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오랜 별거 끝에
이혼했습니다.
졸지에 세 식구의 가장이 되어
당장 직장이 필요했습니다.

마흔 중반에
별다른 능력도 없는 저에게..
직업을 구하기란 참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20년 만에 취업하는 터라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고생 끝에 구한
첫 직장은
의류 매장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이 오랜만이라
적응이 쉽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해 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이 가게를 접는 바람에
3개월 만에 직장을 잃었습니다.
부리나케 동네 슈퍼에 취직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힘들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시작하니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일주일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집 근처 식당에서
홀 서빙을 했습니다.

좌식 식당이라
허리를 수백 번 숙이며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허리와 무릎이 너무 아파
한 달도 못 가 그만두었습니다.
‘먹고사는 게 쉽지 않구나. ‘
번듯한 직장 구하기도 힘들고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기에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뽑아 준다면
모든 하겠다 다짐한 후,
제과점, 약국, 백화점 등을 거쳐
열 번째 직장인 마트에 안착했습니다.
매장은 하루
평균 천여 명이 드나드는 바쁜 곳입니다.

계산부터 고객 응대까지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처음엔 정말 힘들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었습니다.
날마다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억울하고 속상할 때가 잦았습니다.
그래도 손님들에게
무조건 사과하며 ,
연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가 일 년 같은 어두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출근할 땐 끌려가는 심정이었고,
퇴근할 땐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장이기에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홉 번의 직장 경험을 통해..
힘든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고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이 끝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중,
언젠가부터 손님들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어떤 이는 돈을 건네는데
손가락 하나가 없고,
어떤 이는 한쪽 눈이 안 보이고,
또 누구는 매일 술만 사고…
고개를 조금만 돌렸을 뿐인데..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편이 떠난 뒤로
울기도 많이 울고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힘겹고
외로운 일이며,
누구에게나 매서운 폭풍우가
한 번쯤은 휩쓸고 지나간다는 것을….

삶의 세파 앞에
우리는 너무나 작고 연약하지만
그 안에서 내면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견뎌야 함을..
어느덧 5년이 지났습니다.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었는데
여기까지 왔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깨의 짐이 조금은 덜어진 듯하지만
그래도 계속 일할 것입니다.
산다는것은 다 그런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