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출신 며느리를 딸처럼 대해줬더니..” 폰 꺼진줄도 모르고 시어머니 험담을 내뱉은 며느리, 아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자 며느리의 충격적인 ‘행동’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안녕하세요. 노년에 참으로 황당한 일을 겪은 한 60대 여성입니다. 살다살다 별꼴을 다 본다는 말을 여지껏 살면서 그리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이번에 황당한 일을 된통 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좀 늦게 만나 결혼도 늦게 한 편입니다. 제 남편은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는데 정말 성실한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부턴가 이 사람이 내가 좋다고 따라다니고 늘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가 다가왔을 때 마음을 바로 줄 수 있었죠. 그렇게 저희는 3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 덕분에 집은 단칸방이 아닌 둘이 살기에 좋은 집으로 구해 들어갈 수 있었어요. 가구나 다른 필요한 것들은 저희 집에서 하고 당시 시댁에서도 많이 도와주셨기에 저희의 신호는 시작이 좋았습니다.

그 뒤로는 아이들도 잘 낳고 키웠어요. 아들과 딸을 낳은 뒤로도 우리 가족은 행복했죠. 부유하진 않아도 성실한 남편 덕에 굶지 않고 먹고 싶은 거 먹구 입고 싶은 거 입으면서 그렇게 잘 지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이들을 낳고 크는 동안에도 수선집을 작게 내서 일을 했었죠. 처음에는 구멍가게만도 못하게 작은 수선집을 냈었다가 점점 안정을 찾으면서 규모도 어느 정도 내서 소소하게 잘 운영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

 현재는 3층짜리 건물도 가질 수 있게 되었네요. 이 건물 하나 사는데 20년은 족히 걸린 것 같습니다. 남편은 쭉 회사원으로 일을 하다가 지금은 은퇴를 해서 잠깐 쉬다가 요즘 수선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진 않아서 남편이 은퇴하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세탁소를 내서 운영을 또 따로 하고 있는 중이죠.

여기까지 들으면 제 인생이 평탄했을 거라고만 생각되실 거예요. 하지만 지금의 이 생활을 하게 되기까지 중간에 참으로 힘든 일을 겪어야만 했는데요.

그건 다름 아닌 저의 하나뿐인 며느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첫째, 아들 낳아 정말 열심히 키웠습니다. 우리 아이는 반듯하게 잘 자랐고 근면 성실한 남편의 성품을 닮아 저희가 바라던 대로 바른 아이로 멋진 아이로 잘 자라 주었죠.

그런 아이가 결혼을 하겠다며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더군요. 눈도 크고 똘망똘망한 게 어찌나 예쁘던지 예쁘장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 만날 때부터 또 어찌나 수줍어하던지 저랑 남편은 왜 우리 아이가 이 애를 좋아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 어서 와요. 우리 애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서, 궁금했는데 너무 예쁘게 생겼네~”

”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우씨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들이 부모님이라고 해서, 항상 궁금했는데 이제야 찾아뵙서 정말 죄송해요. “

” 아이구~ 우리 아들이 그랬어? 이거 기분 좋네~ 이제라도 얼굴 봤으니 됐지~”

우리는 첫 만남에서 화기애애한 인사를 하고 며느리도 저희 부부도 서로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첫 만남이었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를 하나 전해 들어야 했었어요.

” 어떻게, 그쪽 집안에서도 둘이서 만나는 건 알고 계시나? 인사는 드렸고?”

제가 며느리가 될 아이의 부모가 궁금해서 은근슬쩍 물어보니 그동안 이야기를 잘하던 아이가 우물쭈물거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제가 혹시 말실수를 한 건가 싶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우리 아들이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 엄마 이 사람이 본인이 직접 엄마 아빠 만나 뵙고 얼굴 보고서 이야기한다고 해서 내가 말 못한 게 있어요. 이 사람한테 천천히 들어보세요.”

아들이 뭔가 비장한 듯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저는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거기에서 저희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어야 했어요.

” 실은 제가 고아입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셨는데. 친척들도 절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고아원에 맡겨졌었어요. 처음에 이 사람 만날 때도 제가 고아라고 다 밝혔는데 그래도 괜찮다면서 저랑 만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진짜 그동안 이 사람 만나면서 너무너무 고맙고 좋았어요. 만약에 제가 고아인 게 마음에 걸리고 싫으시면 제가 헤어지겠습니다.

이것만큼은 두 분 얼굴 보고 제가 직접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일부러 속인 건 아니니까 너그럽게 생각해 주세요.”

이마를 살짝 부들부들 떨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저랑 남편은 둘 다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근데 모습을 보니 마치 우리 막내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는 아들 하나에 딸을 둘을 낳았어요. 하지만 우리 막내딸이 스무 살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죽게 되었는데 꼭 딸이 살아 돌아온 듯 하더라구요. 그래서 며느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딸처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런 일이 있었구나…아이구~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네… 아가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고아든 부모님이 다 계시든 그건 우리에게 하든 상관없는 문제야 그저 너는 이 집에 들어오는 이상 이제 우리 자식이 되는 거니까 내가 이제 앞으론 네 엄마로 살아줄게. 널 딸처럼 내가 거둘 테니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

저의 한마디에 며느리는 눈물이 나는지 바로 펑펑 울기 시작했어요.

”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두 분 정말 제 부모님으로 생각하고 평생 진짜 효도하면서 모실게요 “

며느리의 말에 저도 눈물을 훔치고 눈물 없는 우리 첫째, 아들도 살짝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저와 며느리는 사이가 어찌나 좋은지 주변에서도 다 부러워할 정도였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고부 사이가 아니라 모녀 사이 같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루는 우리 아들하고 며느리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요. 며느리가 몸살을 심하게 앓게 되면서 아이의 며칠을 드러누웠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어찌나 몸살이 세게 왔는지 애가 숨도 고르게 못 쉬고 밥도 제대로 못 먹더라구요. 아들 녀석은 일을 뺄 수가 없어서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그때 제가 나섰죠.

” 아들, 걱정하지 말고 너는 일할 거 해라. 이 엄마가 간호할게 “

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아들에게 말하고는 바로 제가 운영하는 수선집에 급한 것만 처리해 놓고, 문을 닫은 후 며느리 집으로 향했어요.

정신도 못 차린 며느리가 안쓰러워서 물수건을 몇 번을 왔다갔다하며 머리에 대주고 열도 빨리 내리라고 몸도 구석구석 닦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 되면 죽만 들어서 죽 먹이고 미리 다녀온 병원 약까지 다 챙겨 먹이면서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어요. 그랬더니, 거의 하루 만에 며느리가 정신을 차리더라구요. 근데 여기에서 제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며느리가 보였어요.

며느리는 눈을 뜨자마자 절 봤는데 제가 지금까지 간호를 했는지조차 비몽사몽할 정도로 아팠기에 저를 보면서 놀라더군요. 그러면서 보이는 반응이 이러했습니다.

” 어머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지금까지 절 간호해 주신 거예요? 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 누군가 이렇게까지 절 간호해 주고 옆에서 지켜준 것처럼 처음이에요. 어머님도 바쁘고 힘드실 텐데 죽까지 끓여주시고 안 그러셔도 되는데 왜 그러셨어요.”

” 안 그래도 되긴 니 남편도 나한테 전화해선 어찌나 널 걱정하던지, 넌 아픈데 자기는 일을 뺄 수가 없어서 큰일이라면서 그렇게 걱정을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나섰지…

그리고 내가 말했지 앞으로 넌 내 딸이라구 딸 자식이 아픈데 가만히 있을 엄마가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니? 그러니 난 당연히 내 할 일을 한 거야. 하루도 아프면 입원이라도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그래도 정신 차려서 다행이다. “

제 앞에서 감격스러워하며 울고 있는 며느리를 안아주고는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더 서러움이 복받쳤는지 엉엉 울어대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얼마나 짠하던지 저는 그날 이후부터 며느리에게 더 잘했어요. 그리고 며느리도 저에게 잘했습니다. 어떤 때 보면 우리 친딸보다도 저한테 더 잘해서 제가 오히려 며느리한테 효도받으면서 호강하며 사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죠.

저는 사실 몇 년 전에 큰 병을 하나 얻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다 늙어서 유방암이 생겨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 인생이 다 끝난 것만 같아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유방암이라는 걸 알게 되고 가족들에게 알렸을 때 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다들 그래도 괜찮다며 저를 다독여 주었는데 그때 제일 많이 저에게 힘을 주었던 게 바로 며느리였습니다.

”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거 수술하면 100% 완치할 수 있는 거라면서요. 겁먹지 마시고 마음 강하게 먹으시고 어머니는 치료랑 회복에만 집중하세요. 제가 옆에서 다 도와드릴게요.”

며느리는 이 말이 빈말이 아니었는지 이때부터 정말로 저한테 헌신적으로 잘했습니다. 저는 아픈 와중에도 치료를 받으면서 수선집을 쉴 수가 없었는데 이때 며느리가 저한테 와서 수선까지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일을 다 돕더라구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제가 병원에 가 있을 때는 밤이나 낮이나 할 것 없이 늘 제 옆을 지켜주었고 수술할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 주던 게 바로 우리 며느리였어요.

거기에서 끝이 아니라 회복을 하는 기간에도 며느리는 저를 씻기 먹이고 재우고 먹이고 마치 제 손주들에게 하듯 며느리가 저를 대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무리 내가 딸처럼 대하고 같이 지냈어도 진짜 핏줄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회복이 될 때까지 옆에서 곁을 지켜준 며느리가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어요. 며느리는 얼마나 저희에게 잘했냐면, 남편이 오랫동안 일하던 고위 공무원직에서 은퇴를 할 때 깜짝 이벤트까지 준비하던 아이였어요.

우리 둘째, 딸도 그런 건 잘 못 챙기는 애였는데 얘는 요즘 유행하는 케이크가 있다며 우리 남편 얼굴이 그려져 있는 예쁜 케이크까지 준비를 하고는 용돈까지 주던 거 있죠.

처음에 케이크를 보는데 케이크 위에 ‘은퇴 축하합니다’라는 문구가 꽂혀 있었는데, 며느리가 우리더러 그걸 뽑아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뽑았죠 그랬더니, 거기 안에서 5만 원짜리가 쭉 뽑아져서 나오는데 어찌나 재밌던지…

요즘은 자식들이 부모들한테 이런 선물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구요. 덕분에 저희도 용돈 100만 원 받아서 은퇴기념으로 해서 둘이 여행도 다녀오고 했네요.

저는 뒤부터 우리 딸들보다도 며느리랑 더 자주 만나고 자주 놀러 다니고 있었어요. 이 아이는 내가 어디가 좋은지 그렇게 주말마다 놀러 가자고 하고 맛있는 것도 자주 먹으러 가자고 하고 있었죠.

근데 한 가지 좀 의아한 게 얘가 절 만날 때마다 어느 순간 지갑을 가지고 오질 않더라구요. 어느 순간부터 보면 제가 여행 비용을 대고 있었고, 밥을 먹으러 가도 밥값도 다 제가 내곤 했었어요.

며느리가 결제하는 거라곤 커피나 자질구레한 것들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걸 제가 쪼잔하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내가 부모인데 내가 내면 어떤가 싶어서 계속 당연하게 내왔었어요.

근데 이 생활이 쭉 지속이 되다 보니까, 이 며느리가 이제 나의 지갑을 열 생각을 안 하더군요. 저는 우리 애들한테도 늘 어디 가서 호구가 되는 것도 안 되지만 남의 돈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얻어먹는 거 얻어 쓰는 것 당연하게 생각하지도 말라고 늘 가르쳤어요.

근데 며느리는 완전히 저한테 딱 붙어서 제 돈만 먹으면서 지내는 찰거머리처럼 그렇게 행동을 하더라구요. 이대로 가다간 완전히 이게 습관처럼 베이고 부모 돈을 당연스레 여기겠군 싶어서 한 번 끊어줄 작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한 번은 또 저한테 놀러 가자고 하기에 제가 알겠다고 하고는 제대로 자식 교육에 들어갔습니다. 며느리는 이번에도 또 밥을 먹고 제가 결제하기를 그냥 기다리고 있길래 제가 자리에서 말했어요.

” 아가, 오늘은 네가 좀 계산 좀 해라 내가 지갑을 놓고 왔지 뭐니? 그동안 내가 많이 사줬으니까. 오늘은 네가 좀 사봐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며느리가 순간 당황스러워하는 듯했어요. 하지만 금방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우고 본인이 계산을 하더라구요.

근데 표정에서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읽혀서 속으로 얼마나 우스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거기에는 유람선을 탈 수 있는 게 있었는데, 며느리가 그걸 타러 가자고 한 거였기에 저는 이번에도 며느리에게 먼저 선수를 쳐서 말했죠.

” 아가 나 지갑 없으니까. 이것도 네가 좀 계산해라 그동안 내가 이런 즐길 거리들도 다 결제해 줬잖니. 그러니까 오늘은 네가 아예 좀 풀 코스로 쏴라 “

제가 이 말 한마디 하니까 며느리가 이번에도 얼굴이 빨개지면서 낭패라는 표정을 짓더라구요. 제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짓는 게 저는 못내 서운하고 화가 났지만 자식 교육시킨다는 심정으로 참고 넘어갔습니다.

근데 제 성격 중에 한 번 시작을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 있어서 그날 며느리에게 제대로 참교육을 시켜주기 위해 또 이야기를 했어요.

” 얘, 여기에서 그냥 집에 들어가려니 좀 아쉽지 않니? 우리 저녁도 먹고 가자, 내가 저번부터 소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마침 여기 근처에 네 시아버지랑 자주 가던 데가 있어 거기 가서 우리 저녁 먹고 가자 물론 이것도 네가 계산해 줘야 한다. 나 돈 없어”

제가 이렇게 말을 하니 이번에는 며느리가 안 되겠는지 저한테 바로 대답을 하더라구요.

” 어머니 어쩌죠? 집에 애들이랑 남편이 기다리고 있어서 오늘은 일찍 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소고기는 제가 다음에 사드려도 될까요? 저희 자주 나오니까 그때 같이 소고기 먹으러 가요 “

” 어머 아니야. 오늘 우리 나오기 전에 니 남편이랑 시애비가 애들 데리고 저녁은 외식한다고 했었어. 우린 우리끼리 먹고 들어가면 돼, 이거 아까 네가 나한테 직접 말해줬던 건데 벌써 까먹었니?”

” 그랬나요? 깜빡했네요. 어머님 그럼 저희 소고기 말고 그냥 일반 삼겹살은 어때요?”

” 어머 난 싫어 얘! 나 소고기 먹고 싶다. 왜 비싸서 그래? 소고기가 안 그래도 우리 오늘 나오기 전에 니 남편이 너한테 나랑 밥 사 먹으라고 용돈 줬다면서? 그걸로 사 먹으면 되지 뭐가 걱정이니? 얼른 가자 배고프다.”

결국 며느리는 거기까지 따라가서는 돈을 왕창 써버렸어요. 저는 어찌나 모습이 웃기고 재미있던지 남의 돈 쓰는 걸 좀 귀하다고 여겨졌나 싶어 몇 번을 이런 식으로 참교육을 시켰습니다.

한 번은 쇼핑하러 가자고 제가 끌고 나가서 옷도 다 며느리 돈으로 사고 어디를 놀러 가든 한동안 쭉 며느리 돈으로만 사 왔었어요.

그랬더니, 며느리가 지 돈 쓰는 게 아까웠던 건지 아니면 제가 제 돈 쓰던 것에 미안함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더는 놀러 가잔 소리를 안 하더라고요.

저는 거기에서 역시나 얘가 나랑 같이 다니던 목적은 돈이었구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기까지 했었네요. 근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어요.

저는 그래도 며느리와 전처럼 자주 놀러 다니진 않더라도 저희는 연락을 잘 주고받았고 서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그건 완전한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며느리랑 잠깐 통화할 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는데 그때 저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리를 들어야 했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제대로 찍히는 경험을 해야만 했어요.

그 당시 며느리네와 저와 남편이 만나서 외식이 잡혀있던 때여서 그것 때문에 잠깐 통화를 하고 끊었는데 저는 전화를 끊고 나서 볼일을 보고 있는 글쎄 핸드폰에서 뭔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뭐지 하며 핸드폰을 봤는데 끊긴 줄 알았던 통화가 계속해서 이어져 있었고,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저는 좌절을 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죠.

핸드폰을 귀에다 대고 며느리한테 이야기를 하려는데 며느리는 통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때 저는 믿을 수 없는 대화 내용을 들어야 했습니다.

” 아유~ 이 노인네는 명줄이 길어도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어. 하여간에 수시로 전화 와서는 이러쿵저러쿵 해대는데 얼마나 귀찮은지 모르겠다니까?”

” 무슨 소리야? 니네 시어머니랑 사이 좋은 거 아니었어?”

” 사이가 좋기는 개뿔! 그냥 그런 척하면서 지내는 거지, 하여간에 노인네가 눈치가 없어. 아니 노인네가 겉으로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꽤나 알부자야. 수선집 해가지고 건물 3층짜리 하나 가지고 있다는거 내가 전에 얘기했지?

아니 둘 다 나이도 있는데, 어느 정도 나이 차서 죽게되면 그거 우리 남편이 물려받아야 하잖아. 그래서 내가 그것 때문에 아주 비위 맞추느라 똥줄 탄다니까?

얼마 전에는 노인네 글쎄 유방암에 걸렸는데 뒷치닥거리 하느라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원래 그렇게까진 할 생각 없었는데 노인네들 마음 사로잡는 건 또 그런 거 아니겠어 그래서 내가 없는 효심내보이느라고 진짜 별짓을 다 했다.”

” 너도 진짜 대단하다. 근데 니네 시어머니가 널 딸처럼 생각해주면서 잘해주신다며? 너 어디 가서 그런 시어머니 못 만나 전에는 그래도 시어머니 모시고 열심히 놀러도 다니고 하기에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

” 잘 다니긴 노친네 돈이 많으니까. 내가 그거라도 좀 써보려고 데리고 다녀주는 척 했더니만 그것도 어느 순간 아까웠는지 나보고 돈을 다 내라고 하더라니까? 내가 진짜로 지 딸이었다고 생각해 봐 어디 그런 식으로 했겠어?

요즘은 그냥 놀러 가자는 소리 아예 안 하잖아. 하여간에 요즘은 암 걸리면 후유증으로 많이 죽기도 한다는데, 이 노인네는 그딴 것도 하나도 없어 너무 건강해 아우 지겨워 “

“야 넌 너무했다! 그래도 니가 그렇게 살갑게 대하는 거 보면서 널 많이 믿고 의지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 아우야~! 아서라 아서, 내가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그냥 이게 내 생존 방식인 거지. 너무할 거 아무것도 없어야! 그냥 이대로만 쭉 가다가 건물이나 좀 우리 남편 몫으로 줬으면 좋겠어. 아님 요즘은 지 아들보다도 나를 더 좋아하니까 내 명의로 지면 더 좋구 “

저는 여기까지 대화를 듣는데 정말 잘못 들은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고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너무너무 놀라서 뒤집어질 뻔했어요.

며느리는 저와 통화를 할 때는 분명 집에 있으면서 첫째, 손주를 어린이집으로 데리고 간다고 했었는데 막상 대화 내용을 들으니 친구와 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제 욕을 엄청 하고 있었죠.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며느리가 아니었기에 저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 고민을 하다가 아들에게로 전화를 했어요.

저는 이 대화를 듣다가 중간에 증거로 남겨야겠다. 싶어서 얼른 녹음을 했었기에 그 녹음한 내용을 아들 녀석에게 보내주면서 들어보라고 하고는 모든 상황들을 다 설명해 주었어요.

역시나 아들도 깜짝 놀라며 이게 본인의 아내가 맞냐고 저에게 묻더라구요.

” 엄마 이게 진짜 우리 애들 엄마가 한 얘기라고요? 정말이에요? “

” 그래, 너도 믿기지가 않지? 나도 믿기지가 않았다. 내 두 귀를 의심할 정도였어. 근데 누가 들어도 네 마누라 내 며느리 목소리가 아니냐,

나 참 기가 막혀서 증말… 어쩜 이렇게 애가 뒤에 가서 이런 사악한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정말 도저히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어 “

저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눈물도 안 나는 상황이었고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배신은 60년 인생을 살면서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과 저희 남편까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족 회의까지 했었어요. 당시 우리 딸은 일이 많이 바쁜 상황이어서 얘기는 못 했지만, 나중에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 엄청나게 분노를 했었죠.

먼저 온 가족이 다 모이기로 했었어요. 아들네 부부와 우리가 제 생일이라고 모여서 식사를 하기로 했었기에 한 식당으로 모이기로 했었는데 그것도 다 취소를 하고 그냥 저희 집으로 오라고 했었어요.

그리고 며느리가 집으로 왔을 때 저희는 밥을 먹기도 전에 며느리에게 참교육을 시작하게 되었죠. 시작은 저희 아들이 끊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이 모든 내용을 듣고 알고 나서는 엄청나게 화가 난 상황이었기에 뒤로는 며느리와 냉전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 듯했어요. 이것 때문에 중간에 며느리가 저한테 전화를 하기도 했었죠.

” 어머님 남편이 좀 이상해요. 어제부터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저한테 화난 사람처럼 구는데 이유를 모르겠어요. 원래 변덕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화난 이유를 물어두 말도 안 해주고 진짜 왜 저러나 모르겠어요.”

며느리와 저는 워낙에 사이가 좋았었기 때문에 이렇게 한 번씩 저한테 제 아들 욕을 해도 제가 다 받아주고 했습니다. 그냥 부부들끼리 의례적으로 하는 싸움이나 불평불만들이었기에 저도 늘 받아줄 수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저도 받아줄 수가 없었죠.

” 그래서 말했어요. 그거야. 너한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널 먼저 되돌아봐야 하지 않겠니? 왜 내 아들이 화난 걸 내 아들 탓으로만 생각하고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그게 시애미 앞에 할소리니?

지금까지 내가 너무 오냐오냐 널 대했지 이렇게 내 앞에서 내 아들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말이야.”

며느리에게 처음 보이는 저의 말투에 며느리는 많이 당황을 했는지 순간 바로 저한테 다시 말을 하더라구요.

” 네…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죄송합니다.”

” 됐다. 나도 너한테 이런 전화 받으니 기분 나빠서 더 통화 못하겠다. 끊으마”

이렇게 전화를 끊어버리고 나서 처음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며느리는 남편과 제 눈치를 보면서 한껏 쫄아 있었죠. 그렇게 쫄아 있는 며느리를 거실에 앉혀 놓고 저희는 비장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 자 당신이 좀 들어야 할 게 있어. 요즘 나보고 왜 이렇게 차갑냐고 물었지? 당신도 이걸 들으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야. 제대로 듣고 무슨 상황인지 똑바로 설명하는 게 좋을 거야.”

며느리는 아들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동시에 상당히 긴장이 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들 녀석이 틀어준 음성 파일을 들으면서 며느리의 표정은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음성 파일이 다 끝나기도 전에 며느리는 제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마구 빌기 시작했죠.

” 어머님! 어머님! 이거 다.오해예요. 오해! 이거 다 사실 아니에요. “

” 뭐? 오해? 도대체 어느 부분이 오해라는 거니? “

” 그게…. 제가 순간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절대로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데 제가 잠시 돌아섰어요. 네 맞아요. 제가 미쳤었어요.”

잠시 며느리의 기가 차는 변명을 들으니 저는 더 들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들 녀석이 생각해낸 이 상황에 대한 조치 방법을 제안해 나갔어요.

” 그래 니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나 보구나, 근데 어쩌냐 ?그걸로는 내 화가 풀리지가 않는데? 도저히 난 너를 앞으로 내 며느리로 둘 수가 없다. 내 아들이랑 당장 이혼해”

” 네? 안 돼요. 어머님 절대로 안 돼요. 이혼 못 해요. 여기서 버림받으면 어디로 가라구요? 네? 제발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

며느리는 제가 이혼하라는 소리에 듣게 하는 제 바짓가랑이까지 잡으며 애원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거기에서 저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독하게 나갔죠.

” 네가 한 짓이 얼마나 인간 말종이나 하는 짓이었는지 이제 알겠니? 천하의 고아인 너를 내가 정말 내 딸로 생각을 하고 거둬서 키우다시피 했다는 걸 니가 잘 알았으면 나한테 이렇게 해서는 안 됐다.

그동안 내가 널 얼마나 아꼈는데 너를 얼마나 많이 의지하고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이 고약한 것 “

” 어머님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정말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 제가 어리석었다구요. 어머니가 하라는 거 뭐든지 다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이혼하라고만 하지 말아 주세요. 여보! 나 당신이랑 절대 이혼 못 해… 제발 나 용서해 줘…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보란 말이야.”

” 나는 무조건 엄마 말에 따를 거야. 엄마가 이혼하라면 이혼할 거야. 나도 당신 이해하기 힘들고 용서하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무조건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할 거야. 어디 나랑 계속 살고 싶으면 우리 엄마가 하라는 거 그대로 다 해. 그럼 생각해 볼 테니까. “

” 알았어. 여보 나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이혼만은 하지 말아줘 제발 나 용서해 줘 “

아들 녀석도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에 며느리에게 단호하게 말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둘의 모습을 보다가 며느리에게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너 정말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할 거야? “

” 네 당연하죠. 뭐든지 다 할게요 정말 다 할게요 “

” 그래 그럼 좋다. 그럼 너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내 눈에 보이지 마라 그리고 내 눈에 안 보이는 동안에 내가 가라고 한 곳에 가서 내가 하라는 거 그대로 하고 있어. 그럼 내가 마음이 풀릴 때 찾아가마. 할 수 있겠어?”

” 네 그럴게요 어머니! 다 할게요.”

저는 뭐든지 다 하겠다는 며느리를 보고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는 표정을 짓고는 또 한 번 비장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 너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봉사하러 다니는 양로원 알지? 거기 가 있어라. 내가 다 말해둘 테니 거기 가서 숙식하면서 그곳에 있는 노인들한테 봉사하면서 지내고 있어. 그럼 내 마음이 왜 풀릴 때 널 데리러 가마 “?

” 네?! 양로원이요. 거기 치매 있는 분들 있고 그런 곳이잖아요. “

” 그래 맞아, 왜? 하기 싫으냐? 방금까지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며? “

며느리는 제안에 갑자기 망설이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좀 고민하는 듯하더니, 바로 알겠다고 하더군요.

” 알았어요. 어머니 거기 갈게요 대신 너무 오래 걸리시면 안 돼요. 꼭 데리러 와주셔야 돼요. 아셨죠? “

” 글쎄다. 그건 너 하는 거 봐서 결정할 거다 그럼 당장 내일부터 가 애들은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며느리는 그다음 날부터 바로 양로원으로 들어가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하고 난리가 난 듯 했었어요.

” 여보, 여기 진짜 나 못 았겠어. 너무 구역질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바지에 대소변도 못 가리고… 진짜 미치겠어 이거 매일매일 닦는 내 심정을 알아?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데리러 와줘… 나 빨리 용서해 달라고 어머니께 말씀 좀 드려봐..응? “

” 당신이 다 자초한 일이야. “

아들 녀석은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고 이런 대화 내용들을 다 녹음해서 저한테 들려주곤 했었어요. 저는 그걸 들으면서 아직도 정신 차리려면 멀었구나 싶었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습니다. 며느리는 그동안 정말 숱하게 아들에게 저에게 전화를 해왔고 저는 아예 받아주지도 않았어요.

근데 한번 아들이 저한테 또 둘이 대화한 내용을 들려주는데 거기에서 제 마음이 확 풀리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아들에게 전화가 온 며느리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 여보 있잖아. 나 정말 반성 많이 했어. 내가 여기 있어보니까, 우리 어머님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더라고.. 있지 여기 계시는 분들 너무 안타까우신 분들이더라.

자식들은 치매 걸렸다고 이 양로원에 부모를 내팽개쳐 놓고는 보러 오지도 않고… 대소변도 못 가리시는 분들이 어떤 때는 나만 보면 좋다고 웃으셔…

근데 또 어떤 때는 자식이 보고 싶다면서 한참을 우시고 그 모습 보는데 이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는 분이 우리 시부모님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던 거 있지…

그저 건강하게 계시는 게 나한테는 그저 감사한 일이었는데. 내가 진짜로 미쳤었나 봐 우리 어머님 상처 많이 받으셨겠다. 나 진짜 너무 죄송해서 어쩌지? “

 당신 이제야 좀 뭘 깨달은 거야?

” 나 진짜로 마음이 너무 아파, 아까 오전에는 그나마 정신이 좀 온전한 할머니가 내 손을 잡더니,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더라.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라구…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꼭 효도하라구… 본인이 양로원에 있어 보니까, 너무 외롭더래 너무 자식들이 보고 싶고 남편도 보고 싶고 그렇더래…

근데 볼 수가 없는 게 가슴 미어지게 아프다고 하시더라…그걸 들으면서 나 진짜 우리 어머님 생각 많이 났어… 우리 어머님 유방암 걸리셨을 때 왜 내가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뒤에 왜 그런 모진 생각을 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나 앞으로는 우리 어머님 아버님께 진짜 잘할 거야. 여보 정말 평생 효도하면서 살 거야”

아들 녀석이 이 내용을 들려주는데 저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진짜 자신의 잘못을 알고 뉘우치고 있다는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는 며느리가 그리 밉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나 충격을 받고 순간 억울하고 미운 생각이 들기도 했죠. 근데 사람이 그런 어리석은 짓 한 번쯤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근데 그걸 뒤에서 바로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인 거죠. 저는 제가 며느리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며느리가 진짜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길 원해서 며느리를 양로원으로 봉사를 보낸 거였어요.

그 뒤로 저는 어느 정도 이 아이가 많이 깨달았구나 싶어서 한 달을 더 있게 한 후에 총 석 달 뒤에 며느리를 직접 찾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는 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안겨들더라구요.

” 어머니… 정말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정말 그리웠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죽을 죄를 지어서 제가 다른 사람한테는 다 나쁘게 굴어도 어머님한테는 절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제가 배은망덕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

” 그래 이제 알았니? 부모 가슴에 대못 박으면 그게 나중에는 고스란히 다 돌아오는 거야. 지금 너를 보렴. 얼마나 가슴 아파하니? 근데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 앞으로 안 그러면 돼. “

” 당연하죠. 진짜 절대로 안 그래요. 오히려 이제는 정말로 어머님을 제 친엄마처럼 효도하면서 모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정말로 잘하겠습니다. “

며느리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고 그때부터는 정말로 바뀌기를 시작했어요. 다시 저를 데리고 나가서 놀러 나가기를 시작하는데 저한테는 일절 돈 한 푼 못 쓰게 하면서 본인이 혼자 다 돈을 쓰더라구요.

거기다가 이제는 용돈도 팍팍 주고 저랑 제 남편 건강이 염려된다면서 무조건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본인 돈 다 들여가며 받게 하고 있네요.

그렇게 저희 며느리는 진짜로 개과천선을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바꿔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잖아요. 근데 저는 말을 그리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바꿔 쓸 수 있어요.

물론 기본 성품이라는 게 어디 가는 건 아니지만, 어른의 역할을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많이 달라진다는 걸 저는 이번 일을 통해 많이 느끼게 되었네요. 덕분에 우리 가족은 다시 평화를 찾아 잘 지내고 있습니다.

X
error: Content is protected !!
Days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