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한 상계동 슈바바이처, 김경희 원장님을 아시나요? 김 원장은 1943년 세브란스의전(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을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일본 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의전 2학년생 때인 1941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조선보육원 어린이들의 무료 진료를 시작으로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서울역에서 중국 만주나 일본에서 돌아온 교포를 치료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서울 판차촌을 돌며 무료 진료를 이어가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84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자락의 판자촌에 은명내과를 개원했고 1년은 무료 진료를 했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많이 오지 않았는데요.
자존심 때문에 무료 진료를 기피하거나 진료의 질이 낮을 거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김 원장은 모든 환자의 진료비를 1000원씩 받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 1980년대 택시 기본 요금이 800원 정도였습니다. 고인이 ‘상계동 슈바이처’라 불린 건 이때부터였는데요. ‘1000원’ 진료는 건강보험 제도가 실시되기 전 1989년 7월까지 계속됐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김 원장은 사회사업도 활발하게 펼쳤습니다. 은명장학회(1985년), 은명심장수술후원회(1986년), 은명무료독서실(1990년)을 운영하며 경제적 형편이 어렵거나 몸이 약한 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선행 시민상, 아산사회복지대상,보령의료봉사상, 아산사회복지대상 등을 다양한 상을 수상했습니다.
심지어 김 원장은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기도 했는데요. 1996년 4월에는 경기도 하남과 서울 상계동 토지 등 평생 모은 전재산 53억원을 연세의료원과 모교를 위해 기부했습니다.
이에 세브란스병원은 2005년 새 병원을 개원하며 대강당 이름에 김 원장의 호를 붙여 ‘은명 대강당’으로 명명했습니다.
이외도 김원장은 학생들을 위한 무료 독서실 운영, 무의탁 노인과 몸이 불편한 이들을 뮈한 심부름 서비스, 가정환경이 불우한 청소년을 위한 장학사업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봉사해 왔던 김경희 원장은 2020년 10월 22 순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101세.
고인의 빈소 앞에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안내 펫말이 세워져 있었는데요.
유족들은 평소 고인 김경희 원장은 “내가 죽으면 모두가 마음의 부담 없이 올 수 있게 하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타인의 마음까지 배려하신 고인 김경희 원장님, 슈바이처의 어록 중 “나는 오직 한 가지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진실로 행복한 사람은 섬기는 법을 갈구하며 발견한 사람이다”라고 했는데, 김 원장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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