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의 본명은 Kollen Sue Park (칼린 수 팍)이며 한국 이름은 박영미입니다. 나이는 1967년 5월 1일생으로 올해 나이 56세입니다. 고향, 국적은 미국이며 키 172cm이라고 합니다.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학력 사항은 초량초등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첼로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악작곡 석사 졸업이며 가족은 부모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언니 두 명이 있습니다. 현재 소속은 킥 ‘뮤지컬 아카데미 예술 감독’입니다.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하지만 최근 박칼린는 자신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밝혀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금쪽 상담소에 출연해 고민이 없다며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탄탄대로의 길만 걸어왔을 것 같은 박칼린의 삶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196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박칼린은1989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하여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이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사운드 오브 뮤직’ ‘렌트 시카고’ ‘미녀와 야수’ ‘아이다 한여름 밤의 꿈’ 등의 음악 감독을 맡게 되는데요.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특히 ‘한여름 밤의 꿈’은 연출 및 음악 감독을 동시에 맡았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10년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이 출전하여 전국적인 ‘인지도’를얻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 음악 감독박칼린이 관련 분야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했다면 이후부터는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박칼린은 어머니에 대해 생명력이 정말 강하신 분으로 시베리아 한복판에서도 맨몸으로 북 치고 장구를 치실 분이라며 정신력이 강인한 분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무리 봐도 박칼린 어머니의 교육열은 어느 한국 어머니 못지 않은 것 같네요 이후 박칼린은 11살 때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 언니의 권유로 첼로를 배우게 됩니다.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첼로는 박칼린이 음악의 눈을 뜨는 기회를 제공했고 한국에 사는 동안 영어를 잊었던 그녀가 다시금 미국의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연히 첼로에 몰두하게 되었죠.

이후 서서히 실력이 쌓이자 학교 연주에 참여하는 날이 이어지게 되었는데 어느 날 연극부와 합동 공연을 하면서 그녀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옵니다. 연극반 담임이었던 선생님이 조용히 앉아 첼로를 연주하는 그녀를 눈여겨봤고 연극의 투입시킨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성장하던 박칼린은 고등학교 때 1년 동안 다시 한국에서 지내며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이후 또다시 미국으로 가서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진학해 클래식 첼로 전공하였습니다.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박칼린은 당시에도 생소했던 아시아 퓨전 재즈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으며 특히 정체성 혼란으로 힘들어하던 때에 음악에 몰두하며 극복을 하였고, 중학교 시절 접했던 첼로를 전공하게 되어 대학에서까지 전공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대학은 다시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한국으로 넘어와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게 됩니다.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연극배우로 활동을 이어가던 그녀가 어떻게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큰 성공을 할 수 있었을까요?

연극배우 중에 미국 대학과 서울대 석사 출신의 음악 학도란 타이틀은 자연스럽게 박칼린에게 감독의 자리를 맡길 수밖에 없게 만들었죠.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게다가 자신이 맡은 연극 음악 감독 역할을 훌륭히 해낸 그녀의 역할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결국 박칼린은 20대 초반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또한 시대적인 흐름을 잘 타고나면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1990년대 뮤지컬계에서 명성과 실력을 쌓은 그녀는 2010년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여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당시 대중들은 박칼린의 뮤지컬 지위 실력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독특한 리더십에 더 열광을 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러던 2002년 어느 날  몸의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가게 된 박칼린은 양쪽 ‘신장’이 모두 ‘손상’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병원에선 신장이식을 추천받았지만 평생 ‘투석’해야 한다는 말에 치료를 포기하게 됩니다.

양쪽 ‘신장’에 다 문제가 있어서 4, 5년 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녀는 굉장히 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만약 5분 뒤에 생을 마감한다 해도 후회가 없어요” 진짜 저는 후회 없이 살았어요.. 남들이 나만큼만 행복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제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다 뿌리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가도 여한이 없어요.

"죽음에 미련은 없어요.." 시한부 5년 판정받은 박칼린의 ‘이 한마디’에 모두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지금 당장 끝나도 여한이 없는 삶이라 확실히 현재의 삶의 최선을 다하는 박칼린답네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인터뷰를 하게 된 시점이 지난 2010년대 일입니다.

시한부의 삶을 의미했는데 현재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는 이유는 박칼린 특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현재 삶의 최선을 다하는 에너지 넘치는 삶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카테고리: 이슈

0개의 댓글

답글 남기기

Avatar placeholder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
MENU
Days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