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시간씩 쪽잠 자며 10년간 3억을 갚아간 남성…” 빚을 갚기 위해 매일 9개 아르바이트하며 죽기 살기로 살아온 남성, 최근 근황이 알려지자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1997년 IMF가 닥치면서 순식간에 사업은 기울었고, 결국 4억 원의 커다란  빚만 남게 된 이종룡 씨,  채권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돼버린 그는 가족들과 함께 이리저리 숨고, 피해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주민등록까지 말소가 되었죠.

그의 삶이 처음부터 아르바이트로 가득 찬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전북 전주시에서 잘나가던 사업가였다고 합니다.

당시 무리하게 사업에 뛰어들었고, 사업은 탄탄대로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돈을 흥청망청 쓰기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의 생활은 평탄했죠. 하지만 갑작스럽게 사업이 휘청거리면서 거래처가 하나둘 끊기기 시작했고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고자 무리하게 투자까지 감행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됐습니다. 결국 사업은 부도를 내고 말았고 4억이라는 어마무시한 빚으로 되돌아오게 된 것이죠. 

이종룡 씨에겐 아내와 아들이 있었는데, 가족들은 단 한 번도 이런 신세에 불평하지 않고 그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에게 가족은 가장 큰 힘이 되었죠.

그는 술, 담배, 도박 등 모든 것을 끊고 오로지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채권자들에게 어떻게든 빚을 갚겠다고 약속한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수입이 시작하자 그의 다짐은 무색해졌고 그 돈을 들고 다시 술을 마시고 도박판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전기와 가스가 모두 끊겼는데 컴컴한 집에서 흐느껴 울고 있던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종룡 씨는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이 고생하고 있다고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반성의 의미로 니퍼로 자신의 송곳니 2개를 뽑았습니다. 이후, 마음이 힘들고 약해질 때마다 자신의 송곳니를 떠올렸다고 하죠. 그에겐 이제 웃음기도 사라졌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일과는 살인적이었는데요. 그는 하루 2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최대 10개에 이르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이종룡 씨는 발에 불이 나도록  목욕탕 청소, 신문 배달, 떡 배달, 폐지·고철 수집, 학원 차량 운전 등 22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은 하루 450만 원 정도, 약간의 생활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돈은 빚을 갚는 데 쓰였습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고, 이종룡 씨는 마지막 100만 원을 송금하기 위해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이날,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오열했습니다.

빚을 모두 갚았다는 기쁨과 잠시 지난날에 대한 후회, 가족에 대한 미안함 등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2009년 당시, ‘3억 5천만 원의 전쟁’이라는 책도 출간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사업을 실패해 위축되고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죠.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극단적인 노동을 견뎌냈던 이종룡 씨는 결국 2012년 대장암으로 쓰러졌고 2년 뒤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종룡 씨의 사연이 다시 전해지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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