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에게 방 못 준다는 말에..” 매달 월급 100만원 떼어내 50명 노숙인들 끼니 챙겨주며 동고동락한 32년차 경찰관

“제게 노숙인은 형제나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동고동락을 실천하는 것뿐이에요.”

절망에 빠져 희망을 잃은 노숙인들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영등포경찰서 대림지구대 소속 32년차 경찰관인 이성우 경감인데요.

이 경감은 인근 노숙인들과 형제처럼 지냅니다. 비번인 날에는 노숙인을 만나 끼니와 생활 필수품을 챙겨주느라 월급의 3분의 1(약 100만 원)가량을 쓰고, 지낼 곳이 마땅치 않은 이들에겐 보증금이 없는 셋방을 알아봐 주기도 합니다.

그가 이렇게 지낸 지 올해로 9년째, 그동안 총 50여명의 노숙인을 묵묵히 도운 키다리 아저씨입니다.

이 경감은 1992년 경찰이 된 후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주로 근무하며 노숙인이 얽힌 사건·사고를 자주 접했습니다. 주로 절도 등 생계형 범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노숙인이 골칫거리였지만, 이 경위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법으로 다스리기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라며 “경찰관으로서나, 신앙인으로서나, 이들을 방치하면 결국 보이스피싱에 명의를 도용 당하며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노숙인도 당장 굶주림과 추위를 피할 수 있다면 범죄로부터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던 차에 2016년경 서울 동작경찰서 노량진지구대로 배속됐고 관내 지하철역 등에 모여 사는 노숙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노숙인들에게 먼저 “밥 한 끼 드실까요” “아픈 데 없나요”라며 관심을 보였다. 처음엔 욕하고, 침 뱉고, 뺨까지 때리며 이 경위를 밀어 내려던 노숙인들이 마음을 열었습니다.

3개월이 지난 뒤 마침내 노숙인 3명과 마음을 터놓고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이 경감은 노량진 한 고시원에 사정을 설명하고 사비를 털어 노숙인들의 숙소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집이 있다면 이들이 길에서 생활하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 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여러 곳을 돌다 어렵게 구한 곳은 작은 고시원이었습니다. 고시원 주인이 노숙인에게 방을 내주기를 꺼리자, 자신이 함께 지내겠다며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 경감은 비번인 날에도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하는데요. 그는 노숙인들의 자립도 도왔습니다. 택배 일을 하는 김 모 씨는 7년 전만 해도 거리 생활을 했습니다.

10년 동안 노숙 생활을 했던 또 다른 남성도 이제는 서울의 한 주민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이 경감 덕분에 새로운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수도 있고, 일할 직장도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자립에 성공한 노숙인은 15명, 이들은 좌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경감은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얻어 지난 8년간 노숙인 25명에게 거처를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말에도 교도소에서 출소한 한 정신질환자 노숙인 남성(60)의 집을 구해줬습니다.

이 경감의 선행을 아는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 없는 다세대주택을 구해준 것. 몇 해 전까진 월세도 대신 내주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시로 교류하는 노숙인이 15명으로 늘어 월세 지원은 어려워졌습니다다.

그 대신 한때 노숙인이었던 이들이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집에 찾아가 밥을 차려주거나 중고 가전제품을 얻어주고 있습니다.

이후 이 경감은 소외 계층을 더 전문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다가 사회복지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이 경감은 2020년 60대 어머니가 지병으로 숨지자 발달장애 30대 아들이 노숙을 시작한 이른바 ‘방배동 모자’ 사건 당시 비번인데도 출동해 이들을 발견한 경찰관이기도 합니다. 

이제 정년을 불과 4년 남겨둔 이성우 경감, 퇴직 이후엔 목사가 되어 소외된 이웃을 계속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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