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저는 지방대를 졸업한 뒤 취업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취업이 결코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에서 근무를 하던 사촌 언니가 제게 급히 연락을 해왔어요.
“지연아 너 아직도 취업 준비 중이지?
혹시 아르바이트할래?
취업 알아보면서 아르바이트하면 좋잖아.”
사촌 언니는 서울에 대학을 졸업한 후 땡땡 백화점 정규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ㅇㅇ백화점이 꽤 큰 대기업이었고 언니는 대기업을 다닌다는 자부심도 나름 컸습니다.
“아르바이트? 어떤 건데 ?”
“그게 말이야. 판매하는 건데
와서 간단하게 면접 보고
상품 교육받고 그러면 되거든.
면접이야, 내가 매장에 말해놓으면
바로 통과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판매 사원?
나 그런 거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
사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야 못할 게 뭐가 있어!
상품 교육 받으면 개나 소나 다 해.
그리고 사실 너 지금 지방대 나와서
지금 어디 취업도 안되고 있잖아.
그냥 그렇게 놀고 있을 바에야
뭐든지 하는 게 낫지 않아?”
“글쎄… 한번 생각 좀 해볼게.
그쪽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뭐야? 안돼!
내가 매장에 너 올 거라고
미리 말해졌단 말이야.
그러니까 무조건 와야 해. 알았지?”
“난 아직 간다는 말도 안 했는데…
마음대로 그러면 어떡해?”
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요.
“야! 지금 네 처지에 고르긴 뭘 골라.
암튼 다음 주부터 출근해야 하니까
미리 와서 면접 보고 교육받아 “
사촌 언니가 마치 제게 명령하듯이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어요. 그렇게 저는 얼떨결에 사촌 언니가 있는 백화점에 가 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그 뒤 사촌 언니가 친척들에게 저를 취직시켜줬다며 큰소리를 치고 다녔답니다.
“내가 대기업 정도 다니니까
취업시켜 주는 거지.
대학까지 졸업해서는 언제까지
집에서 먹고 놀 생각인지
하도 보기 딱해서
내가 일자리 알아봐줬잖아.”
사촌 언니가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더라고요. 그렇게 제 백화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매대에서 뭐 간단한 액세서리를 파는 그런 아르바이트였는데 생각보다 제 적성에 잘 맞았던지 매출이 꽤 좋은 편이었어요.
우선 제가 워낙 성격이 쾌활하고 붙임성이 좋다 보니 제가 조금만 설명하면 고객들이 성격이 좋다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명품관 직원 소개로 제게 명품관에서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명품관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저도 몰랐던 재능이 있는 것 같았어요. 제가 아르바이트였지만 판매실적이 좋다보니 다들 놀란 시선으로 바라봤거든요.
다만, 우리 부모님은 제가 백화점에서 일하는 것을 탐탁치 않아 하셨어요.
“내가 가만히 들어보니.
그런 일은 오래 할 수도 없다고 하던데
빨리 취직할 생각이나 해.
그냥 작은 회사라도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다녀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아빠가 답답한 듯이 말씀하셨거든요. 부모님께서 그런 이유가 다 있었는데, 사촌 언니가 친척들에게 제가 백화점에서 판매사원으로 근무를 한다며 그렇게 비웃고 다녔다고 하네요.
“지연이 말이에요.
내가 그냥 아르바이트만 하라고 했지.
내가 언제 눌러 앉으라고 했나?
하긴~ 뭐 지방대 나온 사람을
어떤 회사에서 채용하겠어.
지연이 수준이는 거기가 딱이긴 하지
결국 내가 취업시켜 준 거네”
부모님까지 다 있는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백화점에서 사람들이 제 칭찬을 많이 하다 보니 사촌 언니 입장에선 약간 빈정이 상하지 않았나 싶었어요.
그렇게 저는 백화점에서 일을 하면서도 취업자리를 계속 알아보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는데요. 어느 할머니 한 분 그 분이 제가 근무하는 매장으로 들어오셨는데 저를 보자마자
“진희야! 우리 진희가 맞구나.
이제야 찾았구나”
리먀 제 손을 덥썩 잡으셨어요. 그 바람에 제가 놀란 채 어리둥절해 있었는데요.
“아이그! 이것아!
도대체 어디 갔다 온 거야?
이 엄마가 너를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알아?”
할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어요.
‘할머니 죄송한데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저는 진희가 아니고 지연이라고 합니다.
혹시 따님을 찾으시는 거예요?”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제가 천천히 물었어요.
“진희야! 우리 딸 진희야!“
제가 할머니의 따님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할머니께서는 제 손을 꼭 잡으신 채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순간 매장 매니저가 제게 다가왔어요.
“지연씨, 무슨 일이죠?”
“아니, 그게… 이 할머니께서
저를 따님으로 착각하신 것 같아요.
제가 설명을 해드렸는데
자꾸만 저보고 따님이라고 하셔서요.”
제가 안절부절 못한 채 어쩔 줄을 몰라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명품 매장에서 뭐 하는 겁니까?
그럼 빨리 보안 요원을 부르든지 해야죠.”
매니저가 보안 요원을 부를 태세였어요.
“아니… 그게 제가 잠시 모시고 나갔다 오겠습니다.
할머님께서 지금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보안요원까지 부르면 더 놀라 것 같아서요.”
매니저에게 말을 한 뒤 제가 할머님을 모시고 그곳을 나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순간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할머님을 보고는 놀라서 뛰어 오셨어요.
“어머님! 도대체 어딜 가셨던 거예요!
깜짝 놀랐잖아요.”
할머님을 보자마자 아주머니가 놀라서 물었어요.
“댁은 뉘시오?”
할머니가 놀라서 아주머니를 바라보셨어요.
“어머님 며느리잖아요.
또 기억이 안 나시는 거예요.
이를 어째 그래”
아주머니가 안타깝다는 듯이 할머님을 바라보셨어요.
“혹시 이 할머님 가족분이세요?”
제가 아주머니를 바라봤어요.
“네 우리 어머니께서
치매가 조금 있으셔서 가끔 이러세요.
아까는 분명히 괜찮았는데
갑자기 사라지셔서 어찌나 놀랐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머니가 제게 감사 인사를 했어요.
“아닙니다. 근데 할머니께서
많이 놀라신 것 같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라며 제가 뒤를 돌아섰는데요.
“진희야! 이 엄마 혼자 누가 어딜 가는 거야.
얼른.이리 와. 얼른!”
할머니께서 제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셨어요.
“어머님… 진희라니요.
이 아가씨는 진희 아가씨가 아니에요.”
“저리가! 이 나쁜 여편네야!
네가 뭔데 우리 진희를 보고 아니라고해?!”
할머님이 제 옷자락을 더욱 세게 잡으셨어요. 그 바람에 제가 당황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요.
“저기 미안한데…
주차장까지만 같이 가줄 수 있을까요?”
아주머니가 제게 부탁을 하셨어요.
“네, 알겠습니다.
근데 저희 매장 매니저에게
보고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 한 통화만 하겠습니다.”
라면 제가 매니저와 통화를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매니저가 제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매니저에게 저는
“정말 죄송합니다.
빨리 모셔다 드리고 오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순간 아주머니가 제게 어떤 매장 매장에서 근무를 하냐고 묻더니, 저와 할머니까지 모시고 제가 근무하는 매장으로 들어가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명품 몇 개를 사시고는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저기 여기 관리자분이 누구시죠. 네 고객님 제가 여기 매니저입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제가 상품을 조금 많이 사서 그런데 여기 이지연 씨한테 좀 들어달라고 부탁을 해도 될까요?
아주머니가 제 명찰을 보며 말했어요.
“네 당연하죠.
이지연 씨 고객님 도와드리고
오늘은 그냥 바로 퇴근하도록 해요.”
매장 매니저가 갑자기 돌변한 채 말했어요.
“네? 퇴근 시간이 안 됐는데요.”
‘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고객님 상품 잘 들어다 드리세요.”
“네, 알겠습니다. “
그렇게 저는 얼떨결에 할머님의 손을 꼭 잡은 채 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할머님을 차에 태워드리고 그만 올라가려고 했는데요.
“진희야. 어딜 가는 거야.
엄마랑 같이 가야지”
할머니께서 눈물까지 흘리시며 제 손을 놓지 않으셨어요.
“미안해서 어떡하죠?
저기 정말 미안한데 우리 집까지 같이 좀
가주면 안 될까요?”
아주머니가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봤어요.
“네… 고객님 정말 죄송한데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죠…? 내가 미쳤지…
여기까지 내려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내가 워낙 경황이 없어서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보네요. 미안해요.
내가 우리 어머님 꼭 잡고 있을 테니까.
아가씨는 그만 올라가 봐요.”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제 손을 절대 놓지 않으셨어요.
“어머님. 이 아가씨는 어머님 딸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얼른 손 놓아보세요.
그동안 우리 어머님께서
이러신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네요.”
안타까운 듯 중얼거리던 아주머니께서 어딘가로 전화를 하셨어요.
“훈아 엄마데 잠깐 여기로 좀 올 수 있겠니?
오늘 할머니랑 외출을 했는데
오늘따라 할머니가 많이 이상하시네
아까까지는 괜찮으셨거든.
그래서 바람 좀 셀 겸해서 나왔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엄마는 운전을 해야 하는데
혹시나 할머니가 다치시기라도 할까 봐 안되겠어”
아무래도 아들과 통화를 하는듯했는데 아주머니 이마에 이슬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어요.
“저기 저는 괜찮아요. 아드님 오실 때까지
저도 같이 기다릴게요. 근데 혹시 티슈 좀 있으세요?
할머님 얼굴이 지금 눈물 범벅이시네요.”
“아..네 ..정말 고맙습니다.”
아주머니가 급히 제게 티슈를 건네셨어요.
“할머님. 저 여기 있으니까. 이제 그만 우세요.”
제가 할머님 얼굴에 있던 눈물을 닦아드렸어요.
“진희야. 내 딸 진희야.
앞으로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
할머니께서 제 손을 더욱 세게 잡으시며 다시 눈물을 쏟으셨어요.
“사실… 그게 내가 처음 보는 아가씨한테
이런 말 하기가 좀 그런데요.
우리 어머님께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오래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우리 아가씨가 세상 떠나던 그때가
지금 아가씨 나이 정도였어요.
아무래도 그래서 아가씨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네요.
정신이 온전하실 때는 이런 적이 없으셨는데
치매를 앓고부터는 우리 아가씨를
자주 찾으시더라고요.
근데 자세히 보니… 우리 아가씨랑
너무 많이 닮긴 했네요.
우리 아가씨도 얼굴이 아주 뽀얗고
눈이 아주 똘망똘망했었거든요.
우리 어머니께서 착각할 만했네요.”
아주머니는 처음 보는 제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셨어요.
“저기…여기 티슈로 닦으세요.”
제가 아주머니에게 티슈를 건넸어요.
“아이구…주책이네…
나 갑자기 눈물이 왜 이렇게 나와.
나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데.
아가씨 얼굴 보니 우리 아가씨가
너무 보고 싶어지네요.”
눈물을 닦던 아주머니가 쑥스러운 듯 미소 지으셨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근데 저랑 정말 많이 닮으셨나 봐요?
할머니께 저를 보자마자
제 손을 덥썩 잡으셨거든요.”
“네.. 보면 볼수록 정말 많이 닮았네요.
마치 우리 아가씨가 환생해서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그랬으니 우리 어머님께서
넋이 나가실 수밖에요.
아가씨한테는 너무 미안해요.”
아주머니께서 제게 몇 번이나 사과를 하셨어요. 그런 아주머니는 예의 바르시고 참 좋으신 분 같았습니다. 특히나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냥 딱 봐도 부잣집 사모님 같아 보였는데 그동안 백화점 일을 하면서 봐왔던 부자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많이 달라 보였어요. 그렇게 얼마 뒤 아주머니의 아들이 주차장에 도착했어요.
“엄마! 최 기사님 어디 가시고 혼자 오셨어요?”
“최 기사님은 오늘 몸이 조금 안 좋다고 해서
하루 쉬시라고 했어.
그동안 최 기사님도 할머니랑
내 뒤 따라다니느라 좀 고생하셨니…”
“근데, 평소에 할머니께서
심하게 그러지 않는 분이신데.
오늘은 왜 그러신 거예요?”
“글쎄 말이야. 아가씨가 네 고모랑 닮아도
너무 닮았지 뭐니 그래서 어머님이
순간 놀라신 것 같아”
아주머니 아들이 저를 바라봐서 제가 살짝 미소 지었는데요.
“그렇긴 하네. 난 사진으로만 보긴 했는데
정말 많이 닮긴 했네요.
특히 눈이 정말 많이 닮았네요.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주머니 아들이 제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어요. 아닙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쯤에서 할머님께서 잠시 잠이 드셨기에 제가 급히 일하던 매장으로 돌아갔는데요. 제가 매장으로 들어 서자마자 동료 직원들이 제게 모여들었어요.
“아까 그 고객님
우리 백화점 VVIP 고객님이시라던데.
너 명함이나 그런 거 받았어?”
“아니, 그럴 정신이 어딨어.
지금도 혼이 다 나간 거 같은데”
워낙 정신이 없었던지라 제가 푹 하고 한숨을 내쉬었어요. 암튼 넌 너무 정직해서 문제야 나 같았음 어떻게 해서든 내 단골로 만들었을텐데 동료가 고개를 절레절래 저었어요.
그런데 뒤부터 정말 놀랄 만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때 아주머니 그러니까 여자 고객님이 다음날 어떤 남자분과 함께 우리 매장을 찾아오셨어요.
“어제는 정말 고마웠어요.
이거 어제 도와주셔서 감사해서 드리는 겁니다.
여자 고객님이 제 손에
선물 봉투를 쥐어주셨어요.”
“아닙니다.
제가 한 것도 별로 없는걸요.
정말 괜찮습니다. “
제가 놀란 채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이거 내 손이 너무 부끄러운데요.”
여자 고객님이 저를 보며 빙그레 웃으셨어요.
“지연씨 얼른 받지 않고 뭐해?
그런거 그냥 받아도 돼”
주변에 있던 매니저가 제게 큰 목소리로 말했어요.
“네 그럼 감사합니다.”
제가 쭈뻑쭈뻑거리며 선물 봉투를 받아들었어요.
“어제는 정말 고마웠어요.”
여자 고객님이 제게 다시 말을 했는데 옆에 서있던 어떤 남자분이 아무 말도 없이 저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잠시 후에 두 분이 매장을 나가셨는데요.
“여보 어때요? 내 말이 맞지?
우리 진이 아가씨 판박이라니까.
그랬으니 어머니께서 그러셨던 거야.”
“그러게… 정말 많이 닮긴 닮았구만.
근데 큰일이야 그 뒤로 어머님이
계속 진희만 찾아대니…”
이후 여자 고객님께서 자주 우리 매장에 방문해 주셨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제게 따로 커피를 마시자고 하셨어요.
“저기… 지연 씨 내가 이런 말 하면
혹시 기분 나쁠까 봐 그동안 말도 못 꺼내고 있었는데,
그날 여기서 지연 씨 만난 뒤로
우리 시어머님께서 식사도 잘 못 드시고
계속 지연 씨만 찾아서 지금 큰일이에요.
지금껏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냥 눈물만 흘리시네요.”
“정말요? 어떡해요?
괜히 저 때문에 큰일이시네요.”
제가 딱히 잘못한 것은 없지만, 괜시레 미안해졌거든요.
“아니에요. 지연 씨가 미안할 건 없는데
그래서 제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부탁이요? 무슨 부탁이신지요…?”
“그게 정말 미안한데…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어머님
말동무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갑자기 이런 부탁해서 정말 미안해요.
대신에 우리가 그… 뭐냐..아휴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아, 혹시 제가 고객님 댁에 가서
말동무 해드린 만큼
돈으로 주시겠다는 말씀이신 거예요?”
“그게 맞긴 한데… 이게 잘못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문제잖아요.
그렇다고 그냥 와서 무료 봉사하라고 하면,
그건 더더욱 안 될 것 같고…”
여자 고객님이 제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어요.
“네 그런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잠깐씩은 괜찮을 거 같은데,
저기 근데 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저번에 우리 매장에서 상품을 많이 구입해 주셔서
재 판매 실적이 아주 많이 올라갔거든요.
뒤에 오셔서도 많이 구입해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돈은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사실 우리 할머니도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거든요.
우리 엄마가 그런 할머니를 끝까지 돌보셨어요.
고객님 모습을 보니 문득 우리 엄마 생각도 나고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생각도 나서
제 마음도 아프네요.
제가 옆에서 쭉 지켜 여쭤봤는데
치매 어르신 돌보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잖아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도 고객님께 큰 도움을 받았는데
마땅히 도와드려야죠”
그 뒤러 저는 고객님 집에 가서 할머님의 말동무를 해드렸어요. 그게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고 그냥 같이 식사 대화하고 산책하고 뭐 그런 것들이었어요.
매일매일 찾아가기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찾아가서 할머님과 함께 지냈어요. 치매라고 했지만, 할머님은 참 좋은 분이셨어요. 아무래도 저를 할머님의 딸이라고 생각하셔서 더욱 잘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한 달 뒤 고객님께서 감사하다며 제게 돈을 주셨지만 저는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 뒤에도 고객님께서 알고 계신 지인분들과 우리 매장을 수시로 오셔서는 매출을 올려주셨거든요.
덕분에 저도 매장에서 꽤 유명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고객님 가족들과 조금씩 가까워져 가고 있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큰 불편함 없이 지냈죠.
그러다가 고객님의 아들과 친해지게 되었는데요. 항상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곤 했습니다. 고객님과 마찬가지로 아들도 참 예의 바르고 착 사람이었어요.
그분들이 지금의 우리 시부모님과 남편입니다. 저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던 어느 날 남편이 제게 고백을 했어요. 백화점 주차장에서 처음 보던 날부터 저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남편과 제가 이것저것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났었기에 처음에는 제가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아무래도 지연씨랑 제가
나이 차이가 조금 나다 보니 좀 그렇죠..?”
남편이 쑥스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어요.
“아니요. 그렇다기보다는
정훈씨랑 저랑은 이것저것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나요.
학벌도 그렇고 집안 형편도 그렇고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거든요”
“지연 씨도 우리 부모님 잘 알잖아요.
우리 부모님 그런 거 따지실 분 아니세요.
아마도 엄청 좋아하실걸요?
우리 엄마는 아예 지연 씨 팬이잖아요.
바르게 잘 컸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시는걸요.”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다른 문제잖아요.
아무튼 전 자신 없어요.
그리고 혹시나 우리 부모님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제가 다시 한번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그런데 뒤 고객님이 아주 대놓고 제게 말씀하셨어요.
“지연 씨 우리 아들이 참 좋은 사람인데
한번 잘 만나봐요.
사실 우리 아들이 지금껏 결혼을 안 한 이유가
주변에 멀쩡한 여자들이 없다고 안 하고 있었거든요.
좀 바르고 밝은 아가씨 만나고 싶다고요.
그런데 그날 주차장에서 지연 씨 보고
한눈에 반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번 만나봐요.
지연 씨라면 우리도 대환영이에요.”
우리는 그렇게 얼마 뒤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제가 결혼할 당시 친척들에게 남편도 소개시킬 겸 해서 친척들이 우리 집에 다 모였는데요.
“왜? 지방대 출신이라
취업은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냥 취칩하기로 했구만”
우리 부부를 보자마자 사촌 언니가 비아냥거렸어요.
“그게 뭐가 어때서? 지연이 신랑감 정도면
취집도 나쁘지 않지.
그러는 넌 정규직인가 뭔가랑
결혼했다가 꼴 난 거니?
네가 그렇게 자랑하던 대기업 정규직이라든
네 남편이 잘난 게 뭐가 있었어
돈도 없는데 명품만 휘감고 다니고
차도 빚까지 내서 수입차 몰고 다니고
너도 똑같아 이것아!
그거 보고 돈 많은 줄 알고
혹해서 결혼했었잖아.
근데 알고 보니 빚만 천지에
너 지금 졸지에 이혼녀 되게 생겼는데
지금 네가 누구 보고 그딴 소리를 해
우리 지연이야 예전부터 마음이 얼마나 예뻤니
네들 할머니 치매 왔을 때도 우리 지연이가
할머니를 얼마나 살뜰히 챙겼어.
근데 그때 넌 어떻게 했어.
할머니가 식사하시다가
옷에 음식 좀 떨어드렸다고 더럽다느니
입맛이 뚝 떨어진다느니…
이것아 네가 그러니까 될 일도 안 되는 거야.
그동안 네가 지연이한테 막말하고
무시할 때부터 우리가 딱 알아봤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야.
네 주둥아리 때문에 오려던 복도 다 달아나겠다.”
그동안 참기만 하시던 고모가 사촌 언니에게 삿대질까지 하시며 소리치셨어요.
“고모! 지금 뭐하는 거야?지연이가 부잣집에 시집가니까
갑자기 이러나 본데 고모 그러는 거 아니야?!”
사촌 언니가 말을 했어요.
“그동안 우리가 집안 시끄러워질까 봐
다들 모른 척했지만,
너 말하는 꼬락서니 때문에
다들 얼마나 화딱지가 났었는 줄 알아?
그리고 네가 항상 대놓고 막말할 때마다
지연이는 듣고만 있었는데,
넌 뭐가 그렇게 억울해?
네가 다른 사람 상처 주는 말 하는 건 당연한 거고.
다른 사람이 너한테 그런 말 하는 거 기분 나빠?
그러니까 마음을 좀 곱게 쓰란 말이야.
오늘 우리 지연이 신랑감 인사 왔으니까.
시끄럽게 할 거면 넌 그만 가봐.
집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어딨어.”
“그래! 그래! 난 갈 테니까.
다들 잘 먹고 잘 살아.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 지켜볼 테니까.”
사촌 언니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어요. 뒤 사촌 언니는 결국 형부와 이혼을 했습니다. 사실 고모 말씀처럼 그동안 사촌 언니한테 막말만 듣고 살아아서 그랬는지 그다지 안쓰럽지도 않더라고요.
저는 결혼 후에도 잘 살고 있었으니까요. 결혼 뒤에도 시부모님은 한결같으셨거든요. 거기다 우리 합가에서 살겠다고 했지만, 시어머니께서 강력하게 반대하셨어요.
“그냥 가끔 와서 할머니 말동무나 좀 해주면 돼.
자주 봐봤자 서로 불만만 생기고 안 좋아.
그리고 간병해 주시는 분도 계시잖니.
그냥 우리 떨어져 살면서
이렇게 예쁘게 살자.
네 마음만 예쁘게 받으마”
그 뒤 저는 시댁에 자주 방문해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할머니께서 저를 보실 때마다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만 보면 제 마음도 참 따뜻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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