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버스를 운행하는 버스 기사입니다. 젊었을 시절부터 버스기사가 되어서 벌써 30년 정도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잊지 못할 승객이 있습니다. 오늘 제 사연은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처음 그 승객을 만나게 된 건 3개월 전이었어요. 당시 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버스를 운행하고 있었죠. 새벽에 가장 먼저 운행하는 첫차를 몰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이른 시간에 버스를 타는 손님은 다른 시간 때에 비해 말이 없기 때문에 무척 조용한 편입니다. 게다가 제가 있던 동네는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아서 몇 정거장이 지난 뒤에도 많이 타야 두세 명 정도 타는 그런 한적한 곳이었죠.

당연히 저는 그날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버스를 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웬 할머니 한분이 정류장에 계시더라고요.

천천히 버스를 멈추고  앞 문을 열자 허리가 많이 굽은 할머니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그러더니 맨 앞자리에 앉으셨죠.

자주 타시는 분들은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생전 처음 보는 분이었어요.  ‘이 동네 근처에 이사라도 오셨나 처음 보시는 분이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버스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몇 정거장이 지나도 내리지 않았어요. 다른 손님들은 그 사이에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는데 할머니는 그저 처음에 앉았던 그 맨 앞자리에 가만히 계셨죠. 

오지랖이지만 그런 모습을 보니까 조금 걱정이 되더라고요. 혹시 내리실 곳을 놓친 건 아닌지 치매라도 있어서 사리분별이 잘 안 되는 건 아닌지 저도 모르게 말을 걸었습니다.

“할머니 혹시 어디까지 가세요?
알려주시면 제가 거기 맞춰서 내려 드릴게요!”

그 할머니는 제가 말을 걸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곧 호호 웃으면서 

“그럴 필요 없어요 기사양반~
나는 종점까지 가요.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라고 하시더군요. 치매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죄송스러울 정도로 또렷하고 맑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종점까지 할머니를 모셔다 드린 뒤 내리고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른 기사들과 수다도 떨다 보니까 금세 다시 운행 시간이 오더군요.

뻐근한 몫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처음 제가 새벽에 운행을 시작했던 차고지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분명 제가 아까 내려드렸던 할머니가 또 벌써 정류장에 계시더군요. 

문을 열어드리자 할머니는 아침과 똑같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버스에 올라타셨습니다. 

“할머니 아까 처음 버스 타셨던 곳까지
다시 돌아 가시는 거예요?”

“예~ 이제 볼일 다 봤으니
다시 집에 가야지요”

사실 차고지랑 종점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무슨 볼 일을 보시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것까지 묻는 건 조금 선을 넘는 것 같아서 아무 말 없이 운전대를 잡았어요.

그리고 똑같이 운행하면서 손님을 태우고 내려드리기를 반복하다가 할머니까지 제일 처음 타셨던 곳에서 내리시더군요.

퇴근한 뒤,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서도 이상하게 그 할머니가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버스를 몬 지 몇 십 년 이상이 넘었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던 일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할머니를 계속해서 기억하게 된 이유는 할머니의 행동이 그날 하루만으로 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딱 그날을 기점으로 할머니는 매번 새벽 첫차를 타고 저와 함께 종점까지 간 다음에 제게 다시 버스를 운행하는 시간에 맞춰서 종점에서 차를 타고 또 저와 함께 목적지까지 향했습니다.

그렇게 매일 같이 만나다 보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할머니에게 더 말을 걸게 되더군요. 

“할머니 오늘도 버스 타러 오셨어요?
어제보다 오늘 입은 옷이
더 예쁘시네요~”

“아이고~ 다 늙은 할망구한테
별 말을 다하시네~”

이제는 다른 친해진 승객들처럼 할머니에게 장난을 치고 너스레를 떨 수도 있었으며 할머니 역시 처음과는 다른 밝은 얼굴로 저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버스를 몰다보면 아무래도 혼자 일하는 거다 보니까 도로에서 다른 기사를 만나지 않는 이상 심심하고 때로는 지루하기도 한데 할머니가 제 버스에 타기 시작한 뒤로부터는 시작점부터 종점까지 함께하니까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할머니도 저에게 정이 많이 들었는지 어느 날부터는 운전할 때 먹으라면서 매일같이 박하사탕을 한눈금 주셨어요. 할머니 드시라고 나는 단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해도 할머니는 꼭 주셨어요.

대부분 박하사탕이었지만 어떤 날엔 누룽지 사탕, 어떤 날은 과일 사탕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가 저를 주려고 사탕을 사 오시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매일 같이 제게 사탕을 주셨어요.

덕분에 제가 운전하는 버스 한편에는 할머니가 주신 사탕 한 바구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 그거 아세요?
우리 할머니 때문에 치아가 
다 썩어서 몇 달안에 틀니 끼게 생겼어~
아니 사탕 장사를 하시나~
매일 무슨 사탕을 이렇게 많이 줘요~”

“그냥 주고 싶어서 주는 건데
뭐 그리 말이 많아~
하루에 하나씩만 먹으면 이 안 썩어!
그리고 운전하다 보면 잠 오잖아~
이거 먹고 잠도 좀 깨면서 
운전하라고 주는 거야~”

사실 할머니에게 그렇게 농담 식으로 말하기는 했어도 저는 내심 할머니가 주는 사탕이 참 좋았습니다. 믈론, 사탕 자체를 좋았던 건 아니지만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할머니가 제게 사탕을 줄 때면 꼭 보이는 눈빛이 있었는데 그 눈빛을 볼 때면 곡 나한테 온전한 어머니가 있었으면 이런 모습으로 나를 바라봐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정함이 느껴졌어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한 번도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었거든요. 어머니는 제가 어릴 적에 절 버리고 도망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랄 때 외로움도 많이 타고 안 좋은 쪽으로 비뚤어질 뻔한 적도 있었죠. 물론 다 옛날이야기고 지금은 결혼한 아내 그리고 장성했지만 사랑하는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서 가장으로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할머니 얼굴을 볼 때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떠오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단걸 안 좋아하면서도 가끔씩은

꼭 할머니가 준 사탕을 하나씩 집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한 달 정도 버스에서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친해지고 난 뒤 왜 맨날 아침부터 버스를 타서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건지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근처는 허허벌판이었거든요.

“늙으면 몸도 마음도 적적해지거든..
할망구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잠시 뿐이고
젊었을 때야 건강하니 이곳저곳 
돌아다니지만 늘어서는 그러기도 힘들지 않나
그러니 이렇게 버스라도 타는 거지.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구경도 하고
바깥 풍경도 좀 보고 이러고 집에 
돌아가야 마음이 편해”

“그래도 이렇게 매일 다니시는 거
자식들이 걱정 안 하세요?
저야 할머니 덕분에 말동무도
생겨서 너무 좋아요~
덕분에 이렇게 사탕도 얻어먹잖아요~
우리 마누라도 안 챙겨주는데
할머니가 이런 것도  챙겨주고~”

그렇게 말하는 할머니의 얼굴은 전에는 없던 쓸쓸함이 보였습니다. 어쩐지 마음이 쓰여서 그 이후 할머니를 볼 때면 괜히 말도 더 많이 걸고 나중에 시간 나면 이런 곳도 한번 가 보시라면서 괜찮은 명소도 추천해드리거나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무척 환하게 웃으셨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저도 더 할머니를 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오늘은 일 몇시에 끝나나?”

“이번만 운행하면 끝나요.
왜 그러세요?”

“아니.. 내가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고 해서
혹시 끝나면 늙은이랑 
밥 한 끼 하지 않을 텐가?”

“밥이요? 네 뭐..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리죠!”

왜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밥 한 끼 먹자는 할머니의 말에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갈만한 식당이 없어 고등어조림 파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할머니는 고등어 살을 발라 제 밥그릇에 올려주시더라고요. 제가 알아서 먹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습관이 돼서 그렇다며 챙겨주시는데 중년의 남자 승객으로 만난 사람이 발라주는 고등어를 먹는데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화장실 간 사이에 계산까지 다 하셨더라고요… 아무튼.. 그 일을 계기로 저희는 더욱 친해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매일같이 제 버스에 출석체크를 하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던 할머니는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버스에 타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보다 싶어서 별 생각 안 하고 넘어갔지만 일주일 이상 할머니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걱정되더라고요.

분명 마지막으로 버스 타셨을 때만 해도 안색이 조금 안 좋긴 했지만 버스를 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제가 걱정이 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기사와 승객으로서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제가 아는 것은 할머니 얼굴뿐이었으니까요. 

다짜고짜 누구를 붙잡고 할머니가 어디 계시는지 물을 수 도 없는 상황이었죠.

매일 대화하던 사람이 없으니까 어쩜 그렇게 허전한지 늘 똑같은 거리를 주행하는데도 할머니가 있을 땐 금방이라도 달릴 수 있던 곳이 이제는 한참을 느리게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게 유일하게 남은 할머니 흔적은 그동안 할머니가 버스를 탈 때마다 가져다주셨던 사탕들 뿐이었죠. 그 사탕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할머니를 만났던 것이 꿈이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저도 매일같이 버스를 몰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할머니의 그리움도 희미해져 갔습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버스를 몰던 그날, 평소에는 종점까지 가는 손님이 잘 없었는데 그날따라 버스 안에는 승객이 2명 정도 남아있었습니다.

그 손님을 보니까 거의 잊고 살았던 할머니 승객이 갑자기 생각나더군요. 할머니는 잘 지내고 계시려나 여전히 한가득 차  있는 사탕바구니를 보며 종점까지 운영을 했는데 승객 두 명이 일어서더니 뒷문으로 내리지 않고 제 쪽으로 바로 다가왔습니다.

순간 나쁜 일이라도 일어날까 싶어서 잔뜩 긴장하며 보고 있는데 두 승객은 꼭 제게 할 말이 있다며 잠시간 시간을 내달라고 하더군요.

승객들은 일단 식당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고 하길래 일단 알았다고 하고 버스를 주차시키고 내렸습니다. 

국밥을 한 그릇씩 시키고 제가 본론을 꺼내자 승객 중 한 명이 제게 빛바랜 낡은 사진을 한 장 보여줬어요. 젊은 여자와 어린아이였습니다.

젊은 여자는 제게 익숙하지 않았고 어린아이는 어쩐지 제 어릴 때와 닮았었죠. 뭔가 이상한 기분에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분명 전체적으로 낯선 사진이 틀림없는데 어쩐지 머리 한 구석에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그들에게  이게 무슨 사진이냐고 묻자 두 사람은 침묵을 하더군요,

그러더니 이내 다른 사진을 하나 더 꺼내 들었습니다. 하얗게 물든 머리, 익숙한 웃는 얼굴, 눈매.. 두 번째 사진은 저로서는 너무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에 있던 사람은 거의 한 달을 넘게 매일같이 차고지에서 버스를 타서 종점까지 함께 갔던 또 종점에서 차고지까지 제 말동무가 되어준 그 할머니 승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잊고 있던  할머니 얼굴을 그렇게 사진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제 앞에 있는 두 사람이 그 할머니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게 되었죠.

“대체 이 사진들은 뭡니까?
이 할머니는 제 버스를 엄청 자주 타주시던 분인데
갑자기 할머니 사진을 왜 보여주시는 거고 
이 낡은 사진은 또 뭔가요?”

두 분 중 저와 마주 보고 있던 한 사람은 제게 인생에서 최대로 큰 충격을 선사할 만한 말을 했습니다. 

“친어머니세요.. 기사님의 아니..
저희는 사촌 형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이 저는 알지도 못하던 사촌이며 매일같이 제 버스를 탔던 할머니가 사실은 친 어머니라니 믿을 수가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형님은 어머니가 형님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알고 있으실 텐데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계속해서 형님을 그리워하고 계셨어요.”

저는 한평생을 제 어머니가 저를 버렸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저를 키워주셨던 아버지도 어머니가 다른 사람과 바람이 나서 저를 버리고 갔으니 절대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었죠.

그리고 친할머니와 제가 아는 가족 모두는 어머니가 저희 집을 버리고 갔으니 평생 원망해야 할 존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릴 땐 엄마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원망하는 마음이 더 컸었죠. 

그런데 이제 와서 사실은 제 친어머니가 저를 버리고 간 게 아니며 평생 저를 그리워했다니 이 분이 정말 내 어머니가 맞으면 왜 나한테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걸까요?

물론, 친어머니라고 해서 단번에 반기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분명 늦게나마 부모 자식 사이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너무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제 사촌이라는 사람이 할머니가 왜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승객인척 버스에 탔는지 말해주었습니다.

“사실.. 이모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혈액암이라고 하셨어요.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 엄마인데 
그런 짐까지 안겨주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 친어머니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아들인 저와 함께 조금이나마 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행방은 두 사촌이 알아내 알려준 것이라고 했죠.

처음 혈액암 소식을 듣고 제 친어머니는 저에 대한 그리움을 많이 표현했다고 합니다. 죽기 전에 한 번만 보고 가면 소원이 없겠다고요.

그래서 사촌들은 제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수소문했고 다행히 빠른 시간 내에 제가 어느 동네에서 버스 기사로 일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모가 많이 편찮으세요..
의사 말로는 오늘밤이 고비라고 하더라고요…
돌아가시기 전에 꼭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시간을 내달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그리고 두 사촌은 제 친어머니가 제게 매번 사탕을 건네줬던 이유까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사탕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해요.

마구잡이로 울다가도 어머니가 제게 사탕을 쥐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 웃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기억에 제게 사탕을 가져다주었던 것이고요.

더 좋은 걸 드리고 싶어 하기도 했지만 형편이 여의치가 않은 상황이라 사탕 밖에 주지 못해서 굉장히 미안해하고 슬퍼하셨다고 했어요.

저와 마주 보고 앉아있는 둘은 울먹거리는데 저는 너무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그저 이 모든 것들이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저는 그렇게 아무것도 정리가 안된 와중에도 두 사람을 따라 어머니가 계신다는 요양병원에 갔습니다,.

애틋하거나 그런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그냥 그때 안 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까 한 달간 넘어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얼굴이 침대에 누워 숨을 헐떡거리고 있더군요. 그 모습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어머니!” 하고요… 힘든 와중에도 제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계셨는지 어머니는 제가 온 바로 다음날에 눈을 감으셨습니다. 

친 어머니가 그렇게 떠나시고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게 장례를 치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버스에서 함께 나눴던 대화들도 생각나고 이상하게 유독 정이 가던 사탕도 생각나고…

그리고 저는 어머니가 완전히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제가 알고 있던 사실에 무슨 오류가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헤어지고 나서 평생을 힘겹게 홀로 사셨다고 해요.

그리고 아버지와 헤어진 이유도 어머니가 다른 사람과 바람이 나서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랑 바람이 났기 때문이라고 했죠.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람을 묵인하고 그저 저 하나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바람을 들킨 것이 흠이 될까 두려웠던 아버지와 친할머니는 어머니를 쫓아낸 겁니다.

저와 생이별을 시키게 만들면서까지요… 어머니는 저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집에서 나가더라도 저만은 본인이 키우겠다고 하셨지만 아버지와 친할머니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저에게는 어머니가 바람난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평생 어머니를 찾을 일이 없게 만드신 아버지 대체 왜 그러셨는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치솟더라고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제가 성인이 된  뒤에는 어머니는 저를 찾을 수도 있었지만 일부로 그러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괜히 잘 살고 있는데 엄마라고 나타나서 마음만 혼랍스럽게 할 거라고요.

제가 만약 친어머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제가 알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고 어머니 역시 피해자임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아들로서 아무것도 못하고 보내드리지 않았을 텐데…

제가 아들로서 한 것이 겨우 돌아가시기 직전 손 한번 잡아 준 것이 청므이자 마지막이라는 게 너무나 원통합니다. 자주 가는 기사식당에서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대접했으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 이렇게 까지 후회가 남진 않았을까요..?

지금도 새벽 시간에 버스를 운전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앞문을 쳐다보게 됩니다. 할머니.. 아니 어머니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느릿느릿하게 계단을 올라와서 언제나처럼 박하사탕을 줄 것 같습니다.

카테고리: 이슈

0개의 댓글

답글 남기기

Avatar placeholder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
MENU
Days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