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한국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외국인분의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뉴욕 버 펄로 시에 살고 있는 베일리라고 합니다. 오늘 제가 여기 찾아온 이유는 고속버스에서 만난 한국인들 덕분에 제 목숨은 물론 어린 딸의 목숨까지 살 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날, 그분들이 없었다면 고속버스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원래 저는 토론토에 살던 캐나다 사람인데 8년 전 부모님이 집에서 저를 쫓아내셨었죠.
제가 당시 남자친구를 잘못 만나서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부모님이 워낙 보수적이신 분이셨어요. 당연히 제 남자친구였던 사람도 어딘가로 내쫓아져서 지금 소식은 잘 모릅니다.
아무튼 저는 뉴욕 버펄로 시의 터를 잡고 혼자 딸을 출산해 7년이라 시간이 흘렀죠. 7년이란 시간 동안 부모님은 제 계좌에 조금씩 양육비를 보내주신 덕에 저와 제 딸은 부족함 없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은 저를 용서하셨지만 저는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부모님 볼 낯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못 본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직접 보러 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더군요.
그렇게 가야지 하면서도 미루다가 직장에서 제대로 자리 잡고 가야지 하면 또 안 가고 그랬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어머니가 저를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꼭 보고 싶으시다고 전화하셨죠.
그날에는 꼭 부모님을 뵈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딸과 함께 부모님을 뵙기 위해 터미널로 가서 버펄로시 행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운행 중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버스 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죠.
“매서운 북극기류로 인해 현재 미국 동부와 캐나다 전역의 폭설과 강풍이 강타하고 있습니다. 외출을 절대 자제하시고 비상시에는 911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
얼마 전 발생한 미국 폭설에 휘말리시고 말았군요. 저는 설마 이 무거운 고속버스가 멈추겠어? 하는 생각을 했죠. 경보가 들릴 때까지만 해도 밖에는 눈이 조금씩 내리긴 했지만 아직 화창했거든요.
그런데 순식간에 날씨가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강력한 눈발이 버스 차창고 앞유리를 드리 받았고 한적한 국도에는 금세 녹다란 눈이 쌓였죠.
운전기사는 안전 때문에 일단 갓길에 정차하겠다고 말한 뒤 저는 부모님께 전화 걸어 제시간에 도착 못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승객들이 모두 웅성웅성하더니, 각자 전화로 안부를 묻기 시작했고, 제 불안감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죠. 마침 저한테도 부모님이 아직 출발 안 했기를 바란다며 전화를 해왔어요.
일단 저는 몰아드릴 말씀이 없어서 잘 가고 있다고 얼버무렸죠. 전화를 끊고서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이 폭설이 끝나면 출발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더 가혹했어요.
하루가 넘도록 이 계속 오자 운전기사는 이곳에서 아마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일 거라면서 히터를 틀어 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승객들 중 한 명이 일어나 외쳤죠.
“우리 모두를 죽게 만들 셈입니까? 히터는 절대로 틀지 마세요.”
아시아 분이셨는데 일어나서는 운전기사한테 다가가 대신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안내 방송을 했죠.
“지금 히터를 틀면 눈 때문에 일산화탄소 등의 매연이 차 안으로 들어올 겁니다. 당장 응급차량을 부르고 최대한 따뜻하게 껴입어서 체온을 유지해야 합니다.”
만약, 그때 그분이 없었더라면 끔찍한 결과가 벌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이제 히터를 틀 수 없으니 추위를 막을 옷을 껴입어야 하는데 모두들 자기 짐을 짐칸에다 넣어 곧 타고 있어서 밖에 누군가 나가야만 했죠.
그런데 방금 안내방송을 대신해 주신 분과 옆에 같은 아시아 남성분들이 자신의 짐칸에서 옷을 꺼내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다른 남자들도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함께 손잡고 짐칸 문을 열자고 했지요.
버스 문을 살짝 열자 엄청난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고 자원하신 분들은 장갑을 낀 손으로 눈을 퍼서 짐칸 손잡이를 찾아내셨죠.
짐칸 손잡이를 열고 안에 들어있던 모든 여행 가방을 모두 꺼냈습니다. 버스 안에 있던 저를 포함한 모든 여자분들도 짐칸을 꺼내고 나르는 데 동참했어요.
운전기사를 포함한 모든 남자분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안에서 쉬고 있는 사이 여자들이 옷과 담요 그리고 먹을 것들을 가방에서 꺼냈죠. 다행히 겨울철이라 가방 안에 담요와 핫팩 그리고 달콤한 간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각자 조금씩 간식들을 나눠 먹고 응급 차량을 기다리면서 옹기종기 최대한부터 대화를 나누었어요. 그러다 아까 처음 히터 트는 걸 막은 남자분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분은 한국에서 오신 분이더라고요.
이분 말고도 뒷자리에 앉아 계시던 아시아 사람들 모두 한국분들이셨고 토론토에 사는 친척분들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이 버스에 탄 많은 분들이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버스에 탄 것이었죠. 제가 나중에 알아보니 차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추워서 정신을 잃거나 무심코 히터를 틀어버려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옷과 담요를 밖에서 구해다 오지 않았다면 히터 없이 하루 반나절을 버텨야 했을 거예요., 그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이 밖에도 한국 분들은 저희가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셨어요. 눈발이 살짝 약해진 상황에서 버스가 살짝 기우뚱하더니, 뒤로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아마도 약간 경사진 도로에서 정차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아무튼 이를 알아챈 한국 분들은 “빨리 나가서 버스를 더 밀어야 한다.”며 남자고 여자고 모두 일으켜 세웠습니다.
밖으로 나가보니 정말로 살짝 기우뚱하면서 뒤로 가는 게 눈으로 보였어요. 아무튼 저희는 뒤쪽에 쌓인 눈을 손으로 퍽퍽 치우고 신호에 맞춰 버스를 온 힘을 다해 밀고 또 밀었습니다.
힘을 합하니까 무거운 버스가 앞으로 밀리고 마침내 평평한 도로까지 옮길 수 있었습니다. 정말 기적이나 다름없었죠. 그때 하나도 정신이 없었는데 버스 안에 들어오면서 뭔가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가혹한 재난 상황 속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요. 그리고 다 같이 힘을 모아서 뭔가 해본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어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눈발이 좀 더 약해지니까 그제야 응급 차량이 저희를 구출하러 왔죠. 그 당시 응급차도 부른 지 한참 뒤에야 도착했는데 그때는 왜 이제야 도착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응급대원분들은 최선을 다하셨던 걸 나중에서야 알았죠. 구조 요청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온 데다가 초반의 폭설이 가장 심한 상황에 구조하러 나가셨다가 오히려 갇혀버린 응급대원 분들도 있었다고 해요.
나중에 무료로 버스 편을 배정받아 토론토에 도착해 부모님을 만났을 때는 모든 것이 꿈같고, 비현실적이었어요. 사건 이후로는 세상이 너무나 귀하고 값지다는 걸 하루하루 깨달으며 살고 있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그 한국분들을 다시 만나 그때 정말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만약 그분들이 타지 않은 다른 버스를 탔다면 저와 제 딸은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한국 남자분의 연락이 닿게 되어 꼭 만나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이제는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시면 된다고 그렇게 크게 신세 졌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죠. 그분의 말씀대로 저도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다른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Desk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