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라온 나에게” 매달 100만원씩 후원받고 훗날 변호사가 되었는데, 수년 뒤 후원자의 놀라운 ‘정체’에 난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요즘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들 많이 하시죠. 그러나 전 아예 그런 수저 자체를 가지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전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제가 버려져 있던 때가 아주 추운 겨울이었고 전 생후 한 달쯤 누군지도 모르는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버려지는 데도 급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누군간 버려질 때 좋은 옷과 따뜻한 이불에 쌓여서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쪽지에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절절한 사연과 함께 잘 키워달라는 눈물어린 부탁이 적혀 있답니다.

아마도 정말 소중하게 태어난 아이를 차마 키우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그곳에 담은 것이겠죠. 그런데 전 차디 찬 지하철역에 그것도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저희 부모라는 사람들은 제가 죽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죽는 걸 살짝 바랬던 것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물론 답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겠죠. 평생 사람들을 만날 수도 물어볼 수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전 버려져서 고아원에 온 아이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끔찍한 형태로 버려졌었습니다. 구조 당시 저체온증까지 와서 딱 죽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발견된 것 자체가 기적이라구요. 다행히 절 받아준 고아원 원장 선생님은 그런 저에게 그만큼 굳센 아이였다고 하면서 많은 사랑을 주셨더랬습니다. 운이 좋았었죠.

제가 잘 아는 고아원의 원장님 선생님 그곳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꼭 하루에 한 번씩 안아주시고 보듬어 주시고 눈을 맞춰주는 분이셨습니다. 그 덕분인지 같이 고아원에 있던 친구들도 부모의 사랑은 아니지만, 원장님의 사랑 속에 크게 모난데 없이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아주 어렸을 땐 부모님이 없다는 게, 가족이 없다는 게 어떤 건지 막연하게만 알았지 그렇게 슬프거나 아프진 않았습니다. 주변에 전부 가족이 없는 아이들만 있다보니. 그냥 그런 애들도 많나 보다 했으니까요.

그러나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약자인지 사람들이 우리 같은 아이들을 어떻게 보는지 알게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촌지라는 것이 사라졌다고 하던데 제가 학교를 다니던 몇 년 전만 해도 아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이것저것 요구하고 할 때였죠 .

” 스승의 날인 건 알지? 선생님은 손수건. 립스틱.스타킹 이 세 가지는 정말 딱 질색이다. 그러니까 오늘 집에 가서 꼭 말씀드려 선물은 받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거 하는 거지~ 주는 사람 형편에 맞춰서 하는 거 아니다. 알았지?”

그러나 그때 전 너무나 어렸고 정말 하신 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선생님이 손수건 립스틱 스타킹을 싫어하시는구나 그거 빼고는 아무거나 다 좋아하시는구나 참 눈치가 없는 아이였죠.

스승의 날이었다고 해도 차라리 아무것도 안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전 제 첫 담임 선생님이 너무나 좋았었거든요. 그리구 그런 제 마음을 너무나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 스승의 날 전에 처음 저의 담임이 되어주신 선생님께 감사와 사랑이 가득 담긴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아껴두었던 색종이를 꺼내서 꽃도 하나 접었죠.

그동안 원장 선생님은 제가 그런 선물을 드리면, 항상 기뻐하면서 안아주셨으니 전 모든 어른들이 저에게 그럴 거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그렇게 어른스럽지 못했을까요. 그냥 고맙다 한마디 해주시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셨을까요?

선생님은 아이들의 선물들 사이에서 제 편지를 발견하고 읽으신 후 코웃음을 치시고는 그대로 구겨서 바닥으로 던져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값비싼 선물들을 하나하나 풀어보시고는 선물을 둔 아이를 한 명씩 불러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고맙다고 하셨죠. 딱 저만 빼구요.

그때부터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 처음 알게 된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도 최악의 어른이었던 것 같아요. 무료 급식을 먹는 저를 보면서

” 넌 밥 먹을 때마다 선생님한테 감사해야 돼. 선생님 같은 어른들이 열심히 일해서 세금을 내니까 니가 이렇게 급식을 먹을 수 있는 거야. 책임감 없는 너의 부모가 버린 너 때문에 내 세금이 낭비되고 있는 걸 보는 것 같아서 불쾌하지만 말야~ “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고 어른들에게 휩쓸리기 쉬웠던 아직은 어렸던 같은 반 아이들은 저를 세금 낭비축 급식 거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자기들 부모님도 세금을 내니까 자식인 자기들에게 급식을 먹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라며 강요하기도 했었습니다.

1학년을 그렇게 시작했으니 학년이 올라간다고 바뀌는 건 없었어요. 이미 선생님을 통해 제가 어떤 취급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의 아기에 참 장난과 나쁜 말들은 오히려 더 심해질 뿐이었거든요.

그러다 3학년 때였습니다. 3년의 학교생활을 통해 같은 잘못을 해도 저만 혼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가능하면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게 지내던 중 일어난 일이었어요.

그날 본 시험에서 저만 100점을 맞은 게 문제였습니다. 공부에 욕심이 있던 반 친구가 자신은 100점을 못 맞았다고 제가 100점을 맞은 것이 못마땅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제가 컨닝을 했다고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전 억울하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제 말을 믿어 주시지 않으셨어요. 결국 전 선생님에게 컨닝을 했다고 벌을 받았고 너무나 억울한 마음에 친구에게 따졌지만 다음날 친구 어머님이 학교로 쫓아오셨습니다.

” 내가 이래서 가정교육을 따지는 거야~ 너 같은 애들이 이따위로 남한테 피해주고 물을 흐리니까 부모가 없는 티를 내니까! 비겁하고 뻔뻔하게 컨닝이나 해서 좋은 성적 받으면 좋니?!

들키고도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친구한테 싸움을 걸어?! 너 같은 애들이 커서 사회에 쓰레기가 되는 거야! 왜 너 같은 애들도 나라에서 의무교육이라고 학교를 보내서는 다른 애들이 피해를 보게 하는 건데?!

아주 고아원 밖으로 못 나오게 해야지! 이게 무슨 민폐야!! 왜 죽은 듯 조용히 처박혀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문제를 만들고 다니는 거냐고!!”

이미 저는 컨닝을 한 아이더군요. 사람들에게 학원도 다니고 문제집도 잔뜩 푸는 아이들도 못 맞는 100점을 고아인 제가 맞았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으니까요.

아무도 제 말을 믿어줄 생각을 안 했습니다. 정말 단 한 명도요… 선생님은 어머님께 절 단단히 야단쳐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니라고 하는 제 말은 무시하고 한참을 야단치고 회초리도 때린 후 반성도 하지 않고 거짓말까지 했으니 제대로 반성할 때까지 혼자 교실 청소를 하라는 벌까지 주셨습니다.

한참을 억울하게 혼나고 있는 저를 보고는 호소하다는 듯 혀를 내밀며 엄마의 팔짱을 끼고 나가는 친구, 저를 째려보며 깨끗하게 청소를 하라고 하는 선생님까지… 어린 마음에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었던 것 같습니다.

당장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그러나 전 공부가 좋았고 학교가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차마 더 이상 선생님께 반항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청소를 끝내고 학교를 나서니 이미 밖은 깜깜해져 있었고, 서러운 마음에 고아원으로 향하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었습니다. 그렇게 울어도 누구 하나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더 서러웠죠. 그렇게 울다 보니 주변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걷고 있었고, 그러다 갑자기 요란하게 서는 차 소리를 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차도까지 내려갔었나 보더라구요. 급정거한 차에서 사람이 내리고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저를 살피고 부모님 연락처를 묻는데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제가 부모님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차가 고장 났다고 하면서 물어내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도망을 쳤어요. 세상 어디에도 제 편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울면서 도착한 저를 보신 원장 선생님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저를 끌어안고 같이 울어주셨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 따져주셨습니다.

“우리 선주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왜 그런 억울한 소리를 하시나요?! 우리 선주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고아원에 있는 언니들 오빠들한테 몇 번이고 다시 물어보고 확인하고 배웠습니다.

하도 물어봐서 언니랑 오빠들이 귀찮아하면서도 기특하다면서 다들 모여서 가르쳐주고 또 가르쳐줬어요. 이번 시험도 모르는 거 많고 어렵다고 걱정을 하면서 시험 전날 제대로 잠도 못 자고 공부를 했는데 당연히 시험을 잘 보는 게 맞지 않나요?

그리고 설사 애가 혹시나 컨닝을 한 건가 의심스러웠으면 재시험이라도 포기하시면 되는 거지! 왜 확인도 하지 않고 억울한 소리를 내서 애를 올리세요?!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학생을 보호하고 편을 들어주지는 못하고 왜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로 누명을 쓰게 합니까?”

평소에도 항상 제 편이신 원장 선생님이셨지만 그날은 정말 슈퍼 영웅 같으셨어요. 결국 담임 선생님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셨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안하다 한마디를 툭 던지더군요. 그래도 충분했어요. 원장 선생님이 학교까지 와서 제 편을 들어주셨으니까요.

그리고 며칠 후 저를 따로 부르신 원장 선생님은 사실 저에게 숨겨둔 후원자가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동안은 사실 특별히 필요한 게 없는 것 같아서 따로 돈만 모아두고 있으셨는데 제가 공부에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후원자님이 보내주시는 돈으로 학원도 보내주고 문제집도 사주신다고 하시더라구요.

학원을 다닐 수 있다… 정말 꿈도 꿔보지 못한 일이 일어날 순간이었어요. 전엔 사실만 너무 좋아서 후원자가 누구인지 언제부터 후원을 해 주셨는지 물어볼 생각도 못 했었네요.

후원자님이 저에게 매달 후원하시는 돈은 한 달에 자그마치 100만 원이나 됐습니다. 원한다면, 예쁜 옷도 사입고 멋진 신발도 사 신어도 된다고 했지만, 전 아무것도 필요 없었습니다.

전 예쁜 옷이나 신발 맛있는 간식보다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그렇게 전 고아원에서 지내면서도 학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원자 분께서 너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게 너무 기특하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책도 보내주셨어~ 너만 괜찮다면 선주 성적표도 보고 싶다고 하셨고 편지도 받아보고 싶다고 하시네~ “

누군가 저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원래도 공부하는 걸 좋아했지만, 저에게 후원해 주시는 분을 생각하더라도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후원자님이 어떤 분인지 상상하면 우울하게 힘든 기분도 날아가고 힘든 것도 사라졌어요.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열심히 감사 편지도 썼고 나중엔 저의 일상들을 주저리주저리 쓰면서 마치 유학 온 딸이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는 기분까지 느꼈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사람들은 제가 고아원에 다니는 고아인 것도 신경을 썼지만 그보단 제 성적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매번 시험을 잘 보다보니 이젠 억울하게 컨닝한다는 소리도 듣지 않았죠. 성적이 좋아지니 제가 고아인 것도 상관없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도와달라고 하고 숙제를 봐달라고 하고 시험 문제를 찍어달라고 하더군요. 애들이 다 제 친구들인 건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더 이상 억울한 소리를 듣지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전 좋은 성적으로 명문 법대에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이제 은혜를 보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장 선생님 이제 후원자님께 인사를 드려야 되지 않을까요? 그동안 후원자님 덕분에 너무 감사하게 공부할 수 있었고, 이렇게 좋은 성적으로 대학까지 가게 되었는데 이대로 있다는 건 너무 뻔뻔한 것 같아서요. 후원자님이 정체를 밝히고 싶어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지만, 이젠 괜찮으시지 않을까요?”

그러나 원장 선생님은 여전히 단호하셨습니다.

” 아냐… 니 후원자님은 니가 너무 기특하시지만 니가 혹시라도 부담을 느낄까 봐. 니가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할까 봐, 본인을 숨기시는 거야.. 보답을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에 굳이 본의 본인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거란다”

전 어쩌면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을까요? 부모도 죽으라고 버린 절 누가 이렇게 따뜻이 지켜봐 주시고 도와주시는 걸까요…저는 후원자님께 보답하는 길은 더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리고 운이 좋게도 대학에 다니던 중 마지막으로, 치러진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로스쿨은 학비가 부담이 돼서 꼭 사법시험으로 합격하고 싶은 거였는데 후원자님은 그런 저의 노력을 알아주신 듯 처음으로 저에게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 항상 바르게 건강하게 열심히 자라고 있는 선주 양을 보면서 난 항상 힘을 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기보다 노력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선주양이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해요. 우리가 만날 일은 없겠지만, 난 선지양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가는 걸 언제나 응원할 겁니다. “

부모님이 계셨다면 이렇게 따뜻하게 감싸주셨을까요? 응원해 주셨을까요? 전 편지를 보고 또 보면서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노력하고 당당해지기로요 그렇게 연수원을 마친 전 고민 끝에 변호사가 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성적은 판사나 검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저도 언젠간 저처럼 힘들지만 꿈을 가진 누군갈 후원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돈을 많이 벌어야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무조건 돈만 많이 주며 아무 일이나 시키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진 않아서 예전 고아원에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무료로 도움을 주셨던 분이 계신 변호사 사무실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만나게 되었죠. 처음엔 혼자만의 짝사랑이었어요. 저보다 5살 위에 사수는 듬직하고 카리스마 넘치며 승률도 높은 일도 잘하는 남자입니다.

사수는 저와 연애하는 걸 공개하고 싶어했지만, 전 사수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됐을 때 사수가 욕먹을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고집을 부렸습니다.

” 선배님 저희가 연애하는 건 저희 두 사람이 좋으면 괜찮은 일이지만 이후의 일은 저희만의 문제 아니잖아요. 선배 부모님을 생각해보세요. 결혼하겠다고 데리고 온 여자가 고아라면 반갑지 않으실 거예요. 그러니까 선배 저랑 연애만 하고 결혼은 부모님이 좋아하실 만한 좋은 집안의 아가씨랑 하세요.”

“뭐?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연애는 너랑 하고 결혼은 딴 여자랑 하라니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그런 쓰레기로 보여?! 아니 도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데?! 아니면 혹시라도 니가 그러고 싶은 거야? 연애는 나랑 하고 결혼은 다른 좋은 남자랑 하려고? 선주야. 그러지 말자 내가 누구보다 잘 할 테니까. 연애도 나랑 하고 결혼도 나랑 해 “

“세상이 고아를 보는 인식을 선배보다 제가 잘 알아서 그래요. 저 선배가 때문에 힘들어지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사수는 정말 단호하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모르던 사실도 한 가지 알려주었습니다.

” 나는 우리 부모님 그런 것에 대한 편견 없어. 오히려 남들보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성공한 니가 얼마나 기특하고 대단한 건지 잘 알지.. 나 사실 너 이 또 고아원 알아 니가 대학교 들어가면서 고아원을 나와서 지내는 바람에 마주친 적은 없지만, 나 지금은 거기로 봉사활동 다니고 있어 우리 부모님이 너희 고아원의 물품 후원도 많이 하셨거든. 넌 모르겠지만…”

저는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제가 있던 고아원의 후원 해주시던 분이시라구요.

” 그래 우리 이렇게 인연이 깊은 사이라니까~ 그러니까 이상한 고민 같은 건 하지도 말고! 정말 이쁘게 만나고 이쁘게 사랑하고 그랬는데도 내가 싫지 않으면 결혼도 해주고 그럼 되는 거야”

세상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 부모님이 제가 있던 고아원을 알고 있던 분이라니요. 후원을 해주시던 분이라뇨… 이런 걸 보면 정말 인연이라는 것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후로는 더욱 사수가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나면 저와 함께 고아원으로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공부도 봐주면서 정말 누구보다 든든한 형 오빠 노릇을 해 주었고 그러면서 애들을 저의 가족이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연애를 하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낸 지 3년째 되는 날 그 사람은 저에게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 정말 평생 날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누구보다 든든한 니 편이 되어주고 너의 가족이 되어주고 너의 행복을 위해 평생 노력할게”

내 편… 내 가족… 얼마나 설레는 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은 어쩌면 이렇게 나를 잘하는지 신기할 정도였죠. 그리고 나도 이 사람의 편이 되어주고 가족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내민 반지를 끼고 사람의 프로포즈 받아들였어요.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하기 전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사람과 함께 사람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부모가 없어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고아원 원장님과 주변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어른들이 좋아 얌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옷도 챙겨 입고 아버님이 좋아하신다는 전통주와 어머님이 좋아하신다는 예쁜 장미 꽃다발을 가지고 그렇게 전 사람의 부모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한 발 한 발 그다음부턴 정말 한 발 한 발이 떨리더군요. 그리고 사람의 부모님이 오시는 걸 기다리던 몇 분은 정말 몇 시간 같았습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들어오시던 어른들 그 사람과 가족이 분명히 보이는 따뜻한 분위기의 어른들 저분들이구나 전 잔뜩 긴장한 채 인사를 드리고 권하시는 대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남자친구의 아버님께서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아니 내가 그렇게 궁금하다고 하는데, 저놈이 자기만 볼 거라고 아까워서 못 보여준다고 어찌나 까탈스럽게 구는지~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나 몰라요. 반가워요”

처음 꺼내신 말씀부터 어쩌면 그렇게 따뜻하셨던지요.

”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잔뜩 사줄 테니까. 먹고 싶은 건 다 먹어요. 이렇게 이쁜데 너무 말랐네~ 아유~! 우리 아들이 맛있는 거 안 사줘요? 아유 정말 못 쓰겠네! 너 돈 벌어서 다 뭐에 쓰냐?! 자기 여자 살도 못 찌우고! “

” 아버지! 저도 노력 많이 했어요. 아니 근데 열심히 챙겨 먹으면 뭐해요. 열심히 일해서 그런지 소화가 잘 되는지 안 찌는 체질인지 저 진짜 노력했다니까요? 억울해요. “

제가 너무나 사랑받는 사람이 된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시어머님이 되실 분은 아무런 말씀도 없이 저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계셨습니다.

왜 그러시지.. 진짜 내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엔 또 딱히 인상을 쓰시고 계신 것도 아니셨어요. 그저 아무 말 없이 계속 저만 보고 계셨습니다.

혹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뒤늦게 그런 생각도 들어서 몰래 거울을 꺼내보기도 했지만, 괜찮았고 그러면서 화장이 너무 진했나 이 립스틱 색이 안 어울리나 짧은 시간에 오만 가지 생각은 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음식들이 나오고 여전히 긴장한 한 숟갈을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드디어 예비 시어머님이 입을 여셨습니다.

” 정말 잘 자랐구나… “

전 순간 제가 잘못 들은 건가? 하며 멈칫하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 기특해라 이렇게 이쁘게 잘 자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

이번엔 제대로 들은 것 같은데, 무슨 말씀이시지 하는데 옆에서 듣고 계시던 예비 시아버님이

” 그렇지 역시! 우리 이 녀석에게는 아까워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 딸로다가…”

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순간 얼굴이 시뻘게진 얼굴이 된 사람이 큰소리로 예비 시아버님의 말을 막았습니다. 아버지 또 소리 예비 시부모님들은 상황에서 어리둥절해 하시는 모습을 보시며 또 제가 귀엽다는 듯 보고 웃어주셨죠.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라 하는 저에게 예비 시어머님은 작은 봉투를 하나 건네주셨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여러분 봉투엔 낯익은 그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후원 통장이었어요. 제가 10살 때부터 한 달에 100만 원씩 받았던 후원금이 들어오던 통장이요.

변호사 일을 시작하게 되기까지 15년이란 시간 동안 매달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저에게 후원금을 넣어주시면서 응원해 주시던 통장이요. 전 돈을 벌기 시작하고 그동안 받았던 후원금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어서 원장 선생님께 후원자님을 알려달라고 부탁드렸었습니다.

그러나 원장 선생님은 후원자님이 여전히 본인들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고 하셔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더 이상 돈을 받는 건 염치가 없어서 통장은 원장 선생님을 통해 돌려드렸었어요.

” 이거 이제 다시 받아주겠니? “

예비 시아버님의 말씀에 통장을 열어봤는데 통장에 찍힌 입금 내역을 확인하고 놀라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더 이상의 후원은 받지 않아도 된다며 돌려드린 통장인데 그곳엔 여전히 매달 100만 원씩의 후원금이 들어온 내역이 찍혀 있었습니다.

” 이젠 후원금이 아니라 며느리 용돈으로 줄 수 있겠구나 그동안 모아준 돈도 분명히 니 돈이니까. 이걸로 결혼하면서 필요한 거 사는데 보태렴.”

“어…이게… 이게…?”

어떻게 전 놀라서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날 그동안 너무 감사했고 궁금했던 제 후원자가 누구인지 왜 저를 후원해 주신 건지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비 시부모님들이 저를 처음 본 건 제가 초등학교 때였다고 합니다. 제가 컨닝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썼던 그날 그것 때문에 혼자 남아서 청소를 해야 했던 제 기억에서 가장 끔찍한 기억이었던 그날이요.

너무 울다가 차가 오는지도 모르고 찻길인지도 모르고 내려갔다 차에 치일 뻔했던 그날 차를 타고 계셨던 것이 예비 시부모님이셨던 거죠.

도대체 조그만 것이 무엇이 저렇게 서러운 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너무나 걱정이 되셨던 두 분은 그날 저의 뒤를 몰래 따라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고아원으로 들어가는 것도 보셨고 다음날 원장 선생님을 통해서 제가 어떤 억울한 소리를 들었는지도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모든 사정을 알게 되신 두 분은 시간이 지나도 제가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기억이 나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도움을 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시다 입양까지도 고민을 하셨는데 그때 예비 시아버님이 사업적인 일로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결정되어 있어서 정신이 없을 때셨다고 합니다.

가족 모두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은 가까워지고 전 신경이 쓰이고 하시니 우선 원장 선생님께 상의를 하셨고 원장 선생님은 제가 공부를 너무 좋아하니 제가 마음껏 책을 사볼 수 있을 정도의 후원을 해주시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던 거죠.

아마도 원장님은 한 달에 10만 원 정도의 정기 후원을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예비 시부모님이 매달 100만 원의 후원금을 보내주시면서 제가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그 후원은 두 분이 외국에 나가신 후에도 계속되셨고 그래서 저를 보러 오시진 못하셨던 것이었습니다.

” 니가 그동안 보내줬던 편지들은 다 잘 받아봤어. 편지를 받으면서 니가 얼마나 잘 크는지 니가 얼마나 기특하게 생활하는지 니가 얼마나 상냥한 아이로 자라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어서 편지 받을 때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 그러게 말이야. 아이 공부도 잘한다는 애가 어찌나 그렇게 편지도 잘 쓰는지 난 니가 작가가 되는 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세상에! 니가 우리 아들처럼 법학과를 갔다고 하는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인가 했었지! ‘

” 답장은 말이다. 우리도 니가 보낸 편지마다 답장을 너무너무 쓰고 싶었는데 말야~ 우리가 쓴 답장을 보고 니가 혹시라도 부담감을 느끼면 어쩌나 그런 마음이 들어서 썼다가 결국 못 보내고 모아두기만 했어. “

그거 두 분의 입에서 나오시는 말씀은 다들 너무 따뜻해서 정말 꿈을 꾸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 사실 외국에서 자리를 좀 잡으면 널 데리고 올까도 생각했어. 우리한테 있는 건 커다랗고 시커먼 아들놈 뿐이니 작고 귀여운 널 딸로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 그런데 우리가 사는 나라가 아무래도 좀 위험한 일이 많은 나라라서 선뜻 데려올 엄두를 못 냈단다”

” 그래서 말이다. 우리가 이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드디어 널 만나러 가려고 했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저놈이 말야 저놈이 그러는 거야. 너랑 사귀기 시작했다고 절대로 끼어들 생각 말라고. 절대 못 보여준다고 에이! 정말 괘씸한 놈! “

그러더니 남편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 아니! 솔직히 두 분이 계속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손주를 딸로 입양할 거라면서 절 계속 협박하셨잖아요! “

“난 마음 지금도 변함없다. 그러니까 선주야 너 이놈이 조금이라도 못되게 굴면 바로 버려! 그리고 우리 딸 되면 되는 거야. 왜 헤어진 놈하고 남매하기 그럴거 같으면 걱정하지마라 내가 저놈 호적에서 파버릴 테니까. “

그런 예비 시어머님은 옆에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고 그런 모습까지 보고 있으니 그날 두 분이 절 처음 봤던 날처럼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하더라구요.

제 모습에 놀란 예비 남편은 안절부절 못하고 제 눈물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예비 시부모님은 절 너무나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예 전 그렇게 가족이 생겼어요. 그동안 한 번도 가져보지도 못한 너무나 따뜻한 가족이요. 정말 태어났 그렇게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싶도록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전 계속 행복 속에서 살고 있어요. 전 매순간 제가 이렇게 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두 분과 남편에게 감사하지만 그럴 때마다 제 가족들은 제가 열심히 노력하고 살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모두 행복한 것이라면서 오히려 저에게 감사하다고 해주십니다.

행복을 서로의 덕으로 돌리는 그런 진짜 가족이 된 것이죠. 그렇기 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제가 말이죠.

그러니 여러분들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세상을 원망하고 포기하기보단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시면서 노력하시다 보면 누군간 자신을 응원해주고 언젠가는 노력에 보답을 받으실 수 있는 날이 오실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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