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빠는 언제나 다정하신 분이었습니다. 항상 엄마와 자식이 먼저였던 우리 집안의 든든한 가장이었죠. 그래서 우리 집이 가난해도 참 행복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새 옷을 입었던 기억이 거의 없었어요. 삼 남매 중 둘째라 항상 언니 옷을 물려받았었는데 내 동생은 내 옷을 도 물려 입었고 여기저기 색이 바래고 구멍이 난 옷을 입고 다니던 동생이 항상 안쓰러웠습니다.
가끔 아빠가 추석이나 설에 새 옷을 사주실 때는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새 옷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좋아서 빨래도 안 하고 며칠씩 입은 적도 있었죠.
나중에 커서 알게 된 건데 아빠가 얼마 안 되는 아빠 용돈을 몇 달 동안 모으고 모아서 우리 옷을 사주셧던 거였더라고요.
아빠가 용돈 아끼려고 출퇴근을 걸어 다니셨는데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 다니셨으니 얼마나 피곤하셨을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아빠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날은 아빠가 오랜만에 쉬는 날이어서 가족 전부 가까운 계곡으로 놀러 가기로 했어요. 아빠는 놀러 간다고 들뜬 우리가 너무 귀여웠는지 우리 삼 남내를 마트에 데려가서는 과자랑 사탕이랑 음료수를 사주셨습니다.
과자가 잔뜩 들어있는 검은 봉지 들고 계곡으로 향하는데 어찌나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부르면서 걸었습니다.
수영복도 없어서 옆집 친구네서 빌려 입고 튜브도 없어서 그냥 맨몸으로 계곡에 들어가서 한참을 놀다가 엄마가 정성스럽게 만든 도시락도 다 같이 나눠먹고… 그땐 진짜 행복했었습니다.
너무 행복하니까 매일 이렇게 행복한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밥 먹고 나니까 언니랑 동생은 졸린지 잠이 들었고 나는 물에 또 들어가고 싶어서 혼자 계곡 물속에 들어가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참을 놀다 보니 어느 순간 너무 깊은 곳에 들어가 버렸고 생각보다 너무 깊어서 발에 아무것도 안 닿지 않아 허우적거렸는데 순간 너무 겁이 나서 눈앞이 까맣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물은 계속 먹고 살려달라고 울면서 “나 이대로 죽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던 찰나, 그 순간 누군가 날 구하러 물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물에 빠진 곳이 너무 깊은 곳이라 그런지 날 구출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난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습니다.
눈 뜨자마자 엄마가 보였는데 얼마나 우셨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더라고요. 내가 깨어난 걸 보시더니 또 펑펑 우시는데.. 그때 “아.. 나 살았구나” 싶었어요…
내가 깨어났단 소식을 듣고 언니랑 동생도 날 보러 왔는데 아빠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한테 아빠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병실에서 회복 중이시라고… 몸 추스르면 절 보러 오실 거라고 하시는데.. 그때 엄마의 눈빛은 이상하게 떨렸습니다.
아빠는 며칠 동안 날 보러 오지 않으셨고.. 난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충격받을까 봐 가족 모두 아빠의 죽음을 숨겼지만 그냥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아빠는 우리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난 한동안 내가 아빠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도 여러 번 했었고 그런 나 때문에 우리 엄마까지 점점 폐인이 되어갔죠.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아빠의 일기장을 보게 됐습니다.
“예쁜 우리 딸 혜지야. 아빠가 정말 사랑한다.
우리 혜지 공주님 건강하게만 커 주렴
그게 아빠의 소원이란다.”
아빠의 일기장을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는 날 살리려고 그날 그 차가운 물속에 뛰어드신 건데 난 그런 아빠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왜 이렇게 살고 있었던 걸까… 싶었습니다.
아빠가 하늘에서 날 보고 계신다면 정말 슬퍼하시겠구나… 그날 이후 아빠한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고 싶어서 저는 다시 열심히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고 지금도 아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중에 우리 아빠 만나게 되면 내가 아빠 몫까지 정말 열심히 살다 왔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아빠! 잘 지내시죠? 하늘에서 항상 우리 가족 지켜봐 주세요. 너무 보고 싶고 존경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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