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48살 된 아줌마구요. 현재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저는 18살 이른 나이에 아이를 출산하여 18살 딸을 낳았어요.
저는 어린 마음에 부모님께 먼저 임신 얘기를 꺼냈는데 얘기를 듣자마자 저희 부모님은 저를 매몰차게 내쫓으셨어요. 자식 하나 없는 셈 친다며 나가라고 하시는데 그때 옷가방 하나 가지고 나와서 남자친구와 함께 동거를 하기 시작했죠.
남자친구도 부모님이 안 계셨는데 멀리서 일을 하신다고 했어요. 근데 한 번을 집에 안 오셨죠 그렇게 아이를 출산하러 남자친구와 같이 병원에 갔는데 아이를 출산하고 나니 남자친구는 저만 남겨둔 채 혼자 도망을 가고 집을 찾아가니 집도 빈집이었죠.
그 추운 겨울날 딸을 가슴에 품고 몇 번이나 망설였어요. 안 좋은 생각까지 했지만, 제 품 안에서 새근새근 자는 딸의 모습을 보고 혼자라도 키워보자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게 지금 딸의 나이가 서른이 되었어요. 이런 보잘 것 없는 엄마 밑에서도 바르게 잘 자라준 딸이었죠. 저는 딸이 제 자식이었고 남편이었으며 친구 같은 존재였어요.
제가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해서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 했기에 친구가 없거든요. 주변에서도 다들 절 보며 외롭지 않냐고 남자친구라도 사귀어 보라고 했지만, 저는 딸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렇게 영원히 함께 할 것만 같았던 딸이 27살 되던 해 갑자기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 겁니다. 연애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결혼 얘기를 할 줄은 몰랐어요.
근데 당황스러웠던 건 딸의 남자친구가 딸이랑 12살 차이가 나는 띠동갑이었어요. 저랑은 고작 6살 차이밖에 안 나는 사람이었죠. 사람을 보는데 얼마나 도둑놈 같은지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요.
내가 이런 나이 많은 사람한테 내 딸을 시집보내려고 이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웠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도대체 어린 내딸을 어떻게 꼬드꼈길래 결혼까지 한다고 하는 거지?라는 생각까지 들었죠.
저는 딸의 남자친구와의 만남이 끝난 뒤 결혼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어요. 그냥 연애만 하라고 했죠. 그러니 딸이 처음으로 제게 큰소리를 쳤어요.
” 엄마는 왜 매번 엄마 생각만 해?! 나는 내 인생 평생을 엄마한테 다 맞췄는데! 엄마는 나한테 결혼 허락 하나도 못 해줘?! 이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내가 보호받는 기분이야. 보호자가 생긴 기분이라고!! 아빠가 있었으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나한테도 너무 잘해주는 사람이야. 근데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수가 있어?!”
라고 하더라구요. 이런 딸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나는 내 감정을 딸에게 위로받았을 때 정작 내 딸은 누구에게도 본인 감정을 표출하지 못했구나 싶은 생각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어요.
그 이후로 저는 다시 한번 만남을 갖자고 딸에게 얘기를 했고 딸의 남자친구도 저에게 본인의 진심을 보여주려고 부단히도 애를 쓰더라구요.
혼인증명서까지 내와 결혼을 한 적이 없다는 증거까지 보여주는데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죠. 딸의 남자친구는 핸드폰 대리점에서 점장으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핸드폰을 바꾸러 온 저희 딸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서로 호감을 갖다가 1년 반 정도 연애를 했고 결혼 생각까지 하게 되었데요 이렇게 몇 번 딸의 남자친구를 보니 사람이 보면 볼수록 진득해 보였고 거짓이 없어 보였어요.
그리고 저를 생각해주는 배려가 있었던게 결혼을 하게 되면 제가 사는 동네에 집을 얻겠다고 하더라구요. 워낙 저랑 딸 사이가 좋으니 떨어지면 안 된다면서요.
그렇게 저는 딸과 사이에 결혼을 찬성하였고 딸을 결혼시키고 나서도 자주 얼굴을 보곤 했어요. 이렇게 자주 만나다 보니 사위와도 금방 친해진 지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으니 공감대도 많았어요. 딸이 결혼하고 나서 얼굴이 더 좋아지는 모습에 엄마인 저는 그저 좋을 따름이었죠. 그리고 1년도 안돼 딸이 임신을 하게 되었어요.
소식이 얼마나 반갑고 좋던지 남들보다 일찍 할머니가 되는데도 그렇게 좋더라고요. 저희 딸을 애지중지하는 사위는 딸의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직장을 그만두라고 하더라구요.
당신이 일 안 해도 내가 우리 애기랑 당신은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면서요 그렇게 저희 딸은 편하게 태교를 하며 지냈죠. 그리고 딸 임신 5개월째 되는 날 사위의 부탁으로 같이 딸의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딸이 엄마 매번 내 병원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식당 식당에 휴가 쓰는 거 눈치 보인다며 오늘은 나 혼자 가도 되니까. 엄마는 그냥 일 나가 나 이제 혼자 다녀도 괜찮아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어차피 욕먹은 거 또 먹어도 상관없다며 같이 가자고 했는데, 기어코 딸은 혼자 간다고 했어요. 그때가 겨울이라 빙판길 조심히 다니라고 하니 집 앞에서 바로 택시 불러서 타고 간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그렇게 오전에 딸을 보내고 식당에 출근을 했는데 그날 마침 또 단체 손님이 들이닥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그렇게 뒷정리까지 다 하고 나니 오후 3시가 되었죠.
저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며 연락이 왔을 딸에게 다시 연락을 주려고 핸드폰을 봤어요. 역시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죠. 근데 아니 웬 부재중 전화가 52라 통이 넘게 찍혀 있는 겁니다. 순간 무슨 전화가 이렇게 많이 왔지 싶어 다급하게 통화 목록을 봤어요.
근데 있어야 할 딸의 번호는 보이지 않았고 웬 모르는 전화와 사위 전화뿐이었죠. 그 부재중 통화를 보고 있자니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느낌으로 알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위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그러니 역시 사위가 울부짖으며 전화를 받는 겁니다. 우느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우냐고 했어요. 그러니 저희 딸이 지금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겁니다.
빙판길에 차가 돌면서 전복이 됐다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손에 힘이 풀려 전화를 떨구고 말았어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죠. 사위는 지금 빨리 병원에 오시라고 했고 곧장 딸이 있는 병원으로 갔어요. 그래요. 그때 제가 병원을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도착한 병원에선 또 한 번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딸은 혼수 상태였는데 병원에선 딸의 다리 이야기만 하는 겁니다.
들어보니 다리에 심각한 상처가 나면서 염증이 생겼대요. 근데 이대로 두면 염증이 전신에 퍼져 장기를 망가뜨리고 패혈증까지 온다는데 사망 이야기까지 하는 겁니다.
혼수상태인 상황에서 더 이상의 약투여도 불가능하다며 절단을 해야 될 것 같다고 하는데, 저는 말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어요. 어떻게 우리 딸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믿기지가 않았죠.
왜 이런 시련을 내 딸한테 주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어요. 하지만 딸 뱃속의 아이는 무사하다고 하더라구요. 딸이 온몸을 바쳐주고 지 자식은 지킨 거 같아 마음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딸은 혼수 상태에서 절단 수술을 받게 되었고 절단 수술을 받은 지 딱 8일 만에 혼수 상태에서도 깨어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다리가 없어진 본인 모습에 딸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결국 스트레스로 유산까지 하게 되었죠. 임신 5개월에 수술로 뱃속의 아기까지 보내주고 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어요. 정말 이건 제 딸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벌이었어요.
벌을 내리려면 나한테 내리지 왜 아무 잘못 없는 내 딸에게 이런 벌을 내리는지 모든 게 다 원망스러웠죠 딸은 폐인과도 같은 삶을 살았는데 방에서 나오지도 음식을 먹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그런 딸을 위해 모든 걸 다 다 포기하고 딸의 곁에 있었죠. 사위는 출근을 해야 하니 제가 딸네 집에 들어와 전적으로 딸을 맡았어요.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면서 딸을 달래고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는데, 쉽지만은 않았어요.
딸이야 요즘 의족으로도 충분히 다시 쓸 수 있다고 했지만 딸에겐 위로가 되지 않았고 사위도 이런 딸에게 점점 지쳐가는지 매일같이 싸워댔어요.
싸우는 소리를 저는 한쪽 방에서 듣고만 있어야 했고 제가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죠. 사위한테도 너무나 미안했어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이런 일이 생겼으니 이 결혼에 얼마나 후회가 될까 싶었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딸이 사위를 거부해서 둘이 각방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1년이란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고 저나 딸이나 사위마저 점점 지쳐가고 있을 때였어요. 새벽에 딸과 사위가 또 싸우는지 안방에서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죠.
저는 속이 너무 상했지만,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싸움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다 제 딸이 먼저 시작을 해요. 애가 저렇게 되고 나서 의부증이 생겼는지 허구한 날 지 남편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거든요.
사위가 퇴근을 하면 오자마자 핸드폰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고 사위가 핸드폰을 주면 이 여자는 누구냐고 당신 지금 바람 피고 다니냐며 악을 써댔어요.
그리고 사위가 회식을 하거나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밤 10시도 안돼 전화를 걸어 빨리 안 들어오냐고 난리를 쳤죠 그런데도 저희 사위는 이런 제 딸을 다 받아주었어요.
허허거리며 당신 또 왜 그러냐고 나 부끄러운 짓 한 적 없다며 제 딸을 안심시켜주곤 했죠. 그럴 때마다 사위한테 얼마나 미안하던지 딸 대신 제가 매일같이 사과를 했죠.
그렇게 그날도 새벽 2시가 다 될 때까지 싸우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어요. 그렇게 저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잠깐 잠에 들었는데 아니 제 방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 소리가 났고 저는 깜짝 놀라 누구냐고 했어요. 그러니 사위였죠.
단 한 번도 이렇게 제 방을 마음대로 열고 들어온 적이 없는 사람인데 저는 너무 깜짝 놀라
“자네… 지금 뭐하는 건가?”
라고 했죠. 그러니 사위가 제 앞으로 와 제 팔을 잡으며 소근대는 목소리로…
” 장모님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제가 장모님한테 한 가지 제안을 좀 해도 될까요?”
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그런 사이에 손을 뿌리치며
” 자네 지금 왜 이러는 건가?” 라고 했어요. 그러니 이내 눈물 눈물을 훔치며
” 장모님 진짜 화영이랑 잘해보고 싶었는데요. 더이상은 이렇게 지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잠깐 화영이를 좀 떠나 있어야 될 것 같아요”
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 지금부터 본인이 하는 제안을 잘 들으시라며 이 방법이 저희 딸을 살리는 방법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장모님 저랑 같이 딱 이 년 동안만 연기 좀 하시죠?”
라고 하는데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무슨 연기를 하자고 하냐고 했어요.
“그러니 장모님이 화영이한테 제가 다른 여자가 생겨서 도망갔다고 거짓말 좀 해주세요. 이 편지도 좀 같이 전해주시구요.”
라고 하는 겁니다. 그 편지는 사위가 자필로 쓴 편지였고 내용도 사위가 말한 것처럼 다른 여자가 생겨서 너를 버린다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저는 그런 사위에게 꼭 이렇게까지 연기를 해야 되는 거냐고 했어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차라리 내 딸이랑 이혼을 하고 떠나라고 했죠. 그러니 사위는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 어머님… 제가 화영이랑 이혼을 하고 싶었다면 진작에 이혼을 했겠죠. 근데 아직까지도 화영이를 너무 사랑해서 화영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라는데 이게 무슨 우리 딸을 다시 일어나게 도와주는 거냐고 했죠. 그러니…
” 분명히 화영이 성격에 제가 배신을 하고 떠났다고 하면, 이를 악물고 걷는다고 할 거예요. 화영이는 항상 뭔가 자극제가 있어야지만 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자극제 역할 제가 하려고요. 어머님도 화영이 걷는 모습 보셔야 할 거 아니에요.
1년 동안 화영이를 어루고 달래고 타이르고 화내도 걷는다는 소리 안 하잖아요. 근데 제가 이렇게 떠났다고 하면, 분명히 화영이 성격에 당장 의족 알아보러 가자고 할 거예요. 제가 누구보다 화영이를 더 잘 알고 있기에 이런 거짓말을 해서라도 화영이 걷게 하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어머님도 제안 수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이런 사위의 제안에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어요. 행여나 딸이 상처를 받아 걷는다는 말을 아예 안 하면 어떡하나 행여난 사위가 영영 우리 딸을 떠나가면 어떡하나라는 걱정들이요… 그러니 사위도 이런 제 마음을 읽었는지 제게 또 무슨 서류를 하나 보여주며 자기는 2년 동안 원양어선을 타러 갈 거라며 이미 취직도 했다고 하는 겁니다.
제 딸의 눈에 띄면 아직 안 되니까. 아예 육지를 떠날 거라는데 원양어선 타고 돈 왕창 벌어가지고 와서 저희 딸한테 더 좋은 의족을 맞춰줄 거라고 하는데 저는 이런 사위의 태도에 도저히 할 말이 안 나왔어요. 그냥 눈물만 흘리며 이 은혜를 어찌 갚냐고 했죠.
내가 자네한테 뭘 해줘야 되냐고 했어요. 그러니 제 딸을 잘 부탁한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제일 중요한 임무라면서요 말 한마디에 사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한번 믿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우리 딸이 몸이 저렇게 성하고 아프지만 남편 하나는 잘 뒀다라고 생각을 했죠.
그렇게 사위는 그날 제게 가짜 편지만을 남긴 채 부산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개통한 핸드폰 번호를 제게 알려주며 가끔씩 이 번호로 제 딸 사진이랑 재활 운동하는 사진들 보내달라고 하더라구요.
자기도 바다에서 일하고 있는 사진 보내며 안부를 전한다면서요 그렇게 저는 사위와 둘만 아는 비밀을 공유한 채 미션과도 같은 일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새벽에 호들갑을 떨며 딸에게 가서 사위가 남긴 가짜 편지를 주며 니 서방 도망간 모양이라고 이걸 어쩌면 좋냐고 난리를 쳤어요.
그러니 딸이 편지를 보곤 한동안 눈물을 흘리더니, 사위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그러니 전화번호 또한 없는 번호라고 했죠. 일단 딸은 기다려보자며 세 달을 넘게 돌아오지 않는 지 남편을 기다렸고 세 달이 딱 지나고 나니 딸은 저를 불러 의족을 맞추러 가자고 하는 겁니다.
” 이 인간 내가 내 발로 직접 걸어서 찾으러 다닐 거야. 찾아서 아주 가만 안 둘 거야. 그러니까 엄마! 지금 당장 병원에서 소개시켜준 의족센터 가자! 가서 의족도 맞추고 재활운동도 할 거야.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까. 남편이란 놈도 나를 등신 취급한 거 아니야! 나 그놈 내 손으로 잡아서 가만 안 둘 거야! “
라고 하는데 저는 온몸에 소름이 다 돋았어요. 사위의 말이 정확했거든요. 어찌 보면 제 딸을 저보다 사위가 더 잘 알았던 거죠. 그렇게 저는 딸을 부추겨 의족을 맞췄고 재활 운동을 시키게 되었어요.
의족을 하고 걷는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무릎 주변 근육을 강화시켜야 했고 무릎에 붕대를 감아 약국에서 소염제를 사서 먹어야 했어요.
그리고 한두 시간 간격을 두고 회당 20분 정도 냉찜질을 해줘야 됐고 온찜질도 바꿔가며 수시 우리가 태어나서 걷는데도 15개월이란 시간이 걸리는데 의족을 한 사람은 이상으로 걸린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는 와중에도 몇 번씩이나 좌절을 맛봤는데 저희 딸은 포기하지 않았죠. 정말 자기를 떠나간 남편을 잡으려고 하는 악착감인지 아니면 살려고 하는 악착감인지 뭐가 됐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딸의 모습이 좋기만 했어요.
맨날 방에서만 틀어박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랑은 비교조차 되지 않았죠. 저는 이런 딸의 순간순간을 전부 다 사진으로 남겨 딸 몰래 사위에게 전해주었고 사위 또한 바다 한가운데서 본인의 얼굴을 셀카로 찍어 보내주며 안부를 전했습니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과 새카맣게 탄 얼굴이 보는 사람도 가슴 아프게 하더라구요.
그런 사위에게 조금만 더 힘내자고 내가 자네한테 참 미안하고 너무 고맙다고 했죠. 자네가 내 딸을 살린 거나 다름없다고 했어요. 이런 사위의 간절한 마음이 딸에게도 전해졌을까요? 드디어 제 딸이 장작 20개월 만에 두 다리로 걷게 되었어요.
눈앞에서 펼쳐진 모습이 기적과도 같았죠. 그곳에서 재활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 일인마냥 기뻐해주고 눈물을 흘려주었어요. 그렇게 저는 두 다리로 걷는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딸에게 물어봤어요. 이렇게 걷게 됐으니까. 니 남편 잡으러 가야지라구요. 그러니 딸이 박장대소를 하며
“엄마 나 이제 걷기 시작했어. 근데 이렇게 소중한 걸음을 인간 잡는 데 왜 써? 내 인생만 아깝지? 나 이 소중한 걸음걸음들 엄마랑 같이 걸으면서 쓸 거야~”
라고 하더라구요. 이 말을 사위한테도 전해주니 사위도 웃으면서 역시 김아영답다며 얼른 보고싶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이런 사위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사위가 원양어선 계약이 끝나는 날 직접 딸을 데리고 마중을 나가기로 생각을 했던 거죠. 딸한테는 여행을 가자고 거짓말을 했고 사위한테는 내가 직접 데릴러 간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두 사람이 만나는 날이 다가왔죠. 저는 사위가 일러준 선착장 앞에서 딸과 함께 기다렸고 멀리서 사위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배에서 한 무더기 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던 찰나, 사위가 먼저 저희를 알아봤고 저와 딸이 있는 쪽으로 뛰어오더니만 저희 딸을 부서져라 꼭 안아주는 겁니다. 저희 딸은 놀란 눈을 하며 이 사람 누구냐고 이거 안 놓으냐고 하는데 이내 지 서방인 걸 알았는지 가만히 두 손을 내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구요.
그 모습에 저도 울고 사위도 목 놓아 울었어요. 딸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엄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냐고 하는데 2년 전 저와 사위가 약속한 모든 내용들을 딸에게 알려주었고 그동안에 서로 연락했던 문자랑 사진들도 사위가 딸에게 전부 다 보여주었어요.
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사위도 아무런 말도 없이 저희 딸의 의족만 만지작거리는데 저는 둘만 남겨둔 채 먼저 올라왔어요. 아마 자기네 둘끼리 할 말이 많을 테니까요…
제가 원래 제 인생을 통틀어서 제일 잘한 일이 딱 한 가지였거든요. 제 딸을 낳았다는 거요 근데 이번에 사위를 보면서 잘한 일이 또 하나 생기게 되었어요.
딸과 사위의 결혼을 찬성하길 잘했다는 일이여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우리 딸과 사위가 행복하게 잘 살면서 아이도 낳고 부모도 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저의 긴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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