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술집 좀 그만나가면 안돼?” 술집에서 일하는 엄마가 창피해서 어릴 때부터 피해다녔는데, 나중에 알게된 엄마의 ‘비밀’에 나는 목이 터져라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에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18살이었는데,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가 돌아가신 게 믿기지 않지만, 조금씩 적응이 된 것 같아 제 이야기를 전해보려 합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서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엄마한테 왜 나만 아빠가 없냐고 아빠 보고 싶다고 떼써본 적도 있었지만 엄마는 계속 안된다고 다그치기만 했었어요.

엄마는 동네 작은 술집을 운영했어요. 제가 살던 동네는 작은 읍내였는데 젊은 사람도 없었고 간단하게 술을 마시는 그런 술집도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내 사람들은 다들 저희 엄마를 술집에서 일한다며 불건전하다고 생각했어요. 동네에 술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저희 엄마밖에 없다 보니 동네 사람들은 저희 엄마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위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성격이라. 모든 곳에 술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저희 엄마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았어요. 그러면 다들 저에게 술집 여자 딸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 뻔했거든요.

저와 엄마는 둘이서 작은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가게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 살 정도로 형편이 가난했습니다.

엄마 가게도 소문이 별로 좋지 않다 보니 손님도 별로 없었고 가끔씩 동네 아저씨들이 오시는데 엄마한테 말도 안 되는 무리한 부탁을 했습니다.

엄마가 아는 술집은 그런 곳이 아닌데 동네 아저씨들은 항상 저희 엄마를 술집 여자 취급했어요. 그 아저씨들도 먹여 살릴 자식도 있고 가정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러고 다니니까 화가 났습니다.

저희 엄마는 안 된다고 우리 술집은 그런 곳이 아니라고 해도 아저씨들은 힘으로 저희 엄마 억지로 안혀서 술을 따르라며 강압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엄마는 반항을 했지만, 여자의 힘으로 남자를 이길 수 있나요? 정말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엄마가 동네 아저씨들처럼 막무가내인 남자와의 사이에서 저를 원치 않은 임신으로 낳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즘 들어서 엄마가 가게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과정 중에 계산 문제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손님들한테 돈을 더 적게 받는다든지 거스름돈을 너무 많이 거슬러 준다든지요.

엄마한테 몇 번 주의를 줬지만 계속 “맞다. 깜빡했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라는 말만 했어요.

저희 동네가 워낙 작다 보니 동네 아줌마들은 똘똘 뭉치는데 저희 엄마만 외롭게 왕따를 당했어요. 저는 정말 화가 났고 어이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제가 엄마의 딸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조용히 하고 있어야 했죠.

저는 나름 이 동네에서 어른들과 친했고 저보고 공부도 잘하고 싹싹하다면서 칭찬을 많이 들었거든요. 다들 저한테 어디 사냐고 하면, 이 동네에서 안 살고 옆 동네에서 산다고 했어요.

그러면 다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거든요. 동네 사람들은 저희 엄마한테 손가락질하고 괴롭히는 것이 사그라들 생각은 하지 않았고 수위가 점점 세졌습니다.

엄마 가게 앞에 쓰레기도 버리고 가고 계란도 던지고 가서 엄마가 그걸 치운다고 고생을 많이 했어요.

“엄마는 화도 안 나?
아줌마들이 하는 말들 다 거짓말이잖아.”
언제까지 참고만 있을 건데?
엄마가 이렇게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엄마를 우습고
만만하게 보는 거 아냐!”

“딸… 엄마가 못 배운 엄마라서 미안해…
그런데 돈을 돈 벌려면 어쩔 수 없어.
우리한테 마지막 희망이 이 가게잖아.
그리고 엄마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든 다 상관없어
나중엔 다 기억이 안 나더라고.
나쁜 기억은 금방 잊어지더라..”


엄마는 동네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이 지금은 하나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저는 엄마가 일부러 마음속으로는 앓고 있는데, 제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같았죠.

그런데 이렇게 심한 짓을 해도 저희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동네 사람들은 오기가 생겼는지 저희 동네에서 나름 부자인 집의 아줌마의 남편과 저희 엄마가 바람이 났다고 하는 겁니다.

동네 아줌마들은 부잣집 아줌마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다들 아줌마랑 친해지고 싶어서 일부러 저희 엄마한테 더 달려들었죠.

아줌마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어젯밤에 둘이서 다정히 있는 모습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데 어젯밤 저희 엄마는 저와 함께 집에 있었거든요.

그 사실은 저는 알고 있었지만 동네 사람들한테 말할 수 없었어요. 왜냐면, 엄마한테 했던 행동들을 저한테 똑같이 할 것 같았거든요.

그게 무서워서 저는 엄마의 편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가도 아이들은 술집 여자가 저희 엄마인 줄 모르니까 대놓고 험담을 하더라고요.

저는 저희 엄마를 험담하는 말에도 “그런 것 같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 동네에서 나름 부잣집인 애가 저희 반이었는데 애들은 그 아이를 좋아했고 저랑도 아주 친한 사이였습니다.

근데 소문이 퍼지자 부잣집 친구는

“야, 술집 여자가 착해 빠진 우리 아빠
돈 냄새 맡고 꼬리 친 거라며?
내가 감히 우리 아빠 꼬신 불여우 운영하는 술집
꼭 망하게 한다. 두고 봐”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아예 없는 말을 정말 있었던 일인 것 마냥 내뱉는 게 화가 나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매일 가게에서 있다 보니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본 아저씨는 항상 혼자서 저희 술집에 와서는 저희 엄마한테 하루만 데이트해 달라며 매달렸는데 저희 엄마가 싫다고 거절했거든요.

그런데 부잣집 남자가 거절당한 게 쪽팔렸는지 저희 엄마를 짓밟기 위해 없는 말을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 부잣집 남자의 딸인 제 친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야, 그리고 아줌마 딸 하나 있다는데
누군지 모르겠거든?
근데 우리랑 나이가 비슷한가 봐
애는 자기 엄마가 그러고 다니는 줄은 알까?
정말 가엽다. 그렇지 않아?”

이 말을 들은 제가 늘 그랬던 것처럼 받아칠 줄 알았을 텐데 제가 무표정으로 조용히 듣고만 있으니까. 조금 놀란 눈치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점점 심해지는 엄마의 험담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야, 왜 대답 안 해?”

라고 저를 툭 치길래 순간 저도 모르게 친구의 뺨을 때려버렸습니다. 친구는 뺨을 부여잡고 제게 묻더군요.

“야, 너 미쳤어?!
갑자기 왜 그래?”


“야! 너네 아빠 진짜 찌질하다.
너희 아빠가 아줌마한테
한 번만 데이트해 달라고 해서
사정사정하는 거 그 아줌마가 거절하는 거
내가 다 봤거든?!
자기가 여자한테 거절당한 게 창피해서
퍼뜨린 거짓말이라고!
너희 아빠 부끄럽지도 않니?”

“뭐야? 너 설마 술집 아줌마 딸이냐?”


저는 차마 거기다 대고 저희 엄마의 딸이라고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뒤에 다가올 후폭풍이 너무 무서웠거든요.

저는 친구들과 늘 잘 지냈고 쾌활한 성격인데 갑자기 제가 잘 지내던 친구의 뺨을 때리고 나쁜 말을 하니 반 친구들은 다들 당황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반으로 들어오셔서 저희는 교무실로 끌려갔죠. 이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몇 분 뒤 친구의 어머니가 교무실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교무실 문을 열자마자 소리를 지르셨어요.

“누가 우리 딸 때렸어?! 누구야?!
내가 절대 가만 안 둘 거야.”

자기 딸의 얼굴이 빨갛게 부어오른 모습을 보고는 옆에 앉아 있는 저를 쏘아보았습니다.

“니가 우리 딸 얼굴 이렇게 만들었니?
도대체 니가 어떤 집안 딸이길래
내 딸 얼굴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너 엄마 오면 두고 봐”

저는 엄마가 제발 학교로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필 친구 앞에 아빠가 저희 엄마랑 이상한 소문이 퍼졌으니까요.

그런데 몇 분 뒤 저희 엄마는 친구의 엄마와는 사뭇 다르게 교실 문을 살살 열었고 옷도 거지처럼 다 헤지고 낡은 옷을 입고 조심스럽게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일부러 엄마를 못 본 척했지만, 엄마는 제 옆으로 오더라고요. 교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엄마의 딸인 것을 알고 많이 놀란 눈치였고 친구의 엄마는

“뭐야? 니 딸이 우리 딸 때린 거니?”

라며 저희 모녀 사이를 비웃었어요.

“너희 내가 똑똑히 갚아줄 거야”

엄마는 그 아줌마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죄송하다며 허리를 90도로 접어 사과했어요. 그 친구가 먼저 저희 엄마 욕을 심하게 했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사과부터 하는 엄마가 너무 짜증 났어요.

“그럼 꿇어.
그럼 생각해 볼게.”

아줌마는 미안하면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했고 저희 엄마는 “네?” 라고 하며 당황했죠.

“우리 남편한테 꼬리친 것도 모자라서
우리 딸 뺨까지 맞았는데
내가 이 정도는 하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제가 진실을 말하려고 할 때 엄마는 아줌마 앞에서 무릎을 꿇어버렸습니다.

저는 자존심도 없는 엄마가 너무 속상했고 그때 엄마는 눈물을 조금 흘리고 있는 것 같았죠. 교무실 분위기도 굉장히 숙연해졌는데 아줌마는 그게 웃겼는지 저희 엄마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저희 동네에서 부잣집 아줌마니까 그만하라고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화가 정말 치밀어 올랐고 당장 아줌마를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는데, 아줌마는 사진을 다 찍고 할 일 끝났다면서 친구를 데리고 교무실을 빠져나갔어요. 선생님도 저에게 오늘은 조퇴를 하라고 하셨고 엄마와 같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얼마 지나지 않아 딸 우리 붕어빵 먹을까? 라며 웃으면서 말을 하는 거 있죠.

“엄마는 속도 없어?
방금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는데
지금 붕어빵이 입에 넘어가?!”

엄마가 모른 척을 하는 게 너무 화가 났지만 엄마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런 사람 앞에다 대고 화를 내도 아무 의미 없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혼자서 상처를 치유했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죠. 다음날 학교로 가니 친했던 반 친구들이 저를 멀리하는 게 느껴졌다 저도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날, 선생님께서

“얘들아. 곧 수학여행인 거 알지?
내일까지 경비 꼭 가져와”

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수학여행은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제주도로 정해졌죠. 저는 친구는 없었지만 수학여행을 가서 친구들과 다시 돈독해지고 싶은 마음에 무조건 수학여행을 가리라고 다짐했죠.

집으로 갔는데 엄마가 그날따라 일을 나가지 않더라고요. 계속 하루종일 집에서 잠만 자고 누워만 계셨습니다. 힘들어서 조금 쉬나 보다 생각했어요.

“엄마, 나 내일
수학여행 경비 내야 한대.
돈 좀 주라”

“얼만데?”

“10만 원”

당시에 10만 원은 정말 큰돈이었고 무엇보다 저희처럼 가정형 편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액의 돈이었습니다.

“아무리 돈 없어도 딸한테
이건 해줄 수 있지 않아?
그리고 돈이 없으면 나가서 일을 해야지.
지금 누워서 뭐하고 있는 거야?”


“엄마가 오늘은 너무 힘이 들어서
며칠만 좀 쉬려구…”

“며칠이 우리한테 타격이 얼마나 큰데
그냥 늘 하던 대로 밖에서

일하고 오면 팁 많이 받잖아.

그냥 그거라도 들고 와”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가 자식 수학여행 보내주는 건 당연한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엄마는 이불 밑에서 주섬주섬 통장을 하나 꺼냈고 저에게 주었어요.

“이거 우리 전 재산이야.
딱 20만 원만 꺼내서
도로 나한테 줘야돼..”

통장을 열어보니 돈이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뭐야? 돈 있으면서 없는 척은…”

라고 한 뒤 은행에 가서 20만 원만 뽑았어요. 그런데도 돈이 조금 많이 남아서 수학여행에서 예쁜 옷을 입고 싶었기 때문에 옷도 조금 샀고 친구들 버스 안에서 맛있는 간식도 나눠주고 이야기도 많이 해보려고 초콜릿 같은 간식거리도 샀습니다.

그러다가 집에 가는 길에 신발 가게에서 정말 사고 싶었던 신발이 있어서 신발도 사버렸습니다. 엄마도 내가 예쁘게 꾸민 모습 보면 좋아하실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집으로 가니까 엄마가 통장을 달라고 말을 안 하더라구요.

“엄마 나왔어.”

“그래…어디 갔다 왔어?”

“어디 갔다 오긴 수학여행 비 뽑으로
은행 갔다 왔지”

“무슨 돈으로?”

“엄마가 줬잖아. 자 여기 통장”

저는 엄마가 제가 쓴 돈을 보고 화를 많이 낼 줄 알았는데 까먹었는지 통장을 열어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저는 수학여행 경비를 내고 새로운 신발을 신고 학교를 가니 친구들이 이 신발 어디서 샀냐며 저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그 신발은 워낙 비싸고 당시에 정말 유명했던 거라서 가지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많았죠. 저를 아직까지 술집 여자 딸이라고 욕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몇몇 친구들은 그런 건 상관없다며 저에게 다가와 주었어요.

다행히 저는 친구들과 친해진 고 수학여행을 가기만을 기다렸죠. 그렇게 수학여행을 떠나는 당일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그때까지 계속 일도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서 누워 잠만 잤습니다.

저는 드디어 술집을 그만두고 다른 평범한 일을 하나 싶었죠. 그래서 엄마가 하루종일 잠만 자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저는 오로지 수학여행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엄마 통장에서 몰래 수학여행 가서 쓸 용돈을 빼니까 통장에 돈이 조금 부족한 거 있죠. 아무튼 저는 엄마가 다시 벌어놓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학여행에 열심히 놀고 엄마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일 정도 제주도에서 행복하게 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는 제가 3일 전에 집을 떠났을 때랑 똑같은 포즈로 누워 있었어요.

엄마는 내 인기척에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또 자는 줄 알았고 그래서 엄마를 깨우지 않은 채 짐 정리를 한 뒤 잊고 앉아있는데, 이제 해도 점점 져가고 저녁밥이 먹고 싶었습니다.

얼른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마한테 말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몇 시간 동안 똑같은 자세로 잠만 자더라고요. 그래서 보다 못한 저는 엄마를 흔들면서 깨웠어요.

그런데 엄마의 몸은 정말 차가웠습니다. 너무 얼음장 같았고 저는 설마 엄마의 콧구멍에 손을 대보니 엄마는 숨을 쉬지 않더라고요.

저는 믿기지 않았고 슬퍼할 틈도 없이 엄마 옆에 놓여진 편지 한 통을 발견했어요.

“딸 엄마야 수학여행 잘 갔지?
아마 갔다 오면 엄마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없을 거야.
얼마 전에 한 사실인데 엄마가 요즘 깜빡깜빡하고
건망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더니,
치매 초기라고 하더라고.

우리 딸이 엄마가 거스름돈도 이상하게 계산하고
아줌마들이 엄마 괴롭혀도 왜 아무 말도 안 하냐고 했을 때
엄마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어.
그래도 엄마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엄마는 치매가 걸려도 나쁜 행동을 당한 것을 잊을 수 있으니까.

치매가 싫진 않아. 그런데 정말 딱 하나 싫은 게 있었어.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야.
엄마는 우리 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면 정말 슬플 것 같았단다.
그리구 야속하게도 엄마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

하늘나라에 가서 아빠랑 같이 알콩달콩 살고 있을게…
딸이 아빠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가 말린 건
아빠가 아파서 먼저 하늘나라로 갔거든…
그래서 보여줄 수가 없었어.. 정말 미안해
엄마는 먼저 하늘나라로 가서 우리 딸 지켜보고 있을게
딸. 엄마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지?
그리고 이불 밑에 있는 통장,
엄마가 우리딸 대학보내려고 모아둔 돈이야..
그걸로 행복하게 살아…
엄마 사망보험금도 곧 나올 테니 그것도 보태서
이제 우리 딸 행복했으면 좋겠어.
가난이 너무 힘들었지? 이제 다 끝났어…
우리 딸 이제 고생 그만해… 사랑해… “

저는 엄마의 편지를 다 읽고 펑펑 울며 엄마를 껴안았어요. 진작에 엄마가 자주 깜빡거릴 때 알아채지 못한 제 탓을 했고 엄마가 말한 전 재산을 바보같이 탕진한 제 자신이 너무 미웠습니다.

찾아보니 엄마가 잠을 많이 주무시는 것도 일종의 증상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엄마가 잠을 많이 자는 것을 그저 좋아만 했던 저는 정말 죽어도 싼 불효녀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평생을 죄책감을 안고 살아갔어요. 이제 나이가 42세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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