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잃은 나를 고아라며 천대하던 큰집 식구..” 성인이 되어 장인어른을 만나 인생역전했고, 10년 후 나타난 큰아버지는 장인어른이 건넨 ‘이 말’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일생을 힘들게 살아가면서 쌓아놓은 보험금이 있었는데 이 보험금때문에 친가 가족들과 외가 가족들과 친척들이 멱살을 잡고 싸웠습니다.

당시 어린 나는 그 소동이 무서웠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배웠죠.

장례식장때 친할머니는 외할아버지에게

“내 아들 보험금을
당신이 왜 가져간다는 거야?”

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런 친할머니에게 외할아버지가

“내 딸 보험 거기 있잖아.
어디서 말을 함부로 하는 거야?”

라며 장례식장에 떠내려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급기야 몸싸움까지 났고 장례식장을 두 가족이 완전히 뒤집어 놓았어요.

결국엔 보험금은 큰아빠가 가져갔고 그 뒤로 저는 큰아빠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에서 구박을 받고 살았는데 하물며 큰엄마는 밥 먹는 것도 눈치를 줬습니다.

“눈치도 없이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다 먹어”

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했거든요. 그리고 혹시 치킨이나 피자를 먹을 때면 저보고 방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고는 자기들끼리 먹었는데 냄새가 제 방으로 다 새어 들어왔어요.

밥도 많이 먹지도 못하게 해서 항상 배가 고픈데 치킨 냄새가 새워 들어오니 눈물이 나도록 먹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뱃속이 아리도록 아팠어요. 배가 고파서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인간 같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제가 고3때였을 거예요. 큰아빠에게

“선생님이 대학 이야기를 꺼내는데요.”

라고 계속 눈치를 보다가 정말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요. 큰아빠가 그런 제 말을 듣다가는

“니가 무슨 대학이야.
대학은 가서 뭐 하게!
돈이나 벌어 이놈아”

라고 말하며 비웃었어요. 그렇게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큰댁을 나와서 공사장을 맴돌면서 살았어요.  차라리 그게 마음이 더 편했던 것 같아요. 몸이 힘들긴 했지만 적어도 먹는 것은 마음껏 먹었으니깐요.

그러다가 우연찮게 지금의 장인어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공사판에서 일을 하다가 사람들과 같이 짜장면을 시켰는데요.

그때 그곳으로 짜장면 배달을 온 사람이 장인어른이었어요. 배달을 온 장인어른은 배달동에서 짜장면을 내려놓으며 저를 유심히 봤어요. 그리고는

“자네는 나이가 몇 살인가?”

라고 저에게 물었어요.

“이제 스무 살입니다.”

라고 말을 하던 저에게 장인어른이

“자네. 우리 집에서
배달 한번 해볼 생각 없나?
배달하던 놈이 갑자기 안 나와서 큰일일세”

라고 말을 했지만, 제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우리 집에 오면 숙박이 가능한데”

라는 제안을 했어요.저는 솔깃해져서 다음 날부터 장인어른의 짜장면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장인어른과 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정말 숙박도 해결이 가능했고 식사도 그냥 먹을 수 있어서 저에게는 최고의 장소였어요.

장인어른은 엄청 깐깐하고 잔소리가 많았지만 큰아버지와 큰엄마의 구박에 비하면 정말이제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리고 장인어른은 먹는 것은 절대 아끼지않고 많이 주셨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가게에 어떤 여자가 들어왔는데 장인어른의 딸이었어요. 맞습니다. 사람이 지금의 제 와이프입니다. 제가 한눈에 보고 반해버린 여자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와이프는 제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저와는 다르게 좋은 부모님 밑에서 부족함 없이 대학까지 다니고 있는 그런 여자였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한동안 와이프를 가슴에 담아둔 채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그런 제 마음을 사장님이 그러니까 지금은 장인어른이죠. 장인어른이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저에게

“박 군. 나랑 맥주 한잔하자”

라며 치킨 한 마리를 배달시켰는데요. 맥주와 치킨을 정신없이 먹어대던 저에게 장인어른이

“이거 한 마리는 안 되겠다.
우리 보쌈도 하나 먹을래?”

라고 묻더라고요. 그런 장인어른의 말에 제가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보쌈이 배달되어 왔는데요. 보쌈을 맛있게 먹던 장인어른이 갑자기

“박군 부모님은 어떻게 된 건가?”

라고 묻더라고요. 그런 장인어른에게

“어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습니다.

“그럼 그동안 바쁘니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런데 참 잘 컸다”

라고 말을 하면서 제 등을 쓰다듬어 주셨어요. 장인어른의 말을 들으며 입안 가득 보쌈을 넣고 우적우적 먹고 있었는데요.

제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동안의 서러움이 복받쳤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며 장인어른이

“어이구! 이놈아
입에 있는 거나 다 먹고 울던지
아이구 콧물에 눈물에
내가 아주 더러워서 못 보겠다.”

라고 말을 하면서 휴지를 가지고 오시더니 제 눈물과 콧물을 직접 닦아주셨어요. 무뚝뚝한 것 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아는 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어떠한 것에 상처를 받고 있고 힘들어하고 있는 것인지 번에 알아봐 주셨어요. 저에게 그런 따뜻한 말을 해준 분은 장인어른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런 장인어른의 말을 들으며 눈물 콧물을 다 빼면서 목이 매어 있었는데요. 장인어른이 그런 저를 보며

“박군, 너 우리 은지 좋아하냐?”

라고 묻더라고요. 말을 제가 깜짝 놀라서

“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감히 어떻게…
사장님 따님을…”

이라고 말을 했는데 그런 제 말을 듣던 장인어른이

“아니 네가 어디가 어때서?
이 녀석아 남자가 배포가 커야지!”

라고 말을 하면서 제 등짝을 힘껏 내리쳤어요. 그러더니, 저에게

“너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지?”

라고 한마디를 더 물었어요. 그런 장인어른의 얼굴을 제가 그저 멍히 바라봤습니다.

“내가 이래 뵈도
사람 보는 눈이 조금 있어
사람 얼굴 보면 딱 보여
근데 박군, 너는 공부를 해서
먹고 살 팔자야
너 공부하는 거 좋아하지?
공부 더 하고 싶었지?”

라고 묻더라고요. 그런 장인어른의 말에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수학이 참 좋았어요. 참 신기한 것이 복잡한 문제일수록 끝까지 파고들어서 풀어나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가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랬는지 성적이 나쁘진는 않았던 것 같네요. 다만 같은 반 친구들이 시험을 보고 나면

“고아 주제에 어떻게 나보다 성적이 더 좋아?
너 컨닝 했지?!”

라고 괴롭혀서 오히려 알면서도 틀린 적도 있었어요. 부잣집 애들보다 성적이 잘 나오면 선생님조차도 저를 의심하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집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불을 켜놓고 있으면 큰엄마가 제게

“너 가르칠 돈 없다.
공부는 무슨 공부야 잠이나 자
전기세 아까우니까”

라는 말을 항상 했기 때문에 저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 장인어른의 말에

“제가 수학 문제를 풀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풀긴 했어요.
그런데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어요”

라고 씩 하고 웃었는데요. 장인어른이 저에게

“박군, 사람은 배워야 하는 거다.
그래야 살면서 무시 안 당하는 거야.
알겠냐? 앞으로 배달 일 줄여줄 테니까.
학원 다녀라 나머지 시간은
내가 알아서 배달하마”

라고 말을 했어요. 그리고는

“그리고 혹시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은지한테 물어보고
내가 이야기 해노마
알겠냐?”

라고 말을 하며 저를 바라봤어요. 저는 그때까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저 장인어른만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힘들 거야.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이겠냐 그런데 해야 한다.
너는 꼭 해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너를 함부로 하지 않는 거다”

라고 말을 했는데 그때 당시 장인어른의 눈에는 아련함 같은 것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 저는 일이 일찍 끝나면 학원을 다녔는데요.

장인어른의 말대로 정말 많이 힘이 들었어요.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코피를 쏟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제가 삐쩍삐쩍 말라가자 어느 날 장인 언른이 제게 다가와 말을 거셨습니다.

“박군, 오늘은 나랑 어디 좀 가자”

라고 말씀하시더니, 한의원에 데려갔는데요.

“우리 애가 요즘 몸이
많이 피곤해서 그러는데
제일로 좋은 보약 좀 해주소”

라고 말을 했어요. 그런 장인어른을 제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는데 장인어른이 제 눈을 애써 피해버리니 한의사에게 말하셨습니다.

“요즘 코피도 많이 썼고
애가 꼴이 영 말이 아니네요.”

그렇게 한약을 주문해 놓고, 나오는데 장인어른이 저를 보며

“걱정마 이놈아!
네 월급에서 깔 거니까”

라고 말을 하더니, 저를 데리고 오늘은 둘이서 몸보신 좀 해보자며 꽤 비싼 소고기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는 소고기를 굽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소고기를 시켰는데 근데 저는 계속 먹기만 했고 장인어른은 계속 굽기만 했어요.

맨날 눈칫밥만 먹고 자랐었는데 장인어른은 고기 한 점 제대로 먹지도 않고 고기를 굽기 바쁘셨어요.

“많이 먹어라. 많이 먹어야
힘을 내서 공부를 하지.
얼른 더 먹어”

라고 말하시면서 제 그릇에 고기를 쌓아 두기 바빴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사랑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 장인어른은 그런 분이었어요. 엄청 잔소리 무리가 심하고 무섭게 말을 했지만, 사실은 가슴이 참 따뜻한 그런 분이세요.

저는 그렇게 꽤 괜찮은 대학에 합격을 했고 공부를 하면서도 열심히 이 짜장면 배달도 해서 돈도 벌었는데요.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등록금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힘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런 부족한 부분은 장인어른이 아낌없이 도와줬어요. 평소에는 그토록 짠돌이인 장인어른이었지만 저에게 항상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움을 주셨어요.그리고는 항상

“어떻게든 성공해라 알겠냐?
너는 큰 물에서 놀 놈이야.
이놈아 네가 얼굴을 딱 보면 알아
한눈에 알아봤어”

라고 큰소리로 말을 해 주었어요. 장인어른의 한마디는 저에게 뭐라 설명할 수도 없는 큰 힘이 되어 주었고 그동안 자존감이 많이 낮았던 제가 점점 변해갔어요.

그렇게 저는 대학에 가서도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크게 될 사람’이라는 한마디를 굳게 믿고는 정말 죽어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군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군입대를 하고 나서도 장인어른은 면회를 자주 와줬어요.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 주려고 노력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와이프를 꼭 데리고 왔는데요. 제가 대학에 가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자 와이프와도 조금씩 가까워져 가고 있었거든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행복한 생활이었어요. 그렇게 저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정말 괜찮은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인어른은 그런 제게

“해냈구나! 해냈어!
거봐 이놈아. 내가 뭐라고 했냐.
내가 너를 한눈에 알아봤다. 이놈아”

라며 눈물까지 글썽이며 정말 좋아하셨어요. 장모님도 정말 축하해 주셨는데

“우리 은지는 좋겠네”

라고 놀리기도 했고요. 그럼 장모님의 말에 와이프 얼굴이 빨갛게 변했는데요. 와이프와 저는 장인 장모님 두 분의 허락을 받고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게 되었죠.

제가 회사에 입사를 하고 얼마 후 와이프와 저는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처갓집에서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같이 살았어요.

부모정이 그리워서 저는 그냥 다 좋았거든요. 제가 우리 장인 장모님을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가 그뿐만이 아니었는데요.

처제 상견례 도중 동서 부모님이 장인 장모님을 보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고아인 큰 사위를
직접 다 가르쳤다면서요?
대단하세요”

라고 말을 했는데요. 어찌 보면 별 뜻이 없어 보일 수도 있었고, 또 어찌 보면 약간의 기선제압 같은 것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마치 우리 아들은 멀쩡한 집안에서 잘 자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유난히 고아 부분을 강조해서 말을 했거든요. 그런데 식사를 하던 장인어른이 갑자기 젓가락을 탁 타고 내려놓더니,

“고아가 아니라 제 사위지요.
사위도 자식인데
말씀이 조금 지나치신 듯합니다.”

라고 단호하게 말을 했어요. 장인어른의 말에 사돈 어르신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그리고 장인어른은

“내가 아무리 도와줘도
지가 못 받아먹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근데 우리 큰 사위는
대학 다니면서 거진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사돈도 ㅇㅇ대학교 아시죠?

바로 그 대학교에서 말이죠.
그리고 우리 사위가 지금
거기서 팀장으로 있어요.
승진에서도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어요.
아주 든든합니다.”

라며 장인어른은 아주 신이 나서 말을 했어요. 장인어른은 항상 사람들에게 저를 그렇게 설명하곤 했어요.

그런 장인어른의 말에 장모님이 장인어른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댔지만 장인어른은

“내가 요즘 사위 때문에 아주 살맛이 납니다”

라는 말을 잊지 않았고 하셨죠. 장인어른은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제 편이 되어 주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장인어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요.

“사실 나도 고아였네,
그래서 자네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공부가 싫어 못된 짓만 하다가
퇴학 당했어.

그렇게 막노동판을 돌다가
어느 날 우리 장인을 만났어.
장인이 아무 말도 없이
짜장면 만 것을 배워보라고 하더구만
그리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공부를 시켰어
대학까지 가라고 했는데,
나는 공부에 영 흥미가 없었어 그
런데 짜장면 만드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네”

라고 말을 하더니, 옛날 생각이 나는지 장인어른의 눈가가 촉촉해지셨습니다.

실제로 장인어른은 정말 좋은 일을 참 많이 하고 있었어요고아원에 방문해서 짜장면을 만들어서 먹이기도 했고 여기저기 후원도 참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아까워하지 않았어요. 항상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런 장인어른을 따라 배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장인어른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요.일을 하고 있었는데 낯익은 남자 한 명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자세히 보니 큰아버지였어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지나가다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저를 보던 큰아버지 표정은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요.

“너 짜장면집 종업원댔냐?
그래도 네 주제에 출세했다?”

라고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한 채 물었죠. 그리고는

“여기 간짜장 하나 갖다 줘라.”

라고 주문을 했어요. 큰아버지에게 뭘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조카의 안부 정도는 물어도 될 듯하던데 집안 사람들은 참 인정머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큰아버지를 제가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그런 우리 모습을 보던 장인어른이 갑자기 큰아버지 앞에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누구신가?”

라고 물었어요. 저는

“큰아버지세요.”

라고 제가 짧게 말을 했어요.

“아이고 인사가 늦었습니다.
우리 사위 키워주신 분인가 보군요?”

라고 장인어른이 말을 했는데요. 말을 듣고 있던 큰아버지가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사위요?”

라고 짧게 물어봤어요. 그럼 큰아버지에게 장인어른이

“우리 귀한 사위지요.
공휴일에는 집에서 쉬라고 하는데도
굳이 와서 도와주네요.
큰 회사 다니느라 피곤할 텐데 말이죠.”

라고 말을 해하셨어요 그러더니,

“우리 사위가 ㅇㅇ회사 다니거든요.
ㅇㅇ회사 알죠? 거기 팀장입니다”

라고 말을 하며 큰소리로 웃었어요. 그런 장인어른의 말을 듣던 큰아버지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는데요.

“네까짓 게 어떻게 큰 회사를 들어갔냐”

라고 물었어요. 그 말에 장인어른의 표정이 굳어졌는데요.

“네까짓 거라니요?
남이 귀한 사위한테
우리 사위는 이제 그쪽이
그렇게 함부로 할 사람이 아니거든요”

라고 말을 해버렸어요. 순간 큰아버지 표정은 뭐라 표현할 수도 없이 구겨져 버렸는데요. 먹던 음식도 다 먹지 못하고 놀라서 가버렸어요.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찾아와서는 하는 말이

“너네 형이 말이다. 사업을 하잖니?
그런데 네 얘기를 하니까 잘되었다고
그렇게 좋아하지 않겠니
마침 네네 회사와 거래를 터야 하는데
네가 거기 팀장이라며?
네가 힘 좀 써주면 잘 될 것 같다고 하던데
네가 힘 좀 한번 써주면 안 되겠냐?”

라며 능글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했어요. 저는 그런 큰아버지를 보며

“그럼 이미 거래하는 업체를
내보내라는 말인가요? 그럴 순 없죠.
지금 거래하는 업체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업체도 생계가 걸린 문제인데”

라고 딱 잘라서 거절을 했는데요. 큰아버지가 갑자기 제 손을 덥썩 잡더니,

그러지 말고 좀 부탁하마.
우리 전재산 거기다 다 투자했는데
지금 많이 힘이 들어서 그런다
업체랑은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너랑 나랑은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 아니더냐”

라고 말을 했는데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나요? 우리 부모님 보험금도 다 가져다 쓰고 그렇게 구박까지 하고는 어떻게 이런 부탁을 할 수가 있을까요?

제가 그런 큰아버지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쳐 버리며

“그렇게 사니까 평생 일이 안 풀리죠.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 일이 잘 풀리는 겁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
우리 부모님 보험금 가지고 멱살 잡고 싸울 때부터
당신들은 인간들이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나보고 다른 사람 밥줄을 끊어서
당신네 먹여 살려달라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하루 밥 세 번 먹는 것도 눈치를 준 당신들한테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그만 가시죠.
그리고 우리 회사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고
당신들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라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있던 말을 쏟아내 버렸어요. 하지만 그런 제 말을 듣던 큰아버지가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내가 다 키워줬더니,

뭐가 어쩌고 어째?”

라며 제 뺨을 때렸어요. 그리고 그런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장인어른이 순식간에 우리에게로 뛰어왔는데요.

당신이 뭔데 내 사위를 때려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큰아버지의 멱살을 잇는 힘껏 움켜잡고는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어요.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다들 깜짝 놀라 있었는데요. 큰아버지는 그렇게 쌍욕을 하고 나가버렸어요.

그리고 장인어른이 저를 보며

“아주 잘했어! 아주 잘했어.
사람이 가끔은 그렇게 할 말은 다 하고
살아야 하는 거야.
내 속이 아주 다 시원하네
내가 뭐랬냐!
성공하면 아무도 더 못 건드린다고 했지?
앞으로도 그렇게 당당히 살어.
알겠냐?”

라고 말을 하면서 큰소리로 웃었어요. 살면서 뺨을 얻어맞고도 오히려 그렇게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평생을 안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설움을 이제야 떨쳐낼 수가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우리 장인 어른은 오늘도 잔소리를 시작합니다.

그런 장인어른의 잔소리가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면서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장인 장모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이 사위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다 해드릴 거니깐요! 항상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우리 아버님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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