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장례식장에 갔었습니다. 친한 녀석의 친한 녀석… 즉. 저하고는 중학교 동창이지만 학창 시절 안면만 있을 뿐, 왕래가 없어서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그런 친구의 아내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1년, 한창 좋은 신혼일 텐데… 미래를 꿈꾸며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이들에게 너무나도 무서운 불행이고 너무도 잔인한 운명이 찾아온 것이죠.
장례식을 향하며 같이 가던 친구 녀석에게 들어보니 정말 사이좋은 부부였는데 그래서 너무 안타깝다고 하더라고요.
전 그렇게 친한 녀석의 권유로 검은색 양복을 찾아 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지하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니 너무도 한산하더군요.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문객도 없고 조의금도 다른 친구 녀석이 받고있었죠. 저하고는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의 장례식장…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다지 감정의 동요가 올 정도로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씁쓸한 장소에 그 씁쓸한 분위기.. 그리고 얼마나 울었는지 일어설 기력조차 없는 것 같은 얼굴을 보니 기억나는 친구 녀석… 동요가 되더군요.
처음 뵙지만, 이제 뵐 수 없는 너무나도 해맑게 웃고 계신 영정 사진의 제수씨에게 절을 올리고 상주인 친구 녀석과 맞절을 하고..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그냥 손만 잡았습니다.
저희는 입술이 시퍼렇게 질린 게 잠도 안 자고 자리를 지킨 것 같은 녀석이 안쓰러워 그 녀석을 끌다시피 데리고 조문객 장소로 나왔습니다.
밥을 앞에 차려두고 얼른 한수저라도 뜨라고 협박하듯 재촉했지요..
그런데… 계속 눈에 띄는 것이 친구 녀석이 울면서도, 맞절을 하면서도 손에 놓지 않은 낡은 운동화, 주름이 져있지만 깨끗이 빨아진 나이키 농구화같은 운동화를 이 녀석은 한 팔로 품에 안다시피 들고 있었습니다.
친구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운동화는 왜 그렇게 들고 있는 거냐? 잠깐 내려놓고 밥부터 먹자…”
달래듯이 말을 해도 이 녀석은 더욱 끌어안듯이 감싸 쥐고 고개만 저었습니다. 사연이 있는 거구나… 사연이 있는 물건이구나.. 대충 짐작이 가더라고요.
같이 왔던 친구 녀석과 밖에 나와 담배한대를 피웠습니다. 터져 나오는 한숨이 연기와 섞여 조금은 희석이 되더군요.. 담배를 끊지 못하는 또 한 가지 이유겠지요.
불똥을 주차당 바닥에 튀기며 전 친구 녀석에게 물어봤습니다.
“그 운동화 넌 뭔지 아냐?”
옛날부터 애지중지하는 운동화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굉장히 아꼈었다고요…
다시 장례식장으로 들어가 간단한 음식에 소주병을 따라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상주인 친구 녀석도 자리에 오더군요. 아깐 너무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고..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더군요.
시간은 밤 12시가 되어가고 있었고.. 저희는 상주 친구에게도 소주 한잔을 따라 주며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교통사고였다는군요… 횡단보도 신호 위반차량에 사고를 당했다고…
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운동화는 왜 그렇게 소중히 가지고 있는 것이냐고요… 전보다는 한결 편해진 얼굴을 보이던 이 친구가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굳이 숨길 일도 아니고 숨기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라면서요… 이 친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17살 때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일터에서 사고로 돌아가시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셨는지 어머니도 석달 후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그렇게1살 터울 여동생과 둘만 남겨진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동생과 살았다는군요…
어떻게든 여동생만이라도 부모님 없다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 돈이 생기면 동생 옷이며 신발이며 당시 여학생들이 많이 하고 다니는 것들을 봐뒀다가 사다주었다고 하네요.
17살, 18살이 벌어봤자 얼마나 벌었겠어요. 아끼고 또 아끼며 자기는 다 떨어져 가는 운동화를 맞지도 않아 끌고 다녀도 여동생은 유행하는 신발은 사줘야 직성이 풀렸다고 합니다.
여동생에게 “넌 공부만 해라.. 넌 궁부만 하면 된다.. “
우리네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희생하듯이 이 친구는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자라 여동생에게 이렇게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동생도 이런 어려운 환경에도 삐뚤어지지 않고 착했더랍니다.. 너무 철이 일찍 들어 여동생 물건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날이면 곧잘 싸웠다네요.
“나 이런 거 사줄 돈 있으면 오빠 밥이나 더 사 먹어! 넘쳐나는 옷 사 오지 말고 오빠 운동화 좀 새로 사! “ 라면서 요.. 정말 훈훈한 이야기 아닌가요… 싸우면서도 이 친구는 여동생이 고맙고 기특했더랍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일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 시내를 지나치고 있는데 패스트푸드 점을 지나다가 이상한 느낌에 안을 들여다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동생이 거기서 일을 하고 있더라네요.. 화가 났데요.. 많이 화가 났데요.. 너무도 부족한 자기 때문에 동생까지 고생시키는 것 같아 너무도 자책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생을 끌고 나와 그 화를 동생에게 냈다고 하네요… 집에와서 까지 서로 울며 싸우고는 또 서로 울며 부둥켜안고 신세한탄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며칠 뒤, 새벽에 신문을 돌리러 나가려고 현관에 섰는데 하얀 운동화 한 켤레가 있었더래요.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쪽지에 18번째 생일 축하한다는 동생의 메시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로 동생이 사다 놓은 운동화였다고 합니다. 입은 웃고, 눈은 울며 새 운동화를 신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2,3개 알바를 끝내고 집에 오는 길에 아래층에 사시는 어르신이 이친구를 붙잡으며 말하더래요.
큰일 났다고.. 병원에 빨리 가보라고..부리나캐 병원에 달려간 친구는 이미 싸늘해진 동생을 보았답니다..
하교하던 길에 교통사고가 났었다고… 18살 가을에 그렇게 동생까지 잃었다고 합니다. 생일이 동생의 기일이 되어 버린 거죠…
친구 녀석은 절망했다네요.. 설상가상 친척이 찾아와 살던 집이 자기네 것이라고 나가라고 했다는군요. 그렇게 청소년 보호소로 쫓겨 난 친구는 죽을 생각만 했다 합니다.
동생을 위해 살았던 건 어쩌면 살려는 의지를 놓지 않으려는 자기의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동생이 이제 없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요…
그런데 하루는 잠을 자다가 꿈을 꿨데요. 너무나도 생생한 꿈을요..
옛날 집, 동생이 나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묻더래요. 신발 잘 맞느냐고.. 잘 신고 다니고 있느냐고.. 꿈에서도 그렇게 눈물이 나오더래요..
이 친구는 그 신발을 아까워서 어떻게 신냐고 했다네요. 그랬더니 동생이 다 떨어지면 내가 다시 사 줄 테니 그냥 신고 다니라고 했다네요.
얼마나 지나면 떨어지겠냐고… 언제 다시 사주면 되겠냐고 묻더래요.. 그 친구 녀석은 10년은 신지 않겠냐고 말했고 그렇게 여동생은 10년 후 운동화를 다시 사주겠다며 약속했다고 합니다.
친구 녀석은 잠에서 깨서도 한동안 멍 했데요.. 오랜만에 보는 여동생이 반갑고 또 그리워 궁상맞게 또 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검정고시를 보고 군대를 갔다 오고 취직하고.. 2년 전에 아내를 만났다고 합니다. 1년을 만나고 이 친구의 생일이자 동생의 기일날 아내가 생일선물이라고 상자 하나를 꺼내더래요…
생일인지도 잊고 있었던 친구 녀석이 상자를 풀어보고는 너무도 놀랐다고 합니다.. 운동화였다네요.. 10년 전 동생이 사줬던 운동화와 같은 브랜드 같은 디자인 같은 색깔의 운동화였다고 합니다.
아내 될 분에게 운동화에 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신고 다니지 않으면서 너무 애지중지하길래 신고 다니라고 같은 모델을 구해서 사줬다고 하더래요… 10년 전 모델을 찾느라 고생했다면서…
정확히 10년, 꿈속에서 여동생이 약속했던 10년 후 똑같은 운동화가 운명처럼 이 친구에게 이렇게 왔다고 하네요.
전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이야기였어요. 순간 여동생이 살아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데요.
이 친구는 평생 이 여자를 지켜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얼마 후 청혼하고 결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제.. 교통사고로 아내를 하늘로 보냈다네요..
손에 꼭 쥐고 있는 하얀색 운동화가 다시 보였지요. 너무 놀랍고 슬펐습니다, 손에 쥔 운동화를 보며 빨개진 눈에 또 물기가 고여가는 친구를….
저는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아까 전보다 더 막막했습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났어요. 그렇게 몇 시간 후 저희는 뜨는 해를 보며 장례식장을 나왔습니다.
다행히 이 친구는 여동생의 장례식 때처럼 삶을 포기할 것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아 마음이 놓였지만… 그 씁쓸함은 지금까지도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이번 사연은 정말 가슴이 체한 것처럼 먹먹합니다. 가족들과 아내까지 잃고 더 이상은 슬픈 일이 안 생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운 내시고 다시 희망의 삶을 꼭 쥐고 다니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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