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40대 후반 주부입니다. 제가 이렇게 사연을 보내게 된 이유는 우리 시어머니.. 아니.. 우리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그분의 큰 사랑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입니다.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던 ‘버려진 아이’리는 말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고아원에서 저는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았습니다. 세상에 나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되며 모든 것은 오롯이 혼자 자 지켜내야만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이를 악 물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했었죠. 그런 내게 세상은 단 한번도 따뜻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친구를 사귀게 되어 친구 집에 놀러가면 첫 질문은 “엄마, 아빠 뭐 하시니?” 또는 “너는 어디 사니?”였습니다.
제 입에서 고아라는 말이 나오거나 고아원에서 산다는 말을 하면 친구 부모님의 얼굴은 창백해지곤 했었죠.
그들의 ‘아니 왜 우리 아이가 저런 고아랑 친구가 되었지?’라는 표정으로 절 이상하게 봤으니까요. 항상 눈치 보는 것이 일상이었던 저는 그들의 표정을 한눈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보며 멀리하던 친구들… 이런 일은 항상 되풀이되었으며 저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을 향해 잔뜩 날을 세우며 나를 지키기 위해 감정 따위는 철저히 감추고 살았죠.
제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오는 그 모든 이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저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웃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내게 웃음을 가르쳐 준 사람, 그 사람과 있으면 세상이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그런 사람이었죠. 제가 “나 고아예요”라고 힘겹게 꺼낸 나의 말에 그 사람은 “그래서요? 그게 왜요?”라며 의한 표정을 지어 오히려 저를 당황하게 하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평생을 고아라는 족쇄에 갇혀 스스로를 가둬버렸던 나를 처음으로 밖으로 꺼내 준 사람이었습니다.
“당신 이름은 고아가 아니라 이지선 이에요”
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사람.. 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의 제 남편입니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왜 나를 좋아할까? 이러다가 또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일까? 그를 만나고 잠 못 이루며 수 없이 되뇌었던 생각들이었지만 그는 참 배려심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나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런 그가 저에게 결혼하자며 청혼했습니다, 그는 부모님을 만나자고 했을 때 저는
“고아인 나를 받아 줄 부모님은 없어요.
당신 같이 좋은 사람에
나 같은 사람은 어울리지 않아요.
당신과 당신 부모님께
상처드리고 싶지 않아요”
라며 거절하던 내게 그는 우리 부모님 무시하는 것이냐며 처음으로 크게 화를 내며 되려 저에게 평생을 그렇게 도망만 다닐 것이냐며 부모님을 만나 뵙고도 그런 말한다면 당신 말에 따르겠다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모님을 처음 뵙던 날 그가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성품과 고상함이 가득했던 그의 부모님은 그저 따뜻한 미소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엄마! 지선 씨는 부모님이 안 계세요”
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그와 그 얘기를 듣고도..
“그렇구나”
라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던 그의 부모님은 제가 고아라는 것을 듣긴 들은 것인지 아니면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별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 그의 부모님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제가 다시 말을 꺼냈습니다.
“사실은 제가 고아입니다.
어릴 때부터 쭉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라고 다시 말을 꺼냈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랬군요” 라며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활짝 웃으시며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눈빛이 참 맑아요.
그래서 우리 아들이
그렇게 좋아했나 보네요.
나도 지선 씨의 맑은 눈이 참 좋네요
눈은 사람의 모든 것을 대신하죠”
라고 말을 하셨는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 저를 본 그의 어머니는…
“울고 싶을 때는 그냥 울어도 돼요”
라며 저를 가만히 안아 주던 그의 어머니와 그 옆에서 괜한 말을 해서 애를 울렸다며 걱정스레 말하던 그의 아버지의 모습에 저는 더 큰소리로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 따스함과 배려에 저는 그렇게 처음으로 고아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가족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그날, 아니 처음으로 가족이 생긴 그날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와 결혼을 하고 정말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남편보다 더 의지를 할 정도로 너무 좋으신 분들이셨어요.
저를 친 딸처럼 아낌없이 사랑해 주셨고 고 졸인 저에게 공부를 더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던 분들, 꼭 대학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혹시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더 하라며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어요.
시댁식구 말대로 저는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시험 보러 가던 날, 도시락을 싸서 아침 일찍 응원을 하러 오셨는데 아침부터 저를 펑펑 울게 만들던 분들이셨습니다.
내가 이런 행복을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건지 불안하기까지 한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어머님, 아버님께서 아이를 돌봐주시고 저는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결정은 제가 할 수 있도록 해주셨고 제 결정을 우선으로 존중해 주셨습니다, 시댁식구는 정말 많은 것들을 일깨워 주시곤 하셨죠.
“너는 더 많은 것들을 누려도 될 만큼 소중한 아이란다”
어떠한 결정 앞에 망설일 때마다 제게 용기를 주시던 우리 어머님, 당신 덕분에 저는 제 아이에게 당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답니다. 당신에게 받은 사랑을 나의 소중한 아이에게 제대로 정성껏 전해주고 있답니다.
그런데, 저희 시어머니가 아프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며 몇 날 며칠을 울었습니다.
점점 병에 지쳐 야위어 가던 어머님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병간호를 시작했습니다. 제발 우리 어머님 살려달라고 많은 기도를 했을까요? 세상의 신들에게 기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제발 내게서 우리 어머니.. 아니 엄마를 뺏어가지 말아 달라고요. 어머님은 간이 좋지 못하셨습니다. 간을 이식받아야만 했었죠.
남편과 어머님과 어머님의 형제분들이 검사를 받았지만 적합자가 없었습니다. 아버님은 자식을 하나만 낳은 것을 후회하시면서 그렇게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처음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런 가족들에게 제가 검사를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들도 맞지 않는데 네가 맞겠냐며 다들 만류하였지만 저는 혹시 모르는 그 1%의 가능성이라도 믿어봐야 한다며 검사를 했고 부디 적합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제가 적합하는 그 말을 듣고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제가 그냥 우연히 만나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렇게 어머니께 이제 다 괜찮다고 말을 꺼냈지만 어머니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지선아, 네 마음은 정말 고맙구나.
하지만 부모는 말이다.
자식에게 위험을 주면서까지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단다.
모든 어미가 그래.
자식이 잘못될 수 도 있는데
나 살겠다고 자식을 아프게 하는
어미는 없단다.
훈이가 적합하다 해도
엄마는 그랬을 거야”
또다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추며 이번에는 제가 단호하게 말을 했습니다. 그럼 엄마가 죽어가는데 가만히 보고 있을 자식이 어디 있냐고요. 남게 될 자식들 생각은 안 하냐고요.
적합 판정이 나왔는데도 시도도 안 해 보고 그냥 그렇게 보내냐고요. 그럼 남겨진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냐고요.
어머니는 지금까지 제 결정을 존중해 주지 않았느냐 이번에도 존중해 달라고 정말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앞으로 아이를 다시 못 가질 수도 있고 약을 평생 먹어야 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의사에게 들었다며 옆에서 그걸 어떻게 지켜보냐며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엄마란 이런 것이었네요… 자식이 항상 먼저인 사람 그런데 저를 낳아준 엄마는 어떻게 저를 그렇게 버릴 수 있었을까요? 엄마는 이렇게 자식만 생각하고 자식이 아플까 봐 걱정만 하는 존재인데 말입니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이 이런 말이었네요.
그런 어머니와 수실실로 들어가는데 저는 정말 하늘에 감사드렸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해드릴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아니 이제 어머님과 정말 무엇인가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제 정말 어머님이 딸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잘 될 줄 알았습니다. 제가 적합자인 것조차 기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정말 무심하게도 저희에게 어머님을 데려가 버렸습니다.
이식 수술 후 처음에는 괜찮았으나,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어머님은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너무 허무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믿기지도 않았고요.
세상이 유독 나에게만 이렇게 가혹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행복하기만 한데 내가 행복해지면 안 되는 것인지 좌절하고 하루하루 참을 수 없는 불합리에 신을 원망하고 있을 때 이모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어머님이 남기고 간 것을 전해줘야 한다면서요. 이모님은 어머님께서 “꼭 혼자 열어보라”라고 했다며 당부하셨고 잠시 후 이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주신 상자를 열어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졌습니다.
상자를 열어본 순간, 저는 심장이 멎는 듯한 아픔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내 딸아!”라고 시작하는 어머니의 편지와 통장 하나가 이었습니다.
“지선아.. 이 상자를 열어 보았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겠구나
내 딸아! 엄마가 오래오래 살아서
너를 지켜 주고 싶었는데
너무 미안하구나.
딸에게는 엄마가 꼭 있어야 하는데
우리 딸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엄마가 걱정이 많구나
너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이 못난 엄마는 너에게
상처만 주고 떠나는구나..
사랑하는 딸아!
여자는 항상 비상금이 있어야 한단다.
이 엄마가 결혼할 때 너희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통장을 하나 주더구나.
항상 지니고 있으면 든든할 거라고,
엄마는 살면서 힘이 들대마다
할머니가 주신 그 통장을 열어보며
힘을 냈단다.
우리 딸도 그랬으면 좋겠구나.
네가 힘이 들 때마다 엄마 생각하면서
잘 이겨냈으면 좋겠구나.
우리 딸! 처음 보던 날 너의 맑은 눈이
다시 생각나는구나.
엄마는 너의 그 맑은 눈 고이 간직하고 갈게.
내 딸아! 이번 생에는 비록 조금 늦게 왔지만
다음 생에서는 조금 더 빨리 엄마에게 와 주렴!
다음 새에서도 엄마 딸 하자꾸나.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너는 참 소중한 아이란다.
너는 더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단다.
잊지 마렴.
항상 너를 소중히 하렴,
사랑한다. 내 딸!”
사랑하는 우리 엄마,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마세요. 이제 딸 걱정은 하지 말고 편히 쉬세요. 사랑하는 우리 엄마! 당신의 커다란 사랑을 감히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앞으로 당신의 딸로서 창피하지 않게 늘 베풀고 배려하고 살겠습니다.
다음 생에서도 꼭 엄마 딸로 같이 오래오래 살아요. 엄마! 사랑해요. 당신이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날입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엄마.. 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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