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회령에서 결혼하고 서울 변두리로 온 어머니의 일생은 독한 삶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적은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 같았죠. 평생 제대로 된 옷 한 벌 입는 것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 학교로 오는 엄마의 옷은 장 속에 오래 묵었던 옛날 옷의 접힌 주름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옷이 없어서 학부형 회의에 오기가 꺼려진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먹는 것에도 인색했습니다. 과일, 달걀이 어머니 입 속에 들어가는 걸 보지 못했고 고기도 먹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늘 오래된 김치 조각과 찬밥이 전부였죠.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1월의 칼 바람이 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연탄을 때는 작은 무쇠 난로의 공기구멍은 항상 닫혀있었습니다.
내가 공기구멍을 조금 열어 놓으면 어머니는 다시 와서 그걸 닫아버렸습니다. 연탄 한 장으로 하루를 버텨야 한다면서요…
어머니는 한겨울에도 불기가 없는 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는데 방 안의 구석에 놓아두었던 그릇의 물이 얼음덩어리로 변해 있기도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나는 어머니와 처음으로 부딪혔습니다. 거리가 얼어붙던 어느 겨울날, 어머니와 나는 찬바람이 이는 도로가에서 전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천천히 뛰는 정도로 느릿 느릿 가는 전차는 30분이 넘도록 오지 않았습니다. 얇은 신발 속의 발가락이 냉기로 얼어붙은 것 같았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버스를 타고 가자고 졸랐고 어머니는 나를 보고 정신 빠진 놈이라며 욕했습니다. 당시 버스비는 5원이었고 전차는 그 반값은 2원 50전이었죠.
어머니는 아침마다 학교를 갈 때 오원짜리 은빛 동전 하나를 내게 주었습니다. 그 돈으로 전차표를 사서 학교를 갔다 오라는 것이었죠.
추우니까 자주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를 타자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정신이 썩은 놈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 추운 자리에서 벌로 1시간을 더 서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전차가 와도 어머니는 타지 않았습니다. 칼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나는 1시간 동안 서 있는 벌을 받았습니다.

어렸던 나는 도무지 그 벌이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아이도 있었는데 대부분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나는 그 버스조차 탈 자격이 없다는 사실에 반항기가 일었습니다.
어머니한테 벌을 받은 다음 날, 나는 버스도 전차도 타지 않았습니다. 신설동에서 광화문까지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걸음으로 걸어갔다가 또 걸어왔었죠.
그렇게 하면 은빛 나는 동전 하나가 생겼습니다. 나는 마당 한구석에 조그만 깡통을 묻어놓고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깡통에 은빛 동전 하나씩을 넣었습니다. 먼 길을 걸어갔다 오면 동전 한 닢을 버는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어느 날 어머니에게 동전이 가득 든 깡통이 발견됐습니다. 어머니는 그걸 내가 도둑질한 것으로 확신하고 얼굴이 분노로 시퍼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어머니한테 말하고 돈이 좋으면 그 돈 다 어머니 가지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외아들인 너를 교육시키려고 했던 건데..라고 혼잣말 같이 말하면서 침묵하시더군요.

저는 성인이 되어 변호사로 개업을 하고 나서부터는 매달 얼마씩 용돈을 어머니에게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돈으로 친구나 이웃에게 밥도 사고 편안히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생 철저했던 절약하는 습관은 버리기 힘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의 삶 형태는 마찬가지였죠.
다만, 달라진 점이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동네에서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쌀집에 부탁해서 쌀가마를 보내기도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당에서 어떤 행사가 있으면 손이 크게 헌금을 한다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2016년 새해가 밝아왔을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세배를 받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아흔 살이다. 만주에서 전쟁을 겪었고, 대동아 전쟁을 겪었고, 6·25 때도 남아서 오래도 살았다. 산다는 게 이제는 지겹구나”
어머니는 이제 20살 때 북에서 헤어져 돌아가신 부모 곁으로 가고 싶으신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
어머니가 은행에서 찾은 수표 두 장을 내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나한테 준 용돈은 거의 쓰지 않고 모아뒀다. 5억 원을 채우려고 했는데 모자란다. 아무래도 그렇게 못할 것 같구나..”
어머니는 내게 받은 용돈을 쓰지 않고 돌려주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깡통 속의 동전들을 어머니께 반납했던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요즘, 내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적은 수익을 위해 사람들은 먼 길을 갑니다. 그러면서도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도 땅에서 떼지 않으려고 하죠.
기억 저쪽에서 초등학생인 내가 은빛 동전 한 닢을 위해 먼지가 날리는 우중충한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노인이 된 이제는 진리를 위해 성경의 한 페이지를 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