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국인 아이는 정말 특별했어요..” 미국 백만장자 할머니가 한국 아이만 고집해서 입양하는 소름돋는 ‘이유’가 알려지자 모두를 충격에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미국 일리노이 주에 살고 있는 미국인 올가라고 합니다. 전 우리 동내에서 돈이 많은 집 안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지금은 할머니가 다 돼서 늙었지만 젊을 적은 동네에서 돈으로 꽤 유명한 여성이었죠. 저는 남편과 함께 사는데 우리 딸 아들은 전부 입양아입니다.

제가 자연 임신이 불가해서 아이들을 전부 입양하게 되었어요. 그중에는 한국인의 아이도 있답니다. 이 아이 때문에 제가 감동을 받고 제 남은 인생을 이 딸아이에게 바칠까 합니다.

저는 이런 한국인 딸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오늘 전해드리고자 해요. 중년이 다 되도록 저는 결혼하지 않았고. 독신주의자로 살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늘그막의 5년 동안 짝사랑을 하며 결혼하고 싶어진 사랑하는 남자가 한 명 생겨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그는 저를 그저 돈 많은 중년 여성이라고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돈만 많은 그런 허세스러운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진실된 마음을 어필하니 결국 제 진심이 그에게 닿았나 봐요. 저를 받아준 것은 봉사활동 단체에서 우리 둘이 만났기 때문이었어요.

평소 제가 말 자체가 툭 나오는 경향이 있어서 저를 마냥 가볍게만 봤나 봐요. 훌륭하신 부모님 밑에서 교육을 착실히 받았고 어릴 적부터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이 몸에 베였었던 저의 참된 모습을 보고 마침내 제임스는 저의 고백을 받아주고 우리는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딩크족이 되고 싶었어요. 그냥 봉사활동을 다니며 아프고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내고 싶었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3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자식이 갖고 싶어 졌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몇 번이고 임신을 하기 위해 시도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되지 않더라고요. 시험관도 해 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았는데 안 되었어요.

결국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어서 병원을 전전했는데 알고 봤더니, 제가 나이 때문인지 자연적으로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더군요.

우리는 청천벽력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것이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자고 제임스가 먼저 제안했고 저도 흔쾌히 의견을 받아들였답니다.

다행히 미국에서 입양은 결혼 3년 후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조건과 다양한 다른 조건 맞아 떨어져서 우리는 세계의 다양한 인종 아이들을 입양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경제적인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미국, 유럽, 중국, 한국 아이들 등등 총 6명의 아이들을 입양했습니다.

그중 첫 만남이 가장 인상에 남았던 아이가 바로 한국인 아이였어요. 처음 우리 부부는 한국 아이와 만날 때 혹시나 우리 금발 머리를 보고 놀라지는 않을까? 남편과 저는 흑발로 염색을 하고 그녀를 만났죠.

그때 아이의 나이가 5살 경이었습니다. 딸아이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 긴장을 많이 한 듯 해 보였어요. 6개월 전에 딸아이의 친엄마가 아이를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썼고 피부색이 달랐죠. 처음에 딸 아이는 우리를 싫어하나 싶어서 너무 힘들었답니다. 왜냐하면, 말수도 별로 없고 웃지도 않았으니깐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 부부가 진심으로 딸아이에 대한 사랑을 보이자 점차적으로 딸아이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인 딸아이에게 우리는 티나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티나는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지고 있었어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세 번의 심장 수술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티나는 몸이 아팠지만 정신적으로는 참 건강한 아이였어요.

다른 입양 아들 딸들과는 다른 점이 유교 사상의 유전자가 흐르는 건지 뭘 하던 간에 무조건 우리 부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에요.

밥을 먹을 때 제가 수저를 들 때까지 항상 기다리곤 했어요. 저는 이런 모습은 미국 내에서 한인 태권도 학원을 다닌 미국 아이들에게서만 보인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인 특유의 예절은 배우지 않아도 유전적인 피가 흐르나 봐요? 딸아이가 성인이 되어 취업을 해서 첫 월급을 받고는 빨간 내복을 저에게 선물로 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고 하면서요. 우리 부부는 참으로 감동받았답니다. 다른 자식들은 첫 월급으로 자신들의 해외여행을 최우선으로 했거든요.

오히려 우리 부부에게 돈을 더 달라고 해서 여행을 가기도 하고 중국인 아들은 첫 월급을 일주일 만에 탕진하기도 했답니다.

다른 자식들은 오히려 자랄수록 엇나가기만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이 아니다 보니 나가서 돈을 흥정 망청 쓴다거나 사고를 치기 일쑤였죠. 성인이 되고 나서는 더 심했고요.

하지만 한국인 딸아이는 참으로 검소히 돈을 잘 모았어요. 티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재유산을 상속받고 싶어 하거나 하는 속내도 없어 보였어요.

항상 우리 부부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면 제일 먼저 연락 주어 우리를 챙겨주기만 했죠. 아낌없이 주는 나무인 마냥 우리 부부를 친부모로 여기며 살뜰히 챙겨주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티나가 열여덟 살쯤 되었을 때일까요? 저는 티나의 방을 청소하다가 한 편지지를 발견했고 그것을 보고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겠어요.

티나는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이나 슬픔을 평소에 우리에게 보이지 않고 우리만 바라보는 딸아이여서 전혀 그런 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편지지 아내 내용은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더군요. 그러면서 우리 부부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함께요 편지 안에 글귀는 이랬습니다.

” 한국에 계신 엄마 아빠 물론 저를 버렸지만 전 원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 부모님이 많이 그립습니다. 천륜이라는 것은 끊고 싶어도 끊어지지 않는 것인가 봐요.

매일 밤 미국 부모님 몰래 이불속에서 눈물을 훔치곤 한답니다. 하지만 저는 눈물을 오늘까지만 보이려고 해요. 왜냐하면, 제가 한국 부모님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안다면 미국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애통할까요?

저는 지금 미국 부모님을 제 자신보다 더 사랑한답니다. 그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잘 계세요. 혹시나 먼 훗날 만나게 된다면 이 편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어서 감사해요. “

그 작은 손으로 끄적였던 편지지 위에는 눈물로 번진 잉크가 처연하게 퍼져 있었고 편지지는 눈물에 불어서 오돌토돌한 촉감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와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딸아이를 안겨준 한국 친부모에 대한 감사함의 마음이 들었고 조금 더 이 딸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딸 아이를 잘 키우고자 하는 것은 제 안에서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향하더군요.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 아이는 공부보다는 그저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서 교육비를 투자하지 않았답니다.

어릴 적부터 하도 살뜰히 우리 노부부를 챙기는 티나가 그냥 우리 옆에 항상 붙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냈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해서 머리가 크면 드넓은 세계로 나아갈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욕심일 뿐이었어요. 근데 그렇게 다른 아이들에 비해 교육비에 투자하지 않았으나 티나는 머리가 원체 똑똑해서 그런지 아이들 중에 대학을 제일 잘 갔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부부 옆집에 집을 사서 혼자 살아가면서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찾아와서 우리를 챙겨주고 있죠. 어차피 우리를 버리지 않는 아이인데 아이의 교육에 더 노력해서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더 잘 펼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줄 걸 그랬습니다.

딸 티나에게 지금 와서 미안한 마음이 좀 크게 드네요. 지금은 티나가 일한다고 바빠서 그럴 정신이 없겠지만, 언젠가는 티나의 한국 부모를 꼭 찾아주어서 만나게 해 줄 생각입니다.

어차피 그래도 티나는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거든요. 우리 부부는 현재 늦둥이로 아들 한 명을 더 입양할 생각에 있습니다.

아들 역시 한국 아이로요. 홀로 남겨진 세계의 아이들에게 행복을 주고자 입양을 시작한 건데 이제는 그것이 오히려 우리가 행복해지는 새로운 방법이 된 것 같습니다. 제 사연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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