훈이가 부끄러운가 봐요. 후다닥 뛰어가네요. 아이가 선생님들 덕에 많이 밝아졌어요. 정말 감사해요. 바쁘신데, 전화드려 죄송해요. 주말에 뵈요~ “

경운이의 전화였어요. 아이가 저희를 찾는다니 너무 신나서 남편에게 방방 뛰며 이야기를 전달했어요. 남편도 너무 기뻐하더라고요.

그 주말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잔뜩 사들고 보육원으로 향했어요.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어렵게 입을 열더라구요.

” 여보… 우리 아이 입양할까? “

” 뭐? 입양? 아기 입양하는 거 자신 없다며…”

” 응 그랬지 그런데 아이들 보러 갈 때면 당신이나 나나 너무 행복해하니까… 나는 애들 보러 가는 주말이 너무 행복해. 주말 내내 아이들 보러 간다는 생각으로 힘이 나거든. 경운이 녀석 볼 때는 마음이 참 뭉클해져 집에 돌아와서도 경훈이는 잘 자는지 잘 먹는지 걱정이 되고…”

저는 너무 기뻤어요. 저도 남편처럼 항상 많은 아이들 중에 특히나 경운이가 참 마음에 걸렸거든요. 아이가 잘 생활하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오늘 아프지는 않았는지 말이에요.

” 여보… 너무 고마워 먼저 얘기해줘서 우리 잘해 보자. “

그렇게 저희 부부는 경운이를 입양하게 되었어요. 저희는 경운이를 입양하며 원장님께 경운이 친모가 찾아오면 저희 연락처를 꼭 알려달라고 부탁했어요.

나중에라도 경운이의 소식을 꼭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분명 경운이의 친모도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요. 아직도 경운이의 손을 잡고 보육원을 걸어 나오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날의 경운이의 작은 손, 경운이가 저희를 보며 웃어졌던 미소까지도요. 저희 부부는 그렇게 두 명에서 세 명으로 세 식구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경운이에게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고 아이를 키웠어요. 아이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까요? 어느날, 씩씩거리며 집에 들어오더군요.

” 엄마! 나 오늘 최민정이랑 싸워서 이겼어요.”

” 응? 민정이랑 왜 싸워? “

” 최민정이 나한테 너는 입양하라고 너희 엄마 계모냐고 그러잖아. 그래서 내가 우리 엄마 아빠 나 엄청나게 사랑해준다고 했어. 그리고 너는 그냥 태어난 거지만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선택한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너보다 더 행복한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울면서 선생님께 가는 거야. 지가 잘못해 놓고 “

” 잘했어. 다음에 누가 또 그러면 그렇게 해. 우리 경운이를 엄마 아빠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경운아 잘했어. 그렇지만 다음부터는 친구한테 소리치거나 윽박지르지 말고 얘기해 보면 어때 ?그럼 친구가 더 경운이한테 미안한 걸 알 거야.”

” 응, 알았어. 그래도 나 얘기 잘했지?”

” 응 잘했어. 이따 아빠 오시면 아빠한테도 말씀드려.”

똑부러지고 사랑스러운 우리 경운이는 우리 집의 복덩이었습니다. 시댁과 친정에서도 경운이를 참 사랑해 줬어요. 하나밖에 없는 우리 손주라고 많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아이의 체육대회 날이면 일가 친척은 다 모여 학교로 향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우리 경운이는 참 사랑스러운 아이였습니다. 남편의 사업도 경운이가 온 이후로 더욱 승승장구했어요.

” 여보 나는 집에 오는 게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집에 오면 우리 경운이 있지. 당신 있지. 얼마나 좋아? 그리고 아무리 힘 힘들어도 우리 경운이 생각하면 다 참게 돼. 내가 열심히 해야 우리 경운이 하드 하나 더 사주고 장난감 하나 더 사주지 안 그래?”

” 그래 당신 너무 멋있어. 당신은 나랑 우리 경운이한테 참 좋은 남편이고 아빠야 당신한테 참 고마워 “

남편은 참 열심히도 일했어요. 경운이도 저희 모습을 보며 밝고 성실하게 자라주었습니다. 누굴 닮았는지 참 밝고 머리도 좋았어요.

‘ 짜잔! 성적표 여기 나왔어요. 엄마! “

” 어머! 어머 ! 여보 이거 봐! 경훈이가 이번에 반에서 1등 했어! “

” 엄마 내가 뭐라고 했어. 이번 모의고사는 자신 있다고 했지? 아빠 나 1등 했으니까. 저번에 약속한 거 지키기예요?!”

” 그래 임마 당연히 지켜야지! 여보 이번 주 일요일에 우리 경훈이랑 같이 보육원 가서 애들이랑 떡볶이 파티해야 해”

” 그럼 당연하지 애들도 오랜만에 경운이 왔다고 좋다고 난리겠다~! “

경운이를 입양한 후에도 우리 가족은 꾸준히 봉사활동을 다녔습니다. 경은이도 함께요 아이의 시험이 있는 몇 주는 아이가 시험 기간이라 함께 가지 못하고 저희 부부만 다녔거든요.

경운이가 동생이랑 한 약속이 있다고 시험 끝나면 무조건 같이 가서 떡볶이를 쏘기로 했다고 하더라구요. 형제 없이 혼자 자란 아이지만 배려심 있고 두루두루 잘 어울려 남편과 저는 그저 고마울 뿐이었어요.

그러던 어느날이었어요. 봉사활동을 간 주말에 보육원 원장은 저와 할 얘기가 있다며 저를 불러내더라구요.

“경운이 어머니, 잠시 좀”

그러고는 저에게 번호와 주소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습니다.

” 이게 뭐예요? “

” 경운이 친엄마가 최근에 찾아왔었어요. 경운이가 보고 싶다고요. 그래도 선뜻 경운이 어머니 연락처를 내주기가 그래서 친엄마한테 연락처랑 주소를 받아놨어요. “

아이의 친엄마가 나타나면 꼭 아이와 만나게 해주자 남편과 약속을 했지만, 막상 그날이 다가왔다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겁이 나더군요.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나 친 엄마에게 가버리지 않을까? 말이에요. 참 많이 고민하다 남편에게 얘기를 꺼냈어요. 남편은 제 얘기를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군요.

이제 고3인 경은이가 매우 혼란스러울 것 같아 저와 남편은 얼마 남지 않은 아이의 수능 때까지는 내색하지 않기로 했어요. 아이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요.

수능이 다가왔고 경운이는 노력한 만큼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아이가 입학하기 전 이제는 정말 친 엄마의 소식을 들려줘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경은이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이에게 친 엄마가 남긴 메모를 내밀었어요. 저는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어 남편이 먼저 얘기를 꺼내기로 했어요.

” 아들… 엄마 아빠가 경훈이한테 항상 얘기했었는데, 기억나? 경훈이 친어머니 연락 닿으면 어머니한테 경훈이 소식 알려드릴 거라고 했던 거… 원장님이 주신 건데 경훈이 친어머니가 경운이를 보고 싶어 하신대… 그래서 경훈이는 어떤지 물어보려고 엄마 아빠가 얘기하는 거야. “

아이는 남편 얘기를 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라고요. 이제 스무 살이 된 아이가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어요. 차분히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 만나볼래요. 저도 궁금해요. 어떤 분인지요. “

아이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어요. 아이는 저희도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저희는 17년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 친엄마를 마주하는 순간 안도감이 들었어요. 고운 모습으로 자리에 나와 주었더군요. 그 여자는 경운이를 보육원에 보낸 후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고 했습니다.

아이한테 떳떳할 수 있게 성실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고 해요. 그러던 중 근무했던 곳에 사장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2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현재는 혼자 살아가고 있다구요.

” 저한테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경운이를 많이 사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경운아 나를 보러 와줘서 정말 고마워… 너한테 면목이 없네… “

” 저보다는 저희 엄마 아빠한테 감사해 주세요. 정말 저를 많이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세요. 그리고 저도 감사해요. 이렇게 잘 지내주셔서…. 가끔 생각했어요. 친엄마를 만났는데 엄마가 힘들어 보이면 어쩌나… 차라리 나를 안 봐도 좋으니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엄마 미워한 적 없어요. 이렇게 잘 살아주셔서 감사해요.”

경운이의 친엄마는 아이의 말을 듣고 눈물을 뚝뚝 흘리더군요. 그리고 저희에게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경운이만 괜찮다면 자주 보고 싶다구요.

자신이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남은 시간을 아이 얼굴을 보며 지내고 싶다고 말입니다.

” 저희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요. 저희는 경운이의 뜻을 존중할 거예요. 경운아 경운이 마음 가는 대로 하렴, 엄마 아빠는 경훈이 생각을 존중해.”

” 네 자주 찾아 뵐게요. 엄마 아빠만 괜찮으시다면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릴게요.”

” 경훈아 정말 고마워 고맙다… “

경운이는 저희와 지내면서 자주 친엄마를 찾아뵙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아이가 가끔 친엄마를 보고 오는 것 빼고는 우리 가족은 변함이 없었어요.

아이가 우리를 떠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게 부끄러워지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경운이가 친엄마 옆에서 있고 싶다고 했어요.

병세가 악화하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구요. 이번에도 저희는 아이의 뜻을 따랐습니다. 경은이의 인생이니까요… 아이가 친엄마 옆에 있는 동안에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왔어요.

하루 세 번 하던 연락은 3일에 한 번으로 경은이와의 연락은 뜸해졌어요. 그래도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리한 확장을 했던 탓인지 가지고 있던 돈과 대출로도 사업의 재정을 메꿀 수가 없더군요. 결국 남편의 사업은 부도를 맞게 되었어요. 가지고 있던 집이며 차까지 모두 다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 여보 우리 이혼하자. 이혼하면 당신은 빚 안 갚아도 된다더라고…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당신이 왜 고생을 해”

” 그런 소리 하지 마요 당신 일이 아니고 우리 일이에요. 내가 왜 빚 때문에 당신이랑 이혼을 해?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요. 다시 시작하면 돼. 왜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해?”

” 여보 내가 당신이랑 경운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래… 너무 미안해서… “

남편은 저에게 “이혼하자 다 내 잘못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런 소리 말라며 남편을 다독 오겠어요.

남편과 저는 이곳저곳 일을 하며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 손에 화상을 입어 일찍 집에 돌아오게 되었어요. 그 모습을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보게 되었구요.

남편은 화상 입은 제 손에 약을 발라주고는 한참을 바라보다 밖으로 나가더군요.

” 경운 아빠 어디 가요? “

” 아냐… 바람 좀 쐬고 올게 당신 먼저 자”

알고 있었어요. 남편이 대리운전하러 나간다는 걸요 그냥 모르는 척할 뿐이었어요. 저도 너무 지쳐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제가 남편을 나가지 못하게 해야 했었나 봅니다.

일하러 나간 남편은 다음날 새벽 도로 위에서 발견됐어요. 뺑소니 사고였습니다. 대리운전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남편이 차에 치여 사고가 났던 거예요.

신고라도 해주고 갔더라면 남편이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한참을 도로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경운이에게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친엄마도 아픈 와중에 남편의 사고 소식까지 들으면 아이가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빠를 유독 좋아하던 아이였으니까요.

” 여보… 경운이한테는 얘기 안 했어. 당신이었어도 그랬을 것 같아서… 여보 우리 경훈이 잘 살 수 있게 당신이 항상 돌봐줘야 해 알았지? 여보 너무 고생했어요. 그동안 푹 쉬어요. “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저는 남편의 사망신고와 함께 경운이를 저희 부부의 호적에서 친어머니 밑으로 옮겼어요. 물론 이 상황은 저와 아이의 친엄마만 알고 있기로 했습니다.

남편의 빚이 아이에게까지 내려갈까 봐서요. 그리고 저는 경운이와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아이 인생의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유복한 친어머니 밑에서 잘 살아가길 바랬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와 보니 제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려 했습니다.

남편이 보고 있을 거란 생각에요. 파출부. 식당 일, 목욕탕 청소 별별 일을 다 해봤네요. 손목은 부서질 듯이 아파 작은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도 버거워지더군요.

허리를 하도 숙였 폈다 해서 허리를 펴고 앉아 있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었어요.

” 자기야, 그러지 말고 나 아는 언니가 이번에 대학교 청소부 일을 그만둔다는데. 자기가 거기 들어갈래? 돈도 나쁘지 않고 대학교 안이라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야.”

” 저야 좋죠. 정말 고마워요 언니 내가 꼭 밥이라도 살게요.”

추천을 받아 근무를 하게 된 대학을 가보니 숨이 턱 막히더군요. 경운이가 다니는 학교였습니다. 교문 앞에 서서 얼마나 갈등했는지 몰라요.

혹시 아이와 마주치면 어떡하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렇지만 더는 일할 곳을 찾기도 어려웠기에 고개를 푹 숙이고 출근을 했습니다.

일하는 내내 얼마나 고개를 숙이고 다녔는지 몰라요. 한편으로는 우리 경운이가 나를 알아보고 달려와 주길 바라면서도 말입니다.

화장실 옆에 딸린 작은 숙직실이었지만 그래도 돈도 괜찮아 일할 만했습니다. 특히나 우리 경운이 또래 아이들이 보일 때면 경운이도 저렇게 친구들과 어울리겠다고 생각하며 내심 뿌듯하게 했어요. 마음속으로 경운이를 그리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밥도 많이 먹지 않는데 배가 볼록 나와 신경이 쓰였습니다. 볼록했던 배가 이제는 통증까지 오더군요. 길로 병원으로 향했어요. 병원에서 들은 소리는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환자분 보호자는 같이 안 오셨나요? “

“혼자 왔는데요. 많이 안 좋나요?”

” 어떻게 참으셨어요. 이 정도면 꽤 많이 아프셨을 텐데 지금 환자분 상황은 당장 간의 일부를 절제하시고 이식을 받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생명에 지장이 있습니다. 가족 중에 조직이 일치하는 분이 있으면 가능하세요.”

나이 60에 이렇게 아무도 없이 죽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빠르게 퍼져갖고 간신히 약으로 버티며 일을 해나갔어요.

” 청소 아줌마예요. 화장실에 아무도 없죠 들어갈게요. “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고 있었어요. 그날따라 복통은 왜 그리 자주 오는지 식은땀이 뻘뻘 나더군요. 그러다 뱃속이 뒤틀리는 것 같이 아픈 고통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어요.

너무 아파 소리도 잘 나오지 않더군요. 쇠소리로 살려달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쁘옇게 된 시야로 한 남학생이 보이더군요. 저를 둘러 엎고 달리는 등이 참 편했습니다.

” 엄마! 일어나요! 엄마! “

이제 꿈에서 경운이 목소리가 들리는구나.. 내가 이제 죽으려나 보다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그런데 경운이의 목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져 갖고 저를 흔들기까지 했습니다.

” 엄마. 정신이 들어요? 나 봐요. 경운이야 나 경운이잖아. “

정말 우리 아들이었어요. 너무 보고 싶던 경운이요. 경운이는 대학을 휴학하고 스타트업 사업을 시작해 어엿한 사업가가 되었다고 했어요.

친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자기 앞으로 유산을 남겨주셨고 돈을 가지고 사업을 일궈냈다구요. 아들은 그날 학교에 특강을 하러 온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던 중 저를 발견한 것이구요. 저에게 연락을 하고 싶은데 연락을 할 길은 없고 막막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남편의 죽음을 아이에게 솔직히 얘기해 줬어요. 아이는 말을 듣고 탈진할 정도로 울고 말았습니다.

” 그렇게 말도 없이 나를 마음대로 옮기는 게 어딨어? 나는 엄마 아빠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어. 두 번 버려지는 기분이었어. 왜 말 안 했어? 어떤 자식이 부모가 힘들다고 외면하겠냐고! 내가 엄마 아빠 빚 갚는 게 어때서? 내가 엄마 아빠한테 갚을 게 얼마나 많은데 왜 혼자 버텼어?! ?”

” 엄마는 경운이가 행복하길 바랬어. 걱정 없이 우리 경은이가 항상 행복하길 바래서 그랬어. 엄마가 상처 줘서 너무 미안해 아들…”

” 이제 내가 다 갚을 거니까 엄마는 받기만 해 알았지?! 나 조금 전에 동의서 쓰고 왔어 엄마 내일 수술할 거야. 내가 엄마한테 간 이식하기로 했어. 검사도 다 했고 이상 없대 “

” 안 돼! 당장 못한다고 하고 와! 아니 내가 가서 얘기할게. 얘가 진짜 미쳤나 봐 그거 하면 수술하면 너도 고생이야. 경운아 안 돼! “

” 싫어 나도 똑같이 엄마가 중요해. 내가 엄마 살릴 거야. 엄마까지 없으면 나 못살아 내가 엄마 찾는 동안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엄마 제발 살아… 우리 살아서 같이 살자”

아들의 애원을 뿌리칠 수가 없었어요. 저는 아들의 시간을 이식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아들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했어요. 아들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들은 저를 보며 얘기했어요. 꼭 살아서 보자구요. 수술이 끝나면 떡볶이를 해달라고요.

저와 아들은 그렇게 손을 꼭 잡은 채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수술은 성공이었어요. 아들도 무사했고 저도 다행히 이 시기 잘 맞아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 후 저는 아들의 뜻에 따라 아들과 함께 살게 되었어요. 아들은 제 건강을 위해 한적한 곳에 새로 집을 지었어요. 정원이 딸린 넓은 마당을 가진 집을요.

제가 경운이에게 어릴 적부터 얘기했던 꿈의 집을 말입니다. 지금 저는 우리 아들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에요. 저는 건강하고 제 옆엔 소중한 아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저와 아들이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경운이의 친어머니와 죽은 제 남편의 도움이라고 생각해요. 주어진 삶의 기회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려 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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