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44살이고 10살 된 딸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첫사랑이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46살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달 주문이 70프로를 차지하고 있고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 저녁이 되면 정말 정신없을 정도로 많이 바쁩니다.
그래서 알바생을 한 명 고용했습니다. 원래 제가 카운터 보고 홀서빙하면서 남편이 치킨 튀기고 배달까지 했었지만 아파트 인근이라서 한 번도 주문 밀린 적 없었는데 최근 들어 주문이 많아지면서 일손이 너무 부족해서 구하게 되었습니다.
알바생을 구하게 된 계기는 저희가 구인을 광고한 건 아니고, 몇 달 전부터 저희 매장에 자주 찾아와서 나중에 알바생 고용하실 일이 있으면 꼭 자기를 시켜달라면서 전화번호 주고 간 청년이 있었습니다. 마침 일손이 필요해 전화하게 된 거고.
그렇게 현재 같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인생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더라구요. 저도 이런 일이 닥치게 될 거라고는 정말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이 알바생은 현재 22살입니다. 남편이 홀에서 치킨을 열심히 튀기면 알바생이 배달을 갑니다. 일도 잘하고 이런 쪽에 예전부터 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희가 따로 가르칠 만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 남편이 시급도 올려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에 저도 좋게 봐왔기 때문에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를 여자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알바생에게 느껴지는 무언가의 느낌이 별로 좋지는 않았습니다. 잠깐 배달 일이 공백이 생길 때면 앉아서 쉬라고 하는데 테이블에서 쉬면서 지그시 남편을 쳐다보는데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꼭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한두 번 신경이 쓰이다. 보니 계속해서 눈길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저와 눈이 마주칠 때도 있었고, 순간 깜짝 놀라며 회피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게 되었죠.
그렇게 점점 작게 신경 쓰이던 일들이 하나 둘씩 행동 하나하나가 뭐든 거슬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남편에게 집에 와서 제가 느꼈던 감정을 털어놨습니다.
아내: 여보… 알바생 뭔가 이상하지 않아? 느낌이 썩 좋은 편은 아니야… 22살인데 아직까지 일자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한 것도 걸리고 그리고 홀에서 쉬고 있어 때면 당신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눈을 떼질 못한다니까?
남편: 마땅히 일을 못 구했을 수도 있는 거고.. 22살이면 아직 창창한 나이인데 자기 인생 알아서 개척하겠지,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잘 봐놨다가 더 많은 일을 배우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닐까? 꼭 자기 매장인 것처럼 열심히 하려고 하잖아.”
아내: 그게 의심스럽다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알바생 한두 번 써봐? 예전에 단기 알바 몇 번 써본 적 있잖아. 그런데 어땠어, 딱 시급 만큼만 움직이려 하고 거의 시간 때우려고만 하지 꼭 자기가 사장인 것처럼 행동하진 않았잖아.
남편: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하는 일에 있어서 정말 자기 가게인 것처럼 일하는 게 얼마나 좋은 마인드인데 분명 나중에 크게 될 인물이야. 뭐든 잘할 거 같아 일 잘하고 있으니 너무 안 좋게만 보려고 하지마~ 우리야 같은 시급으로 일 잘해주면 땡큐인거지~
그렇게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별 신경 쓰지 말라면서 좋은 사람이라며 잘해주라는 말에 제가 너무 민감했던 것 같아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다음날 매장 오픈 전에 먼저 와서 기다리는 알바생의 인사를 받고 또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장사 시작할 준비를 거의 끝낸 상태에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과일을 깎아서 왔고 그렇게 모두 앉아서 먹으려고 하는데 두 종류의 과일 중에 남편과 알바생이 똑같이 한 종류의 과일만 먹고 있었습니다. 둘 다 사과는 먹으면서 키위는 안 먹더라고요.
아내: 키위는 안 먹어요? 원래 싫어하는 거예요?
알바생: 아니요. 어렸을 때부터 못 먹었어요. 알레르기가 있어서 피하게 되는 과일이에요.
남편: 정말? 나도 키위는 안 먹는데~ 나도 키위 알레르기 있거든. 정말 신기한데?
저도 이 말에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키위 알레르기 있다는 남편 처음 만났을 때 정말 많이 놀랐는데 알바생까지 알레르기가 같다는 말이 점점 더 이상하게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생긴 것도 어딘가 모르게 닮은 것 같아, 단둘이 있을 때 남편에게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던졌습니다.
아내: 내가 첫사랑 맞는 거야? 정말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난 적 없어?
남편: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은 소리야? 왜 내가 바람이라도 폈을까봐? 그런 거 없고~ 나는 네가 내 인생에 처음이야~ 그러니 걱정 말라고
아내: 남자들은 다 그렇게 말하더라 그런데 알고 보면 아니더라구… 당신도 나 몰래 숨겨둔 자식이 있을 수도 있지.. 알바생이랑 당신 서로 닮은 것 같기도 하던데?
남편: 이 사람이… 점점 이상해지는 거 같네? 왜 알바생이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으니까. 내 아들이라도 되는 거 같아?! 내가 볼 때는 하나도 닮은 곳도 없는데 어디가 똑같다는 거야?! 괜히 그런 거 하나 우연하게 일치했다고 괜한 사람 죄인 취급하지마! 계속 이러면 나 진짜 화낸다”
언성이 높아진 남편의 말에 이런 일로 괜히 싸움날 것 같아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혼자만의 쓸데없는 상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미묘한 아슬아슬한 감정 속에 제가 너무 예민해진 것 같아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기분 풀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기분을 풀어 줬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회식하자는 말에 매장 문 닫고 횟집 가서 술 한 잔 했습니다. 당연히 알바생과 같이 갔고 딸은 제 옆에서 피곤했는지 밥은 건성으로 먹다가 제 무릎에 누워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알바생이 제 딸과도 잠시 한가할 때면 자주 놀아주고 해서 가끔 쉬고 싶을 때 고맙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고생했다면서 술 한 잔을 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남자들끼리 대화하길래 저는 화장실 간다며 잠시 자리를 비켜줬고 그렇게 화장실을 나왔는데 때마침 알바생도 화장실을 가는지 마주쳤고 옅은 미소와 함께 저는 잠깐 편의점에 가서 숙취해소 음료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게 식당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알바생이 밖에서 식당 안을 보고 있었고, 무언가 슬픈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역시 제 느낌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불렀고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아내: 내가 요 근래 받은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러는데 혹시 우리 남편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거예요? 내가 보려고 한 건 아닌데 분명 우리 남편을 슬픈 표정으로 힘들게 보고 무슨 할 말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어요?
알바생: 그게…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기에는 상황이 딱히 좋은 것 같지는 않네요… 내일 따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아내: 역시 무슨 일이 있는 거죠? 그럼 남편도 지금 우리 기다리고 있으니 일단 오늘은 들어가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해요.
그렇게 저희는 식당 식당으로 다시 들어가 식사를 마쳤고 인사하고 헤어졌으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술을 많이 마셨는지 피곤하다면서 남편은 씻고 잠들었습니다.
저는 그날 잠 한숨 잘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상황 때문에 찾아온 건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제 머릿속의 한계는 내가 모르는 남편의 자식일 거라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는 남편보다 좀 더 일찍 출근한다고 하고 한 시간 일찍 나왔습니다. 먼저 매장에 도착했는데 매일 한 시간 전에 출근하던 알바생은 출근하지 않았고. 그날 저희에게 말도 없이 결근을 하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전화 또한 받지 않았고 어제의 일 때문에 자기의 상황이 들켜서 숨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매장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알바생이 찾아왔고 그날은 바쁜 상태가 아니여서 좋게좋게 넘어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무조건 화부터 낼 수 없었고 저와 남편은 얼굴을 푹 숙이고 죄송하다고 말하는 알바생과 함께 다시 매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매장 안에 잠시 쉴 수 있는 작은 방에 잠들어 있는 딸을 눕혔고 침묵만 흐르는 매장 안에서 알바생이 어렵게 입을 떼기 시작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말을 듣고 말았습니다.
아내: 그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갑자기 말도 없이 안 나와서 정말 많이 걱정했단다.
알바생: 정말 죄송합니다. 집에 일이 있어서 연락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저희 엄마가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라서 병원에 갔다 왔습니다.
아내: 많이 편찮으시면 그럼 문자라도 한 통 남겨주고 내일 나오지 그랬어… 우리가 그렇게 특히 야박한 사람들도 아닌데…
알바생: 그게 저희 엄마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 오늘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아내: 그게 무슨 말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면 어머니 곁을 더더욱 지켜야지.. 얼른 서둘러 가봐라!
알바생: 그게… 저희 엄마와 사장님의 관계 때문에 온 거예요. 예전에 서로 알고 계셨다고 하던데 제가 여기를 어떻게 찾아올 수 있었냐면 저희 엄마가 첫사랑이라고 하시더라구요. 대학교 때 서로 만났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엄마 친구분들 중에 사장님 매장을 알고 계시는 분이 계셔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네요.
아내: 뭐? 첫사랑? 그러니까… 너희 엄마가 우리 남편 첫사랑이었다고? 내가 첫사랑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왜 찾아온건데? 속 터지니까 빨리 요점만 말할 수 없겠니? 정말 숨 넘어가겠다. 어젯밤부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단다.
남편: 그게 뭔 소리야? 둘이 뭐 있었어?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야? 첫사랑..? 대학교 때 미숙이?
아내: 뭐? 미숙이? 대학교 때의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거야? 얼마나 특별했으면 이름 말하지도 않았는데 이름이 바로 나오네?
알바생: 미숙이 아닌데요. 저희 엄마 이름은 선희인데요. 양선희..
이내: 뭐야? 첫사랑이 도대체 몇 명이었던 거야? 내가 첫사랑이라며! 이 나쁜 놈아!
남편: 잠깐… 진정해 봐! 뭐?! 양선희? 대학 시절에 졸업 얼마 안 남겨 놓고 잠깐 만났던 양선희?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은 거야?
알바생: 네… 저희 엄마가 현재 위암 사기이신데, 이제 진짜 며칠 안 남은 것 같아요. 그런데 첫사랑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말에 수소문에서 이렇게 찾아왔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명분을 만들고자 알바 제안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갑작스럽게 이런 말에서 괜히 사장님 가정에 균열을 일으킨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자식 입장에서 엄마가 이제 하늘로 가시는데 소원 한번 못 들어 드리겠습니까? 제발 부탁입니다. 한번만 얼굴 보여줄 수 있으신가요?
알바생의 말에 저는 남편에게 가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는 저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고 오늘내일 하신다는데 얼굴 보여주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내일 당장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이 하나 남아서 남편 화장실 간 사이에 알바생에게 물어봤습니다.
아내: 내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이 있어서 그러는데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오늘은 잠을 못 잘 거 같아서… 아버지는 계시는 거지?
알바생: 아버지요?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네요.
아내: 그래 내가 괜한 질문을 했구나.. 미안하다. 왜냐하면, 같은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흔한 건 아니잖아. 특히 키위 알레르기는 진짜 너무 드문 경우라서 괜한 의심을 했네..
알바생: 저희 엄마도 키위 알레르기를 가지고 계세요. 그래서 저도 똑같이 유전이 된거예요. 이런 점 때문에 저희 엄마가 첫사랑이라고 하면서 자주 따라다녔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이번 주까지만 일하고 이제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아내: 그건 너무 신경 쓰지 마 다른 사람 구하는 건 어려운 거 아니니까.. 어서 들어가서 엄마 챙겨드려 하루하루 시간이 아깝잖니..
그렇게 남편 화장실 갔다 왔고 내일 보자면서 병원 위치 같이 물어봤습니다. 무언가 가슴이 찡한 느낌도 있었고, 남편에 대한 질투심과 배신감이 교차했네요. 은근히 제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피해 다니면서 방으로 들어가 누웠고 알바생에게 괜한 오해를 준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 부부는 서로 다른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선잠을 잡고 남편은 여느 때와 다르게 일찍 일어나서는 한껏 멋을 부렸습니다. 저에게는 평소 보여주지 않던 모습으로 변했고 내심 질투 났지만 잘 다녀오라고 손짓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딸아이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밀린 집안일을 했습니다. 그날은 혹시 몰라 매장을 하루 쉬기로 했습니다. 남편에게 매장 오픈 때문에 조급함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늦은 시간 집에 들어온 남편은 빨리 지각해 충혈된 눈으로 집에 들어왔습니다. 묵묵히 눈빛으로 서로의 감정을 교환했고 남편은 그날 술 한잔하면서 씁쓸한 눈빛으로 술잔을 쳐다봤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같이 곁들일 수 있는 안주를 준비하는 거였네요.
그리고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평상시처럼 생활했고 매장 오픈과 함께 알바생도 찾아와 일을 시작하겠다며 준비하고 있는데, 전날에 남편과 상의 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짧은 시간 같이 보내 해줘야 한다면서 월급 정산해서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남편의 제의에 또한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월급 정산해줬고 미안해하는 모습에 엄마 잘 챙기라며 조금 더 챙겼으니 나중에 시간 될 때 치킨 먹고 싶으면 놀러 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없지만, 제 딸과 잘 놀아줘서 그런지 왠지 아들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찾아온 여유에 남편과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알바생과 둘이 했던 이야기를 말했고 남편은 그런 말을 왜 했냐면서 괜한 상처 줬다고 저에게 화를 냈지만 저 또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해해 달라고 말하며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곤 남편의 첫사랑이 하늘로 떠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마침 그날 친정엄마가 저희 집에 오셔서 저와 남편만 장례식장에 찾아갔습니다. 장례식장에는 거의 텅텅 비어 있었고, 처음 보게 된 남편의 첫사랑인 그녀의 영정 사진을 접하게 되었네요.
그리고 와줘서 고맙다는 알바생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 엄마가 떠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마음의 준비를 그동안 했던 건지 덤덤한 눈빛으로 엄마의 사진을 보는 알바생을 보니 제 마음이 아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다가가 손을 잡아주며 좋은 곳으로 떠나셨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옅은 미소를 띄워줬습니다. 제 마음이 잘 전달됐는지 저에게 미소로 답을 해주더군요.
그렇게 저와 남편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혼자 남아있는 게 걸린다면서 같이 있어줘야 한다는 말에 다음날이 됐는데 들어오지 않고 남편이 걱정이 돼서 친정엄마에게 잠시 딸을 맡기며 아침 챙겨드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들어왔는데 남편과 알바생이 전날에 술을 좀 마셨는지 함께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곤 안쓰러워 비치되어 있던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알바생이 누워있던 자리에 가방이 있었는데, 가방 안에 작은 앨범 같은 게 보였고 저는 살짝 꺼내서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그 앨범에는 어렸을 때 자기 엄마와 찍었던 여러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보게 되었는데 마지막 장에 남편과 첫사랑이 대학교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이 있길래 살짝 놀라며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모서리에 작게 쓰인 글씨에 너무 놀랐고 다시 보고 또 보고 다시 봐도 선명하게 적혀있는 아빠라는 글씨를 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뻗어서 자고 있는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고 자는 모습하며 닮아있는 얼굴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네요. 처음부터 저한테 느꼈던 느낌은 정확했고 저에게 거짓말을 했던 알바생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어차피 제가 알게 된 일이고 이 문제를 숨기기도 그렇고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수 없으니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고자 둘 다 깨었습니다. 정신 못 차리자 저는 소리치며 빨리 일어나라고 했어요.
아내: 일어나봐! 정신 차리고 둘 다 앉아봐, 지금 내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못 하겠으니까… 빨리 일어나봐!”
남편: 왜 그러는데?! 왜 이렇게 화가나 있는 거야? 일어났잖아! 그만 소리 질러! 뭔 일인데 그래?
아내: 이거 좀 봐바! 마지막 장 보고 나한테 솔직하게 모든 걸 말해야 할 거야.
제가 던진 앨범에 남편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받았고 맨 뒷장을 펼치려는 순간 알바생은 앨범을 뺏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소리치며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고 엄청나게 화가 나 있는 저를 보고는 고개를 떨구며 안절부절하면서 저희 남편을 쳐다봤습니다.
남편은 마지막 장을 보면서 이건 그냥 자기 대학 때 같이 찍은 사진이라면서 보고 있는데, 아빠라고 적힌 작은 글씨를 봤는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남편은 알바생을 쳐다봤네요. 둘 다 서로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었고 저는 둘 다 이 상황을 해명하라고 했습니다.
남편: 나는 정말 모르는 일이야… 진짜 모른다니까? 얘가 내 아들이라고? 이게 말이 돼? 나야말로 충격인데 내가 여태까지 몰랐잖아… 여기 적힌 글씨 이거 뭐니? 진짜 니가 내 자식이라고? 선희가 나한테 아무 말도 없었고 졸업 후에 나는 바로 군대 가면서 헤어졌다고… 저번에 병문안 갔을 때도 너 아무 말 없더만 지금 나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너 입으로 말해봐라…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
알바생: 네… 저희 엄마가 어렸을 때 아빠가 멀리 일을 하러 나가셨다고 말했었는데요. 그리고 제가 중학생이 돼서도 아빠가 안 오셔서 언제 오시냐고 다시 물어보니 그때 엄마는 제가 어릴 때 상처받을까봐 말을 안 했었는데 먼저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몇 달 전에 전에는 제 손을 잡으면서 꼭 알아야 할 게 있다며 엄마가 이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 주셨어요.
알바생: 그때 당시 저희 엄마가 사장님을 엄청 좋아하셨고 따라다녔는데.. 그렇게 서로 연애를 하게 되면서 엄마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너무 두려운 마음에 이 문제에 대해서 상의를 하려고 했지만, 연애 때 워낙 아기를 싫어했던 사장님의 모습에 섣불리 말을 할 수 없었고 사장님은 결혼 생각조차 없으셨다고 해요.
졸업 후에 사장님께서 군대 가야 한다면서 좋은 남자 만나러 하면서 전화 한 통으로 헤어짐을 말하고 끊어버리면서 갑작스러운 정신적 충격에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하셨어요. 그리곤 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고 학교 동창에게 휴가 나왔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녁집 다가오는 사장님 옆에는 다른 여자와 함께 걸으며 애정 표현하는 모습을 보곤 멍청하게도 눈물만 훔치며 뒤돌아왔다고 하더군요.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엄마에게는 부모님이 안계셨어요. 엄마는 집을 팔고 원룸으로 이사를 했고 남은 돈으로 병원에서 혼자 외로이 출산의 고통을 인내해야 했다고 하네요. 참 미련하죠. 하지만 엄마가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그래봤자 과거 일 뿐인데요. 지금 와서 달라진 두 분 사시던 대로 그냥 그렇게 잘 사시면 됩니다. 이제 모든 사실을 알려드렸으니 들어가세요. 집에 유정이가 사장님 네 분을 찾고 있겠네요.
저희는 이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편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알바생의 엄마가 너무 미련했다며 제 눈치를 보면서 엄청 난감해 하더군요.
일단 저희 가정에도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온다고 했고 집으로 갔습니다.
아내: 뭐야? 우리 남편 완전 쓰레기 자식이었네 내가 첫사랑이라고 했으면서 너 과거가 아주 더러웠구나 진짜 충격이다… 어떻게 자기 군대 간다고 헤어지자고 하고 휴가 나와서는 또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어? 정말 바람둥이였네? 솔직히 말해 지금 다른 여자 있는 거 아니야? 배다른 자식이 또 있는 거 아니냐고!! 이런 상황이 생기니 이제는 하나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아
남편: 정말 나도 몰랐던 일이었고, 당신과 만나면서도 다른 여자한테 눈길조차 돌린 적 없어! 그리고 지금 봐봐! 나 가정에 엄청 충실하고 있잖아. 절대 다른 여자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내 말 믿어줬으면 좋겠어.
아내: 그럼 쟤는 어떻게 할건데? 당신 자식이건 바뀌지 않는 거잖아! 이제 어쩔 거냐고!
그리곤 저는 털썩 주저앉고 펑펑 울었습니다. 제 모습을 본 저희 엄마는 너무 놀라셨는지 저와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다투면서 대화한 내용에 충격을 받고 말았네요.
저희 엄마는 방에 들어가 누우셨고 이 문제를 계속해서 남편과 의논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나이도 많이 찼고 이제 자기 앞가림 할 수 있으니 혼자서 잘 살 수 있지 않겠냐 왜냐며 제 눈치 보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고 있더군요.
아기가 싫다는 남편이 왜 저에게는 아기를 갖자고 그렇게 닥달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남편은 이 문제로 밤을 새웠고 남편의 첫사랑에 장례까지 모두 치러줬습니다.
알바생과 함께 매장에 잠시 들렀고 간단하게 차 한잔 하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한 후 저희에게 감사하다며 인사했고 남편의 씁쓸한 눈빛과 나중에 치킨 먹으러 오겠다는 알바생의 말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놀자면서 옆에서 졸라대는 딸을 보면서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나중에 다시 왔을 때 놀아주겠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매장을 나가려 하자 남편은 제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해 하더군요. 역시 피는 못 속이는지 불안해하는 모습에 그래도 저녁은 한 끼 먹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놀란 남편은 저를 쳐다보면서 고맙다는 눈빛으로 저에게 시선을 보냈고 집에 와서 소박한 한 끼 준비해 줬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어준 알바생은 저희 집을 두리번거리면서 잘 살고 있는 모습에 부럽다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고 딸이 놀아달라며 조르자 웃는 얼굴로 대해주는 눈빛에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남편은 알바생의 눈을 떼지 못했고 이런 상황이 참으로 많이 씁쓸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같이 술 한잔해도 되냐고 물어봤고 그렇게 하라고 응해줬습니다.
그리곤 저녁 늦게까지 둘이서 오랫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고 저는 딸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나와 보니 둘 다 장례식장에서부터 많이 피곤했는지 뻗어있는 모습에 정말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받아들이기에는 살아온 환경도 너무 다를 뿐더러, 제 딸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너무 복잡했습니다. 그동안의 모습을 봤을 때 짧았지만 알바생은 때묻지 않은 착한 청년이었습니다.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밤새 고민한 결과 알바생을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아이 입양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남편의 자식이면 충분히 함께할 자격 있다고 생각했어요.
과거가 어떻든 간에 현재의 상황을 모른 척하고 등 돌리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짧지만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과 알바생이 성품을 볼 땐 정말 바르게 자란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둘 다 술이 깨고 일어났을 때, 얘기를 했고 둘 다 너무 놀란 표정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미묘한 감정선에 둘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곤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말라며 저는 함께 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잘 살아보자고 알바생에게 말했네요.
그리고 해장국과 함께 조용한 식사를 하게 되었고 이제 알바생이 아닌 저희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이 어색하지만 아들이라고 부르는 말에 어색하게 쳐다보면서 대답하는 얼굴에 아직 남아는 있지만 그래도 그늘진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제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띄어졌고 제 마음에 또 다른 꽃 꽃이 하나 피어나고 있네요.
이제 한 개의 꽃이 아닌, 두 개의 꽃이 자라고 있으니 무럭무럭 잘 크게끔 사랑을 줘야겠습니다. 부모님 이 소식 듣고 난리 났지만 저희의 확고한 생각에 결국 응해 주셨네요.
어차피 결정은 저희가 하는 거니 누가 뭐라고 해도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동안 받아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사랑 느껴지게 하고 싶습니다.
저희 가족의 결정에 사랑과 축복이 함께 할 수 있게 여러분들의 따뜻한 한마디 듣고 싶네요. 비록 저희도 부족하지만 열심히 부딪치며 잘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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