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故 장용복 원장, 별세 후 전재산 113억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감격의 눈물이 쏟아진 이유

전 재산을 다음세대 교육을 위해 한동대학교에 113억을 기부하고 지난해 별세한 고 장용복 의사의 사연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배워서 남 주세요. 그리고 벌어서도 남 주세요.”

구순이 넘은 고 장용복 씨는 자신이 자신이 기부한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이 말만큼은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자신이 말했던 신념대로 살다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1923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나와 의사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12월 파란 길에 올랐습니다.

그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개인 병원인 ‘장의원;을 열고 30년간  배운 의술로 평생 환자들을 돌보고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당시 한남동은  서울 변두리였는데 그곳에서 1991년 은퇴할 때까지 밤낮으로 환자를 돌보며 성실하게 일해왔습니다. 

장 씨는 의사로 번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 재산을 100억원 이상 불렸지만 늘 근검절약하며 지극히 검소하게 살아왔습니다.

집에 있는 물건들 가운데 10년 넘은 건 새것이라고 할 만큼 아껴가며 살아왔고 자기 소유의 자가용 한 대 없이 늘 대중교통을 이용해왔으며 옷도 아내인 김영선(93)씨가 손수 뜨개질 한 것을 즐겨 입어왔습니다.

장씨는 생전에” 남긴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남한으로 피란 온 이후) 주위에서 도와주는 분이 많았다. 마치 누가 끈으로 잡아당기듯 도와줬다”라고 회고하면서 부모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벌어서 남 줘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배워서 남 주자’를 모토로 설립된 한동대는 그의 신앙적 가치관에 꼭 들어맞는 곳이었습니다.

장 씨는 자신의 재산을 미래 세대를 돕는 일에 쓰기로 결정하고 2015년 100억 원 기부를 약정했고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며 유산상속포기각서를 썻습니다.  한평생 부모가 보여준 삶과 신앙의 모습 속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장 씨는 지나 6일 별세한 뒤에는 많은 미담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숨겨진 그의 또 다른 선행들입니다. 

생전 장 씨와 가깝게 지냈던 강신익 지앤엠글로벌재단 공동대표는 16일 “장로님은 교육뿐 아니라 불우 이웃과 탈북민 등 소외계층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을 위해 알려지지 않게 도우신 일들이 무수히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 관계자들과 통화할 때마다 장 씨는 ‘뭐 도와줄 일은 없는지’ ‘필요한 것 있으면 알려 달라’고 먼저 말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는 “장 장로님 부부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단순한 영혼의 힘을 가진 분”이라며 “얼마나 많은 걸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걸 나눴는지 삶으로 보여주셨다”고 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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