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다 얼굴에 생긴 흉터 때문에 평생을 괴롭게 살아왔는데…”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서 내 얼굴을 본 회장님은 나를 안고 오열했고 내 인생을 180도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년 넘게 택시 일을 한 40대 남자입니다. 50살 가까이 먹고 이런 곳에 사연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참 제 인생이 신기하게도 풀리게 되어 한번 적어봅니다.

저는 경상도에서 태어나 자라오면서 평범하게 살아왔습니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 친구분이 부장님으로 계시는 가전제품 대리점의 영업사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쯤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었을 무렵 저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아서 평생 바다만 보며 자란 저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계곡에 놀러 가기로 했습니다.

유명하다는 계곡 근처에 친구네 삼촌이 사신다고 해서 숙박비도 아낄겸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성인이 된 남자들끼리의 여행이 그렇듯 물에 빠졌을 때 입을 팬티 몇 개 덜렁 챙기고 슈퍼에서 술을 가득 사서 떠났습니다.

삼촌이 커다란 봉고차 한 대 끌고 나오셔서 저를 포함한 남자 5명을 태우고 굽이굽이 산을 올라가셨습니다. 저희는 삼촌이 챙겨주시는 버너와 고기들을 챙겨 계곡으로 향했습니다.

지금은 계곡에서 취사 금지라고 하는데 계곡에 놀러 가면 다들 고기를 구워 먹고 술을 마시는 풍경이 익숙했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번갈아 가면서 고기를 구우며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때가 오후가 되기 전이었는데도 이미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놀았을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처음 보는 계곡에 감탄하며 혼자 이곳저곳을 다니며 놀고 있던 사이 친구들은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위에서부터 짧은 비명 소리가 울리더니,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올려다보니 사람들이 무언가를 가리키며 발을 동동구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어떤 여자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계곡 물살에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미 내려오면서 어디를 부딪친 모양인지 얼굴이 벌게 보였습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저는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떠내려오는 여자를 향해 빠르게 헤엄쳤고 여자를 낚아채서 건져 올렸습니다. 몇십 미터를 떠내려왔는지 여자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곧이어 저도 정신을 잃었습니다.

잠시후,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땐 병원에 누워있던게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중환자실에 있던 거였습니다.

왼쪽 눈이 무언가에 가려진 듯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움직이는 것을 알아챈 간호사가 급하게 나가더니, 누군가를 불러왔고 처음 보는 아줌마와 친구네 삼촌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아줌마는 눈물을 쏟으시며 제게 자꾸 괜찮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붕대 때문인지 뭔지 입이 움직이질 않아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삼촌은 안도에 한숨을 쉬시더니 어딘가 전화를 거셨고 새벽쯤에 저희 엄마가 급하게 병원으로 오셨습니다.

저는 그날 밤, 일반 병실로 옮겨졋고 다음날 깨어나 제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었습니다. 제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턱이며 이마며 거의 눈,코뼈가 붕대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여자를 구하러 물속에 들어갔을 때 뾰족한 돌에 긁혀 얼굴이 다 찢어졌다며 100번 가까이는 꼬맸다고 하셨습니다. 천만다행인 건지 눈은 멀쩡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처음 봤던 아주머니는 매일 저를 찾아왔습니다. 올 때마다 과일이며 빵이며 음료수며 뭘 이것저것 사오면서 계속 엄마께 죄송하다고 했고 저한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이 분은 물에 빠진 여자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여자애는 괜찮아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아무렇지 않게 던진 질문에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조금 웃으셨습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살짝 눈물이 맺히신 것 같기도 하네요.

“네. 덕분에 너무 괜찮아요. 다리에 긁힌 상처 몇 개 말고는 아주 멀쩡해요.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요.. 용석 씨 다행이네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다치면서 구해줬는데 안 괜찮다면 허탈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일주일 정도 후에 퇴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퇴원하는 날 처음으로 붕대를 푼 제 모습을 보요 조금 충격적이긴 했습니다. 얼굴 바깥쪽으로부터 이마부터 광대까지 쭉 찢어진 흉터가 하나와 그밖에 자잘하게 찢어져 두세 번을 꼬맨 자국들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바다 수영에만 익숙해서 아무 생각 없다. 다이빙을 한 제 잘못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제가 퇴원하는 날까지 절 찾아왔습니다.

” 병원비는 저희가 다 해결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추후에 발생하는 치료비도 다 저희가 해결할게요 보상이 더 필요하시다면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저희 딸 목숨을 살려주셨는데 뭐든 해드릴 수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계속 허리를 굽혀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런데 전부터 느꼈지만 아주머니의 행색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 형편이 좋지 않아 보이셨습니다. 어머니도 저처럼 느끼셨는지 아주머니의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괜찮아요. 사내놈 얼굴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병원비 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정말 괜찮으니까. 그만 사과하세요. 정말 괜찮아요.”

“이러시면 제 마음이 불편한데… 학생 정말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뭐..”

아주머니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정말 감사하다며 나중에라도 꼭 이 은혜를 갚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몰랐습니다. 이 흉터가 제 인생을 꼬이게 할줄은… 저는 이틀 정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제 상황을 미리 아버지께 전달받은 부장님은 생각보다 제 얼굴이 심각했는지 흠칫 놀라셨습니다. . 저는 아직 막내 영업사원이라 매장에 오는 손님들에게 필요한 걸 여쭤보고 다른 선임님들에게 연결시켜 주는 정도와 문 앞에서 인사하는 정도의 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묘하게 손님들이 저를 피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장에 들어온 손님한테 제가 인사를 하면 눈치를 보면 고개만 끄덕이고 다른 곳으로 가거나 제품을 둘러보고 있는 어르신께 다가갔는데 어르신께서 인상을 쓰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날 오후 부장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 용석아, 내가 니 아비 친구이고 너 정말 내 아들처럼 생각하는 거 알지?”

” 네… 아저.. 아니 부장님”

” 근데 이게 참… 나도 어찌 못할 것 같다”

” 뭐가요?”

” 상처가 오늘 하루만 손님 몇 명이 얘기하더라고. 차장님도 이건 안 되겠다 하시고..”

” 많이 흉한가요? 이거 아직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러는데.계속 병원 다니면…”

” 아니 우리는 그걸 기다려주지 못한다.. 미안하다 용석아”

영업사원은 브랜드의 얼굴이자 꽃이라고 외웠습니다. 꽃이 많이 상해 있거나 시들어 있으면 당연히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회사의 입장이 100번 이해가 갔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회사에서 잘리진 않았습니다. 저는 부장님의 추천으로 경상도에서도 더 안쪽에 있는 공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엔 숙소가 있었습니다. 네 명이서 쓰기에 턱없이 좁은 방이었지만 이 층 침대 두 개를 겨우 들여놓고 생활을 했습니다. 여자건 남자건 제 또래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저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했습니다. 시간 맞춰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출근을 해서 같은 일을 10시간 동안 했습니다.

어쩔 땐 더 많이 하게 됐습니다. 정말 지루했습니다. 월급도 이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20대의 혈기왕성한 청춘들이 그곳에만 갇혀 있으니 매일 밤 방에서 술 파티를 벌이곤 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무리에 낀 적이 없었습니다.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인데 누구도 저에게 같이 놀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제가 있는 방에서 같이 방을 쓰는 남자의 세 명, 다른 방 여자애들 세 명이 놀러 와서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침대에서 자는 척을 했습니다.

“오빠, 쟤는 누구야? 왜 있잖아. 얼굴에 흉터 있는 사람,”

” 어머 나 본 적 있어. 밥 먹다가 눈 마주쳤는데 토할 뻔 했잖아.”

” 그치? 나도 징그러워서 똑바로 못 보겠더라. 그런데 왜 그런 거래?”

” 말이 많던데? 칼에 맞았다. 사실 깡패다. 아픈 사람이다. “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저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제 얼굴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왜 창피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때 어린 마음엔 상황이 너무 창피했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전 두 번째 직장에 공장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제 흉터가 너무 싫어졌던 것 같습니다.

공장을 그만두고 집에 와서 한동안은 집에만 있었습니다. 친구들도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느라 만날 수도 없었고 만나자고 한들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밖에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서워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기적이었죠.

그때 바로 든 생각은 이제 내가 이 집의 가장이 된다는게 얼굴이 이런데 어디 가서 어떻게 돈을 벌어야할지 막막한 걱정만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도 아프신데, 저렇게 일을 하시고, 어머니도 열심히 일하시고 팔다리 멀쩡한 제가 무슨 일을 못하겠나 싶어서 용기를 냈습니다.

그렇게 일자리를 구하러 한 달쯤이 지났지만 저는 제 자리였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제 외모를 보고 겁을 먹거나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분명 좋은 일을 하다가 얻은 나름 영광의 상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제 인생을 망가뜨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막노동이라도 해야 하나 싶어 새벽에 일자리 센터에 나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아버지께서 다가오셨습니다.

” 너 운전이나 배워라.”

” 네? 운전이요. 운전할 줄 모르는데요.”

” 그러니까 배우라고… 너 첫째, 큰아버지 택시 하시는 거 알지? 택시가 괜찮을 것 같아 손님이랑 딱히 얼굴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그럼 너도 편할 거 아니냐”

아버지 말씀이 일리가 있었습니다.  앞만 보고 운전만 하면 되는 택시 일이 어쩌면 제게 딱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날부터 아버지에게 운전을 배웠습니다. 태어나 처음 잡아보는 핸들이 너무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아버지가 열심히 알려주신 덕에 두 달만에 면허를 딸 수 있었습니다.

1년간 막노동을 하면서 택시기사가 되기 위해서 자격시험을 보고 택시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처음 택시를 몰고 나갔던 그날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시작할 땐, 막상 손님이 내 얼굴을 볼까봐 신경쓰기고 긴장해서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오후 네 시부터 영업을 했는데 밤까지 시내 구석구석을 돌면서 손님은 단 한 명도 태우지 못했습니다. 막상 누군가를 차에 태우려니 긴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음날 용기를 내어서 첫 손님을 태웠습니다. 처음 탄 손님은 정장을 입은 남자 손님이었고 출근 시간에 늦었는지 서두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손님이 타고 내리기까지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릅니다. 손님이 내리고 저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한편으로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일만 하려고 하면, 다들 제 외모부터 관심을 가지고 불쾌해하곤 했는데 택시의 탄 손님은 전혀 그러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게 제 적성에 맞다면 맞는 일을 한지 어느덧 20년이 훨씬 넘게 흘렀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말씀대로 이 일이 좋아서 한 적은 없습니다.

몇 달 전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택시회사는 서울에 있는 본사를 포함해 전국에 약 4~5개 정도의 지점이인 있는 회사입니다.

그날은 유난히도 지점장님이 택시 내부 청소를 강요했고 센터한 청결도 신경을 뭔가 바빠 보였습니다. 본사에서 방문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이 회사로 온 지 7년이 되어가는데 본사에서 온다는 건 처음 봤습니다. 그날은 점심 후까지만 업무를 하는 날이라서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아직 다른 동료들은 운행을 하는 중이었고 사무실에 지점장님과 70대 정도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과 양복 차림에 제 또래 남자 하나가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씨 왔어? 회장님 부장님 저희 직원입니다.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아서 아마 처음 보셨을 거예요.”

지점장님이 저를 회장님과 부장님이라는 사람에게 소개했고 저는 어색하게 자리에 끼게 되었습니다. 회사 운영에 대해 개선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회장님께서 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제게 물으셨습니다.

” 내 이런 질문이 실례인 줄은 알지만…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 네? 어떤…?

” 얼굴에 상처 왜 그렇게 된 건지 말해 줄 수 있나요?”

당혹스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대놓고 물어본 사람은 처음이었고 그렇게 정중하게 물어본 사람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의 얼굴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는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뭐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이 돼요. 처음으로 남 앞에서 얼굴의 흉터에 대한 사연을 자세하게 말했습니다

계곡에서 기절하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쯤을 얘기하는데 갑자기 회장님께서 제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제 왼쪽 가슴팍에 있는 명찰을 눈을 게슴치레 뜨고 보셨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제 얼굴을 잡고 얼굴에 있는 제 흉터를 만지시더니 곧 저를 꼭 끌어안으시고는 숨이 넘어갈 듯 아이처럼 우셨습니다.

“자네가… 자네로구만! 자네가 맞아 여기서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회장님이 알 수 없는 행동에 저와 지점장님과 부장님은 모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회장님은 눈물을 계속 흘리면서 결국 자리에 주저앉으셨습니다.

저희는 급하게 회장님을 의자로 옮겼고 회장님은 그렇게 한참을 우셨습니다. 그리고 곧 회장님이 꺼내신 이야기에 저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30년 전 회장님은 원래 여기 경상도에서 사셨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용달 운송업을 하고 있었는데, 소자본으로 시작해서 서너 대 가지고 회장님도 직접 운전을 하며 바쁘게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회장님에게 딸이 하나 있었다고 했습니다. 딸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했는데 여름방학에 본가에 내려오게 되었고 그러다 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계곡에 놀러 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곡에서 발을 헛디뎌 물살에 떠밀려 목숨을 잃 뻔했고 기적처럼 그 목숨을 구해졌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속으로 설마설마 했는데 회장님은 자신의 딸의 목숨을 구해 청년이 바로 저라고 했습니다.

그때 분명 여자의 어머니께서 여자가 다리만 조금 긁혔다고 했는데, 혹시나 제가 죄책감을 가지거나 걱정할까 봐 거짓말하신 모양입니다.

그 여자도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했다고 했습니다. 회장님은 일도 너무 바쁘고 딸 얼굴 한번 볼 시간도 부족해서 저에게 찾아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후 회장님의 딸은 다리 부상으로 더 이상 무용을 못 하게 되었고 결국 경영 쪽으로 전과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한 운명이었는지 경영을 공부했던 딸이 회장님을 도와 택시 운수업에 발을 들여 지금 이렇게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회장님은 다 제 덕분이라고 또 한 번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저를 찾으려고 제가 입원했던 병원에 몇 번이고 찾아갔지만 환자 기록을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고 제 이름 하나 가지고 주위에 수소문을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회장님은 자꾸만 먹먹해지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제게 말하셨습니다.

” 정말 고맙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만나서 참 다행이야.”

” 제가 그때도 사모님께 말씀드렸지만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회장님 따님도 많이 다치셨다면서요.”

“그래도 자네만 하겠는가… 아직도 상처가 이렇게 심한 걸 보니 지금까지 순탄치 않았을 것 같은데..”

저는 지금까지 부끄러워서 남에게 하지 않았던 제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회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얼굴에 흉터 때문에 직장에서 짤리고 공장에서도 손가락질을 받고 일자리도 구해지지 않고 군대에서도 사람들이 절 피했던 일들을 말했습니다.

회장님은 얘기를 들으면서도 계속 미안하다고 하실 뿐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다 들은 회장님은 늦었지만 사례를 하고 싶다고 하셨고 우선 자신 때문에 평생을 택시 일만 해왔으니 좀 더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면 같이 서울에 갈 것을 권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모셔야 하는 홀어머니가 계셔서 안 된다고 했고 회장님은 잠시 고민하셨습니다. 그러더니, 내년에 정년인 지점장님이 나가시면 자리에 대신해서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런 자리를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고민해 보겠다고 했고 회장님은 이미 긍정의 대답을 들은 것처럼 기뻐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날은 너무 늦어 만남을 마무리 지었는데 다음날 회장님이 또 찾아오셨습니다. 서울에 돌아가시기 전에 해야 할 일 다며 저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셨습니다.

경상도에 있는 큰 대학병원에 가시더니, 안에 있는 카페에서 웬 의사 가운 입은 사람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곧 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의사는 회장님과 중학교 동창인데 회장님께서 사정사정해서 외래가 끝나고 잠깐 시간을 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제 얼굴을 자세히 살피고 꾸준히 치료하면 어느 정도 흉터를 가릴 수는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런 희망적인 말을 들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 자네 들었지? 이 친구가 여기 성형외과 교수 중에서 제일 실력이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믿고 맡겨봐”

” 제가 이 나이 먹고 얼굴 고쳐서 어디다 쓰겠습니까? “

” 그냥 내 소원이네. 자네 하루라도 제대로 된 원래 자네 얼굴로 살아줬으면 좋겠어.”

” 괜찮습니다. 회장님 평생 이렇게 산 얼굴인걸요. 그리고 치료할 돈도 없습니다.”

”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솔직히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원래 제 얼굴이라… 흉터가 없는 제 얼굴은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고민하자 앞에 앉아있던 의사도 저를 설득했습니다.

” 나이 먹고 흉터 치료하는 사람들 많아요. 팔이며 얼굴이며 엉덩이 흉터도 보기 싫다고 치료하는데 얼굴은 오죽하겠어요. 흉터만 몇천 개를 치료했습니다. 믿고 맡겨주세요.”

저는 잠시 고민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회장님은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비행기 시간이 다 되었다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그날은 월급날이었는데. 제 통장에 말도 안 되는 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돈을 보낸 사람의 이름을 확인해 보니 회장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지점장님의 도움으로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게 대체 뭔지 물었습니다. 회장님은 껄껄 껄 웃으시더니, 보너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돈 못 받는다고 다시 돌려드린다고 했지만, 회장님은 이렇게 또 한 번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 내 딸아이의 목숨값이 그 정도도 안 되는가? 그리고 자네가 지금까지 산 30년 가까이 되는 인생에 대한 값이 그 정도가 안 돼?”

저는 뭐라 거절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제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회장님은 바빠서 끊어야겠다며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제 머릿속 속에 지난 30년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보였던 불쾌한 표정 내 뒤통수에 대고 수군거리던 사람들 거울 한 번 보기 힘들었던 나 자신 그리고 그렇게 힘들어하는 저를 보며 더 힘드셨을 우리 부모님 생각에 저는 더 이상 회장님께 거절의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돈으로 지금보다 좀 더 크고 깨끗한 집 전세를 얻어 어머니와 살게 되었고 흉터 치료도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보는 얼굴이라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서는 많이 좋아졌다며 인물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정년을 마치신 지점장님을 대신해 제가 지점장이 되었습니다.

근무 환경도 좋고 월급도 많이 받아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회장님은 제 진급을 축하한다며 조만간 이곳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땐 꼭 사모님과 따님도 함께 오신다는 약속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늦게나마 열심히 산 제 인생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아 요즘 정말 행복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스무 살 때 이후로 제가 이렇게 웃는 건 처음 본다고 하십니다. 회장님 덕에 그 그동안 못 누렸던 외식이나 여행 같은 것들 다 누리며 남은 인생, 20대 청춘 못지않게 즐겁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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