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남편 떠나고 우리 가족을 10년동안 보살펴준 남편 친구와 고민 끝에 재혼했는데, 첫날 밤 주방 찬장을 열어 본 순간 두려움에 맨발로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저는 홀로 중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는 40대의 싱글맘입니다. 남편과 저는 20대 중반에 처음 만나 서로 한눈에 반했었습니다.

서로 결혼을 약속하고 집안의 허락을 받아 결혼을 준비하려 했지만, 저희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남편을 심하게 반대하셨기 때문이죠.

사실, 남편은 고아원에서 자랐고, 대학도 나오지 못해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돈 없고 부모 없는 남편과의 결혼을 반대하셨고 설득해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 너 정말 왜 그러니?
부모가 반대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거야.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우리가 너 그런 놈한테 시집보내려고
힘들게 키웠는 줄 알아?
왜 뻔히 보이는 고생길을
니 발로 뛰어 들어가려고 그래? “

“엄마 진호씨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나 진호 씨랑 있으면 행복해
진호씨 말고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가 없어..”

“아무튼 절대 안 되니까.
결혼
하려고는 앞으로 우리 볼 생각하지 마라.” 

부모님은 끝까지 완강하셨고 애원하는 제게 부모님과 남편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추후 동첩을 난리 쳤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고아이고 가난한 남편과 결혼하길 반대했지만 저는 남편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에게는 상처를 주었지만, 결국 결혼을 선택한 저는 행복했습니다.

일찍 부모님을 잃고 외롭게 자라던 남편은 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제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더없이  기뻐했죠.

그런 남편은 자기와 다르게 아이는 부족함 없이 잘 키워보고 싶다며,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렇게 대리운전까지 시작한 남편을 마냥 말릴 수만 없었습니다. 

“여보, 그렇게 무리하다가
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우리가 좀 덜먹고 덜 쓰면 되니까.
제발 무리하지 마.”

” 나 무리 안 해~ 
힘이 남아 돌아서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힘들면 내가 알아서 쉴게.”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줄 알았더라면 저는 남편이 끝까지 말랐어야 했어요. 제가 임신 8개월 차에 접어들며  출산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늦은 새벽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벨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더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더라고요.

그제야 저는 남편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가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닐 것이라는 걸 미리 눈치챌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전화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어요. 대리운전에 나갔다 남편이 새벽길에 뺑소니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저는 너무 놀라서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고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남편은 10시간이 넘는 큰 수술을 하고 있었고 그때까진 남편이 얼마나 다쳤을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었죠. 

저는 그저 누군가에게 남편을 살려달라 빌고 또 빌었습니다.. 큰 수술이 끝나고 다행히 남편의 목숨은 겨우 붙어 있었지만 머리를 크게 다친 남편은 후로 의식을 찾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의식 없이 호흡기에 의지해 있었고, 병원에서는 앞으로는 기적을 바라고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뿐이었어요. 

기적이라는 말이 참 허무하게 들렸지만 저는 말에 조금의 희망을 걸고 몇 날 며칠 동안 남편의 병실을 지켰습니다. 며칠 동안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말이죠. 

하지만  남편은 사고를 당하고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이제 곧 태어날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말이죠.

의사는 남편에게 사망선고를 하고 호흡기를 떼는 의료진을 바라보고 있던 저는 결국 자리에서 졸도로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남편의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불쌍한 우리 남편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지켜주려면 제가 정신을 차렸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때 제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하나였습니다. 다름 아닌 남편의 친구 태성 씨였죠. 태성 씨는 남편과 함께 고아원에서 자랐던 남편의 하나뿐인 죽마고우였습니다. 

고아원 동기였던 두 사람은 피를 섞은 형제보다도 끈끈한 사이였어요. 그리고 제 남편의 형제 같은 친구였기에 저도 태성 씨를 가깝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태성 씨는 남편에게 가족이나 다름없었지만 사고 당시에는 저도 미처 겨를이 없어서 태성 씨에게 바로 연락을 하지 못했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떠나고서야 태성 씨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네요.  태성 씨도 갑작스러운 친구의 사망 소식에 많이 놀랐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태성 씨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놀라며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진호가 죽었다고요?”

“뺑소니였데요…
큰 수술을 받고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일주일을 못 버티고 그만…”

“세상에…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착한 진호가…”

그날 저희 두 사람은 남편의 죽음을 앞에 두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태석 씨는 힘들어하는 저를 대신해서 장례 절차를 밟고 상주 노릇을 하며 저를 도와주었어요.

남편이 대리운전을 하다가 뺑소니를 당했다는 소식에 처음에는 제 스스로를 원망했습니다. 남편이 밖에서 고생할 동안 잠이나 자고 있던 제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죄스러운 마음에 남편을 위해서 어떻게든 뺑소니범을 꼭 잡고 싶었어요. 범인이라도 잡아야 남편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만석의 임산부였던 제가 일을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태성 씨가 저를 도와주었어요.

“성희 씨 그놈은 제가 잡을 테니까. 
성희 씨는 우선 몸조리부터 좀 하세요. 
이제 곧 출산 예정인데 이 몸으로 다니는 건 무리예요.”

“그렇다고 제가 어떻게 집에만 있어요.
저 그놈 정말 잡아야 해요.
잡아서 벌을 주던 요절을 내던

어떻게든 죗값을 치르게 해야죠.”

“그건 제가 할게요. 
홀몸도 아닌데
무리하면 큰일 나요.”

이미 병원비에 장례까지 도움받은 게 너무 많은 상황이라 태성 씨에게 그런 부탁까지 해야 하는 게 정말 염치없었지만 태성 씨는 남편을 위해 나서겠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경찰들도 알아내지 못한 주변 CCTV까지 찾아내며 결국, 뺑소니범의 덜미를 잡아냈죠. 하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부족해 범인을 잡을 수는 없었고 그 사이 저는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산만 하고 나면 내 손으로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저는 아빠 없이 태어난 아이 걱정에 뺑소니범을 잡는 일은 결국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인 주제에 슬픔에 빠져서 뱃속의 아이를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는데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게 너무나 고마웠어요.

아이를 보기 전까지는 남편 잃은 슬픔에 잠겨 있던 저도 그때부터는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죠.

그런 생각에 저는 결국 친정 부모님께 다시 연락을 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반대하는 결혼을 하겠다며 연락 끊었던 제가 이제 와서 그런 염치가 없었지만 그때 저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염치고 뭐고 다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남편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외손자가 태어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소식에 저희 부모님께서 한달음에 달려와 주셨고 그렇게 저는 친정 부모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우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부모님은 속상해하시면서도  외손자를 예뻐하셨어요. 덕분에 저도 무사히 몸조리하고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남편 없이는 못 살겠다 싶어 전부 포기하고 싶었는데, 아직 기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그런 제 곁에는 저를 도와주는 태성 씨도 있었네요.

그래서 저는 제가 팔 수 있을 만한 물건들을 고르며 고심 끝에 유아 물품 관련된 제품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업이라고 말하기는 민망할 정도의 구멍가게였지만 그래도 그때는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더없이 감사하기만 했습니다.

내 아이에게 쓰는 물건을 고르듯 하나하나 직접 사용해 보고 물건을 사입했고,  진심이 통하는 법인지 저는 조금씩 성장하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덕분인지 몇 년 만에 사무실을 내고 직원까지 들 수 있었고 제 형편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어요.

그동안 홀로 아이 키우며 아등바등 살던 저도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이제는 돈 걱정 없이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것 해줄 수 있고 친정 부모님 도움으로 지내던 전셋집을 떠나 제 명의로 된 아파트도 얻을 수 있었죠. 

몇 년 사이 제 형편이 그렇게 된 것은 전부 태성 씨 덕분이었어요. 정말 태성 씨가 아니었다면 제가 혼자 뭘 할 수 있었을지 남편 대신 저희 모자를 챙겨주고 마음 써준 태성 씨에게 저는 늘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늘 빚을 갚아야겠다.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저는 태성 씨의 도움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태성 씨가 워낙 좋은 사람이었고 남편의 형제 같은 친구라 저를 챙겨준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태성 씨가 저를 친구의 아내가 아닌 여자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어요.

자꾸 제게 개인적인 일을 묻고 걱정을 하고 제 생일이나 선물을 챙기는 것에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그걸 느끼게 된 건 사실 조금 더 이전이었지만 그때까지 저는 그런 태성 씨의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고 싶었어요.

남편이 죽고 홀로 아이를 낳았던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셨던 부모님은 그때도 제가 아이를 두고 재혼하기를 바라셨었습니다.

저는 평생 재혼 생각이 없다고 했었는데 부모님은 몇 년이 지난 아직도 기대를 버리지 못하시는지 자꾸만 제게 재혼을 권하시고 계셨어요.

” 너 그 태성이란 사람이랑
아무 사이 아닌 거 맞아?
그 사람 하는 걸 보면
너를 친구 아내를 생각하는 게
아닌 것 같던데?
좋은 사람 같던데 잘해볼 생각 없니?
현이도 사람을 많이 따랐는데
현이도 아빠가 있으면 더 좋잖아
.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던 저도 외롭긴 했던 건지 제게 잘해주는 태성 씨에게 조금씩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저희 아들에게 잘해주는 모습에 늘 마음이 싱숭생숭했어요. 그런 제 마음을 눈치챈 태성 씨는 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 성희 씨 이미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저 사실 성희 씨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언제부터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저 현이한테도 좋은 아빠 되어줄 수 있어요.
성희 씨한테도 정말 잘할 겁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결국 저는 태성 씨에 진심에 마음에 문을 열었고 만남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결혼식을 올릴 순 없었지만 제가 웨딩드레스 한번 입어보지 못한 걸 안타깝게 생각하던 태성 씨 때문에 웨딩 촬영은 하기로 했습니다.

난생처음 입어보는 드레스에 순간 저도 모르게 남편 생각이 나더라고요. 태성 씨에게 마음을 열면서 남편에 대한 생각을 애써 잊으려 했는데 그때만큼은 오랜만에 남편이 떠올랐어요.

우리도 시절 이런 추억을 남겨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처 이루지 못한 남편과의 행복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마음을 애써 숨기고 태성 씨와 무사히 웨딩 촬영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날 바로 혼인 신고서에 도장을 찍었어요. 결혼식이 따로 없었으니 혼인신고를 한 그날이 우리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신혼집은 태성씨 집에서 지내기로 했어요.

재혼을 결정하면서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친정엄마가 한동안은 신혼 분위기도 내고 적응을 해보라며 아들을 대신 돌봐주기로 하셨거든요.

그래서 당분간은 저와 태성 씨만 지내게 되었네요. 이제 와서 신혼이라고 하기에는 남사스럽지만 그래도 그날은 저희가 처음으로 함께하는 신혼 첫날이었습니다.

저희는 첫날밤 분위기를 잡기 위해 와인을 한잔할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간단하게 곁들일 음식이라도 준비하려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남자 혼자 살던 집이라 주방에 뭐가 있을까 싶었지만, 앞으로 제가 써야 할 주방을 살펴보기라도 할 겸 태성 씨가 씻는 동안 저는 주방을 구석구석 뒤지고 있었습니다.

식사는 늘 밖에서 해결하고 집안 살림이라고는 모르던 태성 씨였기에 주방에는 정말 별것 없이 초라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천장을 열어보니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 사이에 웬 봉투 하나가 놓여 있더라고요. 주방에 웬 편지 봉투가 있을까 싶어서 봉투를 꺼내 본 저는 봉투를 보고 놀랐습니다. 

봉투 곁면에는 다름 아닌 제 이름이 적혀 있었거든요. 그래서 순간 저는 그게 태성 씨가 저를 위에 숨겨놓은 러브레터라 생각했어요. 

제가 집에 들어오는 첫날을 기념하려고 태성 씨가 나한테 편지를 썼구나 생각했죠.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펼쳐보게 된 저는 편지의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제게 편지를 적은 사람은 태성 씨가 아니라 그동안 제가 미처 존재조차 몰랐던 태성 씨의 애인이었습니다.

“조성희 씨 보세요. 성희 씨는 제 존재로 모르겠지만,
저는 성희 씨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박태성이 성희 씨 얘기를 자주 했었으니까요.
그리고 박태성이 저를 버리고
성희 씨에게 간다는 걸 알고
이렇게 편지를 남기게 되었어요.
성희 씨는 박태성이 사람 좋고 순진한 남자인 줄 알겠지만,
사실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에요.
밖에서는 천사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약자 앞에서는 험악하게 돌변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저한테도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굴더니,
언젠가부터 저를 가스라이팅하고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런 집착은 폭력으로까지 이어졌었죠.
제가 바람을 피운다느니 자기를 속였다느니
말도 안 되는 의심을 하면서 제게 폭언을 하고
심지어는 손찌검까지 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을 차마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고통이 계속되다 보니
그게 사랑이 아닌 집착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고요.
결국 사람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본인밖에 없어요.
좋은 친구인 척, 좋은 남자인 척 해도
결국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요.

성희 씨에게도 분명 그럴 겁니다.
이미 제가 들은 얘기들이 있거든요.
그 사람 성희 씨 사망보험을 노리고 있어요.
부디 조심하세요. “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제게 남겨둔 편지를 보고 저는 너무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방으로는 일절 드나들지 않는 태성 씨 몰래 내가 발견하기를 바라고 주방의 편지를 숨겨 놓았다던 그녀는 제가 몰랐던 태성 씨의 실체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의처증에 폭력성에 그런 이야기들은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태성 씨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것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솔직히 말들을 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사망 보험금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저는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희가 재혼을 결정하고 혼인 신고를 하기 전부터 태성 씨가 제 보험에 대해 얘기를 했던 게 있었거든요.

저는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고 나서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었어요. 이제 아들에게는 나밖에 없는데 나도 갑자기 잘못되면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될까 싶은 걱정에 저는 여력이 될 때마다 조금씩 보험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당장 먹고살기도 급급해서 실비보험 하나 없던 제가 말이죠. 그렇게 보험을 하나씩 들다 보니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사망보험도 몇 개 가입을 두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제 아들을 두고 죽을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벌어지면 우리 아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서 말이죠.

그리고 그걸 알고 있던 태성 씨가 결혼 전에 제게 보험 수혜자를 자신 앞으로 두자고 말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생각하면서도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싶어서 나중에 차차 생각해 보자며 대충 넘어갔었어요.

하지만 그 후로도 몇 번 수혜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는 했었죠. 이상하다 싶기는 했었지만 그거야 앞으로 부부들 사이에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즈음 제가 큰일을 하나 겪었던 게 생각나더라고요. 저는 평소 견과류 알러 지기가 심한 편인데 그걸 태성 씨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날은 태성 씨가 착각을 했는지 견과류가 소량 들어간 음료수를 저에게 권했습니다. 그냥 두유인 줄만 알고 있었던 저는 그걸 받아 마셨고 다행히 제가 늘 응급약을 들고 다니기에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어요.

태성 씨는 그제야 자신이 착각을 했다며 제게 미안해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착각을 했던 게 맞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였죠.

혹시 태성 씨가 제 목숨을 누리고 시험을 해봤던 게 아닌가 말이에요.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저는 갑자기 모든 것이 무서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당시 태성 씨는 운영하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사업 규모를 줄이고 대출까지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저한테 자세히 말을 해주진 않았지만 가끔씩 카드 연체 문자가 날아오는 걸 저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태성 씨의 자금 사정이 전과 다르다는 건 확실해 보였거든요. 그리고 그런 편지를 읽고 나니 그런 정황들이 모두 예삿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낌새를 차린 제가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던 그때, 태성 씨가 주방으로 다가왔고 제 손에 편지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급하게 편지를 숨기려 했지만, 태성 시간 말 빠르게 제 손에 있던 편지를 낚아채 갔어요. 

그 편지의 내용이 뭔지 대충 파악한 태성 씨는 순식간에 표정이 돌변했습니다. 화 한번 낼 줄 모른다 생각했던 사람이 제가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저를 노려보고 있더라고요.

“성이 씨 이거 뭐예요? 이거 다 읽었어?
설마 이런 헛소리를 믿는 건 아니죠.
그러면 나 좀 화가 날 것 같은데,
왜 미친년이 이딴 소리 하는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어
.” 

저도 평소라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믿기보다는 오래 알고 지낸 태성 씨를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는 제게 그런 여자의 존재조차 숨기고 태성 씨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태성 씨의 날 선 반응에 그런 저의 의심은 더욱 확신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저의 본능이 자리를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공포에 질려 움직이지 않은 몸을 겨우 진정시키며 저는 조금씩 태성 씨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제게 다가오려는 사람을 힘껏 밀치고 미처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맨발로 정신없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멀리서 나를 쫓아오는 태성 씨의 소리에 저는 더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고 도움을 구할 정신도 없었어요. 

겨우 사람들이 있는 큰길로 도망쳐 나와서야 주변 경찰서를 찾아 들어갈 수 있었어요. 야밤 중에 맨발로 뛰어 피를 철철 흘리는 저를 본 경찰관들이 놀라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한참을 진정해서야 겨우 집에 있었던 일을 설명할 수 있었어요. 그 편지며 제가 겪었던 일까지 전부 말이 혹시나  믿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했지만, 다행히 경찰들은 제 말을 허투로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태성 씨에 대한 신원 조회를 한 경찰 애들은 태성 씨가 이미 사기와 폭행으로 수배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어요. 

“박태성 이 사람 전과도 하나 있네요. 
몇 년 전에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스토킹과 폭행 전적이 있었어요. 
아직 집행계획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을 벌여졌으니 이번에는 아마
실형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잘하면 살인 미수까지도 수사해 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정말인가요? 
그럼 사람 벌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럼요. 저희가 어떻게든
도와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

그 말에 얼마나 감사했던지 저는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오래전 남편의 사고를 겪었던 절은 그날 후로 경찰에 대해 상당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시에 경찰들은 저희 남편 사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뺑소니는 못 잡는 게 경찰이라며 제대로 수사해 볼 생각도 없어 보였거든요. 저희가 어떻게든 구했던 CCTV 증거를 두고도 범인을 잡지 못했었던 경찰을 보며 저는 후로 경찰들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고 경찰들을 절대 믿지 않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제가 경찰들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이 참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경찰들을 만난 덕분에 저는 박태성을 살인 미수와 사기로 고소를 할 수 있었어요.

아쉽게도 제가 아직 금전적으로 피해를 본 것이 없었기에 사기죄는 성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살인미수 혐의는 일부 인정이 되어 폭행으로 집행 유예 중이었던 사람은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어요.

물론 몇 년은 되지 않지만 그냥 풀려나는 일이 허다한 마당에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더라고요. 덕분에 저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후로 저는 박태성과 혼인 무효 소송에 승소하며 그 사람이 저를 다시는 찾지 못하게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뉴스를 보면 하루말도 하고, 별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에 제가 그런 놈을 옆에 두고도 큰 피해를 당하지 않은 건 정말 천운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저희 남편이 도와준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런 남편을 두고 제가 새 출발 할 생각을 했다는 게 이제 와서는 정말 후회스럽네요.

그런 남편을 생각하면 저는 남편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는 재혼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아들만 보고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럼 앞으로도 아들을 잘 키우며 꿋꿋하게 살아가려 노력할 테니 여러분도 저를 응원해 주시기를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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