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증평군 사곡리에 위치한 사청마을은 50여 가구가 모여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에는 500년 넘도록 보존되어 있는 우물 하나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을 ‘말세 우물’이라고 부르는데요. 이유는 “우물이 넘칠 때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일어난다. 만약 우물이 세 번 넘친다면, 말세가 올 것이다”라며 이런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전설에 그친다면 말세 우물이라고 불리지 않았을 텐데요. 이 ‘말세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아무리 비가 많아도 넘치지 않는 신비의 우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딱 두 번 우물이 넘친 적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에 우물이 넘쳤고 두 번째는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를 겪은 해입니다.
이렇게 두 번이나 우물이 넘치고 나라에 변고가 생기자, 그때부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는데요. 사실 우물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넘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큰 사건사고가 터지고 말았는데요. 이제 기회는 마지막 한 번남았다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가뭄이 와도, 장마철에도, 홍수가 날 때도 이 우물이 어느 때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며 언제나 3m 정도로 물이 차있습니다.
또 흥미로운 점은 여름에는 물이 차갑고, 겨울에는 물이 따뜻하다는 점도 놀라운 사실인데요. 마을 사람들은 1년에 두 번, 정월대보름과 칠월칠석에 우물을 청소하고 제를 올린다고 하는데요.
마을 주민 사람들은 가족의 건강과 마을의 평화, 그리고 나라의 안정을 기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간절히 기원하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제발 우물이 넘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죠. 마을 사람들은 항상 우물을 바라보며 물이 차오르진 않았는지 걱정합니다. 혹시라도 물이 차오르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바짝 긴장한다고 하죠.
500년 전 말세 우물의 미스터리
1456년, 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이듬해, 조선에는 몇 년째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라도 불안정했고 민심은 흉흉했을 시기였죠.
게다가 1456년 여름은 이례적인 폭염까지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이 마을을 지나게 됐는데요. 날이 너무 더운 나머지 스님은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마을 주변에는 우물도 보이지 않았었죠. 스님은 “물 한 잔만 얻어 마실 수 있겠습니까?” 라며 동네 아낙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낙은 스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셔온 뒤, 물동이를 챙기며 “마친 집에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앉아서 기다리시면, 우물에 물을 떠 오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물 뜨러 나갔습니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나자 아낙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스님은 노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는데요.
그때, 아낙이 돌아왔습니다.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기운을 차린 스님은 잠시 후 입을 열었습니다. “우물이 멀리 있나 봅니다”라고 묻자,
아낙은 땀을 닦으며 “스님, 이 마을에는 우물이 없습니다. 가뭄으로 샘도 모두 말라버렸죠. 10리(41km)쯤 걸어가서 물을 길어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먼 곳까지 다녀온 아낙의 마음씨에 감동받은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 한가운데를 지팡이로 두들기더니 “이 마을에는 물이 귀할 것 같습니다. 땅이 전부 돌로 뒤덮여 있으니 보답하는 의미에서 좋은 우물을 하나 선물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은 지팡이를 들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침 어느 한 곳에 멈춰 섰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이곳을 파면 물이 솟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는데요. 스님이 가리킨 곳은 커다란 바위였기 때문이었죠. 스님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재차 말했습니다.
“이곳을 파면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올 겁니다” ,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넘치지 않을 겁니다.”라며 마을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말을 믿고 바위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을 무렵 바위틈에서 아주 맑고 투명한 샘물이 솟아 나왔습니다.
가물에 시달리던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스님은 마지막 한마디를 전했습니다. “말했듯이, 이 우물은 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넘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물이 넘치게 된다면 나라에 큰 변고가 닥칠 것이며 그리고 세 번이 넘치는 날에는 말세가 올 겁니다.” , “그때는 이 우물을 버리고 마을을 떠나십시오” 라며 이 말을 끝으로, 스님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절대 마르지 않는 우물을 얻게 된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면서도 스님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물은 언제나 한결같이 일정한 수위를 유지했고 넘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우물을 찾은 마을 사람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는데요. 바로 우물이 콸콸 넘치고 있었던 것이죠.
그해는 1592년 임진왜란, 얼마 뒤 왜구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나라에 퍼지게 됩니다. 그로부터 다시 300여 년이 흘렀습니다.
또 한 번, 우물이 넘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해였습니다. 그렇게 우물이 두 번이나 넘치고,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기자 사람들은 벌벌 떨기 시작했습니다.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죠. 우물이 넘칠 뻔했던 때도 있었는데요.
스님의 말대로라면 나라가 망할 뻔했다는 징조인데 1950년 6월 24일 우물이 넘치기 직전까지 차올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광경을 똑똑히 봤다고 증언까지 했었죠.
지독한 가뭄이 찾아왔을 때, 역대급 태풍이 불어 닥쳤을 때에도 일정 수위를 유지했지만 유독 한반도에 재앙이 닥칠 때면 어김없이 우물의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이 우물에 얽힌 미스터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간혹 이 우물에서 물을 긷다가, 우물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신기하게도 물에 빠진 사람들은 물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1947년 우물 하부 석축이 파손되어 보수 공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날 이후로 마을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례적인 흉년이 들었고, 우물에 빠진 10살 소녀가 물아래로 가라앉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천벌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며 경악했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액운을 쫓기 위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집집마다 촛불을 켜놓고 용서를 빌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에 지금까지도 제를 올리며 우물을 정성껏 보살피고 있다고 합니다.
여전히 말세 우물은 똑같은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스님의 예언대로 사곡리의 말세 우물이 세 번째로 넘치게 되면 과연 어떤 대위기가 찾아오게 되는 걸까요?
이렇게 세 번 넘치면 말세가 온다는 기묘한 우물, 여전히 말세 우물은 똑같은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500년 전 스님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제 기회는 딱 한 번 남았습니다.
Desk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