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고 40년간 장애인을 위해 봉사해온 박춘자 할머니(95)가 마지막까지 월세 보증금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박 할머니는 마지막 재산인 월세 보증금 5000만원도 기부해 달라고 유언했다. 가졌던 모든 걸 사회에 내놓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열 살 무렵 학교를 중퇴한 할머니는 2008년 “돈이 없어 학업을 놓아야만 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며 매일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게 김밥을 팔아 모은 3억원을 초록우산에 기부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박 할머니는 1929년 태어났다. 열 살 무렵부터 경성역(현 서울역) 앞에서 김밥을 팔았다. 노점을 단속하는 일본 순사의 눈을 피해 어렵게 장사했다고 한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아래서 살았기 때문에 학업은 이어갈 수 없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을 중퇴했다.
이혼과 사업 실패를 겪은 후인 1960년 무렵에는 남한산성의 버려진 움막에서 김밥을 다시 팔아 김밥 가게를 차렸고, 성남 구 시가지에 사뒀던 집값이 올라 목돈을 손에 쥐었다.
6·25전쟁 중인 1951년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당했다. 그 후 박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경기 성남 중앙시장 인근에 다방을 열었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했다.
1960년 무렵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남한산성의 버려진 움막에서 김밥을 팔기 시작했다. 아픈 날을 빼곤 하루도 빠짐없이 그곳에서 김밥을 팔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김밥 가게를 열었고, 성남 구 시가지에 사뒀던 집값이 올라 목돈도 손에 쥐었다고 한다. 그는 “내가 돈이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라며 “불쌍한 사람을 줘야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박 할머니는 지적장애인 11명을 집으로 데려와 친자식처럼 돌보며 2008년 “돈이 없어 학업을 놓아야만 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며 매일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게 김밥을 팔아 모은 3억원을 초록우산에 기부했다.
이후에도 박 할머니는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나눠야 한다”며 기부를 이어갔고 2021년에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LG 의인상을 받았다.
지난 2021년엔 청와대 기부·나눔 단체 행사에 초청받아 참석자들의 가슴을 적신 사연이 공개되기도 했다.
박 할머니는 같은 해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도 “장애인들을 도울 때는 걱정도 싹 사라진다”며 “이 돈 벌어 다 어디다 쓰겠냐. 어릴 적 나같이 불쌍한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뿐”이라고 전했다.
박 할머니는 재혼하지 않아 슬하에 자녀가 없다고 한다. 사회 복지 시설에서 지내다가 작년에 노인 요양 시설로 거처를 옮긴 뒤 그곳에서 숨졌다. 할머니의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할머니가 돈을 기부했던 수녀원이 함께 맡았다. 발인식은 13일 오전 열렸다. 고인은 경기 안성 추모 공원 납골당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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