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덕분에 제 목숨을 지킬수 있었어요.” 구명조끼가 부족한 상황에 유람선은 침몰하자 모든 승객 사람들의 목숨이 잃어가 순간에, 한국인의 놀라운 ‘대처능력’에 기적이 일어나고 마는데…

안녕하세요. 저는 이탈리아의 30대 초반 직장인 안젤라라고 합니다. 

저는 몇 년 전 해외 출장을 갔다가 유람선을 타고 시칠리아로 향하던 중 있었던 사고와 거기서 한국인 분들의 뛰어난 대처 능력에 대해 감동을 먹어서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자 사연을 보냅니다.

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자랐으며 어릴 적부터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것을 굉장히 뿌듯하게 여겼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어릴 적부터 옷 입는 것에 관심 힘이 많으니 저를 시칠리아 섬에서 이탈리아 육지 쪽으로 보내려고 했었죠.

하지만 제가 나이가 먹을수록 시칠리아 섬 쪽에도 패션 사업이 많이 발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태어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지금까지 쭉 살고 있습니다.

물론 대학은 육지 쪽에서 나왔습니다. 관심 있는 패션 공부를 하였고 무상 디자인학과를 나왔지요. 저는 졸업을 하고 다시 시칠리아 섬으로 돌아와서 이곳에 있는 패션사업부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취직한 패션 사업부는 국제 패션의 협업 사업을 굉장히 활성화하여 발전된 융합 패션을 이루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던 사업체였습니다.

저는 터키 사업부에서 일을 했는데 때문에 터키와 시칠리아 섬을 자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시칠리아 섬에서 터키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물론 다양하지만 가장 좋은 통로가 유람선을 이용하는 것이었어요. 평소 유람선을 타고 왔다 갔다 하며 출장 일을 했지요.

저는 전 세계 패션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존중을 이루어 내려면 융합과 해체 과정을 잘 겪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주측에 있다고 생각을 해서 항상 뿌듯함을 느끼면서 일했죠.

근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절대 절명의 위기가 발생한 날이었어요.

여느 때와 같이 터키에서 출장 일을 마친 후 시칠리아 섬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그때 제가 탔던 유람선은 30명 내외 남짓 인원 제한이 있던 소형 선박이었습니다.

근데 그날 따라 날씨가 유독 변덕스러웠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지중해 연안이라 온난한 날씨의 연속이고 그렇게 파도가 많이 치는 경로가 아니었거든요.

근데 정말 그런 날 있잖아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치는 날씨요. 그날의 일기예보는 매우 밝음이었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을까요?

소양 선박의 성장이나 직원들 그리고 관광 과 같은 일로 인해서 왔다 갔다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자연재해의 준비를 하지 못했던 겁니다.

갑자기 맑은 날씨에 빗방울이 뚝똑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바람과 함께 폭풍우가 치는 겁니다. 파도는 저희 배를 삼켜버릴 듯하게 강하게 다가왔어요.

이탈리아 선장은 방송으로 외쳤습니다. 비상구에 위치된 구명조끼를 일단 모두 입으라고요. 근데 어찌 된 건지 구명조끼가 제대로 비치되어 있지 않았던 거예요.

인원은 30명 남짓한데 구명조끼가 10개 정도밖에 없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재해가 거의 일정 없는 지중해 연안이었고 제가 다니는 이 경로는 이렇게 파도가 세게 치는 경우는 평소에 없다 보니 항시적으로 구명조끼 기치 관리를 제대로 못 했던 것이지요 .

웃긴것이 10개의 남짓 남아 있는 구명조끼 조차 대부분 끈이 끊어져 있고 낡아서 제대로 기능을 작동하지도 못할 것만 같은 모양새였어요.

저런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아무리 평소에 기상이변이 없고 파도가 잘 안친다 해서 제대로 된 안전장비 하나 구비가 되어 있지 않다니요.

말이 안 되죠. 하지만 이탈리아는 그랬습니다. 평소 안전의식에 대해 경각심이 별로 대다수의 유럽인들을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근데 이번은 좀 심하긴 했지요 그렇게 파도가 강력하게 치면서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의 몸은 미끄러지기 시작했어요. 구명조끼를 입을 새도 없을 갑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쾅! 하면서 엄청난 괴음이 들리더니, 배가 한쪽으로 점점 기우는 것이 아니겠어요.

우려하던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배가 암초에 걸려 넘어지고 있던 것인데 충돌 순간 큰 대음과 함께 갑자기 배 안에 전등이 모두 나가 선내는 암흑천지가 됐고 선 채 찢어진 틈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배는 점점 더 급격하게 기울어지기 시작했지요

선장 직원 손님들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당황하고 패닉 상태였습니다. 그런 혼란스러운 순간에 찰나에 등장했던 동양인 사 인방이 있었지요. 바로 중년정도 되보이는 한국 남자분들 이었습니다.

“어텐션 플리즈!!” 어눌한 외국어로 소리 쳤습니다. 그분들 빠르면서 명확한 어조로 소리치더군요. 유람선 응급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침착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요.

공황 상태에 빠지면 서로 밀치고 다치고 밟고하면서 골절이나 뇌진탕 같은 걸로 바다에 빠지기 전에 골로 갈 수 있다면서요. 어눌한 동양인의 영어가 이렇게 선명하게 그릴 수가 있다니 싶었습니다.

” 숨을 고르게 유지하는 데에 온 집중을 다 하세요!” , ” 앞에 공포에 질린 사람이 있다면 정신 차릴 수 있게 소리를 지르세요!” , ” 아이와 여자를 먼저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데 인도해 주세요!”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한국인 사인방 아저씨들의 명확한 진두지휘는 시끄러운 폭풍우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또렷하게 각인되었어요.

저희는 집중해서 남아있는 구명조끼를 아이와 저를 포함한 여자에게 먼저 입히고 배의 위쪽 배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동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양인 남자분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답니다. 이렇게 용감한 사람들이 있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아저씨들을 도와 어린이 여자 노인분들을 인도하고, 저를 포함한 7명 정도만 선체에 가장 위험한 부분만 남게 되었어요.

아저씨들은 우리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모두 한마음으로 움직여야지만 사상자 없이 다 같이 살 수가 있다고 말하며 서로를 독려했어요.

점점 배가 바다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려고 했죠. 30명이나 되는 인원이 일시의 탈출 시, 구명 뗏목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슬라이드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아저씨들은 ” 물에서 움직이기 쉽게 신발을 벗고 다리를 모아 쭉 핀 후, 한 손은 몸 옆에 붙이고 한 손으로 입고 코를 막고 배에서 최대한 멀리 물속으로 끼어들어야 한다. “ 라고 설명했어요.

하지만 구명조끼를 입지 못했던 사람들이 문제였답니다. 구명조끼를 입은 인원은 아저씨들의 지시로 물속으로 하나 둘씩 뛰어들었고 입지 않은 인원들은 배의 가장 위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정말 다행히도 시칠리아 섬으로부터 구조대 요트와 헬기들이 하나씩 날아오기 시작했어요. 정말 10분이라도 늦었다면 저희는 물속으로 빠져 죽었을 거예요.

응급구조대 요트는 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구하기 시작했고, 선체에 있던 절 포함한 인원들은 헬기를 통해 구출이 되었지요.

저희는 다행히도 시칠리아 섬에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한국인 아저씨 4인방에게 감사 인사를 얼마나 드린지 몰라요.

어떤 할머니는 이 동양인 남자들에게 이탈리아 측에서 상패를 내려야 한다며 정부로 전화를 걸겠다고 하기도 하고, 내 목숨을 구해준 값으로 거금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4인방이 아저씨들은 쿨하게 그런거 괜찮다고 다들 우리 말 잘 따라줘서 감사하다며 대신 앞으로 두 번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도와서 위험을 넘겨달라며 당부의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이후로 한국 사람에 대해 동경하기 시작했지요. 지금은 한국에 관심이 엄청 생겨서 1년에 두 번씩 꼭 방문하여 그때 제 목숨을 구해준 한국에 와서 봉사활동을 한답니다.

나중에 아저씨를 만나게 되면 그때는 정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 인사를 못 드렸지만 비싼 음식 사드리겠다고 인사드리고 싶네요. 제 사연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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