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화학공업의 선구자이자 사회 환원의 모범을 보인 관정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13일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23년 5월 10일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에서 태어난 이종환 회장은 광주이씨 영재 선생의 둘째 아들로, 어려서부터 선진 문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았다. 마산중학교(현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 메이지대학 경상학과에 입학했으나 태평양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만주와 동남아시아에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귀국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정미소를 운영하며 한국전쟁 이후 황폐화된 산업 현장에 화학공업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1958년, 그는 삼영화학공업㈜을 창업했다. 창업 초기에는 생활 플라스틱 제품인 꽃장판과 스펀지 생산에 주력했으나 이후 포장용 필름과 콘덴서용 필름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여 대한민국의 수출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1970년대에는 급증하는 전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전선㈜을 창업하고 국내 3대 전선 기업으로 육성했다.
그러나 경쟁사들의 견제로 인해 사업을 접게 되었지만, 국내 유일의 애자 생산 업체인 고려애자공업㈜을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키며 국내 전력 송배전 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이종환 회장은 기업가 정신과 근검절약을 바탕으로 쌓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집중했다.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1960~70년대의 개발경제와 1980년대의 선진국 진입을 직접 목격한 그는 “대한민국이 바로 서려면 훌륭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교육과 장학사업에 매진했다.
2000년 6월, 그는 10억 원의 개인 재산을 출연해 관정이종환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2년 후 기본재산을 3000여억 원으로 늘려 ‘관정이종환교육재단’으로 재출범하면서 전공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장학사업을 펼쳤다.
현재까지 재단에 기부한 재산은 1조 7000억 원에 이르며, 매년 수십 억 원에서 100억 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2019년에는 재단 설립 20년 만에 장학생 수가 1만 명을 넘었다.
서울대학교는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으며, 그는 2012년 사재 600억 원을 출연해 서울대학교에 국내 최대 규모의 개방형 첨단 도서관인 ‘관정도서관’ 설립을 지원했다. 이 회장은 고향 사랑도 남달라 2012년 11월 고향 의령에 생가를 복원하고 지역 문화와 관광 자원화에 기여했다.
그는 또한 의령에 복지마을을 조성하고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사당 정비, 의령 지역 후학을 위한 별도의 장학금 지원을 이어왔다. 마산고등학교에도 재학생 기숙생활관인 관정관을 지어 기증하고, 마산고장학재단 설립 시 거액의 장학금을 출연했다. 지역 언론 환경 개선과 여론 다양성 확보를 위해 1999년 <경남도민일보> 창간 주주로도 참여했다.
이종환 회장은 “제 100년 인생을 단 한 마디로 총결산한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정도(正道)의 삶을 실천하라. 정도가 결국 승리한다”고 말했다. 또한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할 수 없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려는 행동 철학을 실천한 결과다. 관정교육재단이 내 사후에도 영속적으로 발전하도록 끝까지 경영 일선에서 계속 뛰다가 하늘이 부르면 가는 것이 마지막 소망”이라고도 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이석준 ㈜삼영 대표이사 회장을 비롯해 2남 4녀가 있으며, 장례는 관정이종환교육재단장으로 치러진다. 재단 측은 조화와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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